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가신용등급 하락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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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디스, 28년 만에 A1으로 강등… 중국 “음모다” 즉각 반발

5월 24일(현지시간)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한 곳인 무디스가 중국의 국가신용등급을 한 단계(Aa3→A1) 강등했다. 홍콩의 신용등급도 한 단계(Aa1→Aa2) 내렸다. 무디스가 중국 등급을 강등한 것은 톈안먼 사태가 발생한 1989년 11월 이후 28년 만에 처음이다. 무디스는 2011년 중국의 신용등급을 A1에서 Aa3로 올렸다. 그러니까 7년 만에 제자리로 되돌린 셈이 됐다. A1은 한국(Aa2)보다 두 단계나 밑이다. 다만 무디스는 중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으로 평가했다. 당분간은 더 내릴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중국은 즉각 반발했다. 중국 재정부는 기자회견을 통해 “무디스가 부적절한 평가방법으로 중국의 경제성장 및 개혁효과를 과소평가하고 부채 리스크를 부풀리고 있다”고 밝혔다. 3대 신용평가기관 중 중국의 국가신용등급을 내린 곳은 무디스가 유일하다.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중국의 국가신용등급을 한 단계 강등한 5월 24일 중국 베이징의 한 거래소에 걸린 주식 전광판 앞을 행인이 지나가고 있다./AP연합뉴스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중국의 국가신용등급을 한 단계 강등한 5월 24일 중국 베이징의 한 거래소에 걸린 주식 전광판 앞을 행인이 지나가고 있다./AP연합뉴스

가파르게 오르는 중국의 총부채 비율

무디스의 중국 국가신용등급 강등은 이미 예고된 상태였다. 무디스는 지난해 3월 중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낮췄다. 1년 2개월 만에 실제 행동으로 이어진 셈이 됐다. 무디스가 주목한 것은 중국의 부채였다. 무디스는 이날 성명을 통해 “중국의 부채가 늘어나고 경제성장률이 둔화하는 가운데 재무건전성이 악화하고 있다”며 강등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이 경제와 금융시스템을 바꿔나가겠지만, 경제 전반의 부채 증가는 막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중국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경제 전반의 부채가 늘어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년 2개월 동안 지켜봤지만 중국이 효과적으로 부채관리를 못할 것으로 결론냈다는 뜻이다. 위축되는 경기를 살리려면 재정을 풀어야 하는데, 재정을 풀면 국가부채가 다시 늘어나는 ‘악순환 구조’에 중국이 빠진 것으로 무디스는 분석했다.

실제 중국의 부채 증가세는 가파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부채 비율은 2008년 160%에서 지난해 말 260%로 뛰었다. 중국 국가부채는 약 28조 달러로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다. 특히 GDP 대비 기업부채 비중은 166%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가계부채도 비중은 43%로 낮으나 규모는 약 5조 달러로 미국(15조 달러)에 이어 세계 두 번째다.

무디스는 GDP 대비 정부 직접부채 규모가 내년 40%에 이어 2020년에는 45%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지방정부 투자기관(LGFV) 채권 발행이나 국유기업(SOE) 투자 등을 통한 간접부채도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인구 고령화 등으로 인해 경제성장 속도는 느려질 것으로 봤다. 중국 경제성장률은 2010년 10.6%를 기록했지만 2016년에는 6.7%까지 떨어졌다. 무디스는 중국 성장률이 5%까지 떨어진다고 내다봤다.

중국은 부채 리크스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중국은 2015년 말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처음으로 공급 측 개혁을 제시하면서 주요 5대 임무 중 레버리지율 감소를 포함시켰다. 지난해에는 과잉 생산설비 해소, 부동산 재고 해소, 기업 원가절감, 유효공급 확대 등의 과제를 제시했다. 또 올해 전국인민대회에서는 부채율 축소를 위해 비금융기관의 레버리지 축소, 자산 증권화 및 부채의 주식 전환 확대 등 구체적인 안도 내놨다.

정부 지출도 줄이고 있다. 지난달 정부 지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8% 늘어 1분기(21%)에 비해 증가율이 크게 꺾였다. 민간의 돈줄도 죄고 있다. 은행들의 1분기 신규대출은 GDP 대비 38.4%로 전년 동기(41.3%)보다 하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채 리스크를 해소할 방법이 단기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무디스의 시각이다.

중국 국가신용등급 하락의 진실

피치, S&P 등 타 신평사들은 동참 안 해

이 같은 무디스의 분석에 대해 중국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양즈융(楊志勇) 사회과학원 연구원은 중국 경제관찰망(經濟觀察網)과의 인터뷰에서 “비록 외부기관의 견해가 다를 수 있으나, 중국은 건전한 재무상황을 유지하고 있다”며 “또한 1분기 경제성장률도 매우 양호하다”고 밝혔다. 중국 금융시장이 국가신용등급 하락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도 중국 측이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상하이지수, 선전지수, 홍콩 항셍지수 등 주요 지수는 신용등급 하락 소식에도 소폭 상승했다. 10년물 국채 수익률도 안정적 흐름을 유지했다.

중국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중국의 시진핑 정부를 공격하고,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를 막기 위한 무디스의 음모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번 발표는 중국이 일대일로 국제협력포럼을 개최하면서 한창 대국굴기의 꿈을 꾸고 있을 시점이었다. 대규모 투자를 동반하는 일대일로 사업에는 대규모 융자가 필수적이다. 융자는 중국의 주도하에 중국 국영기업들이 주도할 가능성이 큰데, 이들의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자금조달의 부담이 커진다.

실제 무디스는 중국 국가신용등급 강등과 함께 중국 중앙정부가 소유한 17개 기업과 지방정부가 소유한 9개 기업 등 28개 기업의 신용등급을 한 단계씩 내렸다. 중궈이둥(中國移動·차이나모바일), 중궈스유화궁(中國石油化工·시노펙) 등 중국 국영기업과 그 자회사들이 대상이 됐다.

외신들도 죽을 맞췄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무디스의 중국 신용등급 강등은 정부에 대한 등급 평가가 아니라 정부의 보증에 기댄 국유기업에 대한 재평가”라고 밝혔다. 중국 국유기업들은 채권 발행 때 자체 신용등급보다 높은 신용등급을 받아왔다. 중국 정부가 보증을 섰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국 4대 은행 중 하나인 중국은행의 신용등급은 ‘‘Baa2’지만 중국은행이 발행하는 모든 채권의 등급은 ‘A1’이다. 기본 등급보다 4단계나 높다.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외화채를 활발하게 발행하고 있는 기업들의 신용디폴트스와프(CDS) 프리미엄이 높아져 채권 발행비용이 높아진다. 중국 국자위(國資委)는 보고서를 내고 “102개 국유기업의 1~4월 이익이 전년비 18.1% 증가했다”고 발표하며 이 같은 신용등급 하락이 부적절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중국 금융시장의 혼란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피치, S&P 등 타 신평사들도 중국 국가신용등급 하향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 유승우 동부증권 연구원은 “이미 지난해부터 부정적 등급 전망이 부여된 데다 부채 이슈를 이미 투자자들이 인식하고 있다”며 “신용등급 하락에도 불구하고 핵심국유기업들의 채무 상환능력에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이상원 국제금융센터 연구위원도 “중국 부채는 위안화 표시가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며 “다만 향후 중국의 레버리지 변화에 따라 타 신평사보다 한 단계 높은 신용등급을 줬던 S&P는 조정 가능성이 있어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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