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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뭉칠까, 그대로 흩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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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개편, 양당제냐 다당제냐… 바른정당과 통합 제안한 국민의당 행보 주목

1위 41.1%, 2위 24.0%, 3위 21.4%. 다당 구도는 이번 19대 대선에서 절묘한 결과로 나타났다. 문재인 대통령이 초반의 독주를 당선으로 이어갈 수 있었던 배경에도 다당 대결구도가 있었다. 그러나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은 바뀌고 있다. 2016년 4월의 20대 총선으로 만들어진 다당제 구도가 계속 이어질지, 집권여당과 보수 거대야당을 두 축으로 하는 양당제 구도로 되돌아갈지 쉽게 점치기 어려워지고 있다. 대선 이후 각 정당의 원심력과 구심력이 맞부딪치면서 발생하는 정계개편의 소용돌이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정당은 대선에서 3위를 차지한 안철수 후보의 국민의당이다. 국민의당은 이번 대선 결과로 가장 큰 치명타를 입었다. 줄곧 지키고 있던 2위 자리를 대선 막바지에 홍준표 후보에게 내줬기 때문만은 아니다. 득표율 결과만으로 보면 사정이 다르다. 당의 정치적 기반인 호남에서 안 후보의 득표율이 문 후보의 절반 수준에 그치면서 당 전체의 정치적 생명마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는 국회 의석수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일부 의원이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 전까지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으로 이탈할 경우 지위를 지키기 어려울 수 있다.

정의당 노회찬 (왼쪽부터), 국민의당 주승용,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자유한국당 정우택,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3월 27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5당 원내대표 회동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권호욱 선임기자

정의당 노회찬 (왼쪽부터), 국민의당 주승용,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자유한국당 정우택,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3월 27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5당 원내대표 회동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권호욱 선임기자

바른정당 역시 속내는 복잡

대선 결과의 책임을 지고 박지원 대표 등 당 지도부가 물러난 가운데, 주승용 원내대표를 위시한 ‘통합파’가 바른정당과의 통합 카드를 꺼낸 것도 이와 같은 상황인식 때문이다. 주 원내대표는 바른정당 통합론을 꺼내 이탈을 막고 외연을 넓히겠다는 선제적 주장을 편 데 이어 민주당과의 연정을 추진하겠다는 또 다른 대책도 함께 내놨다. 당이 공중분해되는 상황을 막고 연정을 통해 당의 입지를 최대한 끌어올리겠다는 복안이 담겨 있다.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다. 당내에서는 안철수계 초선·비례 의원들을 중심으로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우호적인 기류가 형성돼 있지만 호남의 지역구 다선 의원들은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강하다. 정작 통합의 당사자로 지목된 바른정당 역시 속내가 복잡하기는 마찬가지다. 의석이 40석인 국민의당과 20석으로 줄어든 바른정당이 통합하면 일단 당 전체의 위상은 강해진다 해도, 각 당마다 내부 계파 간 갈등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정체성 차이가 더 큰 정치세력과 결합하는 만큼 언제든 분열될 소지를 안게 되는 셈이다. 국민의당의 한 초선 의원은 “일단 위기에 처한 당내 상황을 수습하고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양쪽에 끌려가지 않으려면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본다”면서도 “실제로 통합하는 과정에서나 통합 이후 다음 선거 때까지 당을 운영해 가는 과정에서 지금 나오는 우려들이 계속 수면 위로 떠오르는 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비해 민주당과의 연정은 비교적 쉬운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정권교체를 하면 안정적인 의석 확보가 필요한데 1차 협치 대상은 국민의당·정의당 등 기존의 야권 정당들”이라며 “국민의당은 뿌리가 같은 만큼 통합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고 말한 바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의 이 통합정부론은 현재 120석인 민주당 의석수로는 단독으로 국정을 이끌어가기 어렵다는 현실적 고려에서 나온 것이다. 비문재인계 중진의원들을 중심으로 구성한 통합정부추진위원회도 그 일환이었다.

하지만 통합정부론은 국민의당과 합당할 것인지, 당대 당 연정을 할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국민의당으로서는 주 원내대표가 “민주당 정부는 자유한국당이 제1야당이 되면서 더 힘든 국정운영이 예상되는 상황”이라며 “연정과 협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고, 정체성이 비슷하기 때문에 협조할 건 적극 협조하고 개혁입법도 적극 돕겠다”고 말할 정도로 연정과 협치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국민의당이 와해되는 위기를 막고 당 정체성을 지키는 선에서다. 현재로서는 민주당 내에서도 성급한 합당을 예상하는 쪽은 많지 않다. 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은 “사실 정권이 막 출범한 시점에서는 호남의 다선 의원들이 민주당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도 당이건 청와대건 부담스러운 점이 더 크다”면서 “일단 내년 지방선거까지 여러 변수가 남아있어 정계개편은 장기적인 흐름에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합정부론은 합당일까 연정일까

집권여당의 위치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민주당은 단기적으로는 국민의당과 정의당을 참여시키는 연정의 형태에 방점을 찍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합당이나 탈당의원 영입 등으로 보다 의석수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갈 공산이 높다. 국무총리 인사청문회와 같은 사안은 국회의 과반 동의만 있으면 되므로 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3당의 연정으로도 쉽게 돌파할 수 있지만, 이후 여야 간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국정과제에 대해서는 전체 의석수의 60%인 180석 이상을 우호세력으로 확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국회선진화법이 그 근거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박지원 전 국민의당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제19대 대통령 취임식을 위해 국회를 방문해 국민의당 등 원내 정당 대표실을 찾았다./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박지원 전 국민의당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제19대 대통령 취임식을 위해 국회를 방문해 국민의당 등 원내 정당 대표실을 찾았다./청와대사진기자단

때문에 현재의 다당제 구도는 머지않아 양당제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여기에는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등 보수정치권 내부의 교통정리가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 외에도, 대선 전까지 다당제 구도를 유지시켰던 여론이 서서히 보수 대 진보의 양극 구도로 옮겨가고 있다는 분석이 바탕이 되고 있다. 집권여당을 비롯해 함께 하는 연정 세력이 정계의 한 축을 차지하면서, 그에 대항하는 보수라는 다른 축에도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한 부패 보수세력에 대한 심판은 정권교체로 일단락됐으니, 이제 보수진영의 과제는 현 정부에 대한 견제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는 분석이다.

보수 정치권 정리되면 양당제에 무게

대선 전후의 여론조사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여론조사업계 관계자들도 이러한 기류가 감지된다고 지적했다. “행정구역을 읍·면·동 단위로 더 세밀하게 나눈 지지율 지도에서 홍준표 후보를 1위로 찍은 지역들의 면적이 더 넓다는 점을 보면 농촌의 고령층 유권자들에게는 보수 외의 선택지가 없다는 현실이 잘 드러난다.” 한 여론조사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이 관계자는 “홍 후보와 자유한국당이 탄핵 이전 주요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과제는 거의 완수된 상태인데, 안 후보를 지지한 일부 보수층과 중도층이 앞으로 계속 중도 정치세력을 지지하지 않고 와해되면 양당제가 다시 등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다당제 구도 대선에서는 안 후보의 역할이 역설적으로 민주당 정부를 만들어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탄핵정국 이후 대결 지형이 구야권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울어진’ 측면도 컸지만, 한편으로는 후반까지 계속된 문·안 대결구도가 보수층의 홍 후보로의 결집을 저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중도 입장인 안 후보는 고정 지지층 외에 좌우의 지지층을 포섭하기 어려워 결국 막판에 힘이 빠진 반면, 본의 아니게 안 후보를 방어막으로 친 문 대통령이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던 셈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물론 당연히 문 대통령의 확고한 지지층이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지만, (안 후보의 존재 덕에) 1대 1 구도로 대선을 치렀을 때보다 훨씬 수월하게 이길 수 있었다는 점은 인정한다”고 말했다.

거꾸로 보면 민주당 정부 입장에서는 앞으로도 중도 포지션인 국민의당이나 바른정당이 그대로 당을 유지하면서 협치하는 쪽이 자유한국당과의 1대 1 구도보다 더욱 유리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바른정당이 자유한국당과 다시 합치면 민주당 의석수를 넘어선다는 점이 위협이 된다. 그리고 이 경우도 현재 자유한국당 내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친박계와 비박계의 당권 경쟁 결과에 따라 경우의 수는 더욱 늘어나게 된다. 내년 6월의 지방선거까지 1년여를 남긴 기간 동안의 정계개편 소용돌이는 미궁으로 들어선 셈이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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