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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한·미 정상회담은 희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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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배치지역의 주민들은 한·미 정상회담에 일말의 희망을 걸면서도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다. 사드 반대투쟁 1년을 맞는 경북 성주를 다녀왔다.

“일단 숨고르기를 하면서 지켜보겠지만, 환경영향평가에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어야겠지요. 성산포대에서 이쪽으로 옮겨오는 과정도 충분히 설명돼야 합니다. 처음에는 성산포대가 최적합지라고 했는데, 어떻게 바뀌었는지 충분히 설명돼야지요.” 임순분 경북 성주 초전면 소성리 부녀회장(64)의 말이다. 소성리 100여명 마을주민 중 임순분씨는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젊은 축이다. 마을주민 대부분이 70대이고, 80~90대가 그 다음이다.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에 자리잡은 롯데골프장에 강행설치된 사드포대의 모습. 소성리 사드대책위 상황실 관계자가 지난 6월 21일 인근 야산에서 촬영한 것이다. / 소성리 상황실 제공.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에 자리잡은 롯데골프장에 강행설치된 사드포대의 모습. 소성리 사드대책위 상황실 관계자가 지난 6월 21일 인근 야산에서 촬영한 것이다. / 소성리 상황실 제공.

6월 22일, 임씨는 봉변을 당했다. 마을 입구 보건소 앞에서 집회를 열었던 보수단체 회원들은 마을회관 쪽 도로 진입이 봉쇄당하자 8~9명씩 짝을 지어 마을 밑쪽 동네를 돌아다녔다. 이들은 “마을 이장이 종북 좌빨의 돈을 받아 사드 반대를 종용하고 있다”며 이석주 마을 이장집을 찾아다녔다. 유언비어다. 임 부녀회장은 마을 입구 소성교 옆 나무 밑에서 양파를 다듬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장집이 어디냐”고 묻는 그들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자 “벙어리인가보다”라고 말하며 건드렸다. 그러다 ‘사드 반대’라고 적혀 있는 볏짚모자를 쓰고 있는 것을 발견, “사드를 반대하는 빨갱이”라며 수십 명이 삽시간에 에워쌌다. 경찰들이 달려와 밀어냈지만, 그 와중에도 욕설과 위협은 끊이지 않았다.

자녀분들이 많이 걱정했겠습니다.

“걱정하죠. 그래도 지금은 외지에 나가 있지만 여기에서 다 큰 아이들이에요. 성주 읍내에서 촛불시위가 열리면 시간 맞춰 찾아와 참석하기도 하고, 얼마 전부터 토요일에는 여기 소성리에서 촛불집회가 열렸는데 손자손녀까지 와서 참여하기도 해요. 지난해 추석 전날에는 부침개 차례상 다 만들어놓고 읍에 나가 ‘강강술래’를 했어요. 딸 사위들까지 여기 사람들이 30명이 성주 읍내에서 열린 촛불시위에 참석했어요.”

처음에 성주 성산포대에 사드를 배치한다고 했을 때 성주읍 바로 위에 위치해서 성주군민 2만5000명이 피해를 본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여기(소성리 롯데골프장 부지)로 옮기니 주민 피해가 작아진 게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말 들어봤습니다. 같은 성주군민으로 여기 사는 2000명은 죽어도 되고 2만5000명은 죽으면 안 된다는 논리가 말이 됩니까. 그리고 사드포대 방향에 놓이게 되는 김천도 대한민국 국민이에요. 성산포대나 소성리뿐 아니라 대한민국 어디든 안 된다는 것이 저희들 생각입니다.”

처음에 롯데골프장이 생길 때에도 주민들 반발이 있지 않았습니까.

“성주군에 세수가 많이 들어온다고 해서 밑동네 주민들은 전부 찬성했어요. 눈비 맞으면서 싸웠는데 다른 주민들은 함께 해주지 않아 결국 주민총회를 열어 당시 싸움을 정리했습니다.”

인터뷰를 진행 중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마을회관보다 위쪽에 주차돼 있던 경찰버스들에서 정복을 입은 의무경찰들이 뛰어 내려갔다.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사드 반대투쟁 1년, 성주는 지금

서북청년단 등 우파단체들은 성주 사드 반대투쟁 1주년이 되는 7월 13일까지 이곳 소성리 일대에 집회신고를 내놓았다. 앞서 소성리 부녀회장이 봉변을 당한 것도 6월 22일 이들이 연 ‘사드 찬성’ 집회가 끝난 뒤였다. 기자가 방문한 6월 28일과 29일, 우파단체들의 집회는 소강상태였다. 첫날은 6명, 둘째 날은 8명이 왔다. 집회를 이끄는 이는 정함철 서북청년단 구국결사대장이었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앞세운 이들이 마을회관 쪽으로 행진을 시작하자 이쪽에서 원불교 법회도 시작됐다. 일렬종대로 선 경찰이 이들의 충돌을 막았다.

6월 29일, 정함철 서북청년단 단장 등이 행진을 시도하자 그에 맞서 소성리 마을회관 건너편 도로 위에서 원불교 법회가 열리고 있다. / 정용인 기자

6월 29일, 정함철 서북청년단 단장 등이 행진을 시도하자 그에 맞서 소성리 마을회관 건너편 도로 위에서 원불교 법회가 열리고 있다. / 정용인 기자

“천지영기 아심정/만사여의 아심통/천지여야 동일체/아여천지 동심정/…….” 원불교 교무들이 외우는 주문에 핸드마이크를 들고 때때로 사이렌을 울리며 종북 척결을 외치는 정씨의 외침이 불협화음을 만들어냈다. 우파단체 대열의 ‘본대’에서는 더 험악한 구호가 터져나왔다. “경찰은 종교의 탈을 쓴 종북 무리들을 편들지 말라”, “간첩 ○○○을 죽여야 나라가 산다.” 이들은 법문에 맞서 앰프로 노래를 틀었다. 군가 <최후의 5분>. 태극기 집회에서 자주 듣던 노래다.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역사는 흐른다>다. 이런 노래도?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우파단체들의 행진 시도는 이틀 내내 좌절됐다. 돌아가는 길에 정 단장에게 물어봤다. 세월호 노래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를 튼 이유는 뭐냐고. “틀린 말이 어디 있어요.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맞지 않아요? 우리가 참이고 지네들이 거짓인데. 같이 부르자는 건데 뭐가 잘못됐습니까. 일베 노래도 틉니다. 이라고. 광화문광장 세월호 농성하는 데도 가서 틀었습니다.”

언제까지 할 생각입니까. 7월 13일까지 집회신고를 냈던데.

“오늘은 날씨가 더워 그늘막을 치려고 하는데 경찰들이 못 치게 합니다. <경향>에서 경찰 비판 좀 해주세요. 저들은 도로를 점거했는데 손도 못대면서 우리만 만만하게 보나 봅니다. 수뇌부에서 지시를 하는데 정권이 바뀌니 저쪽에 빌붙는 인간들도 있겠죠. 얼마나 한심해요. 행진하는 것은 합법이에요. 집회신고를 했다는 말입니다. 남의 집회를 방해하는 사람들에 대해 경찰이 사법권을 발동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데, 직무유기하는 것이 아닙니까.”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29일 오후(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환영만찬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29일 오후(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환영만찬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선 이후, ‘사드’ 둘러싼 상황 변화

6월 29일 낮, 날씨는 더웠다. 휴대폰 어플로 온도를 보니 31도. 마냥 땡볕에 서 있는 경찰도 지쳐 보였다. 경찰 벽을 사이에 두고 간혹 욕설이 오가는 설전도 벌어졌지만 소성리 쪽 주민들은 거의 응대하지 않았다. 정함철씨와 고함을 주고 받았던 장년남성에게 물었다. 정당한 집회권리를 침해받았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애초에 집회 허가를 내준 것이 잘못이죠. 4월 26일 사드가 들어올 때 경찰들이 집집마다 막고 못나오게 했어요. 저지하려고 했더니 저를 잡아갔습니다. 현행범이라고.” 그는 인근 김천시의원 박희주다. 무소속이다. 기사를 찾아보면 그의 사드 반대투쟁 경력은 꾸준하다.

시의회 발언뿐 아니라 출퇴근시간에 200일 넘게 사드 배치 반대 1인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선출직의 의무가 지역을 지키고 시민에게 봉사하는 것인데, 저도 머리를 삭발하고 반대선언한 지가 오늘이 313일째입니다. 입이 더러워지니 욕설은 안 하겠습니다. 쪽팔리지 않나요. 성조기 들고 저런 거 하는 것이.”

“이 길 따라 2㎞ 올라가면 롯데골프장입니다. 골프 치러 오던 사람들이 이 길로 자동차 타고 올라갔어요. 시설은 굉장히 좋았다고 해요. 전국의 롯데골프장 중 유일하게 수익이 나는 골프장이었다고 하던데요.” 소성리 종합상황실 강현욱 대변인의 말이다. 4월 26일, 사드가 마을회관 앞길로 들어오던 날을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수많은 경찰병력이 배치됐어요. 계속 늘어났습니다. 오전부터 대형 건설장비가 들어온다는 소문은 있었어요. 저녁 12시까지 집회를 이어가다가 주민들은 자러 들어가고, 일출 전후로 장비가 들어오지 않을까 판단해 해산했습니다. 그러다 12시쯤 통신사에 새벽에 들어온다는 기사가 뜹니다. 새벽 1시30분부터 막고 종교행사를 이어나갔습니다. 원불교, 기독교, 천주교….”

경찰들은 천주교 행사 제대를 뺏고 마을회관 안에 있던 원불교 교무와 마을주민을 하나둘씩 들어냈다. “교무님들도 연세가 있고 나이먹은 할머니들도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팔 다리를 잡고 들어냈어요. 나중에 알았는데 마을 입구 주민들은 경찰들이 대문을 봉쇄하고 아예 못나오게 막았습니다. 집 앞이 도로잖아요.”

4월 26일, 대선이 5월 9일이었으니 정권교체 13일을 앞두고 기습적으로 이뤄진 조치였다. 황교안 권한대행의 ‘알박기’라는 비난이 일었다.

한·미 정상회담을 보는 성주 사람들의 시각은 일말의 희망을 걸면서도 내심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박철주 소성리 상황실장(52)의 말이다. “이렇게 빨리 미국 대통령을 만나러 가는 것이 실은 불안합니다. 한·미 정상회담을 비롯한 방미일정을 6월 28일부터 추진한다고 결론내린 시점이 아직 국방부 장관도 임명 안 되었고 전 정권 인사들이 남아있을 때잖습니까. 혹시 청구서를 받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에요. 노무현 대통령 때도 그랬지 않습니까. 국민 70%가 이라크 파병을 반대했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에 다녀오면서 그걸 받아가지고 왔어요. 우리로선 문 대통령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촉각을 세울 수밖에 없죠.”

그는 사드 미사일과 세트를 이루는 ‘엑스밴드 레이더’는 이미 작동을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있으면 발전기 소리가 ‘웅~’하고 들려요. 이장님도 들었다고 하고, 이웃 월명2리 마을 이장님도 들었다고 해요. 얼마 전에 북한이 미사일 쏜 것을 여기 레이더가 잡았다고 한민구 국방장관이 발표했잖아요? 진실이든 거짓이든 레이더는 가동 중인 것으로 봅니다.” 박 실장을 비롯해 소성리 상황실 사람들은 골프장 인근 달마산을 일주일에 두 번씩 올라간다. 사드 추진상황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그 과정에서 주한미군 측이 환경영향평가를 안 받기 위해 U자형으로 부지를 조성했다는 것도 밝혀졌다.

무인기를 격추하기 위해 신형 무기가 들어왔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그 때문에 주민들은 불안해했다.

6월 29일 저녁, 성주군청 주차장에서 열린 352차 성주군민 사드 반대 촛불시위. 앞에 구호판을 가슴에 걸고 앉아 있는 이가 최영철씨(61)다. / 정용인 기자

6월 29일 저녁, 성주군청 주차장에서 열린 352차 성주군민 사드 반대 촛불시위. 앞에 구호판을 가슴에 걸고 앉아 있는 이가 최영철씨(61)다. / 정용인 기자

한·미 정상회담에 거는 기대와 우려

다시 성주 읍내. 매일 촛불시위가 열리는 성주군청 앞. 김충환 사드 배치 철회 성주공동위원장(57)을 만났다. 성주에서 만난 주민들은 김 위원장의 ‘역할’을 기대하는 눈치다. 김 위원장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혁신비서관을 역임했다. “7월 12일이 성주에서 사드 배치 반대 촛불시위가 열린 지 딱 1년이 되는 날이에요. 이날부터 3일간에 걸쳐 음악회도 열고 여러 행사도 할 예정이에요.”

정권이 바뀐 뒤 차이가 있나요. 예를 들면 사드 반대투쟁을 대하는 경찰의 태도에서.

“정권이 바뀌고 나서야 소성리 마을회관 위를 가로막고 있던 경찰들이 철수했습니다.

그전에 경찰서장에게도 이렇게 말했어요. 시위는 허가받는 만큼 하지, 우리가 골프장 쪽으로 위에 올라가 뭐를 하겠느냐고 했는데, 굳이 부득불 막고 있더니 정권이 바뀌니 경찰 한두 명만 남기고 철수시켰네요. 우리도 굳이 올라갈 일도 없어서 소성리 마을회관 입구에서 집회만 하고 있습니다.”

전 정부가 대선을 코앞에 두고 알박기를 하는 바람에 사드 해법이 어려워진 것 아닐까요.

“우리는 벌써 이겼어요. 박근혜 탄핵 구속은 이미 시켰는데,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하는 것 같은 발언을 했지만, 내가 외교부 장관이라도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어요. 전 정부에서 이뤄진 조치라도 무겁게 생각하겠다는 대통령 발언도 적절했고요.”

그런데 강 외교부 장관 말대로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고 과정의 적법성을 따진 뒤에 소성리에 사드가 배치된다면 이겼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습니까.

“책임있는 당사자들은 처벌받아야 해요. 제가 검찰에 고발해서 서울중앙지검 공안부에 출석해 7시간 동안 고발인 조사를 받았습니다. 황교안, 김관진, 한민구, 윤병세. 우리가 뽑은 ‘5적’ 중 박근혜는 이미 구속됐고, 4명만 남았습니다. 외교부만 하더라도 다음 정부에 넘길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어요. 왜 그랬을까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들이 김관진 라인이라는 점입니다.”

그렇게 보시는군요.

“미국의 트럼프는 사드에 별 관심 없다고 하니 미국 하원 의원들이 사드를 들고 나왔는데, 그 사람들을 조사해보면 다 사실이 드러날 겁니다. 사드는 말 그대로 고고도미사일인데, 북한이 남한으로 고고도로 핵을 쏠 필요가 없어요. 결국 미국 본토나 일본 방어용입니다. 결론적으로 이런 것입니다. 사드가 핵 방어도 안 되고 중국·러시아 감시도 안 됩니다. 결국 텍사스에서 써먹던 고물 사드를 우리나라에 비싼 값에 팔아먹는 것밖에 안 남았어요.”

성주 사드 촛불이 1년이 되었는데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입니까.

“환경영향평가까지 하면 1년은 더 걸릴 것이고 최소 2년인데, 매일 할 수는 없습니다. 1년이 지나면 투쟁위에서 논의할 생각이에요. 제 생각에는 이곳 성주 말고도 주한미군 훈련으로 고통받는 지역이 있거든요. 평택, 진천, 부산 등. 그곳 주민들과 연대하는 방식으로 이후 투쟁을 계속 이어갈 생각입니다.”

다시 시작하는 성주 ‘사드 반대’의 희망

땅거미가 졌다. 성주 읍내 촛불시위는 매일 저녁 8시 무렵에 성주군청 앞 주차장 한편에서 열린다. 낮에 가득 차 있던 차들은 촛불시위에 맞춰 썰물처럼 빠진다. 간혹 잘 모르고 주차한 채 외지로 떠난 이를 두고 행사가 열리는 날도 있다. 기자가 방문한 둘째 날인 6월 29일도 그랬다. 차주가 차를 주차하고 안동으로 ‘출장’가는 바람에 그대로 차를 둔 채 행사가 열렸다.

매주 수요일은 영화를 상영한다. 취재를 나온 기자에게 색색 LED 촛불을 나눠주는 자원봉사를 하는 박정미씨(73)는 “영화를 틀 때엔 사람이 많지 않은데…”라며 목요일 열리는 촛불시위 취재를 당부했다. 박씨는 ‘제사 지내느라, 추석이라, 설이라’ 한 10여일 참석 못한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개근했다. 또 한 사람이 있다. 사람들이 앉는 좌식 플라스틱 의자를 나르던 최영철씨(61). 그는 이름표 자리에 ‘사드 반대’라고 박은 회색 작업복을 입고 다닌다. 철도청을 다니다 그만둔 뒤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칼을 갈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의 오토바이에도 태극기와 함께 사드 반대 구호가 적혀 있었다. “사드 반대하자고 10만 백악관 청원운동이 지난해부터 벌어졌잖습니까. 총 12만명의 서명이 모아졌는데 제가 성주 말고도 칠곡, 구미, 왜관 다니면서 모아온 서명자가 6만명입니다.”

목요일. 오후 7시가 되자 최씨가 제일 먼저 나타나 어제처럼 포개진 플라스틱 의자를 나른다. 다음으로 박정미씨도 도착한다. 어둑해지자 이번에는 자전거를 탄 초등학생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모여든다. 8시를 조금 넘은 시간. 어느새 모여든 성주 주민들의 수는 100여명을 넘어섰다. 비닐하우스로 만든 무대에 선 사회자가 말했다. “…오늘 하루 잘 보냈습니까. 저도 잘 보냈습니다. 모처럼 낮잠도 한두 시간 자고. 힘찬 함성으로 352일째 성주 사드 배치 철회 촛불시위를 시작하겠습니다.”



성주 주민 배미영씨 “국민이 대통령의 빽이 되어드리겠습니다”

6월 22일 개봉한 <파란나비효과>는 사드 철회를 요구하며 싸웠던 성주 주민들의 지난 1년을 담은 영화다. 성주에서 참외농사를 짓는 김정숙씨가 청와대 앞에서 ‘동명이인’ 김정숙 여사에게 편지와 영화초대권을 전달한 퍼포먼스도 화제를 모았다. 영화는 사드 반대운동을 통한 성주 주민의 ‘연대’, 더 나아가 지역공동체의 ‘각성’을 다루고 있다.

성주군 주민 배미영씨. |사진 정용인기자

성주군 주민 배미영씨. |사진 정용인기자


영화에 출연한 배미영씨(40)도 두 아이를 키우던 평범한 주부였다. 배씨는 한·미 정상회담 기간에 맞춰 광화문에서 열린 30시간 ‘만민공동회’ 집중행동에 다른 성주 군민 2명과 함께 상경해 참석했다. 인터뷰는 6월 29일 오후 열차를 타고 상경하기 전, 성주초등학교 앞 배씨 작업실에서 이뤄졌다. “영화에 나오니 주변에서 반 농담으로 배우 배우 하는데, 실은 배우 아닙니다. 연기한 것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었어요.”

<파란나비효과> 감독님이 영화사를 통해 호소문을 냈어요. 영화에선 다루지 않았는데 지난 대선 결과를 두고 ‘사드 찬성을 주장한 홍준표 후보에게 몰표를 주지 않았느냐’며 일각에서 성주 주민들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요.

“관 조직이 어마어마합니다. 풀뿌리 조직들과 관계는 또 얽히고 설켜 있고요.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장의 역할입니다. 이곳에서는 이분들이 대통령보다 영향력이 더 있는 사람들이에요. 독거노인들에게는 자식 같은 분이기도 하죠. 이미 초고령화가 되니 선거 당일 이분들이 몇 시까지 나와라, 해서 ‘차량셔틀’을 합니다. 투표소까지 타고가면서 작업하는 거죠. ‘어르신들 2번을 뽑아야 지역 발전이 된다’는 식으로. 지난 2012년 박근혜가 받은 표가 86%였는데, 홍준표가 56%였다면 그나마의 성과이지 않을까요.”

영화를 보면 배미영씨를 비롯해 여성 주민들이 앞장선 것이 인상적입니다.

“여성, 특히 엄마들이 사드 반대운동의 중심에 섰고, 군수로 대표되는 남성들이 권력을 가진 입장으로 나눠 영화를 해석하는 리뷰를 봤는데, 시작이 그랬던 것은 사실이에요. 그런데 남자들이 다 보수냐 하면 또 그건 아닙니다. 위원장님 같은 분도 그렇지만 전략·전술을 짜는 것도 잘하고, 왜 촛불시위 무대 있잖아요? 거기 비닐 치고 겨울에 장작 패는 일도 다 남자들이 했어요. 남자들이 역할을 안한 것이 아닌데 꼭 그렇게만 묘사되는 것 같아 삐칠까봐 걱정되기도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방미하는 기내에서 ‘미국과 중국을 다 만족시킬 아이디어가 있으면 달라’고 했어요. 혹시 지난 1년간 성주에서 지켜본 입장에서 해법은 안 떠오르나요.

“왜 사드를 협상카드로 쓰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남북관계, 북핵문제를 풀 때 사드는 늘 뒷전에서 배제되고 있어요. 김제동씨도 비슷한 말을 하던데, 사드 문제는 위기이면서 기회입니다. 미국에 가서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사드가 MD체제 아니냐, 우리는 중국으로부터 경제보복을 당하고 있다. 또 주민들이 저만큼 반대하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 우리도 사드 배치가 힘들다, 이렇게 왜 말을 못합니까. 그리고 중국에도 ‘미국과 우리는 오랜 우방이다, 중국과는 경제적으로도 좋은 관계였다. 그런데 북핵이 문제다. 북핵 해결하는 데 중국의 역할이 크지 않으냐. 그래서 북한이 종전·평화협정을 맺는데 힘 좀 써라.’ 사드를 가지고 이쪽저쪽 왔다 갔다 하면서 입김을 넣어 존재감을 키우고 6자회담도 다시 부활시킬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정권이 바뀌었는데 문재인 정부에 기대하는 것도 있지 않나요.

“우리 국민이 대통령의 빽이 되면 되지 않나요. 국민만큼 든든한 빽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빽을 믿고 당당하게 할 말만 했으면 해요. 이전 정권에서 굴욕외교는 할 만큼 해서 지겹습니다. 정말 사드가 북핵 막을 수 없다는 것은 다 알지 않느냐, 미국 의회도 다 알면서 쉬쉬하고 모르는 체하는 것 아닌가요. 문재인 대통령이 그걸 기분 안 나쁘게 이야기할 수 있지 않나요. 노무현 대통령이 직설적으로 말하는 스타일이었다면, 약간 어눌한 면도 있지만 사람을 배려하면서 대화하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짱이거든요.”


<경북 성주 =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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