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첩산중 ‘구글세’ 이번에야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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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최대 과징금 결정 계기로 국내서도 “반드시 도입” 목소리 커져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6월 27일 불공정거래 혐의로 구글에 역대 최대 규모인 24억2000만 유로(약 3조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구글이 온라인 검색시장 지배력을 앞세워 자사 서비스에 불법적인 혜택을 부여해 왔다는 이유에서다.

구글은 즉각 성명을 내고 “법원에 제소하겠다”고 밝혔지만 법정에서 구글이 승소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 2004년 EU 집행위로부터 같은 혐의로 6억 달러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뒤 소송에 나섰지만 막상 2007년 열린 재판에서는 별다른 저항도 못해본 채 패소했다. 더구나 EU 집행위는 이번 결정을 내리기까지 무려 7년간 구글 문제를 들여다봤다. ‘초강대국’인 미국의 재무부 등이 노골적으로 수차례 EU에 불만을 표시했음에도 강행한 결정이다.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에서는 그간 ‘밀린 숙제’처럼 여겨져온 ‘구글세(Google tax)’를 이번에야말로 도입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구글이나 애플, 페이스북 등 다국적기업들이 국내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에 비해 세금을 턱없이 적게 내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국세청도 해당 업체들의 불공정거래 문제나 조세회피 문제를 들여다보겠다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구글세 문제와 관련해 “국내 기업이 역차별당해선 안 된다”고 밝혀온 문재인 대통령이 과연 임기 내에 문제를 해결할지가 관건이다.

임재현 구글코리아 정책총괄이 지난해 10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미래창조과학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답변하고 있다./뉴스토마토 제공

임재현 구글코리아 정책총괄이 지난해 10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미래창조과학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답변하고 있다./뉴스토마토 제공

1조원 넘게 벌고도 ‘법인세 0원’

‘구글세’의 개념은 국가별로 차이가 다소 있지만, 공통적으로는 ‘다국적기업에 부과하는 세금’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해외에 본거지를 둔 다국적기업이 많아지다보니 기존 세법 규정으로는 과세나 징세가 안 되는 사례가 전 세계적으로 다수 발생했고, 이 과정에서 미비한 법 규정을 보완해 추가로 다국적기업에 부과하는 세금을 통칭해 구글세로 부르고 있다.

국내에서 구글세 문제는 스마트폰 보급이 확산되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정부가 실시한 ‘2016 미디어 패널 조사’ 자료를 보면 지난해 국내 스마트폰 보급률은 86.6%에 달했다.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면서 구글이나 애플이 운영하는 애플리케이션(앱) 마켓에서 앱을 구매하는 소비자들도 급속히 늘었고, 해당 앱마켓을 운영하는 구글과 애플의 매출도 급격하게 팽창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무선인터넷산업협회가 공동 발간한 ‘2016 무선인터넷 산업 현황 실태조사’ 통계를 보면 구글이 운영하는 ‘플레이스토어’의 지난해 국내 매출규모는 4조4656억원인 것으로 추정됐다. 구글은 플레이스토어를 통해 발생한 매출의 30%를 수수료 명목으로 가져간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구글이 플레이스토어를 통해 국내에서 지난해 벌어들인 수수료 수익은 1조3400억원 규모가 된다.

그럼 구글이 내는 세금은 얼마나 될까. 항간에는 ‘구글이 세금 한푼 안 낸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국세청은 “구글도 국내 법인인 구글코리아를 통해 세금을 내고 있다”고 밝혔다. 국세청은 그러나 구글이 구체적으로 얼마의 세금을 내는지에 대해선 “관련법에 따라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구글이 국내에서 올리는 수익은 크게 플레이스토어를 통한 수수료 매출과 유튜브 등을 통한 광고매출로 나뉜다. 광고매출의 경우 정확한 집계는 없지만 광고업계에서 추산하는 지난해 구글의 매출규모는 3000억원 수준이다. 국세청은 구글에 대한 과세내역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광고매출에는 국내 사업자와 동일한 기준으로 과세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플레이스토어를 통해 발생한 매출에 부과할 수 있는 세금은 부가가치세와 법인세가 있다. 부가가치세의 경우 과거 세법에 관련 규정이 없어 한동안 과세를 못하다가 2015년부터 과세가 되고 있다. 부가세 과세로 구글이 추가적인 납부 부담을 떠안은 건 아니었다. 부가세(10%)가 부과되자 구글은 플레이스토어 내 앱 가격을 일제히 10%씩 인상했다. 이는 앱스토어를 운영하는 애플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법인세 부분이다. 국내법상 법인세는 국내에 ‘고정사업장’을 둔 기업에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이에 비해 구글의 플레이스토어는 고정사업장격인 ‘서버’가 해외인 싱가포르에 있다. 이 때문에 플레이스토어에서 발생하는 매출도 구글코리아가 아닌 싱가포르 소재 ‘구글 아시아-퍼시픽’에 속하게 된다. 결국 구글이 플레이스토어를 통해 지난해 한국에서 벌어들인 1조3400억원의 수수료 수익에 대해선 국세청이 법인세를 단 한푼도 과세할 수 없는 셈이다. 이는 앱스토어의 서버를 해외에 둔 애플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앱스토어의 지난해 매출은 2조원, 애플이 챙겨간 수수료는 6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아무도 모르는 구글의 매출규모

더 기막힌 사실은 구글이 정확히 국내에서 얼마를 벌어가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2016 무선인터넷 산업 현황 실태조사’에 나타난 구글의 플레이스토어 매출규모만 해도 어디까지나 추정치일 뿐이다. 국세청 역시 부가세 과세를 통해 플레이스토어 매출규모를 일정 부분 파악은 하고 있지만, 이 중 얼마가 정확히 구글에 수수료로 돌아가는지, 당기순이익이나 기타 비용 지출은 얼마인지 등에 대해선 알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과세원칙을 감안하면 현재로선 구글에 세금을 더 물리고 싶어도 이를 위한 근거자료조차 없는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구글의 국내 법인인 구글코리아가 법적으로 유한회사이기 때문이다. 유한회사는 1인 이상의 사원이 설립해 출자액만큼만 법적 책임을 지는 회사다. 본래 소규모 기업이 회사를 설립하기 용이하도록 허용하고 있는 형태로, 매출이나 자산 현황 등에 대한 공시의무를 지지 않는다. 유한회사는 외부감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 현행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에서는 주식회사에 한해서만 재무제표나 경영현황 등에 대한 외부감사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유한회사는 본래 취지와 맞지 않게 공시나 외부감사 의무를 피하려는 기업들이 선호하는 회사 형태가 됐다. 특히 매출규모 공개를 꺼리는 외국계 기업들이 유한회사를 선호한다. 애플코리아만 해도 시작은 주식회사였지만 2009년 유한회사로 법인 형태를 변경했다. 구글코리아,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등 국내에서 영업 중인 다국적 정보기술(IT) 업체 상당수가 유한회사다.

그럼 구글의 매출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정부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법 개정을 통해 개선에 나서려고 노력 중이다. 올 1월에는 국무회의에서 유한회사도 규모에 따라 외부감사를 의무적으로 받도록 하는 내용의 외감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발의한 상태다. 유한회사가 외부감사를 받을 경우 재무제표가 외부에 공개되기 때문에 해당 기업의 매출규모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의 이석란 공정시장과장은 “꼭 구글 등 외국기업뿐만 아니라 국내기업 중에서도 유한회사 제도를 악용한 사례가 발견되고 있어 이를 규제하기 위한 차원에서 외감법 개정안을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가 5월 17일 캘리포니아 마운틴뷰 소재 구글 본사에서 열린 연례 개발자회의에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가 5월 17일 캘리포니아 마운틴뷰 소재 구글 본사에서 열린 연례 개발자회의에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외감법 개정안의 쟁점 중 하나는 외부감사를 받은 후 해당 자료를 공시하느냐의 문제다. 정부안의 경우 외부감사 의무만 부여했을 뿐 공시의무는 명시하지 않았다. 이 과장은 “국회에는 외부감사와 함께 공시의무도 지도록 한 외감법 개정안도 발의가 돼 있다”며 “해당 법안이 통과돼 구글코리아 등의 재무제표가 공개된다면 과세를 위한 자료로 활용도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의당 오세정 의원도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정부가 매년 실시하는 ‘시장 경쟁상황 평가’에 구글코리아나 애플코리아가 속한 부가통신사업자들도 포함되도록 하는 게 골자다. 이렇게 되면 구글코리아 등은 정부가 시장 경쟁상황을 평가하는 데 필요한 시장 점유 현황이나 매출자료 등을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전세계 추진 ‘BEPS 프로젝트’에 기대

법적으로 구글이나 애플 등의 국내 매출 파악이 가능하다고 해도 당장 법인세 등의 과세가 가능하진 않다. 법인세만 해도 세법을 바꿔야 하지만 현재 ‘국내사업장’으로 제한된 과세범위를 정부나 국회가 임의적으로 조정해 해외로까지 확장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법 개정 시 적용받는 기업 상당수가 미국을 대표하는 IT기업들이라는 점에서 섣불리 법 개정에 나섰다가 ISD(국가간 소송) 등 미국과 통상마찰이 불거질 우려도 있다. 미래부의 한 관계자는 “구글만 해도 규제문제를 좀 들여다볼까 싶으면 득달같이 미국 상무부에서 전화가 걸려온다”며 “정부 주도만으로 다국적기업 규제에 나서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해외에서 다국적기업 신분으로 활동하는 국내기업들이 보복성 과세를 당할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2012년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도로 진행 중인 ‘BEPS 프로젝트’에 기대를 걸고 있다. BEPS는 영문으로 ‘세원 잠식과 이익 이전’을 뜻하는 단어의 줄임말로, BEPS 프로젝트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두드러진 다국적 기업의 조세회피 문제 등에 대응하기 위한 모임이다. 2012년 6월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BEPS 프로젝트 추진이 의결됐고, 현재는 OECD 회원국 및 비회원국을 포함해 96개국이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다.

이 프로젝트에서 첫 번째로 논의된 것이 바로 ‘디지털 경제에서의 조세문제 해결’이다. 구글세 문제도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디지털 경제 하에서의 기존 국제 조세체계 개편 등을 추진한다는 취지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법인세 부과 등의 최대 걸림돌인 다국적기업의 고정사업장 문제에 대해서도 실질적인 고정사업장 역할을 하는 현지 기업이 인위적으로 그 지위를 회피하지 못하도록 방지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하지만 BEPS 프로젝트도 아직 갈 길이 멀다. OECD는 2014년 9월 다국적기업을 대상으로 정당한 세금을 거둘 수 있는 다자간 협정 초안을 마련했지만 3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협정은 타결되지 않고 있다. 당초 BEPS 프로젝트가 마련한 실행과제들 역시 계획상으로는 대부분 작년 말이 실행 시한으로 잡혀 있던 내용들이지만, 여전히 진행 중이거나 답보상태인 과제들도 있다.

한·미 양국의 경우 다국적기업이 양국에서 벌이는 사업활동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해 교환하는 국가별 보고서 교환협정을 작년 9월 맺은 상태다. 서로 해당 국가 소속 다국적기업에 대해 과세를 하기 전에 일단 정확한 매출규모나 수익, 세금납부 현황 등부터 공개하고 보자는 취지의 협정이다. 양국 간 보고서의 첫 교환시기는 2018년 상반기다. 정부는 이 보고서가 구글이나 애플 등의 국내 매출규모를 가장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보고서가 입수돼도 일단은 기재된 내용을 근거로 과세를 한다거나 해당 내용을 공개할 수는 없게 돼 있다”며 “보고서 교환이 당장 법인세 부과 등의 과세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구글세를 도입하기 전에라도 EU 등의 사례처럼 공정위나 국세청이 국내 다국적기업들의 위법활동을 파악해 과징금이나 고발 등의 처분을 내릴 가능성도 있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최근 “구글, 페이스북 등 다국적 IT기업들의 시장지배력 남용 문제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국세청의 경우 지난 4월 오라클 국내법인인 한국오라클이 지난 2008년부터 2014년까지 해외 조세회피처를 통해 세금납부를 회피한 사실을 밝혀내고 3147억198만원의 법인세를 부과한 상태다. 한국오라클은 해당 사실을 부인하며 소송을 진해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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