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찾아야 할 5월의 푸른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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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되찾아야 할 5월의 푸른 하늘

어린 시절, 5월이 되면 고향 아이들의 놀이터는 집앞 개울로 바뀌었다. 아무리 봄이 왔어도 4월에는 개울에 맨발로 들어가기에는 물이 조금 차가웠다. 개울이 아이들에게 따스한 품을 여는 것은 5월이었다.  

집에서 쓰다 버린 낡은 소쿠리를 들고 개울로 들어갔다.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는 반두는 돈이 비싸 언감생심이었다. 개울의 물고기는 동네 아이들의 낡은 소쿠리에 잡힐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아이들은 물고기와 씨름을 했다. 소득은 별로 없었다. 그래도 5월은 좋았다. 아이들은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라면서 학교에서 배운 어린이날 노래를 5월 내내 불러댔다. 하루 종일 밖에서 놀 만큼 맑은 하늘이 있었고, 새로 놀이터가 된 개울이 있었다. 그냥 개울에서 하루 종일 놀았다. 그렇게 아이들은 푸르게 푸르게 자랐다.

5월이 푸르지 않은 것은 1980년대였다. 5월이 되면서 처음 맞이하는 대학축제라 잔뜩 기대를 가졌다. 하지만 캠퍼스에서는 매일같이 ‘전두환 정권 퇴진’ 시위가 벌어지고, 교문 안으로 전경이 진입했다. 운동장에는 최루탄 파편이 남아있어 매캐한 바닥 때문에 야외운동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 축제랍시고 볼 만한 것이 학술 심포지엄이나 연극, 전시회 같은 것이었다. 내용은 광주에 관한 것이었다. 노래도 불렀다. ‘임을 위한 행진곡’도 있었지만 ‘5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라는 노래가 있었다.

학생들 사이에 5월의 유흥은 금기였다. 끼 있는 친구들은 축제 기간에 아예 학교에 오지 않았다. 놀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고등학교 동문회에서는 중간고사를 마친 신입생을 위해 쌍쌍파티를 기획하기도 했지만, 마치 독립운동처럼 은밀하게 진행해야 했다. 만약 그 사실이 알려지기만 하면 그 고등학교 동문회는 비난을 받았다. 5월에 어떻게 그런 행사를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80년대의 5월은 늘 매캐한 최루탄이 풀풀 날리는 계절로 기억된다.

80년대 이후 민주주의 역사는 5월의 수레바퀴를 성큼성큼 굴렸다. 국회에서 5·18청문회가 열렸고, 군사반란 책임자에 대한 재판이 진행됐다. 문민정부에서 국가 차원의 재평가가 이뤄졌다. 하지만 2008년 이후 보수정권 9년 동안 5월의 역사는 거꾸로 흘러갔다. 국가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지 못하게 했다.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음모론도 횡행했다. 다시 최루탄 냄새가 풀풀 나는 80년대 5월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푸른 5월이 전혀 푸르지 않게 된 것이다. 푸르지 않은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해마다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기 때문이다. 미세먼지다. 이 탓에 아이들은 이제 5월 푸른 하늘 아래 뛰어다닐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올해 5월은 특별한 해가 됐다. 새 대통령이 선출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5·18기념식에서 울먹이는 5·18민주화운동 희생자 유족에게 다가가 그의 아픔을 보듬어줬다. 문 대통령은 세 번째 업무지시로 미세먼지 해결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이제 5월의 하늘도 맑아질 것이다. 5월의 하늘은 푸르러야 한다. 5월의 역사가 바로 서야 우리나라의 하늘이 푸르러질 수 있다. 어린 시절의 노래를 흥얼거린다.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우리의 역사도 5월의 푸른 하늘 아래 성큼성큼 자라고 있다.

<윤호우 편집장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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