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슈퍼리그 ‘죽음의 땅’으로 변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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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호만 중국 슈퍼리그에서 방출을 경험한 것은 아니다. 올해 초만 해도 전·현직 국가대표 선수가 무려 10명이나 중국 슈퍼리그에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반 년 만에 그 절반인 5명이 새 팀을 찾아 떠났다.

황금의 땅이 변했다. 태극마크만 달면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던 한국선수들이 중국 슈퍼리그에서 하나둘씩 내쫓기고 있다. 유럽과 남미 최고의 선수들도 발을 내디디며 엘도라도로 불리던 이곳이 한국선수들에게는 유독 차갑기만 하다.

국가대표 수비수 홍정호(28)는 7월 13일 소속팀인 장쑤 쑤닝에서 방출 통보를 받았다. 톈진 테다와의 14일 경기를 준비하던 그는 갑자기 새 팀을 알아봐야 할 처지가 됐다. 홍정호가 중국 슈퍼리그에 진출한 한국선수들 중에서 가장 꾸준히 출전했기에 놀랍다.

2017년 3월 홍정호 선수가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시리아와의 경기에서 사인을 보내고 있다. / 이석우 기자

2017년 3월 홍정호 선수가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시리아와의 경기에서 사인을 보내고 있다. / 이석우 기자

거액 주고 데려온 홍정호도 방출

홍정호가 시즌 도중 방출된 것은 역시 든든한 지지자였던 최용수 전 감독의 경질이 결정적이다. 최 감독은 지난해 7월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홍정호를 600만 유로(약 75억원)라는 거액의 이적료를 지불하고 데려왔다.

그러나 최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물러난 뒤 지휘봉을 잡은 파비오 카펠로 감독은 인터밀란(이탈리아)으로 임대를 보냈던 호주 출신 수비수 트렌트 세인스버리를 불러들이고, 카메룬 국가대표 출신 골잡이 벵자망 무캉조를 영입해 외국인 선수에 변화를 줬다. 중국 슈퍼리그는 팀마다 외국인 선수 보유를 최대 5명으로 제한한다. 카펠로 감독은 홍정호의 수비를 믿지 않으면서 그의 자리를 뺐다.

홍정호의 에이전시인 C2글로벌 관계자는 “카펠로 감독과의 면담과정에서 후반기 외국인 선수 등록 명단에서 제외한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계약기간이 2년 6개월이나 남았지만 경기를 뛸 수 없으니 새 팀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홍정호의 방출은 올해 개정된 중국 슈퍼리그 외국인 선수 출전규정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중국축구협회는 지난해까지 외국인 선수 5명 보유에 5명 출전이 가능했던 규정을 올해 외국인 선수 5명 보유에 경기 출전은 3명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유럽과 남미에서 데려온 선수들이 대부분 공격에 쏠린 반면, 한국선수들은 수비수에 편중됐으니 상대적으로 출전 기회가 줄었다. 홍정호는 규정 변경의 찬바람 속에서도 최 감독의 적극적인 지지 속에 전반기 12경기(1골)를 뛰면서 제 몫을 했으나 사령탑의 변화로 방출이라는 씁쓸한 경험을 하게 됐다.

홍정호만 중국 슈퍼리그에서 방출을 경험한 것은 아니다. 올해 초만 해도 전·현직 국가대표 선수가 무려 10명(김기희·김승대·김주영·김형일·권경원·윤빛가람·장현수·정우영·홍정호·황석호)이나 중국 슈퍼리그에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반 년 만에 그 절반인 5명이 새 팀을 찾아 떠났다.

새 돌파구는 외국선수 규정 확대한 일본

미드필더 윤빛가람(옌볜 푸더)이 군입대 문제로 제주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것을 빼면 소속팀에서 기회를 잡지 못한 것이 그 이유다. 수비수 김형일이 광저우 헝다와의 계약 만료로 부천FC 유니폼을 입었고, 수비수 장현수(광저우 푸리)와 골잡이 김승대(옌볜 푸더)도 자신들에게 주어지지 않는 출전 기회에 각각 친정팀인 FC도쿄와 포항 스틸러스로 돌아갔다. 장현수는 도쿄로 이적한 직후 “지난해까지는 팀의 주축으로 활약했지만 외국인 선수 규정이 바뀌면서 주전과 멀어졌다”며 “광저우 푸리에선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장현수는 지난해 광저우 푸리에서 20경기를 뛰었으나 올해는 단 1경기만 뛰었다.

아직 중국 슈퍼리그에 남은 선수들도 일부를 빼면 미래가 불투명하다.

김주영(허베이 화샤)은 5월 이후 경기를 뛴 기록이 없고, 김기희(상하이 선화)는 로테이션 멤버에 머물고 있다. 김승대 대신 옌볜 푸더로 넘어간 황일수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생존경쟁을 벌여야 한다. 소속팀에서 주축으로 뛰는 것은 권경원(톈진 췐젠)과 정우영(충칭 리판) 둘뿐이다. 중국 슈퍼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에이전트는 “충칭 리판 감독이 장외룡 감독이라 정우영이 중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권경원 혼자 중국 슈퍼리그에서 살아남았다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축구협회가 최근 외국인 선수를 영입할 때 지급되는 이적료의 100%를 유소년기금으로 부과한다는 새 규정을 추가했기에 한국선수들의 추가 진출도 어려워진 상황이다.

한국선수들은 차갑게 식은 중국 슈퍼리그를 떠나면서 일본 J리그를 대안으로 여기고 있다.

J리그 사무국은 지난해 영국 미디어콘텐츠 그룹인 ‘퍼폼’과 10년간 총 2000억 엔(약 2조500억원)에 달하는 중계권 계약을 체결하면서 자금력을 확충했다. 중계권 수익은 우승상금 및 성적에 따라 배분된다. J리그 18개 팀들은 35억원가량의 추가 지원으로 실력이 뛰어난 외국인 선수 영입에 욕심을 내고 있다. 기량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성실한 한국선수들이 영입 대상이다.

또 중국과는 정반대로 외국인 선수 규정을 헐겁게 만든 것도 J리그가 선택지로 떠오른 배경이다. 일본축구협회는 지난해까지 외국인 선수 4명(3+1)까지 등록을 허락했던 규정을 올해 국적에 관계없이 5명을 등록할 수 있도록 확대했다. 광저우 푸리를 떠나 도쿄에 입단한 장현수를 비롯해 김보경(가시와 레이솔)과 황의조(감바 오사카), 정승현(사간 도스) 등이 올 여름 J리그로 이적한 이유다. 장현수의 에이전시인 인스포코리아 관계자는 “중국 슈퍼리그와 달리 J리그는 선수들이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기를 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며 “앞으로도 J리그로 이동하는 한국선수들이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황민국 경향신문 스포츠부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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