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갭 투자’ 규제 없이 집값 못 잡는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전셋값 상승 및 시장교란 주범… 6·19 부동산대책에서 빠져

결혼을 앞둔 직장인 최모씨(32)는 최근 신혼집을 구하기 위해 서울 은평구의 한 공인중개사 업체를 찾았다가 예상치 않은 투자 권유를 들었다. 당초 빌라 전세를 알아봤는데, 중개업자는 “전세를 끼면 소액으로도 집을 살 수 있고, 같은 방식으로 전세가가 매매가와 비슷한 집 여러 채를 살 수 있다”며 소형 아파트 투자를 권유한 것이다. 최씨는 “서울 집값은 오를 수밖에 없으니 ‘환금성 높은’ 투자를 하라는 게 중개사의 설명이었다”면서 “가진 돈이 적다고 해도 걱정하지 말라며 투자를 권해 당혹스러웠다”고 전했다.

정부가 투기수요를 잡기 위한 6·19 부동산 대책을 내놨지만, 집값 상승 및 시장교란의 주범으로 꼽히는 '갭 투자'를 잡기엔 속수무책이다. 아파트 분양권과 대출규제에 초점을 맞춘 정부 대책의 '풍선효과' 우려도 나오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정부가 투기수요를 잡기 위한 6·19 부동산 대책을 내놨지만, 집값 상승 및 시장교란의 주범으로 꼽히는 '갭 투자'를 잡기엔 속수무책이다. 아파트 분양권과 대출규제에 초점을 맞춘 정부 대책의 '풍선효과' 우려도 나오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최근 집값 상승기를 틈타 다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부동산 ‘갭 투자’에 빨간불이 켜졌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부동산시장의 이상과열로 정부가 투기수요를 억제하기 위한 ‘6·19 대책’을 꺼내들었지만, 전셋값 및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꼽히는 ‘갭 투자’를 억제하기엔 속수무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핀셋 규제’ 풍선효과 우려도
부동산 갭(gap) 투자란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이가 적은 주택을 전세를 끼고 구입한 뒤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자방식이다. 예컨대 매매가가 3억원인 주택의 전세금이 2억8000만원이라면 전세를 끼고 2000만원으로 집을 살 수 있고, 이후 전세금을 올리거나 집을 되팔아 얻은 시세차익으로 다른 주택을 사는 2차 투자에 나서는 것이다.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돈이 부동산시장으로 몰렸고, 최근 몇 년간 집값이 가파르게 상승하며 월세수익보다는 매매 시세차익을 노리는 게 유리하다는 인식도 갭 투자 성행에 영향을 미쳤다. 각종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2억원으로 아파트 10채 사기’ 등의 후일담이 이어졌고, 갭 투자방식을 상담해 준다는 컨설팅 업체들도 우후죽순 등장했다. 소액투자가 가능하다는 유혹에 대학생까지 갭 투자에 뛰어든다는 얘기도 시장에 나돌았다.

최근 몇 년간 이어진 서울의 전세난 역시 갭 투자 유행에 영향을 미쳤다. 전세 세입자 구하기가 어렵지 않은 데다 전셋값도 꾸준히 상승하면서 너도나도 집을 사 세를 준 것이다. 집값 대비 전세금이 높은 지역이 주로 갭 투자의 타깃이 된다. KB국민은행의 월간 주택가격 동향을 보면 지난 5월 서울의 아파트 전세가율은 73.0%로 갭 투자가 주로 성행하는 강북지역(77.3%)이 강남(69.4%)보다 높았다. 특히 서울 성북구(83.3%), 동대문구(81.2%), 중구(80.1%), 구로구(80.4%)는 전세가율이 80%를 넘어선 상황이다.

실제 전세 수요층이 많은 강북지역은 갭 투자까지 더해지면서 전셋값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부동산 114에 따르면 최근 2년간 서울 서대문구와 종로구의 전셋값 상승률은 28%대로 강남구(13.73%), 송파구(11.82%), 서초구(15.26%) 등 강남3구의 2배 남짓이었다.

문제는 갭 투자가 전세금과 집값을 끌어올리고 있음에도 대책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새 정부의 첫 부동산 대책인 6·19 대책에서도 갭 투자를 잡을 방법은 빠져 있다. 갭 투자는 전세보증금을 지렛대로 활용하기 때문에 DTI(총부채상환비율)·LTV(담보인정비율) 강화 등의 대출규제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대출규제로 은행 문턱을 높일 경우 오히려 전세금을 올려 재투자하려는 경향이 더 커질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6·19 대책 발표 일주일 만에 서울 아파트값 상승폭이 반토막이 나는 등 주택시장이 관망세를 보이고 있지만, 지난해 11·3 대책에 이어 이번에도 분양시장 문턱을 높이는 데 규제의 초점을 맞추면서 ‘풍선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전역에서 신규 아파트 분양권 거래가 막히자 오히려 오피스텔과 같은 수익형 부동산이나 기존 주택을 매개로 한 갭 투자가 ‘투자 대체재’로 떠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 성북구의 ㄱ부동산중개업체 관계자는 “6·19 대책 발표 이후에도 갭 투자에 대한 문의는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면서 “대책 발표 이후 오히려 호가가 오른 단지도 있다”고 말했다.

갭 투자는 기본적으로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에서 출발한다. 낙관론자들은 각종 부동산 정책이 쏟아진 노무현 정부 때에도 대책이 나올 때만 집값이 일시적으로 주춤하고, 곧이어 가격을 회복하며 꾸준히 저점을 올려 왔다는 점에서 부동산시장 호황을 맹신한다.

주택시장 노름판으로 변질… 대책은?
그러나 부동산경기가 위축되거나 집값이 떨어지면 투자자는 물론 세입자까지 막대한 손실을 볼 수 있는 것이 갭 투자다. 투자금 2000만원을 들여 3억원짜리 아파트를 샀다가 집값이 2000만원, 혹은 그 이상 떨어질 경우 원금조차 건질 수 없는 것은 물론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깡통전세’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올해 하반기 20만가구 수준의 대규모 입주물량이 쏟아져 일부 지역에선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역전세난이 발생할 수 있고, 금리인상이라는 변수도 투자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종잣돈 몇천만 원만 가지고 갭 투자에 나서는 것은 자칫하면 빚더미에 앉을 수 있는 무모한 투자”라며 “전세가율이 높아도 집이 팔리지 않아 집값이 오르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새 정부의 첫 부동산 대책이 예상보다 낮은 수준의 규제였지만, 정부가 점진적으로 규제 강도를 높이며 주택시장이 하반기에는 조정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형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새 정부의 부동산 규제정책 시작과 금리상승으로 전반적인 부동산시장은 하반기부터 조정국면에 진입할 것”이라며 “주택가격은 입주물량이 급증하는 지역 중심으로 약세를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몇 년간 갭 투자는 가뜩이나 비싼 수도권의 전셋값을 끌어올리는 ‘시장 교란’의 주범으로 지목돼 왔지만, 투자규모나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시장에서는 6월 23일 취임 일성으로 사실상 ‘부동산 투기세력과의 전쟁’을 선언한 김현미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의 향후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일단 김 장관이 취임사에서 도입하겠다고 밝힌 전·월세 상환제와 임대차계약갱신청구권제에 관심이 쏠린다. 전·월세 상한제는 집주인이 세입자와 재계약을 할 때 임대료 상승률을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는 제도로, 더불어민주당은 전세 재계약 시 인상률을 5% 이하로 제한하는 상한제를 당론으로 채택하기도 했다. 계약갱신청구권제는 세입자가 원할 경우 1회에 한해 추가로 2년 재계약을 요구할 수 있도록 보장한 것이다. 최대 임대차 기간이 4년으로 늘고 전·월세 상승률을 제한하면 투기세력의 갭 투자 유인이 줄 수 있다. 반면 일률적인 임대료 통제정책은 단기적인 임대료 폭등을 불러와 결과적으로 서민 주거난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주택시장을 투기세력의 노름판으로 변질시키는 갭 투자를 잡기 위해서는 결국 다주택자에 대한 부동산 보유세 강화가 답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최근 정치권 안팎에서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인상 얘기가 흘러나오자 ‘종부세 강화는 검토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지만, 부동산시장 과열이 계속된다면 ‘최후의 수단’으로 보유세를 올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