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 시대, P2P 대출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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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기관 끼지 않은 개인 간 직접 거래… 2년 만에 1조원 돌파

지금까지 주식투자조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직장인 고모씨(30)는 지난해 9월 P2P(Peer to Peer) 대출에 100만원을 투자해봤다. 18개월 투자하고 10~11% 금리를 주는 상품이었다. 저축은행의 정기예금 금리조차도 2%를 넘기 어려운데 10%대 금리라는 점에서 눈에 띄었다. 고씨가 투자한 상품은 개인신용대출자들을 묶어서 채권처럼 판매하는 ‘포트폴리오대출’이었다. 고씨는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10% 이자를 받을 수 있는데 가입부터 입금하기까지 모든 과정을 인터넷으로 간편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며 “조금 더 돈을 모으면 더 많이 투자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무섭게 커지는 P2P 대출

P2P 대출이란 투자자와 대출자가 인터넷 플랫폼에서 직접 거래하는 새로운 대출방식이다. 중간에 은행과 같은 금융기관을 끼지 않고 이뤄지는 금융으로, 인터넷이라는 기술 덕분에 가능해진 산업이다. 고씨가 투자한 상품처럼 여러 대출채권을 모은 방식도 있지만 부동산 담보대출을 비롯해 ‘결혼자금 대출’, ‘병원 시설 확장’, ‘소형 빌라 건축’ 등 특정 목적을 띤 상품에도 투자가 가능하다. P2P 금융 평균 대출금리는 14%대로 대출상품별로 4~19%대로 넓게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출 만기도 1개월부터 최장 48개월까지 다양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선거운동 기간 중이었던 4월 11일 경남 창원시 창원컨벤션센터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가계통신비 절감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선거운동 기간 중이었던 4월 11일 경남 창원시 창원컨벤션센터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가계통신비 절감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P2P 대출은 영국에서 시작됐다. 2006년 영국의 조파(ZOPA)라는 업체를 시작으로 영국과 미국에서 확대됐다. 2007년 미국의 렌딩클럽이라는 P2P 업체는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되기도 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미국의 P2P 대출시장 규모는 2015년 기준 개인대출 257억 달러(약 29조원), 기업대출 26억 달러(약 2조9000억원), 부동산대출 8억 달러(약 9000억원) 수준에 이른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에서 발달했다.

한국은 이제 걸음마 단계이지만 성장속도가 매우 빠르다. P2P 금융 연구기관인 크라우드연구소 자료를 보면, 지난 4월 말 기준으로 개인간 대출인 P2P 누적 대출금액은 1조1297억원을 기록했다. P2P 대출이 시작된 지 2년여 만에 누적 대출금액이 1조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말 기준 대출금액이 6289억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1년 만에 2배 가까이 무섭게 성장했다. 올 들어 27개 업체나 새로 생겨나 P2P업체 수도 148개로 늘었다.

차미나 크라우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중금리를 받고 싶은 대출자와 저금리로 투자처를 잃은 투자자의 필요가 서로 충족되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종의 수요와 공급이 들어맞은 셈이다.

특히 부동산 담보대출이 P2P의 빠른 성장세를 이끌었다. 부동산 담보대출은 전체 P2P 금융시장의 절반을 넘는 59.9%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부동산 담보 P2P 대출은 부도가 나더라도 담보로 잡고 있는 토지 등이 있기 때문에 인기가 더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가이드라인 시행으로 갈림길 맞나

그러나 이 같은 고속성장은 조만간 주춤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이 5월 29일부터 시행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P2P 대출업체인 ‘머니옥션’이 투자금 40억원을 지급하지 못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전산 서버 문제로 결과적으로는 지급이 됐지만 P2P 투자에 처음으로 경보음이 울린 사건이었다. 이어 올해 1월 ‘골든피플’ 회사는 허위 대출상품에 자금을 모집하는 일이 벌어졌다. 각종 추가 금리를 준다는 이벤트로 투자자를 끌어모았는데 지난해 말부터 연체가 하나둘씩 생겨났다. 이 회사의 대표는 P2P 방식으로 돈을 모아 회사의 자금으로 유용하다가 구속됐다. 투자자들은 5억원가량의 돈을 하나도 돌려받지 못했다.

미국 최대 P2P 업체인 렌딩클럽도 지난해 5월 2200만 달러(256억원)의 부정대출을 중개하는 일이 발생했고, 중국에서도 P2P 업체들이 단기간에 자금을 끌어모았다가 운영자가 모든 자금을 가지고 달아나는 사기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저금리 시대, P2P 대출 해볼까?

이 같은 일이 벌어지자 금융당국이 나섰다. 금융당국은 1인당 투자한도를 업체당 연 1000만원으로 제한하고, P2P 업체는 투자받은 돈을 은행이나 상호저축은행 등 공신력 있는 기관에 예치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시행키로 했다. 투자 여부 판단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위험 정도, 차입자 정보 등을 홈페이지에 필히 게재해야 한다. 투자자를 보호하고 자금 유용의 가능성을 차단하자는 취지다. 지난 2월 말 발표된 후 석 달간 유예기간을 거쳐 5월 29일부터 전면 시행된다.

가이드라인 초안이 발표된 지난해 말부터 투자자들의 반발이 컸다. 주식이나 펀드 등 모든 투자상품에 한도 제한이 없는데 P2P 대출만 규제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현재로선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1000만원이라는 한도 역시 P2P 투자자들의 평균 투자금액에 근거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P2P 업체들은 대출 및 투자의 편의성이 떨어져 고객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제3기관에 투자금을 예치해야 하는 부분은 수수료 발생 등의 이유로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중소형 업체들은 대거 도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승행 P2P금융협회장은 “투자자와 대출자 사이에 정보 비대칭을 완화하기 위해 공시를 강화하는 방향의 규제는 타당하지만 투자금액 제한 등은 성장을 가로막는 조항이다.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중국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2015년 말부터 중국은 한국와 유사한 가이드라인인 업체당 대출한도와 제3 금융기관 예치를 시행해 부실 플랫폼을 집중 관리했다. 금융연구원의 ‘중국 P2P 금융플랫폼 구조조정 현황’ 자료를 보면, 중국 P2P 업체의 경우 2015년 말 3433개에서 규제를 시작한 뒤로 지난 2월 2335개만 남았다. 규제 여파로 1098개사가 문을 닫은 것이다.

즉, P2P 시장은 투자자 보호와 신성장 개척의 갈림길에 놓인 상황이다. 자본시장연구원 표영선 연구원은 “해외의 경우 P2P 시장의 급성장 과정에서 대출사기, 중개업체의 도산, 고객정보 유출 등과 같은 각종 금융사고가 빈번히 발생해 법률적 인프라 구축이 필요한 시점”이라면서도 “다만 새로운 금융투자상품의 이용이라는 긍정적인 측면을 고려할 때 각종 제한요건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지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vision@ky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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