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정책, 새 정부 초반 승부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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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복무제, 동물복지, 악성채권 채무탕감, 사형제 폐지 등 사전 정지작업

5월 15일은 스승의 날, 그리고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이기도 했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논란이 되는 주제다. 병역거부자의 날을 맞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연 국제앰네스티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올해 4월 말 기준 최소 397명이 양심적 병역거부 때문에 수감돼 있고, 지난 60년간의 누적 수감자는 1만9000명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요구는 새 대통령인 문재인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양심의 자유는 헌법상 기본권 중 최상위의 가치 기본권”이라며 “대체복무제를 도입해 양심적 병역거부로 형사처벌을 받는 현실을 개선하겠다”고 공약한 것을 이행해달라는 요구였다.

새 정부 초기 대통령의 개혁 드라이브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안팎의 평가가 나오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공약대로 대체복무제를 도입할 것이라는 기대도 그만큼 높아져 있다. 병역거부 선언 이후 1심 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인 홍정훈 참여연대 간사는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이 결코 이 문제를 외면할 리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 정권이 남긴 국정개혁 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대통령이 개혁의 동력을 활용해 쟁점이 있는 분야에 대해서도 과감한 개혁을 수행해달라는 요청인 셈이다.

반대세력의 역풍 부를 여지 감안해야

하지만 여론의 지형이 그리 우호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병역거부자의 날 사흘 전인 5월 12일, 서울 동부지법 형사5단독 김주옥 판사는 군 입영을 거부한 혐의(병역법 위반)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신모씨와 장모씨에게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그 한 달 전인 4월 12일 서울남부지법의 박정수 판사는 정반대의 판결을 내렸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에 대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인 4월 6일 서울북부지법 이정재 판사는 같은 혐의로 기소된 박모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법에 따라 판단하는 판사들 사이에서도 같은 사안에 대해 엇갈린 판결이 나올 정도로 현실에서 대체복무제 도입은 극히 논쟁적인 공약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대체복무제 도입은 한 단면일 뿐이다. 앞으로 문제가 될 사안은 더 많이 남아있다. 이미 문 대통령이 손을 대겠다는 의중을 표현한 쟁점 정책만 해도 만만치 않은 것들이었다. 검찰개혁과 검찰의 권한 견제를 위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신설하는 문제나 노동시간 단축을 제도적으로 못박고 그에 따라 일자리를 늘리겠다며 내놓은 정책들이 대표적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장면 등도 보수 정치권과 경영계 등 우호적이지 않은 세력들의 반발보다 대통령이 제시한 공약의 실천을 우선시함에 따라 가능했던 지점들이다.

그나마 이들 정책은 대체로 개혁의 공감대가 만들어진 사안이거나 최소한 교통정리는 끝난 정책들이다. 향후 보다 복잡한 문제들을 포함하고 있는 공약을 이행해야 하는 순간부터 새로운 과제가 주어진다. 대체복무제 도입을 비롯해 이해관계는 물론 여론지형이 더욱 복잡한 사안들에 대해서는 지지층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검찰개혁과 같이 일부 기득권 집단의 반발을 관리하는 문제나 비정규직 일자리와 노동시간을 줄이는 등의 노동개혁 정책처럼 전선이 단순하고 반대세력이 있어도 지지여론을 결집하기 좋은 사안은 오히려 쉬운 편이다.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놓은 동물복지 공약은 다른 후보들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신선한 공약이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부차적인 문제가 너무 부각됐다는 등의 의견이 지지층 내부에서도 나온 바 있다.

“지금까지 할 수 있는 개혁에 대해선 잘하고 있는데, 해야 하는 개혁과제도 이렇게 무리없이 잘해나갈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 권혁범 대전대 교수(정치학)는 현실적으로 보면 개혁을 순조롭게 수행하면서 지지율도 높게 유지하는 이상적 상황이 오래가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권 교수는 “현재의 정치지형이나 사회 전반의 여론 등을 봤을 때 어쩔 수 없이 반대세력의 저항에 부딪칠 수밖에 없는 때가 올 것으로 본다”며 “최대한 정치적 역량을 발휘해서 솜씨 있게 개혁을 수행해야 그나마 가능성이 보일 정도로 국정운영이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소액·장기연체 채권 탕감 의견 엇갈려

쟁점이 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전략적인 해법을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이라는 주문도 나왔다. 우선은 큰 줄기의 개혁부터 가능한 범위 안에서 수행한 뒤 우호적인 여론을 최대한 확보할 필요가 있는 정책에 대해선 시간을 두고 가능한 상황에 맞춰 다양한 대비책을 세워두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지적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정치학)는 “지금의 문 대통령 지지층은 논란이 되는 사안이 있더라도 우선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자고 할 정도로 결집이 강한 편”이라며 “이 경우 지지층은 탄탄하지만 반대세력의 역풍을 부를 여지도 충분하기 때문에 강하게 밀어붙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다양한 대책을 세워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지지층의 확고한 지지를 등에 업을수록 국정을 주도할 가능성도 높아지지만, 반대로 상대진영의 결집도 강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통합을 우선하는 전략적인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지지층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릴 소지가 높은 공약은 지지층부터 설득하는 작업이 우선돼야 한다는 점도 해법으로 제시된다.

100만명에 달하는 소액·장기연체 채무자의 채권을 탕감하기로 한 공약 역시 대체복무제만큼이나 문 대통령 지지층 안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공약이다. 금융위원회가 문 대통령의 이 채무 소각 공약에 대한 실무 검토작업에 들어감에 따라 향후 공약 이행과정이 뒤따를 가능성도 높아졌다. 문 대통령의 채무 탕감 방안은 채무 원금의 일부만을 탕감하던 이전 정부의 정책과 달리 문제가 되는 채권의 원금과 이자를 모두 소각하는 방식이다. 국민행복기금을 통해 채무조정을 받고 있는 채무자들의 11조원에 이르는 빚을 일거에 없애버리는 셈이다.

따라오는 것은 빚을 그렇게 쉽게 없애주면 어쩌냐는 우려의 목소리다. 이에 대해 공약을 마련한 더불어민주당은 도덕적인 면으로도, 재정적인 면으로도 무리없이 진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공짜로 빚을 없앤다기보다는 이미 원금 이상의 액수를 상환했음에도 높은 이율 때문에 상환이 완료되지 않아 불필요하게 시효가 연장된 채권인 데다, 이미 금융권에서 회수불능으로 판단해 떨이로 팔리고 있는 채권이므로 빚 탕감으로 인한 채무자의 경제능력 회복이라는 효용이 더 크다는 주장이다. 이미 정부가 사들인 연체 채권을 소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추가 예산이 필요하지도 않다.

대체복무제 도입, 동물복지 확대, 악성채권 채무 탕감, 그리고 사형제 폐지 등에 이르기까지 찬반이 엇갈리는 사안들인 만큼 공약 실천과정이 순탄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많지만 지금의 개혁 친화적인 여론환경에서는 오히려 생각지도 못한 성과가 나올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촛불정국과 새 정부 출범과정을 거치며 개혁에 호의적인 지지세력이 자리잡은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대화 상지대 교수(정치학)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파격으로 국면을 전환하는 데 장점을 보였다면 문 대통령은 지지층이 아닌 유권자들에게도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보여주는 장점을 살릴 수 있다”며 “지지세력과 반대세력 간의 대립은 최소화하고 안정적인 변화상을 제시하면 국민 다수의 지지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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