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들썩이자 가계부채 치솟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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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5월 가계대출 증가액 6조원… 8월 중 나올 종합대책 주목

강남 재건축단지에서 시작된 아파트값 상승세가 서울 전역과 수도권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가계부채 증가세도 가팔라지고 있다. 가계빚(가계신용)은 올해 1분기 말 현재 1360조원까지 치솟은 상태다. 6월 15일 미국의 금리인상이 유력해지면서 역대 최대 규모인 가계부채 관리에 빨간 불이 켜졌다. 미국이 이달 중 기준금리를 올리게 되면 우리나라와 기준금리가 1.25%로 같아진다. 미국이 하반기 한 차례만 금리를 더 올려도 기준금리 역전현상이 벌어지는데, 외국인 자본유출 우려와 함께 대출금리의 지속적 상승으로 가계빚이 경제의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이런 와중에 부동산시장마저 들썩이고 있다. 8월 중 나올 가계부채 종합대책이 문재인 정부의 첫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호황이 부른 가계빚 증가세

부동산시장 호황은 가계빚 증가세를 부채질한다. 지난해 11·3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다소 주춤했던 가계대출 증가세가 다시 가팔라지고 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 5월 은행권의 가계대출 증가액은 6조원(주택금융공사 양도분 포함)으로 잠정 집계됐다. 지난 4월 4조6000억원에 비해 증가폭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관망세를 보였던 주택시장이 새 정부 출범과 맞물려 다시 들썩이면서 가계빚 역시 크게 늘어난 것이다. 5월 중 5대 시중은행(국민·신한·KEB하나·우리·농협)의 가계대출 증가액만 따져봐도 3조994억원으로 전달(1조4610억원)의 2.1배에 달했다.

이 같은 증가세를 견인한 것은 분양시장이다. 아파트 집단대출의 영향이 컸다. 지난달 5대 시중은행의 집단대출 증가액은 1조2935억원으로 전체 가계대출 증가액의 43%를 차지했다.

최근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부동산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으로 불리는 가계부채 증가세도 가팔라지고 있다./연합뉴스

최근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부동산시장이 과열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으로 불리는 가계부채 증가세도 가팔라지고 있다./연합뉴스

문제는 최근 신규분양 물량이 쏟아지며 집단대출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부동산 114 집계를 보면 통상 분양시장의 ‘비수기’로 꼽히는 6~8월 중에만 전국에서 총 7만1087가구가 분양될 예정이다. 6월만 해도 전년 동기 대비 20.3%가 증가한 4만1282가구의 분양이 이뤄진다. 여기에 오는 7월부터 내년 2월까지 월 평균 3만8899가구가 입주하는 등 하반기 ‘물량 폭탄’이 예고되면서 아파트 잔금대출 역시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1차 처방은 일단 ‘돈줄 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대출 기준을 강화해 가계부채 증가세를 억제하는 한편 부동산시장의 안정 역시 꾀하겠다는 것이다. 가장 유력한 카드는 박근혜 정부 당시 빗장을 풀어놓은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초이노믹스(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의 경제정책)’ 이전으로 다시 조이는 것이다. 현재 각각 70%와 60%(수도권 아파트 기준) 수준인 LTV와 DTI의 효력이 7월로 종료되는 가운데 이를 규제완화 이전인 50% 수준으로 환원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당초 정부가 예고했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제도 정비로 시행에 시일이 걸리는 상황에서 금융규제 공백기간 동안 LTV·DTI 규제로 급한 불을 끌 것이라는 관측이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4일 “DSR 종합시스템이 만들어지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현행 제도 내에서 어떻게 조절할지 논의하고 있다”며 LTV·DTI 강화를 시사했다.

당초 LTV·DTI 규제 강화에 신중론을 보였던 금융당국의 기류 변화도 감지된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7월 말 종료되는 LTV·DTI 행정지도와 관련해 최근 주택시장 및 가계대출 동향을 반영한 새로운 행정지도 방향을 가능한 한 빨리 결정해 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과거 정부에서 LTV·DTI 강화 등의 금융규제는 가계부채 대책이라기보다는 주거 안정을 위한 ‘부동산대책’에 가까웠다. LTV는 김대중 정부 때인 2002년, DTI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도입된 주택담보대출 규제다. 가계의 대출 상환능력 심사를 위해 마련된 기준이지만 집값을 띄우거나 잡는 데 쓰였다. 박근혜 정부 당시 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한 LTV·DTI 규제완화가 대표적이다.

집값 들썩이자 가계부채 치솟아

그러나 저금리 장기화 등의 요인으로 가계의 가처분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이 170%까지 치솟으며 LTV와 DTI 같은 금융규제의 목표 역시 일차적으로 가계빚을 잡는 데 초점이 맞춰지게 됐다. 문재인 정부는 참여정부 때와 달리 집값 상승으로 인한 주거문제와 가계부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숙제에 직면한 셈이다.

문재인 정부 앞에 놓인 ‘집값 트라우마’

앞서 ‘부동산과의 전쟁’을 벌였던 참여정부 5년간 서울의 아파트값은 78.9% 폭등했다. 임기 초반 투기과열지구 지정 확대부터 종합부동산세 도입, 양도세 중과세,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분양가 상한제, LTV·DTI 규제 등 그 어느 정부보다 강도 높은 정책을 쏟아냈지만 집값을 잡는 데 실패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재임 중 “부동산정책 빼고는 꿀릴 게 없다”는 말로 부동산정책 실패를 자인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역시 출범하자마자 집값 급등에 직면했다. 부동산 문제에 관한 한 ‘참여정부 트라우마’가 작용할 수 있는 상황이다. 과도한 집값 상승과 가계부채 급증으로 규제에 나서야 하지만, 규제 일변도였던 참여정부 부동산정책이 실패했던 학습효과가 새 정부에 각인된 이상 적극적인 시장 개입도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참여정부가 부동산시장 과열을 잡는 마지막 카드로 내놓은 것이 LTV·DTI 강화와 같은 금융규제였다. LTV·DTI는 이번에도 문재인 정부의 정책 방향타 역할을 할 전망이다. ‘가계빚 주범’으로 지목됐던 집단대출에 대한 DTI 적용 여부도 주목된다. 다만 최근 부동산시장 과열이 서울과 수도권 등 일부 지역에만 국한된 만큼 주택 실수요자들이 타격을 받지 않도록 일률 규제보다 투기수요를 잡는 ‘핀셋 처방’을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새 정부가 임기 초반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강화를 통해 강도 높은 규제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지만, 참여정부 당시 종부세가 거센 조세저항을 부르는 등 임기 내내 정권의 발목을 잡았다는 점에서 현재로선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인다. 김동연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 역시 인사청문회에서 “종합부동산세 강화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고강도 규제를 내놓는 데 대한 정부의 부담감도 존재한다. 가계부채 증가세를 누르기 위해선 대출규제뿐만 아니라 세제·부동산정책 등 복합적인 규제가 필요하지만, 자칫 어렵게 살아난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최근의 경기회복세가 상당 부분 부동산시장의 호황에 기대고 있는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가 쓸 수 있는 경기부양 카드 중 가장 손쉬운 방법은 부동산시장을 띄우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부동산시장 호황이 가계빚이라는 불안한 기반 위에 서 있다는 점이다./연합뉴스

정부가 쓸 수 있는 경기부양 카드 중 가장 손쉬운 방법은 부동산시장을 띄우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부동산시장 호황이 가계빚이라는 불안한 기반 위에 서 있다는 점이다./연합뉴스

가계빚과 경기부양 딜레마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1%로 잠정 집계됐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 경기가 회복 조짐을 보이며 6분기 만에 0% 성장률을 벗어난 것이다.

이 같은 경기회복은 부동산시장의 호황에 따른 것이다. 지난해 4분기 -1.2%를 기록했던 건설투자 증가율은 올해 1분기 6.8%로 뛰었다. 서울을 중심으로 부동산시장 열기가 이어지며 주택과 토목·건설 모두가 증가한 것이다. GDP에 대한 성장 기여도 역시 건설투자 부문이 가장 높았다.

이 같은 경기 반등을 긍정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를 “기형적이고 취약한 성장”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성장률 1.1%의 전부가 건설투자(기여도 1.1%포인트)에 기인한 반면, GDP의 절반을 차지하는 민간소비 기여도는 0.2%에 불과해 아직은 경기회복을 낙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향후 수출경기 호조가 이어진다면 시차를 두고 내수부문이 살아나며 전체 경제상황이 본격적인 경기회복 국면으로 진입할 수 있겠지만, 수출에 문제가 생기거나 건설투자가 성장력을 잃어버릴 경우 경제상황이 다시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수출과 부동산시장이 모두 휘청거릴 경우 미미하게나마 살아난 경제성장 동력도 꺼질수 있다는 전망이다.

주 실장은 “현재 경제성장의 상당 부분이 건설투자에 의존하는 불안한 성장구조가 지속되고 있지만, 부동산경기에 의존적인 민간·건축경기의 호조에 기대 경기회복을 도모할 경우의 부작용을 새 정부가 유념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쓸 수 있는 경기부양 카드 중 가장 손쉬운 방법은 부동산시장을 띄우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이어진 경기침체 속에 부동산시장이 ‘나홀로 호황’을 보인 이유다. 특히 수출부진이 몇 년째 계속되며 건설경기에 의존한 부양책이 이어졌다. 지난해 건설투자의 성장기여율 비중은 38%로 2013∼2015년 평균(18%)의 2배에 달했다. 성장기여율이란 성장기여도를 100으로 봤을 때 해당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을 말한다.

문제는 이 같은 부동산시장 호황이 올해 15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계부채라는 위태로운 기반 위에 있다는 점이다. 원로 경제학자인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지난 2월 한국경제학회의 <한국경제포럼>에 게재한 논문에서 이런 부동산시장 상황을 ‘폰지게임(Ponzi Game)’에 비유했다. 폰지게임이란 고배당을 미끼로 투자금을 조달한 뒤 만기가 되면 제3자에게서 새로 받은 투자금으로 앞의 투자금을 갚는 투자 사기 수법을 말한다.

이 교수는 “지난 50여년간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정부가 꺼내든 카드는 부동산시장 부양책이었고, 그때마다 주택가격은 수직상승을 거듭해 오늘에 이르게 됐다”면서 “지금 이 순간 우리 사회에서 주택과 관련해 벌어지고 있는 폰지게임은 언젠가 그 끝자락에 이르게 되고, 이 단계에 이르면 정부가 아무리 부동산시장을 떠받치려고 발버둥친다 해도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 되어버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새 정부도 이 점을 모르지 않는다. 참여정부 당시 종부세 도입의 산파 역할을 했던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은 2011년 펴낸 <부동산은 끝났다>라는 책에서 “건설업으로 경기 부양을 하는 것은 끊기 어려운 마약”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는 이 오래된 ‘마약’을 끊어낼 수 있을까.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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