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표적된 ‘사면초가’ 현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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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파괴 개입의혹, 자동차 결함 은폐의혹… 해외시장 고전 등 내우외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공격적 투자와 저환율 등에 힘입어 성장가도를 달려온 현대자동차그룹에 새 정부 출범을 전후로 악재가 잇따르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공정한 대한민국’을 기치로 내건 경제민주화 공약에서 재벌기업의 각종 갑질과 불공정 관행, 총수 일가의 불법 경영승계 등을 바로잡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비해 현대차는 협력사 내부 노조 파괴 개입의혹, 자동차 결함 은폐의혹 등 문 대통령이 청산의 대상으로 꼽는 주요 재벌비리에 연루돼 있다. 기업 구조개편이나 경영승계와 관련해서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가 순환출자에 문제가 있는 ‘유일한’ 재벌로 지적할 정도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가뜩이나 글로벌 경기침체와 경쟁 심화로 중국과 북미 등 해외 주력시장에서 자동차 판매까지 줄고 있는 현대차그룹이 내우외환의 이중고를 맞게 됐다.

유성기업 노조원들이 5월 18일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서 노조파괴 가담 혐의를 받고 있는 현대차의 처벌을 촉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김정근 기자

유성기업 노조원들이 5월 18일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서 노조파괴 가담 혐의를 받고 있는 현대차의 처벌을 촉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김정근 기자

유성기업 노조 파괴 혐의로 기소

대기업이 협력사의 노조문제에 개입해 왔다는 의혹은 그간 노동계와 시민단체 등을 통해 수년 전부터 꾸준히 제기됐지만 공식적으로 혐의가 확인된 적은 없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에야 드디어 첫 사례가 나왔는데 바로 현대차다.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은 5월 19일 현대차의 협력사인 유성기업의 노조활동을 방해한 혐의(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등으로 현대차와 관련 임직원 4명을 기소했다.

유성기업은 현대차의 자동차 엔진에 들어가는 주요 부품인 피스톤링 등을 생산하는 1차 협력사다. 검찰은 유성기업이 2노조를 설립하고 기존 노조를 무력화하는 과정에 현대차가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공소장을 보면 현대차 관계자들은 파업이 발생한 2011년 5월부터 수시로 부품의 재고상태와 노사관계 관련 정보를 보고받았다. 현대차는 유성기업에 “안정적인 납품구조를 안 만들면 납품물량을 줄이겠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유성기업은 “2노조를 설립해 조합원을 늘려 기존 금속노조가 파업해도 물량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현대차는 유성기업의 계획을 용인하면서 기간별로 2노조의 조합원 수 확충 목표치를 세워 내려보내기까지 했다.

유성기업이 당초 제시한 2노조의 조합원 수 목표를 채우지 못하자 현대차의 한 임원은 2011년 9월 20일 회의를 열고 “최근 일주일간 2노조 가입이 없다. 목표를 줬는데도 달성 못하는 이유가 뭔지 강하게 (유성기업에)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말이 지시이지 사실상 유성기업을 질책한 것이었다. 현대차는 유성기업과 2노조 창설에 관여한 컨설팅 업체 관계자 등을 불러 회의를 연 뒤 직접 2노조 가입현황 등을 점검하기도 했다.

현대차가 유성기업의 노조 파괴에 직접 가담했다는 의혹은 당시에도 이미 파다했다. 고발이 접수되자 검찰도 관련 의혹에 대해 2012년 압수수색 등을 통해 상당수 증거를 확보하고도 차일피일 처리를 미루다 2013년 12월에야 증거불충분 등을 이유로 불기소 처분했다. 유성기업 노조는 지난해 2월 현대차 관계자 등을 다시 검찰에 고발했고, 천안지청은 공소시효 만료 사흘을 앞둔 지난 19일에야 공소를 제기했다.

공정위 표적된 ‘사면초가’ 현대차

검찰은 뒤늦게 기소가 이뤄진 점에 대해 “새 사건 담당자가 검토할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노동계는 문재인 정부의 출범 후 달라진 기조에 맞춰 검찰이 부랴부랴 행동에 나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대선과정부터 수차례 “이제는 노동이 존중받아야 할 시대”라며 “기업도 달라져야 한다”고 밝혀 왔다.

이 때문에 현대차가 이번에는 사법처리를 피해가기 어려울 것으로 재계는 전망 중이다. 현대차의 혐의는 유성기업 유시영 회장 재판을 통해 일정 부분 법원에서 인정된 상태이기도 하다. 대전지법은 올 2월 17일 노조법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유 회장에게 징역 1년6월과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뒤 법정구속하면서 유력한 증거로 유 회장 측이 현대차와 주고받은 노조 관련 문건 등을 거론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원활한 부품 공급라인 확보 차원에서 유성기업과 소통했을 뿐 노조문제에 개입한 적은 없다”며 재판을 통해 진위 여부를 가리겠다고 밝혔다.

재벌개혁 ‘집중 표적’ 되나

현대차는 문 대통령이 재벌개혁 공약으로 거론한 순환출자 해소 추진,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 등이 현실화될 경우 가장 큰 타격을 받을 대기업으로 꼽힌다. 순환출자의 경우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가 최근 간담회에서 “순환출자가 재벌그룹 총수 일가의 지배권을 유지하고 승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그룹은 현대차그룹만 남았다”고 공언했을 정도로 약점을 갖고 있다.

경제개혁연대가 2015년에 발간한 ‘경제개혁 리포트’를 보면 현대차그룹은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현대모비스→현대자동차’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갖고 있다. 순환출자를 해결하려면 현대모비스가 현대자동차 지분을 매각하거나 현대자동차가 기아자동차 지분을 매각하는 등의 수를 내야 하지만 양쪽 모두 총수 일가의 그룹 지배력을 크게 약화시킨다는 점에서 실행하기가 쉽지 않다. 예컨대 올 3월 말 지분현황을 기준으로 현대모비스가 현대자동차 지분 20.78%를 매각할 경우 정몽구 회장 본인을 비롯한 특수관계인 등 총수 일가의 지분은 7.46%로 떨어져 현재 2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8.12%)의 지분율에도 못미치게 된다.

국민연금의 경우 기관투자가의 공익적 책임을 강화하도록 하는 ‘스튜어드십 코드’ 가입이 유력해 국민연금이 현대차의 최대주주가 되는 구조가 총수 일가 입장에서는 결코 반가울 리 없다. 이를 막으려면 그룹 내 다른 계열사가 현대자동차 지분을 사들여야 하지만, 막대한 매입비용도 문제이거니와 매입을 해도 재차 순환출자 고리가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역시 실현하기가 어렵다.

문 대통령이 실제 순환출자 해소에 나설 것인지가 최대 관건이다. 김 내정자의 경우 기존 순환출자 해소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편은 아니다. 공정거래위원장으로 내정되기 전 경제민주화 과제를 꼽을 때도 김 내정자는 “순환출자의 경우 재벌개혁 효과가 크지 않고 입법 저항이 크므로 순환출자에 쓸 동력을 상법개정안 통과 등 다른 쪽에 쓰는 게 낫다”는 의견을 밝혀 왔다. 하지만 새 정부의 의지가 강하다면 김 내정자 역시 순환출자 해소에 본격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 내정자가 간담회에서 순환출자를 당장 추진할 과제로 꼽지는 않으면서도 현대차 문제를 ‘콕 집어’ 얘기한 것도 이 같은 변화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게 재계의 해석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현대차의 순환출자 문제 약점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전문가 중 한 명이 바로 김 내정자”라며 “그런 김 내정자가 굳이 현대차를 거론했다는 점에서 현대차는 더욱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강화될 것으로 확실시되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서도 현대차는 불리한 입장이다. 2015년 말 기준 공정위 집계를 보면 삼성, 현대차, LG, SK 등 4대 그룹 중 현대차의 그룹 내부거래 비중은 18.0%로 SK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문제는 최태원 회장 체제로의 경영승계 및 지주회사 정비가 완료된 SK에 비해 현대차는 정의선 부회장 체제로의 경영승계 작업이 매우 더디다는 점이다. 정 부회장은 그룹 지배구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현대모비스 지분이 하나도 없다. 정 부회장이 그룹 지배력 확대에 필요한 자금 등을 마련하려면 본인이 최대주주(지분율 23.3%)인 현대글로비스의 주식가치가 올라야 하지만 현대글로비스는 그룹의 대표적인 내부거래 계열사라 문재인 정부에서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강화될 경우 기업가치 상승에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공정위 표적된 ‘사면초가’ 현대차

리콜문제 어디까지 커질까

내부 고발자의 제보로 시작된 국내 리콜 문제도 어디까지 확대될지 알 수 없다. 현대차는 이미 지난 4월 문제의 ‘세타Ⅱ엔진’이 장착된 5개 차종 17만1348대에 대해 자발적 리콜을 골자로 한 계획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국토교통부는 5월에 청문회 등을 거쳐 5건의 제작결함과 관련해 12개 차종 23만8000여대에 대해 사상 초유의 강제리콜 조치를 내렸다. 국토부는 “현대차가 결함을 알고도 은폐한 의혹이 있다”며 서울중앙지검에 수사를 의뢰했다. YMCA 자동차안전센터도 4월 24일 정몽구 회장을 포함한 그룹 관계자 11명을 자동차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상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 교통부 산하 도로교통안전국(NHTSA)도 지난 19일부터 현대차가 ‘세타Ⅱ엔진’과 관련된 문제로 2015년과 올해 미국에서 실시한 세 차례 리콜 조치가 적절했는지 판단하기 위한 조사에 착수했다. 업체가 자발적으로 실시한 리콜에 대해 미 도로교통안전국이 재조사를 벌이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다. 한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현대차의 엔진결함 문제를 폭로한 내부 제보자가 미 도로교통안전국에도 유사한 문제제기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추가 리콜 대상 자동차가 없는지, 당시 리콜 차량 선정이 적절했는지 등을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리콜로 인한 비용 지출도 문제지만 검찰 수사 결과 은폐사실이 확인돼 주요 경영진이 사법처리될 경우가 더 문제다. 이는 자동차업체에 치명적인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져 국내는 물론 해외 시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는 올 들어 이미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둘러싼 한·중 갈등으로 해외 주력시장인 중국 시장에서 자동차 판매가 반토막난 상태다. 양대 시장인 북미시장에서도 엔화 약세를 등에 업은 일본 업체들의 물량공세로 판매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터라 리콜 문제를 최대한 빨리 수습하는 게 현대차의 최대 당면과제다. 현대차 관계자는 “올해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출시와 중대형 신모델 출시로 판매 부진을 만회할 계획”이라며 “엔진 결함 은폐의혹에 대해서는 검찰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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