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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은 위장전입의 흑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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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정권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

시대가 바뀌었다. 보수정권에서 후보자의 사과 한마디로 넘어갔던 위장전입이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의 핵심 쟁점이 됐다. 문재인 정부의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에 대해 6월 2일 자유한국당은 대변인 논평에서 “흠결이 많은 부적격 후보자”라면서 “두 후보는 모두 위장전입 전력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가장 큰 ‘흠결’로 꼽았다. 반면,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간 인사청문회에서 공직후보자가 낙마한 주된 이유는 공금횡령, 부동산투기, 전관예우처럼 범죄나 도덕성과 관련이 있는 것들이었다.(참여연대가 5월 23일 발표한 ‘16~18대 정부 낙마 공직후보자 사례’) 위장전입이 공직후보자 도덕성의 핵심으로 떠오른 것은 2002년 김대중 정부의 장상 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이후 15년 만의 일이다. 참여연대에 의하면 이명박 정부 동안 공직후보자 중 위장전입 의혹을 받은 18명 중 실제 낙마한 이는 3명(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신재민 문체부 장관 후보자)뿐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15명이 위장전입 의혹을 샀고, 이 중 3명(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이 낙마했다. 6명 중 농지를 증여받기 위해 위장전입을 한 박은경 후보자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위장전입이 아닌 보다 중대한 문제점 때문에 낙마했다. 예를 들어 이동흡 후보자는 공금횡령 의혹, 안대희 후보자는 5개월간 16억원의 수입을 올린 전관예우가 낙마의 핵심 사유였다. 인사청문회가 열릴 때마다 청문위원들은 공직후보자들의 위장전입을 지적하지만 그때마다 정부는 “공직을 맡는 데 결정적 하자는 없다”며 후보자들을 임명해 왔던 것이다.

6월 2일 국회 정무위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6월 2일 국회 정무위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공직자 재산 공개 이후부터 사회문제화

고위공직자의 위장전입이 사회문제로 처음 대두된 것은 24년 전 김영삼 정부 때다. 1993년 2월 취임한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임기를 시작하자 자신의 재산을 공개했다. 이후 국무위원, 국회의원, 기타 장·차관급 공직자들의 재산이 공개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박양실 당시 보건사회부 장관이 부동산투기 목적으로 자녀를 위장전입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박 장관은 임명 10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1993년 9월에는 공직자윤리법이 개정되어 1급 이상 고위공직자들의 재산이 일반인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재산내역을 토대로 대법관, 부장판사, 외교관 등 일부 고위공직자들의 위장전입 실태가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1993년 9월 9일 한겨레신문은 재산 증식과 관련된 위장전입의 사례들을 보도했다. 배만운 당시 대법관의 부인은 1974년 5월 경기도 화성군(현 화성시)으로 위장전입해 2500㎡ 크기의 밭을 산 뒤 3개월 만에 원래 주소지로 돌아왔다. 최웅 당시 폴란드 대사는 특전사령관으로 재직하던 1982년 3월 자신이 직접 경기도 여주군(현 여주시)으로 위장전입해 2500㎡ 크기의 밭을 산 뒤 한 달 만에 다시 실제 거주지로 주민등록을 옮겼다.

고위공직자들의 재산이 공개되기 전까지 정치권은 땅투기, 자녀 학군을 목적으로 한 위장전입보다 선거에서의 위장전입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1988년 4월 15일 당시 동아일보 기자였던 이낙연 국무총리는 기자칼럼을 통해 “선거를 위한 유권자의 주민등록 전출·입이 거의 전국적인 현상인 듯하다”고 썼다. 이 총리의 칼럼에 의하면 경기도 26평 아파트에 52명이 입주해 있는 것으로 주민등록이 된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전라북도에서는 빈터로 나오는 번지수에 8명이 주민으로 등록된 사례도 있었다. 당시 여당인 민정당 후보가 공천을 받고 내려온 지 2일 만에 8명이 공터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민정당 지역 책임자가 “언론이 왜 이런 걸 문제삼는지 모르겠다. 자발적으로 ‘한 표’를 돕겠다고 하는 것은 오히려 인간적이 아닌가”라고 발언한 것도 이 총리의 칼럼에 실려 있다.

공직자 재산공개와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이후에는 공직후보자의 위장전입 여부가 정치권의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 2002년 장상 국무총리 후보자다. 생중계로 진행된 인사청문회에서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의 심재철 의원이 장 후보자에게 위장전입으로 의심되는 아파트에 관해 물었다. 이에 장 후보자는 “주소도 모른다”, “그곳에 살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게 무슨 문제냐’는 태도에 야당과 언론은 분노했고, 결국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준안은 부결됐다.

투기 목적 위장전입은 낙마로 이어져

여러 위장전입 사유 중 가장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부동산투기 등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한 위장전입이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이헌재 당시 경제부총리와 최영도 당시 인권위원장이 위장전입을 통해 시세차익을 얻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들은 애초 위장전입에 대해 사과하고 자리를 지킬 예정이었지만 야당과 언론의 비판이 계속되자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재산 증식과 관련이 있는 위장전입이더라도 실제 이익으로 이어지지 않은 경우엔 공직에 임용된 경우도 있다. 2006년 2월 이용섭 당시 건설교통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이 후보자가 1990년 2월부터 3개월간 서울 가락동 아파트에 위장전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이 후보자는 “분양권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해서 아내가 주소를 옮겼지만 뒤늦게 발견하고 이를 바로잡았다”고 해명했다. 이 후보자가 위장전입으로 이익을 본 게 나오지 않자 국회는 인사청문 보고서를 채택했다.

한편 자녀의 학교 배정과 관련된 위장전입에 대해 청문회는 상대적으로 관대했다. 참여정부에서도 김명곤 문화부 장관 후보자 딸의 위장전입이 밝혀진 바 있다. 그러나 김 후보자의 딸이 위장전입지가 아니라 실거주지의 학교를 배정받은 것으로 알려지자 이 역시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물론 여론은 위장전입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2007년 대통령 선거 한나라당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이명박 후보의 위장전입 경력을 거론할 정도였다. 그러나 자녀 학교 배정을 이유로 수차례 위장전입을 한 사실이 있는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위장전입에 대한 국회의 문턱은 대폭 낮아졌다.

이명박 정부는 취임하자마자 국무위원 후보자들이 각종 논란을 일으켰다. 첫 해에만 장관 후보자 3명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의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났고, 결국 1명은 위장전입이 계기가 돼 낙마했다. 이에 교훈을 얻었는지 이명박 정부의 공직후보자들은 주로 부동산이 아니라 교육과 관련한 위장전입이 드러난 이들이다. 민일영·이인복 대법관은 아파트 분양을 받기 위해 위장전입을 했던 과거가 드러났지만 투기 목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청문회를 통과했다.

재산 증식이나 자녀의 학교 배정이 아닌 독특한 유형의 위장전입 사례들도 있다. 2005년 참여정부의 정상명 검찰총장 후보자는 아내와 20년 이상 별거한 것으로 나와 위장전입 의혹을 받았다. 알고보니 정 총장의 부인이 등록된 주소는 정 총장의 처가였다. 당시 정 총장 측은 무속인으로부터 아내가 결혼 후 주소를 옮기면 처가에 화가 온다는 말을 듣고 아내의 주민등록을 그대로 처가에 유지했다고 해명했다. 이명박 정부의 임태희 노동부 장관은 선거에 출마한 장인의 선거운동을 돕기 위해 두 차례 위장전입한 사례가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황찬현 감사원장이 아내의 출산을 이유로 위장전입했다. 그는 아내의 출산이 임박한 1981년 7월 서울 강동구로 전입했다가 3개월 후에 원거주지인 경기도 광주군(현 광주시)으로 전입했다. 이에 황 감사원장은 청문회 당시 “잘못된 일”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당시 의료보험 체계상 진료구역 제한이 있어 딸 출산을 위해 서울로 병원을 옮기기 위해 주소를 이전했다”고 해명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의 공직후보자들은 어떤 유형의 위장전입으로 볼 수 있을까. 강경화 후보자는 딸이 이화여고에 전학하는 과정에서 위장전입을 한 것이라는 점에서 자녀 교육과 관련된 위장전입이라고 볼 수 있다. 2007년 이규용 환경부 장관 후보자 이후 10년 만에 교육과 관련한 위장전입이 청문회에서 크게 이슈가 된 것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나 김상조 후보자는 ‘독특한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5월 24일 청문회에서 이 총리는 1989년 3월부터 12월까지 배우자가 위장전입을 한 사실을 인정했다. 아내가 서울 강남교육청 소속 학교에 배정받기 위해 주소를 강남구 논현동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김상조 후보자는 6월 2일 청문회에서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위장전입 의혹에 대해 아내의 병치료를 위해 이사를 한 것이며, 위장전입이 아니라 실제 거주했다고 밝혔다.

[포커스]말도 많고 탈도 많은 위장전입의 흑역사

이명박 정부 때 18명으로 가장 많아

인사청문회 도입 이후 역대 정부의 위장전입 의혹 숫자를 보면 김대중 정부 2명(청문회 외 1명), 노무현 정부 6명(청문회 외 3명)이다. 이명박 정부가 18명(청문회 외 3명)으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은 15명이 의혹을 받은 박근혜 정부다.(표 참고)

한편, 위장전입 자체는 처벌하지 않도록 주민등록법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위장전입이라는 개념 자체가 유신독재 시절 주민 통제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위장전입에 대한 처벌조항은 1975년 주민등록법 개정 때 들어갔다. 그 전에는 2중으로 주민등록을 한 경우에만 처벌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을 선포한 이후인 1975년 7월 25일 주민등록법 개정안에 “허위의 사실을 신고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15만원 이하 벌금”이라는 처벌조항이 추가됐다. 당시 주민등록법 개정 이유는 “안보태세를 강화하기 위하여 주민등록을 거주사실과 일치시키고 민방위대, 예비군 기타 국가의 인력자원을 효과적으로 관리하여 총력전 태세의 기반을 확립하려는 것”이라 밝히고 있어, 국민들을 쉽게 동원하려는 목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위장전입을 “구시대의 유물 같은 국가주의적 용어”라며 현재 주민등록법을 비판했다.

위장전입을 처벌하지 않는다면 부동산투기 목적의 위장전입이나 자녀들을 특정 학교로 배정시키기 위한 위장전입이 성행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이에 대해 한 교수는 글에서 “비거주자가 거주자인 것처럼 꾸며서 부동산투기를 했다는 이유로 처벌하면 되고,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실제 살지도 않는 곳에 주민등록을 했다면 교육 관련한 법 위반으로 처벌하면 된다”며 “주민등록을 그곳(실거주지가 아닌 곳)에 했기 때문에 처벌되어야 하는 게 아니라, 그런 주민등록을 이용해 다른 법률을 위반했기 때문에 처벌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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