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편집실에서]커트와 디졸브

한때 방송국에서 PD로 일했다. 스태프와 함께 냉면집에 가서 물냉면을 시켰다. 냉면집 이모가 가위를 들고 와서 말했다.

“커트할까요?”

‘잘라 줄까요’도 아닌 냉면집의 전문 용어인 커트가 나왔다. ‘방송밥’을 얼마 먹지 않은 TD(기술감독) 조수가 대답했다.

“디졸브해 주세요!”

이모가 ‘이게 무슨 소리인가’라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방송밥’을 먹는 스태프가 ‘아재 개그’를 구사했으니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들은 껄껄껄 웃었다. 나를 포함해 당시 초보 방송인이었던 스태프들은 편집실에 앉아 화면을 커트로 붙일 것인지, 디졸브로 붙일 것인지 고민했다. 커트냐 디졸브냐는 우리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커트는 앞 화면과 뒷 화면을 사정없이 잘라 붙이는 것을 의미한다. 디졸브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오버랩과 비슷하다. 앞 화면이 서서히 페이드 아웃 하면서 뒷 화면이 페이드 인 하는 방식으로 화면을 연결시키는 것을 말한다.

커트는 강하게 연결해 강한 인상을 남기는 반면, 디졸브는 화면을 부드럽게 연결해 눈에 거슬림을 방지해준다. 방송국 PD가 되면 영상문법을 배운다. 이때 가장 많이 듣는 소리 중 하나가 되도록이면 디졸브 연결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디졸브 연결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일단 촬영을 앞두고 철저하게 촬영계획을 세워야 한다. 어떤 장면은 반드시 찍어야 하고, 어떤 장면은 이미지 컷으로 현장에서 담아놓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 온전한 커트 편집이 가능하다. 촬영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편집을 하면 점프컷이 발생한다. 업계에서는 이를 ‘튄다’고 표현한다. 앞 화면과 뒷 화면의 연결이 자연스러워야 하는데, 육안으로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것을 점프 컷이라고 한다. 점프컷을 피할 수 있는 만능해결책이 있으니, 바로 그 방법이 디졸브다. 그래서 디졸브 편집을 보면 업계 전문가들은 괜히 ‘커트 편집을 할 수 없는 무슨 곡절이 있구나’라고 판단한다.

예전에 정통 다큐멘터리는 커트 편집만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었다. 어쩌다 디졸브 편집을 하긴 하는데, 한 번 사용하면 기가 막힐 정도의 효과를 준다. 반면 편집 초보 PD들은 디졸브를 많이 쓴다. 부드럽고 뭔가 좋아 보이기는 하나 너무 많이 사용하는 탓에 영상적으로 큰 감동을 주지 못한다. 디졸브 편집은 쉽고 커트 편집은 힘들다. 능력 있는 PD들이 커트 편집을 즐겨하는 이유다.

5월 9일 대통령 선거로 한국사는 또 한 번의 장면 전환이 이뤄진다.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에 이어 9년 전 이명박 정부가 등장하면서 권력은 중도진보에서 보수로 옮겨갔다. 영상 편집에 비유하자면 ‘커트’로 화면이 바뀌었다.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에 이어 ‘디졸브’로 연결됐다. 하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보수정권은 최악의 평가를 받았다. 장면 전환을 앞두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낸 촛불민심은 ‘커트’를 요구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새누리당을 이어받은 자유한국당은 ‘디졸브’를 원하고 있다.

과연 다음 정부는? 커트일까, 아니면 디졸브일까. 여러분의 한 표에 달려 있다.

<윤호우 편집장 hou@kyunghyang.com>

편집실에서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