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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고·자사고 논란, ‘해법’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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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감들이 실천 나선 ‘폐지 공약’… 학부모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쳐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됐다. 교육은 명분과 가치 그 자체가 싸움의 도구가 되는 분야다. 공평하고 평등한 교육을 내건 쪽과 자율성과 수월성을 앞세운 쪽이 치열하게 맞부딪친다. 선전포고는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6월 13일 공언한 경기도 내 외국어고와 자율형사립고 폐지 방침이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장인 이 교육감이 처음으로 외고·자사고 폐지 의사를 밝힌 데 이어 서울 등 다른 지역 교육감들도 동참할 뜻을 밝혔다. 외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물론 해당 학교와 학부모들은 거세게 반발하며 응전에 나섰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 승리를 거두기 쉽지 않은 장기전의 막이 오른 셈이다.

서울의 한 외국어고 건물 유리창 너머로 학생들이 지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서울의 한 외국어고 건물 유리창 너머로 학생들이 지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목표는 전국단위(자사고)지만 현실적으로는 서울시내(광역단위) 자사고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일단 첫째 애는 후년에 (고교에) 입학하는데, 그때까지는 외고든 자사고든 남아있을 거고, 혹시 폐지된다고 해도 일단 자사고가 학종(학생부 종합전형)에 조금이라도 유리한 구석이 있으니까….” 서울 양천구에 사는 유모씨(44)는 지금 중학생인 자녀를 특목고나 자사고에 보내고 싶다. 조금이나마 나은 환경에서 경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번 정권에서 외고나 자사고가 폐지 수순을 밟으면 크게 미련을 두지는 않겠지만 기회가 있다면 잡겠다고 마음먹고 있다. “사실 우리 애가 공부머리가 크게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성실하긴 하니까 주위 환경이 받쳐주기만 해도 결과는 더 나을 것 같아요.” 유씨에게 자녀교육이란 더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잡고 보는 현실적 선택의 연속과도 같다.

고교 서열화 조장 비판 꾸준히 제기
자녀가 택할 수 있는 범위에서 더 나은 교육환경을 골라 조금이라도 더 높은 성적을 거두는 것. 이 현실적 선택은 자녀를 교육시키는 이념과도 동떨어져 있지 않다. 자사고 학비가 일반고의 두 배를 넘기지만 충분히 그 돈을 감내할 의향이 있다. 정부나 교육당국에 바라는 건 ‘내 돈 내서 자식 좋은 학교 보낼 테니 발목 잡지만 말라’는 것뿐이다. “만약에 애가 특목고나 자사고 들어갔는데 중간에 폐지돼서 일반고가 되어버리면 당연히 들고 일어나겠죠. (자녀가) 일반고에 가게 되면? 그럼 (자사고를) 폐지하는 게 더 유리하니 그쪽으로 입장이 바뀔 거고.” 유씨는 유연하면서도 일관성이 있는 태도를 보였다.

유씨와 같은 학부모들은 ‘교육받는 당사자의 선택권을 넓힌다’는 명분으로 추진된 이명박 정부의 특목고·자사고 확대정책에 손을 들어줬다. 과거 자립형 사립고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던 전국단위 자사고를 제외하면 2010년과 2011년 두 해에 걸쳐 집중적으로 전국에서 일반고의 자사고 전환이 이어졌다. 높은 등록금 부담과 일반고와의 차별성 부족으로 전환 초기엔 크게 주목받지 않던 자사고는 점차 자사고 출신 학생들이 대학입시에서 강세를 보인다는 소문이 알려지며 학부모들의 관심을 끌었다. 일부 자사고가 재정여력이 부족하거나 지원 학생 수가 미달하는 등의 이유로 일반고로 전환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자사고는 입시에서 더욱 강세를 보이는 양상이 나타났다.

[특집]외고·자사고 논란, ‘해법’이 있을까

그러나 그만큼 특목고와 자사고의 존재가 고교 서열화를 조장하고 일반고 교육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비판 역시 꾸준히 제기돼 왔다. 2014년 6월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등 외고·자사고 폐지를 공약으로 내건 진보 교육감이 대거 당선되면서 처음으로 폐지가 가시권 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해 10월 서울시교육청은 실제로 6개 학교의 자사고 지정을 취소했지만 교육부의 즉각적인 저지가 뒤따랐다. 조희연 교육감의 지정 취소 결정에 맞서 교육부가 결정을 번복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린 데 이어 외고·자사고 지정 취소 시 교육부 장관의 동의가 필요하도록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바꾸면서 자사고는 첫 일반고 전환 위기를 간신히 넘겼다.

하지만 정권이 바뀐 현재는 상황이 달라졌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교육부가 다시 시행령을 개정할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이던 3월 22일 “공평한 교육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고교 서열화를 완전히 해소하겠다. 설립 취지에서 벗어나 입시명문고가 돼버린 외고·국제고·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회 통과 필요 없이 대통령령으로 시행령을 개정해 특목고와 자사고의 설립 근거조항을 삭제하고 고교 유형에 따라 다르게 나뉜 선발시기도 일원화시키면 된다. 박광온 국정기획위 대변인이 “외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문재인 대통령 공약사항이기 때문에 10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된다”고 밝힌대로 100대 국정과제를 담은 국정운영 5개년 이행 계획서에 ‘외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이 포함될 예정이다.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이에 따라 구체적인 전환방법과 시기에만 차이가 있을 뿐 전국의 외고와 자사고는 일반고로 전환되는 수순을 밟아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17개 시·도교육감 중 진보성향으로 분류되는 13명의 교육감들 가운데 외고·자사고 폐지에 긍정적인 교육감이 대다수다. 전국의 외고·국제고·자사고 총 84개교 중 진보성향 교육감이 있는 지역에 70개교가 있다. 이들 학교는 이재정 경기교육감이 밝힌대로 5년마다 진행되는 교육청의 학교 운영성과 평가를 거쳐 재지정받지 않으면 더 이상 외고와 자사고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이미 2014년 서울교육청이 재지정 평가과정에서 적용한 평가기준 중 자사고 운영 취지에 맞춘 ‘다양한 선택과목 편성 및 운영’ 등의 항목에서 검토대상 학교들이 낙제점을 받은 전례가 있다.

정부와 각 시·도교육청이 적극적인 외고·자사고 폐지에 나서면 이를 막을 현실적 방법은 없다. 현행 유지에 찬성하는 교육감들이 있는 지역에서만 교육자치라는 명분을 내세워 한시적 유지가 가능할 정도다. 하지만 이미 학교와 학부모들이 반발하고 있고 교육의 자율성과 수월성, 다양성과 같은 명분을 앞세운 여론도 높아짐에 따라 결론이 손쉽게 나리라고 예상하기는 이르다.

무엇보다 특목고와 자사고의 인기가 식지 않는 이유는 실제 명문대 진학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교육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2016학년도 고려대·서울대·연세대 입학생 1만1812명의 출신고교를 분류한 결과를 보면, 과학고 230명(1.9%), 외고·국제고 1546명(13.1%), 영재학교 300명(2.5%), 자율고 2272명(19.2%, 자율형공립고 포함)으로 모두 더하면 전체의 36.8%를 차지했다. 일반고 출신 입학생의 비율은 50.3%였다. 전체 고교 중 특목고와 자사고 등의 비율이 5% 수준임을 감안하면 이들 고교가 일반고에 비해 훨씬 더 대입에서 두각을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10년간의 서울대 합격생 추이를 봐도 특목고·자사고 출신 비율은 2006년 18.3%에서 2016년 44.6%로 늘어나는 동안 일반고 출신 비율은 같은 기간 77.7%에서 46.1%로 떨어졌다.

교육현장의 교사와 학생들에게 듣는 목소리도 이를 뒷받침한다. 교육에 비교적 더 많은 경제력을 쏟을 수 있는 소수의 학생들에게 집중된 교육체제가 결국 다수 일반 학생들의 학업 동기를 감소시키는 것이다. 서울 마포구의 한 일반계 사립고에 다니는 고교 2학년 배재준군(17)은 가까운 자사고에 다니는 친구가 말하는 학교 풍경과 자신의 학교 수업 풍경이 너무 달라 처음에는 잘 믿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배군은 “그 자사고는 별로 인기가 없는 학교인데도 아무래도 돈이 있는 집 애들이 많아서인지 기본적으로 대부분 ‘인(in) 서울’ 대학은 목표라고 하더라”며 “우리 학교 애들은 1학년 때만 해도 학원에 다니던 애들이 2학년 되면서 알바하러 다니기도 하고 분위기가 천차만별”이라고 말했다.

6월 22일 서울 이화여고에서 자사고 학부모 연합회 소속 학부모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연합뉴스

6월 22일 서울 이화여고에서 자사고 학부모 연합회 소속 학부모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연합뉴스

경기도의 한 일반계 공립고에 있는 최모 교사(42)는 자신이 보기에 ‘선발효과’와 ‘축적효과’가 결과의 차이를 만든다고 말했다. “일반고에 가는 애들이 학교가 결정되기 훨씬 전에 특목고와 자사고 입학생이 결정되기 때문에 중3때부터 일찌감치 학생들 사이에서 ‘서로 다르다’는 생각이 자리잡는 거죠. 최상위권 말고는 사실상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애들인데도 한쪽은 공부를 해보겠다는 애들만 모이고, 다른 쪽은 그런 생각이 전혀 없는 애들까지 한데 모여서 3년이란 시간을 쭉 보내는 거니까요.” 각 학교마다 성적이 높은 학생과 낮은 학생 간의 편차야 나타나지만, 현재의 고교 선발과정에 따르면 일반고의 편차가 훨씬 크고 넓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현실이 이러니만큼 특목고·자사고 학교와 학부모들의 반발은 필연적이다. 전국자사고연합회장을 맡고 있는 오세목 중동고 교장은 “각 지역 교육감들이 자사고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런 일방통행식 정책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스스로 돈을 투자해 다양한 학생에게 전인교육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지역 23개 자사고 학부모 모임인 ‘자사고 학부모 연합’은 기자회견을 열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은 정치적 논리에 힘없이 당하고 있다”며 “우리 아이들은 실험용 생쥐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학교와 학부모의 돈으로 자율적인 교육을 시행하고 있는데 정치적인 논리가 개입해 교육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한다는 것이 핵심논리다.

“정치적 논리가 교육 권리 침해”
하지만 특목고와 자사고가 높은 등록금에 비례해 얻은 자율적인 교육의 본질이 오히려 입시 위주의 교육에 편중되고 있는 현실을 꼬집는 목소리도 높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구본창 정책국장은 “자사고는 겉으로는 교육의 질을 높이고 다양성이 가미된 교육을 한다는 목적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수능과 대학입시에만 대비하는 것이 중심이 된 교육과정에 편중되어 있다”며 “입시 결과가 더 좋게 나타나는 것도 먼저 입학생을 뽑아가는 과정에서 부모의 경제력과 같은 요인이 반영된 선발효과가 크게 작용한 것이므로 교육의 질 자체가 높다고 하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교육당국으로서는 반발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기 때문에 결국은 일반고로의 전환 시기를 조율하며 여론환경을 바꾸는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014년 각 교육청의 학교 운영성과 평가를 통과한 자사고 25곳과 2015년 통과한 외고·국제고·자사고 53곳은 일단 각각 2019년과 2020년 입학생까지는 현재의 학교 유형대로 받을 수 있다. 때문에 교육현장의 혼란을 부를 수 있어 적어도 2019년 이후로 본격적인 전환 시행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강하다.

외고·자사고 폐지만으로 고교 서열화를 완화하고 입시 위주 학교교육의 병폐를 단번에 해결해주지는 못한다는 근본적인 문제제기도 나온다. 일반고 안에서도 서열이 다시 생길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선 아직 교육부 장관도 임명되지 않은 정권 초기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일제고사 폐지와 고교학점제 도입 등 학교교육 방향을 큰 틀에서 바꾸는 정책의 변화가 수반되고, 외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과 함께 선발시기 일원화 등 구체적인 조정이 병행되면 문제의 심각성을 완화할 수는 있다는 주장이다. 한 교육부 관계자는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정원 대비 입학생이 줄어드는 현상까지 감안하면 경쟁 중심의 교육체제가 예상보다 빨리 변할 수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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