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한·미FTA 재협상의 쟁점은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미국은 자동차산업 장벽 인하 요구할 듯… 한국도 불평등 조항 시정 말해야

6월 29일부터 2일간 열릴 한·미 정상회담은 문재인 정부가 처음으로 맞이하는 외부로부터의 충격이다. 한·미 정상회담의 의제 중에서 가장 민감한 사안 가운데 하나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이다. 이미 트럼프 미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한·미 FTA에 못마땅해 했다. 그는 한·미 FTA를 “미국의 일자리를 죽이는 협정”, “재앙” 등으로 불렀다. 취임 이후인 4월 27일에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FTA를 재협상 또는 종료할 수 있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이미 미국은 3월에 발표한 대통령 통상정책 의제,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무역장벽 보고서 등을 통해 자신들의 통상정책 일부를 내보인 바 있다.

3월 1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한·미 FTA 발효 5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 등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3월 1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한·미 FTA 발효 5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 등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美 자동차·의약품 한국시장 점유율 상승
미국의 박한 평가와 달리 한국 내에서는 한·미 FTA를 긍정적으로 보는 목소리가 많았다. 지난 3월 15일, 한국무역협회는 FTA 발효 5주년을 기념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이동복 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은 한·미 FTA 발효 이후 “상대국 수입시장 점유율 동반상승으로 윈·윈 효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실장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FTA 발효 직전인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한국의 전체 수출량은 연평균 3.5% 감소했고, 같은 기간 전 세계 교역규모도 매년 2.0%씩 줄었다. 그러나 한·미 양국 사이의 교역은 매년 1.7%씩 상승해 지난해 약 1096억 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를 제외하면 한국의 대미수출은 매년 3% 이상씩 성장했고, 미국도 자동차와 의약품 등의 분야에서 한국 내 점유율을 높였다. 특히 한국은 상품수지에서 큰 흑자를 봤다. 한국은행에 의하면 2011년 약 243억 달러 규모였던 한국의 대미 상품수지 흑자는 2015년에 451억 달러로 대폭 늘어났다. 반면 서비스시장에서는 미국이 상대적으로 이익을 보고 있었다.

한국의 대미 흑자의 중심은 자동차산업이다. 2015년 한국의 대미 자동차산업 흑자액은 약 222억 달러로, 전체 대미수출액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했다. 하지만 자동차산업에서의 FTA 효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해에는 오히려 자동차 수출이 큰 폭으로 줄었다. 백일 울산과학대 유통경영학과 교수는 “어떻게 설명해도 FTA 효과 운운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평가했다. 백 교수가 6월 19일 국회 토론회에서 발표한 바에 의하면, 지난해 자동차산업의 대미 수출액은 그 전 해보다 19억 달러가량 하락한 218억 달러였다. 자동차산업의 지난해 무역수지 흑자액도 11%가량 낮아진 197억 달러였다. 백 교수는 자동차, 전기기기, 원자로 등 주요 수출품목을 제외한 나머지 상품시장에서는 오히려 한국이 45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농산물시장에서 발생한 56억 달러 적자를 감안하면, 한·미 FTA의 실질적 효과는 마이너스라는 게 백 교수의 분석이다.

2007년 6월,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과 수전 슈워브 당시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가 한·미 FTA에 서명을 하고 있다./AFP연합뉴스

2007년 6월,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과 수전 슈워브 당시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가 한·미 FTA에 서명을 하고 있다./AFP연합뉴스

북미자유무역협정 재협상 참고해야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도 한·미 FTA의 성과에 비판적이다. 이 교수는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가 과대평가되고 있다고 봤다. 그는 “수출대기업들의 가공무역, 중계무역이나 현지 영업이익까지 경상수지 흑자에 포함되는 바람에 흑자가 과대해지는 결과가 났다. 현대차 같은 대기업이 미국에서 투자를 늘려서 발생한 이익은 결국 미국의 경제에 영향을 주는 것이며, 한국 내의 경제순환과는 큰 관련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수출기업의 미국 현지에서의 활동, 미국으로부터의 무기 수입액 등을 고려하면 2015년 대미 무역수지 흑자규모는 471억 달러가 아니라 59억 달러 수준일 것으로 분석했다. 이 교수는 “한·미 FTA 5년을 해보니 정부가 설정했던 경제효과, 통상마찰 회피 등 여러 가지 목표 중 달성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미 양국이 서로 무역 점유율을 높인 것은 사실이나, ‘윈·윈 효과’라는 표현은 “억지주장”이라고 말했다. 한국무역협회와 미국 상무성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미국의 한국 시장 점유율은 2011년에 비해 2.14%(8.50→10.65) 늘어났다. 반면 같은 기간 한국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0.62% 증가(2.57→3.19)하는 데 그쳤다. FTA 발효 이후 미국이 한국에 실행한 수입규제는 15건에 달한다. 한·미 FTA 발표 이전 미국의 수입규제는 총 9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차산업에서 한국이 많은 대미수출 흑자를 기록한 것은 사실이다. 이 교수는 “일단 현대차의 미국 현지 투자 확대를 요구하고, 다음으로 미국차 수입 확대를 위한 각종 규제완화 등 추가적인 혜택을 고려할 것”이라고 미국의 한·미 FTA 재협상안을 예측했다.

이미 미국은 한국에 자동차산업 관련 장벽을 낮출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지난 3월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한국에 30가지 무역장벽을 철폐하라고 요구했다. 특히 자동차산업 관련 무역장벽이 낮아지면 상대적으로 미국차의 한국 내 점유율이 높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이재일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4월 19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USTR이 거론한 장벽 중 차량 연비 규제가 핵심이라고 봤다. 이 연구원에 의하면, 한국의 자동차 연비 측정방식과 미국의 측정방식이 달라 결과적으로 한국의 연비 규정이 미국보다 20%가량 높다. USTR은 이 장벽을 낮추라고 요구했다. 또한 USTR은 차량 수리이력 보존에 관한 규제, 대리점이 아닌 곳에 수리 및 부품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규제 등 안전에 관한 규제까지도 낮춰야 할 장벽으로 보고 있었다.

한국 내 간접수용 문제 등도 손봐야
미국이 현재 진행 중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에서 미국의 한·미 FTA 재협상 전략을 어느 정도 읽을 수도 있다. 지난 4월 USTR은 미국 의회에 NAFTA 재협상 개시 의사 초안을 제출했다. 김대원 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초안에는 미국이 생각하는 자국의 이익과 관련된 사안들이 적혀 있다. 특히 미국의 NAFTA 재협상 주요 대상인 멕시코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지식재산권 등 서비스 관련 분야에 대해서는 미국에 열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에 의하면 미국은 USTR 초안과 대통령 통상정첵 의제를 통해 4차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또한 미국은 지적재산권 소유자들의 권리를 강화하고, 디지털 제품에 대한 관세와 법률·의료 등 미국이 강점을 갖고 있는 서비스 분야에 대한 무역장벽을 낮추는 방향으로 통상정책을 설정하고 있다. 이해영 교수는 “미국이 자국 서비스산업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환율조작국 지정 등 무역규제나 미국산 무기 도입 요구 등을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한·미 FTA 재협상 과정을 통해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던 노동·환경 등 분야에 대한 규정들이 법적인 구속력을 갖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한·미 FTA의 19조인 노동분야는 노동3권 등 노동자들의 권리를 법과 관행으로 보장할 것을 명시했다. 환경을 다룬 20조는 람사르 협약, 몬트리올 의정서 등 7가지 다자간 환경협정 이행을 위한 법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김 교수는 “한·미 FTA는 굉장히 광범위한 부분을 다루고 있고, 조항의 불명확성으로 인해 우리 법체계에서 곤혹스러운 부분이 많다. 노동이나 환경 규정의 경우 미국 내에서 한국 정부를 상대로 문제제기가 일어날 수 있는 부분이다. 미국이 노동 기본권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상태에서 생산됐다고 판단한 상품에 대해서는 교역을 제한시키든지 하는 방식으로 압력을 넣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도 한·미 FTA 재협상에서 내걸 조항은 많다. 한국 내에서 대표적인 문제조항으로 꼽힌 것은 간접수용 문제와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ISDS) 제도다. 간접수용은 정부의 규제 등을 국유화와 같은 효과로 보고 그에 대한 보상을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전문가들은 간접수용으로 인한 보상에 대한 부담으로, 국가 정책에 제한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해 왔다. ISDS는 투자유치국과 투자자 사이 분쟁이 발생했을 때, 유엔이나 세계은행 등 국재중재기관에서 이를 다루게 한 것이다. 한·미 FTA 발효 전부터 논란이 된 두 가지 사안에 대해 김대원 교수는 지난 5년간 연구성과가 많이 축적됐다고 말했다. 그는 “ISDS의 경우 투자유치국의 공공이익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 있었고, ISDS를 대신하여 국가 대 국가 분쟁 해결제도를 활용하는 등 문제점을 개선할 방향들도 나와 있다”며 “미국에서도 미국이 ISDS의 제소 대상이 되어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문제가 되는 구체적인 사례가 나타난다면 간접수용과 ISDS에 대해서 사회적인 관심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FTA의 여러 가지 불평등한 조항도 재협상에서 논의될 대상이다. 대표적인 예가 협정문 서문이다. 서문은 한·미 양국 모두 상대국 투자자에 대해 자국민 투자자와 동등하게 대우할 의무를 명시했다. 민변 국제통상위 등 한·미 FTA에 비판적인 시민단체들은 서문에 포함된 “미국에서처럼”이란 문구가 미국 투자자들에게 유리한 조항이라고 해석한다. 지난 2월 민변은 정보공개 소송을 통해 한·미 FTA 협상 당시 한국 정부가 “미국과 한국에서처럼”이란 문구를 넣으려 했으나 결국 미국 측의 요구대로 문구가 완성됐다며, 서문의 해당 조항을 폐기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현실적으로 미국이 한국의 요구안을 수용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해영 교수는 대담한 전략을 짠다면 한·미 FTA 재협상이 한국에 유리하게 끝날 수도 있다고 봤다. 그는 “한·미 FTA는 미국의 21세기형 FTA의 기본모델이다. 미국에서 협정을 폐기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우리 측 협상단이 오히려 한·미 FTA를 폐기할 수도 있다는 태도로 대담하게 나가야 한다. 과연 한·미 FTA가 한국에게 유리한 협정이었는지 명확히 따진다면 승산이 생길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