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반세기, 또 다른 사반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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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사반세기, 또 다른 사반세기

이명박 정부 시절의 이야기다. 여당인 한나라당의 한 의원을 만나는 자리에 후배 기자를 데리고 갔다. 그 여당 의원은 거침없는 이야기를 하기로 유명했다. 후배 기자 앞에서 그 여당 의원은 경향신문을 맹공했다. 

이날 여당 의원의 공격성 발언을 들으면서 웃어넘겼다. 여권 야권 가릴 것 없이 취재해야 하는 기자로서는 상대방과 싸울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정치 취재 현장에 첫발을 디딘 후배 기자는 달랐다. 금방이라도 분노를 표출하려는 듯 다리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 후배 기자가 끝내 참아준 것이 고마울 지경이었다.

정치 담당 기자를 하면서 의원이나 보좌관들에게서 많이 듣는 질문은 신문사와 <주간경향>이 ‘왜 이런 논조를 가지느냐’다. 질문을 던지는 당사자는 아주 쉽게 이야기하지만 받아들이는 쪽에서는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자유한국당(전신인 한나라당-새누리당 포함)의 질문도 곤혹스러웠고, 민주당(전신인 열린우리당 포함)의 질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치학·언론학을 전공한 적이 없었지만 이런 질문에 “언론인은 정치적 가치를 논하고, 정치인은 정치적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일 뿐”이라고 답변했다. 정치 기사가 좋은 정치를 이야기하더라도, 정당은 집권하는 것이 우선 목표다. 가치와 현실의 갈등은 여기에서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현실적인 특수상황이 있더라도 언론은 언론의 가치인 ‘정론’만큼은 결코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간경향>이 창간 25주년을 맞았다. 사반세기(四半世紀)의 역사를 갖게 된 것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두 번 하고도 반의 강산이 변했다.

인터넷으로 기사가 실렸다. 언론사와 시사주간지에서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관제엽서로 받던 독자 의견도 메일과 인터넷 댓글로 대체됐다. 수없이 많은 인터넷 언론이 생겼다. 시사주간지의 표지인물에 등장하는 것보다는 TV토론에 출연하고, 라디오 아침 프로에 출연하는 것이 더 영향력을 발휘했다. 최근에는 대안 언론으로 등장한 팟 캐스트가 부각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창간 10주년 때부터 창간 25주년 때까지 <주간경향>에서 기사를 써왔지만, 그동안에도 미디어 환경은 ‘상전벽해’라고 표현할 정도로 변했다.

시사주간지에 새로운 각오가 필요한 시점인 것은 분명하다. 사반세기 동안 ‘정론’의 가치를 지켜온 <주간경향>은 앞으로 겸허하게 귀를 열고, 더 낮은 곳의 목소리를 들으려 한다. <주간경향>의 역사에 또 다른 사반세기가 시작되고 있다. <주간경향>은 새로운 각오를 다지기 위해 표지에서 제호 디자인을 변경했다. 먼저 제호가 눈에 띄도록 가로로 펼치고, 힘을 줬다. 본문 내용의 글자 크기도 가독성을 높여 10.2포인트로 키웠다. 제호만큼, 글자의 크기만큼 기사도 더 힘이 있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그동안 관심을 갖고 지켜봐준 독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윤호우 편집장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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