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라, 아무 것도 아는 게 없을까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에 비유… 상황에 따라 핵심 증언할 수도

5월 31일, 인천공항 1층이 술렁이기 시작한 건 오후 2시쯤이었다. 입국장 내 TV에서는 승마선수 정유라씨(21)의 입국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30여분 뒤에 도착한다는 것이었다. 정씨가 탄 대한항공 KE 926 여객기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전날 밤 9시36분(현지시간)에 출발했다.

KE 926편 승객들이 나올 1층 B번 도착장 앞에는 이미 각 방송사에서 나온 카메라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방송 카메라를 본 시민들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호기심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청년당 당원인 청년들은 말머리 가면을 쓰고 ‘경축 유라 귀환. 국정농단의 진실을 밝혀줘’, ‘정유라를 구속수사하라’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도착장 주변이 꽉 차자 2층에도 사람들이 차기 시작했다. B 도착장이 보이는 위치에 있던 2층 커피숍 자리는 도착장을 지켜보는 시민들로 꽉 찼다. 너무 많은 시민들이 난간에 기댄 것을 우려했는지 공항경찰대 대원들이 2층을 순찰하며 시민들을 난간에서 떼어놓기도 했다.

오후 2시38분. B 도착장에 붙은 전광판에 정씨가 탄 KE 926편이 도착했다는 표시가 떴다. 도착장 한편에서 승마 복장을 한 채 인터넷 방송을 하던 한 시민이 “드디어 정유라씨가 탄 비행기가 도착했다고 합니다”라며 전광판을 응시하기도 했다. 한국에 도착한 정씨는 바로 도착장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미 여객기를 탄 순간 체포되어 바로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송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B 도착장으로 나오던 일반승객들은 수많은 인파가 당혹스러웠는지 얼굴을 가리며 재빨리 빠져나갔다. 2시55분쯤 TV에서 일반승객들이 다 내렸다는 소식이 나왔지만 정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5월 31일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서 시민들이 정유라씨의 인터뷰 생중계를 TV로 지켜보고 있다. / 이준헌 기자

5월 31일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서 시민들이 정유라씨의 인터뷰 생중계를 TV로 지켜보고 있다. / 이준헌 기자

해외체류 중 매달 1억원씩 지출한 듯

같은 시간 정씨는 비행기 안에서 출국수속을 마치고 기자들과 일문일답 중이었다. 도착장 옆에서 TV를 보고 있던 시민들은 “하나도 모르는데 저는 좀 억울하다”는 정씨의 말이 나오자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마친 정씨는 도착장으로 나오지 않았다. 정씨는 미리 준비된 검찰 호송차량을 타고 곧장 서울중앙지검으로 떠났다.

이날 현장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인천공항 인근 송도신도시에 산다는 한 고등학교 여학생은 정유라씨의 “전공이 뭔지도 모르겠다. 대학교에 가고 싶어 한 적이 없었다”는 발언에 가장 화가 났다고 했다. 이 여학생은 “이화여대도 아니고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가고 싶어도 못가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며 “저 사람 때문에 누군가는 대학에 떨어졌을 텐데 반성하는 기미는커녕 말하기 싫은데 억지로 말하는 티가 팍팍 나서 불쾌했다”고 말했다. TV에서 정씨가 탄 차량이 인천공항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나가자 도착장에 모였던 시민들도, 2층 난간에서 구경하던 이들도 흩어지기 시작했다.

귀국 직후 정씨의 인터뷰는 “나는 모르는 일이다”로 압축된다. 기자들이 귀국을 결심한 이유를 묻자 정씨는 “빨리 (검찰에) 입장을 전달하고 오해도 풀고 해결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삼성의 특혜지원에 대해서도 “딱히 그렇게 생각해본 적 없다. 돌이켜보니 잘 모르겠다” “(저는) 퍼즐을 맞추고 있는데 잘 연결되는 게 없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자신이 범죄자 취급 받는 것은 모두 ‘오해’라는 게 정씨의 생각이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박영수 특검팀이 발부한 체포영장에 나온 세 가지 혐의를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정씨의 혐의는 업무방해, 공무집행방해, 외국환관리법 위반 등이다. 업무방해죄는 정씨를 세상에 알리게 된 이화여대 특혜 사건에 관한 것이다. 특검의 수사 결과 정씨가 이화여대 입학 및 학사관리에서 부당한 혜택을 받은 것이 드러났고, 이후 이대는 정씨를 제적했다. 이대는 정씨가 입학하기 전 체육특기자 종목에 승마를 포함시켰고, 정씨가 거의 출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학점을 부여하기도 했다. 공무집행방해죄는 정씨의 청담고등학교 학사비리와 관련이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시교육청은 정씨가 105일간 국가대표 훈련에 참가했다는 승마협회 명의의 공문이 가짜라고 발표했다. 당시 공문은 정씨가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선발되기 전 시점부터 국가대표 훈련에 참가한 것처럼 기재되어 있었다. 이로 인해 공결로 처리된 정씨의 결석 중 105일은 무단결석이 됐고, 결국 정씨는 청담고에서도 퇴학처리됐다.

정유라, 아무 것도 아는 게 없을까

노승일씨 “여과없이 얘기하는 친구”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는 정씨의 해외도피 생활과 관련된 것이다. 정씨는 2015년 12월과 지난해 1월, 하나은행을 통해 총 38만5000 유로를 대출받았다. 이 돈으로 정씨는 독일에 자신의 명의로 된 주택을 구입했다. 대출 당시 정씨는 대학생 신분이었으나 최순실씨가 독일에 세운 비덱스포츠 직원인 것처럼 꾸몄다. KEB하나은행(구 외환은행)도 정씨에게 기업이 해외 무역활동을 할 때 쓰는 보증신용장을 발급했고, 이 신용장을 가지고 정씨는 무사히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외에도 검찰은 정씨가 최순실씨가 삼성으로부터 받은 뇌물과도 관련이 있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지난해 특검은 삼성이 최씨 측에 승마 훈련비 명목으로 78억원을 송금한 사실을 밝혀냈다. 최씨는 이 뇌물을 말 구입비 등으로 세탁하려 했고, 이 과정에서 정씨가 일정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정씨가 독일에서 머문 기간 동안 사용한 돈의 출처도 오리무중이다. 정씨는 귀국 직후 일문일답에서 자신과 보모, 아들의 해외 체류비용에 대해 “모른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정씨는 독일과 덴마크에 머무르는 동안 수행원들의 체류비용과 승마 관련 비용으로 매달 1억원 가까운 돈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6월 2일 0시를 조금 넘긴 시각, 검찰은 업무방해,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정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같은 날 오후 2시부터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정씨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열렸다.

노승일 전 K스포츠 부장의 과거 인터뷰 내용처럼 정유라씨는 “여과없이 얘기하는 친구”이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정씨가 최순실씨의 여러 범죄 혐의에 대해 핵심적인 증언을 할 수도 있다. 노 전 부장은 정씨가 인천공항애 내린 직후 트위터에 “스마일 옷에 스마일 정유라, 스마일 도우미 정유라, 국민이 시원하게 웃을 수 있게 진실의 편에 서길 기대한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