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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이모들의 나라

대단지 아파트의 아침은 분주하다. 쉴새없이 노란색 승합차가 아파트 정문을 들락거린다. 어린이집·유치원 차량이다.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엄마들이 있고, 아빠들도 눈에 띈다. 또 하나의 부류는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할머니들이다. 그리고 아이를 맡아 키워주는 보육도우미, 즉 ‘이모’들의 모습도 보인다. 한 차가 지나가고 나면 한 무리가 집으로 들어가고, 새로운 무리가 아이를 차에 태워보내기 위해 밖으로 나온다.

3월이면 애잔한 풍경이 등장하기도 한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우는 아이들을 떼어놓는다. 승합차 안에서 엄마와 헤어지기 싫은지 울고 있는 아이도 있다. 한국전쟁 때 뿔뿔이 살길을 찾아 떠나는 이산가족의 슬픔만큼이야 하겠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우는 아이를 떠나 보내는 엄마들은 가슴이 찢어진다.

엄마와 헤어지기 싫어 우는 아이는 약과일지 모른다. 아이가 감기에 걸려 열이 올라가면 엄마가 겪는 고통은 심각해진다. 어린이집에서는 부모에게 전화를 건다. 할아버지·할머니·남편·이모 중 누군가 가까운 곳에 있다면 다행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 아이를 돌봐야 하는 일은 대부분 엄마의 몫이 된다. 회사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헐레벌떡 어린이집으로 몇 번 달려가면 처녀 시절의 총기는 다 빠져나간다. 다음날 아침 아직 열이 내리지 않은 자녀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어 누군가에게 맡겨두고 직장으로 향한다. 직장은 수만 리 떨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대단지 아파트의 아침 풍경만큼 대한민국 보육의 현주소를 알 수 있는 곳은 초등학교 교문 앞의 낮 풍경이다. 전업주부들이 쪼르르 모여 서서 학교를 마치고 나오는 아이들을 기다린다. 한쪽에는 할머니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이모들이 있다. 아이들이 나오면 이들은 피아노·미술·태권도 학원으로 데려간다. 몇 개의 학원을 거치면 하루 해가 저문다. 해가 저문 후에야 직장여성과 남편은 집으로 겨우 돌아온다.

아이와의 대화 도중 이모 이야기가 등장한다. “○○네 이모가 바뀌었어.” “그래!” 더 좋은 조건의 보육비를 주는 가정으로 간 것이 틀림없다. 이때쯤이면 남의 집 이모 문제가 자신의 집 이모 문제가 되기도 한다. 보육비를 올려달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맞벌이 부부의 아이는 엄마·아빠의 품에서 대부분 자랄 것 같지만, 실은 이모의 품 안에서 커간다. 보육은 이모의 몫이고 비용만 엄마 아빠의 몫이다.

누군가 속도 모르고 엄마들에게 말하기도 한다. “낳는 김에 하나 더 낳는 것이 어때?”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느니 하면서 국가가 무슨 대단한 일을 해줄 것처럼 떠들고 있지만 알고보면, 보육은 국가와 사회의 몫이 아니라 철저히 개인의 몫이다. 개인이 알아서 감당하고, 감당하지 못하면 직장 다니지 말고 집에서 아이를 보라는 식이다. 젊은 엄마 아빠들에게 5·9 대선은 그나마 보육에 관심을 가진 후보가 눈에 선뜻 들어올 것이다. 누군가 이 어려운 보육 현실을 개선시켜 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더욱 ‘엄마들의 대선’에 눈길이 간다.

마침 대선이 있는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아이를 키우는 이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 힘내세요, 젊은 엄마 아빠!

<윤호우 편집장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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