문재인 정부 ‘교수장관’ 성공할까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학자 출신 공직자들 야당의 주 타깃… 안경환 이어 조대엽 낙마

조대엽 노동부 장관 후보자(고려대 노동대학원장)가 결국 학교로 돌아갔다. 7월 13일, 조 후보자는 입장 발표를 통해 “본인의 임명 여부가 정국 타개의 걸림돌이 된다면 기꺼이 장관 후보 사퇴의 길을 택하겠다”며 “문재인 정부의 성공에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조 교수 이전에는 낙마한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 역시 학자 출신이다. 참여정부 시절 인권위원장을 지내긴 했지만 안 후보자의 주된 경력은 서울대 법과대학 명예교수다. 안 교수는 1975년 상대 여성의 도장을 위조해 일방적으로 혼인신고한 사실이 드러나 결국 장관 후보자에서 물러나게 됐다.

문재인 정부는 적극적으로 공직 후보에 학자들을 임명하고 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한신대 경영학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한성대 무역학과),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성균관대 사학과), 박은정 권익위원장(이화여대 법학과), 김외숙 법제처장(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등이 이미 임명장을 받았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 후보자(연세대 법학과),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한양대 에너지공학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경기대 사회복지학과),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등이 임명절차를 기다리고 있다.

6월 30일 조대엽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굳은 표정을 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6월 30일 조대엽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굳은 표정을 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박 정부 시절도 학자 출신이 골칫거리

학자 출신 공직자들은 야당의 주 타깃이 됐다. 맨 처음 공격의 대상이 된 것은 조국 민정수석(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 조 수석을 임명하자 국민의당은 “조국은 계파정치의 대표적 인물”, “협치를 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 다음에는 김상조 공정위원장이었다. 인사청문회가 시작하기도 전부터 자유한국당은 김 위원장을 ‘1호 낙마’ 대상으로 지정하고 ‘김상조 낙마’ 건배사까지 외쳤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이 중점적으로 제기한 위장전입 의혹이 아내의 병 치료를 위한 이사인 것으로 결론이 나면서 야당의 공격도 수그러들었다. 김상곤 부총리도 석·박사 학위 논문이 표절과 중복게재로 얼룩졌다는 비판에 한동안 시달렸다.

야당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제외하고 교수 출신들을 주요 낙마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전략이 일부나마 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이유는 박근혜 정부의 교훈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장관 후보자들도 많은 문제를 일으켰지만 학자 출신 장관들이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박근혜 정부 첫 내각에서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이었다. 윤 전 장관은 대학교 소속은 아니었지만 1997년부터 해양수산개발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한 학자였다. 하지만 인사청문회부터 동문서답으로 일관하고, 여수 기름유출사고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한 행동으로 인해 박근혜 1기 내각 최악의 인사로 꼽힌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활약(?)한 이들도 모두 교수 출신 정무직 공직자들이다. 차은택씨의 스승인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전 서강대 광고홍보대학원장), 차씨의 외삼촌인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숙명여대 영문과), 김종 문체부 2차관(전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모두 학계에서 바로 발탁된 이들이다.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도 2년간 새누리당 비례대표 의원을 지내기는 했지만 서울시립대와 성균관대에서 거의 평생을 교수로 지냈다. 보건복지부 장관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지냈다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국민연금공단이 찬성표를 던지게 압력을 행사한 문형표 전 이사장도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오랫동안 연구원으로 일한 경제학자다.

학자 출신 고위공직자가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대엽·안경환의 사례에서 그 대답을 찾을 수 있다. 학자가 고위공직에 발탁되면 흔히 상반되는 평가가 나온다. 한쪽에서는 ‘기존 관료조직의 논리에서 벗어난 전문가’라는 호평이 나오고, 반대편에서는 ‘세상물정 모르는 권위적인 인사’라는 말이 나온다. 조 교수가 낙마하기 직전 터진 사건은 ‘교수의 권위주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조 교수가 노동부 장관 후보자에 지명되자 고려대학교 총학생회는 노동대학원장인 조 교수가 학생들에게 막말을 한 전과가 있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안경환 명예교수는 ‘교수는 검증받지 않는 삶을 산다’는 인식을 강화시켰다. 안 교수는 과거 칼럼에서 “운좋게 적발되지 않았지만 음주운전을 한 적이 있다”라든지 논문 표절·중복 게재에 대해 자신도 과거의 관행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지난해에 낸 저서에는 여성비하 발언으로 볼 소지가 많은 표현이 담기기도 했다. 공직자로서의 삶을 오랫동안 살아왔다면 절대로 하기 어려운, 지나치게 솔직한 태도였다.

‘적폐청산’이라는 과제에 충실해야

학자 출신 장관으로서 최악의 태도는 성공을 위해 학문적 소신마저 내버리는 길이다.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은 대학원생 시절 유신헌법을 옹호하던 학자를 비판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교수 시절에도 5·16과 같은 군사쿠데타를 비판했다. 하지만 장관 청문회 자리에서 5·16 쿠데타에 대한 견해를 묻자 그는 침묵했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국회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본인의 저서에서는 대통령이 초법적인 대통령령을 제정하는 것을 비판했다. 하지만 장관이 된 이후에는 ‘의회 독재’를 운운했다. 김상률 전 청와대 교문수석도 학자 시절에는 진보적인 시각의 글을 썼지만,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한국사 국정화 교과서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학자 출신 고위공직자는 사람과 조직을 다루는 데 서투르다고 평가한 바 있다. 많아야 수십 명 조직 안에서 지내던 교수들이 갑자기 장관이 되면 인사와 조직 관리에서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 칼럼에서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교수들이 고위공직자가 되겠다면 계장급이나 과장급에서 출발하는 것이 순서”라고 말한 바 있다.

공직을 맡게 된 ‘교수 장관’들은 차관에서부터 오랫동안 관료생활을 한 이들을 만날 가능성이 높다. 박영원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이 2011년 연구한 바에 따르면, 전두환 정권 시절부터 전체 정무직의 15% 정도는 학자 출신이었다. 군사정권이 끝난 이후에는 군인 출신 정무직이 대폭 줄어들고 관료 출신 비율이 45%까지 늘어난다. 작년 11월 <한국경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의 정무직 중 관료 비율은 47.39%, 교수 출신 비율은 19.28%(48명)였다. 과거에 비해서 학자 출신이 늘어났지만 절대다수의 자리는 관료들이 차지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 학자 출신 고위공직자가 늘어난 것을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 척결’ 분위기와 연결짓는 해석도 있다. 다만 박근혜 정부의 고위공직자들이 제대로 된 결과를 내지 못했을 뿐이다.

김판석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난해 인사행정학회에 발표한 논문에서 “대통령제의 대통령은 강력하기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과 자신의 우군들을 정부의 핵심 자리에 임명한다”고 적었다. 학자와 같은 전문가를 임명하는 이유는 대통령의 의지에 맞는 정책을 펴기 위함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임명과정을 기다리는 학자 출신 장관들이 ‘관피아 척결’, 지금으로 치면 ‘적폐청산’이라는 과제에 충실하다면 ‘교수 장관’들이 박근혜 시절의 전철을 밟을 이유가 없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발탁되던 순간부터 재벌개혁과 검찰개혁이라는 두 가지 적폐청산 과제를 상징하는 인사였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