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1기 장관 임명의 정치학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안정 속 개혁’ 가능한 파격 인사… 정치인 약진 눈에 띄어

청와대가 사령탑이라면 장관은 선수다. 장관 인사를 보면 구체적 플레이를 상상할 수 있다. 청와대는 16일까지 산업통상자원부와 보건복지부를 제외한 모든 부처의 장관 후보자를 발표했다. ‘파격 인사’가 도드라지지만 전체적으로 ‘안정 속 개혁’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축구팀에 비유하자면 공수 조율이 원활한 팀을 지향한다. 그러나 순항을 전망하기는 이르다. ‘안정’을 위한 설계는 촘촘하고 튼튼한데 도리어 ‘개혁의 선봉장’에서 첫 인사 낙마자가 나왔다. 문재인 1기 장관 인사의 논리를 살펴봤다.

정치인의 약진이 눈에 띈다. 15개 중앙부처 장관 중 관료 출신은 김동연 기획재정부 장관과 조명균 통일부 장관 후보자 둘뿐이다. 아직 발표되지 않은 곳의 하마평을 염두에 두면 관료 출신은 3명 이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초대 내각에 박근혜 정부는 8명, 이명박 정부는 6명을 관료 출신으로 임명했다. 정부 부처의 구성이 달라 노무현 정부와는 비슷한 수준이다. 행정자치부(김부겸), 문화체육관광부(도종환), 농림축산식품부(김영록), 국토교통부(김현미), 해양수산부(김영춘) 5개 부처의 장관에는 여당 의원이 지명됐다. ‘적폐청산’이라고 할 때 언뜻 떠오르는 쾌도난마식 개혁이 아니라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을 조율해야 하는 개혁의 경우 정치인 출신이 적임자로 꼽힌다. ‘쌀 직불금 개편’이 단적이다.

문재인 정부의 주요 장관 및 후보자들이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 경향신문 사진부

문재인 정부의 주요 장관 및 후보자들이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 경향신문 사진부

관료 출신은 3명 이내가 될 가능성

김영록 농식품부 장관 후보자는 청와대 발표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농가소득 증대를 위해 쌀 직불금 제도 개편과 주요 작물 최저가격 보장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쌀 생산량의 30%를 정부가 일정한 가격에 의무수매하는 것이 쌀 직불금 제도의 핵심인데 농식품부는 대대적으로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수입보장보험을 도입해 다양한 소득보장책을 마련하고 있다. 전국농민단체연합은 보험 도입을 통한 쌀 직불금 개편에 반대하며 수매가 인상을 요구하지만, 정부는 WTO 협정 위반이라 난색을 표하는 상황이다. 김 후보자는 전남 해남군·완도군·진도군을 지역구로 둔 재선 의원으로 18·19대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했다. 정부의 입장이되 최저가격보장제 등 농민이 요구하는 보완책 마련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김현미 후보자의 주택정책도 관심의 대상이다. 김 후보자는 작년 7월 주택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권을 신설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공동발의한 바 있다. 2014~2015년 국회 서민주거복지특별위원회에서 활동한 바 있다. 정치인 출신 장관은 정책을 예측가능하도록 하고 정당정치의 책임성을 높인다.

행정안전·법무·외교 모두 비고시 출신

관료 출신 장관의 장점도 있다. 업무처리에 능숙하고 일선 관료들의 일사불란한 협조를 이끌어낸다. 정권 후반기로 갈수록 역대 정부에서도 관료를 많이 기용한 이유다. 김동연 기획재정부 장관은 가장 먼저 국회에서 인사청문보고서가 통과됐다. ‘고졸신화’로 알려져 있다. 1982년 입법고시와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기획예산처에서 공직을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 때 대통령 비서실장 비서관, 참여정부 때 산업재정기획단장 및 재정기획담당관을, 이명박 정부 때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실 국정과제비서관을 지냈다. 장관 임명 직전 아주대 총장을 역임했다. 김 장관의 한 측근은 “(김 장관은) 유능하고 인품 좋은 관료로 누구도 찬성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통일부에 관료 출신이 장관에 지명되는 일은 오히려 이례적이다. 참여정부 때에는 학자와 정치인들을 선호했고, 보수정부 9년 동안 학자 출신만 임명됐다. 특히 이명박 정부 시절 지리학자이자 대운하 전도사로 알려진 류우익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가 통일부 장관에 임명됐다. 당시 인사에 ‘부처 힘 빼기’라는 풍문도 있었다. 조명균 장관 후보자는 2002년 국제협력국 국장, 2004~2006년 개성공단사업지원단 단장, 2006년 대통령비서실 안보정책비서관을 지냈다. 강대국들과 한반도 외교·안보 현안에 관한 일을 해본 적 없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불안한 요소를 보완할 적임자로 판단한 듯하다.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변화’와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체제가 구축된 셈이다. 이 두 부처를 조율할 전체적 사령탑이 불분명하다는 점이 문제다. 청와대는 외교안보수석을 없애고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와 홍석현 한반도포럼 이사장을 외교안보특보로 임명했다. 문 특보는 아들의 미국 국적 문제가, 홍 특보는 중앙일보 사장 시절 삼성 X파일 특검 문제가 논란이 될 것으로 예상해 회피하려 한 인사라는 분석도 나온다.

파격 인사의 꽃은 두 부처다. 행정안전부, 외교부 모두 비고시 출신들을 앉혔다. 이전에는 각각 행정·사법·외무고시 출신의 관료, 혹은 관료 출신 정치인들이 주로 장관을 맡았다. 법무부는 검사, 그 중에서도 ‘공안통’이 독식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법무부 장관 4명 중 김현웅 장관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공안통이었다. 대선캠프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검찰개혁의 의지가 굉장히 강하다. 법무부 장관만큼은 검찰이 아니면서 ‘5년 동안 함께 할 사람’을 찾느라 고심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절 쓰린 기억이 이 소신에 녹아 있다.

참여정부는 역대 정부 중 가장 많은 법무부 장관을 기용했다. 검찰개혁의 좌절이 드러난 이력이다. 판사 출신인 강금실 장관이 이른바 ‘검란’으로 물러나자 청와대는 서울대 법대 출신의 전형적인 검찰통 김승규 장관을 앉혀 조직을 가라앉혔다. 2005년 7월 천정배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했다. 이 해 12월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6·25전쟁 관련 발언의 사법처리를 놓고 천 장관은 검찰총장과 충돌했다. 참여정부는 검찰에 대한 개입 불가를 강조하던 기존 입장과 열린우리당이 한때 당론으로 폐지를 밀어붙였던 국가보안법의 부당한 적용이 충돌하던 상황이었다. 천 장관은 당내 갈등과 선거 등을 이유로 1년 만에 물러났고, 다시 전형적인 검찰통 김성호 장관으로 검찰을 달래기를 반복했다. 참여정부 마지막 법무부 장관은 검사 출신 형법학자 김성진 장관이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고심했다는 인사에서 첫 인사 낙마자가 나왔다. 안경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혼인무효 판결이 공개되고, 자립형사립고인 하나고에 재학 중이던 아들의 규정 위반으로 퇴학이 결정됐을 때 취소 청탁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1976년 혼인무효 판결문 공개에는 검찰이 개입돼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최민희 민주당 전 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이 판결문을 공개한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이 “검사 출신이자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때 정무비서관을 지냈다”며 “자료를 어디서 구했는지 밝히라”고 요구했다. 안 교수는 16일 법무부 장관 후보직을 사퇴했다.

문재인 1기 장관 임명의 정치학

신설·통폐합 부서 적다는 점도 특징

학문적 업적으로만 평가받고 내부적으로는 권위적인 학계 분위기가 학계 인사의 입각에 의외의 복병이 되고 있다.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도 음주운전 이력, 학생들에 대한 폭언 동영상 등으로 험난한 청문정국을 겪을 예정이다.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이지만 시민사회론 전공자로 노동문제에 전문성이 깊은 편이 아니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같은 압도적 지지여론을 기대하기 어렵다. 청와대가 직접 개입하는 일자리위원회나 일자리수석을 중심으로 노동정책이 돌아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학자 출신 장관이 성공하지 못하리란 보장은 없다. 박근혜 정부 시절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이 대표적이다. 방하남 전 고용노동부 장관도 무난하게 일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학자 출신 장관들은 유독 끝이 좋지 않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돼 있다. ‘전문성’이 아닌 ‘순응적 손발’로 학자를 등판시키고 이용하며 학자 역시 이에 복무한 경우다.

환경부와 여성부는 시민사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민운동가와 학자 출신 인사가 다시 임명됐다. 김대중·노무현 시절의 장관 임명 패턴의 부활이다.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인 정현백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독일 현대사를 전공했고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강경화 후보자와 더불어 ‘위안부 문제 해결 투톱’으로도 기대 받는다. 박근혜 정부 때는 친박계 여성 정치인이, 이명박 정부 때에는 정치색을 잘 드러내지 않는 여성학자들이 장관이 됐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존재감을 드러낸 장관들이 있다. 이인제 전 자유한국당 의원은 김영삼 정부 노동부 장관으로 고용보험제도를 도입했다. 김대중 정부의 교육개혁과 이명박 정부의 평준화 해체 정책은 이해찬·이주호 두 전 장관을 두고 논할 수 없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재정 및 기초연금 도입을 이유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60%에서 40%로 떨어뜨리는 개혁을 단행했다. 참여정부에서 김진표 전 의원은 재정경제부 장관과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을 모두 역임했다. 현재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이다. 재정경제부 장관 시절에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는 사회주의”라고 공개를 거부했으며, 교육에도 시장논리적 접근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참여정부의 공과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안정 속 개혁’을 표방하는 문재인 정부에서 정권의 임기가 끝나도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장관이 탄생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na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