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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표본실의 4대강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집권하고 2009년까지 4대강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시기에 4대강 기사를 집중적으로 썼다. 대표적인 것이 2009년 6월 23일자 830호 표지 스토리 ‘보의 비밀’의 머리기사다. 4대강 마스터 플랜이 모습을 드러낸 시점이었다.

4대강 사업은 세계 어디에도 이런 대형보를 만든 유례가 없다는 환경단체의 비판에 부딪혔다. 당시 운하 건설의 사전 포석이라는 의혹까지 받았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플랜을 짜면서 유럽의 사례를 내세웠다. 제목은 이러했다. ‘세계의 보를 벤치마킹하여 랜드마크로 건설.’ 마스터플랜 홍보용 자료에서 보의 모델은 네덜란드의 하게슈타인보·하르텔보·마에슬란트보 등이었다.

구글 어스 위성사진이나 해양사진 전문 사이트를 샅샅이 뒤진 결과, 네덜란드의 하게슈타인보·하르텔보·마에슬란트보에는 모두 배가 다니고 있었다. 이들 보는 모두 운하가 있는 곳에 있었다. ‘절대 운하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이명박 정부가 배가 다니는 보를 모델로 삼은 것이다. 확인 취재에 들어가자 관계자는 말을 바꿨다. 이런 보가 있다는 것이지, 이 보를 모델로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 대학교수는 보의 모델은 기능이 우선인데, 디자인만 참고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4대강 보 모델에 배가 다니고 있다’는 기사가 나간 후, 이들 ‘모델 보’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마스터플랜 요약본과 보도자료에도 등장했던 이들 유럽 명품보의 사진은 어느 날 슬며시 사라지고 말았다. 4대강 사업을 서두르다 발생한 해프닝이었다.

4대강 사업은 강행됐다. 앞에서 언급한 대학교수는 유럽에서는 강의 본류를 막는 보가 없다고 기자에게 설명했다. 초대형 보가 강의 본류를 막는 최초의 실험이 이뤄진 것이다. 4대강이 아니라 하나의 강에서만 해보고, 확대하자는 의견도 묵살됐다. 해외에서 한국의 4대강 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에 한 환경전문가는 ‘초유의 실험이니 그 결과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거대한 실험이 마스터플랜으로 모습을 처음 드러낸 지 8년이 지났다. <주간경향>은 8년 만에 다시 표지 스토리로 4대강 주제를 다뤘다. 문재인 정부는 6월 1일 4대강 보 수문을 상시 개방했다.

염상섭 소설가의 <표본실의 청개구리>에 등장하는 한 장면의 묘사가 떠오른다.

“‘자 여러분, 이래도 아직 살아있는 것을 보시오’ 하고 뾰죽한 바늘 끝으로 여기저기를 콕콕 찌르는 대로 오장을 빼앗긴 개구리는 진저리를 치며 사지에 못박힌 채 벌떡벌떡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평론가들은 개구리가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을 비유한 것으로 보았다. 최고권력자 한 명이 땅을 마구 파헤칠 수 있었다는 어처구니없는 현실 앞에서 이에 앞장서거나 방조하며 침묵한 우리의 지식인 사회도 식민지 그때와 다르지 않다. 진저리를 치며 사지에 못박힌 개구리처럼 어느 날 실험대상이 된 4대강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본다. 낙동강·한강·금강·영산강. 이들 강은 최고권력자의 엉뚱한 욕심 하나로는 결코 실험대상이 될 수 없는 대자연이다.

<윤호우 편집장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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