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동통신사들 떨고 있니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대선후보들 너도나도 “통신비 인하”… 장밋빛 공약 실현될지 주목

선거철 ‘단골 공약’인 가계통신비 인하대책이 올 대선에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역대 가장 많은 후보가 대선에 도전장을 내민 만큼 통신비 인하 공약도 가히 ‘역대급’이다. 내용을 보면 휴대전화 기본요금 폐지,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 폐지, 제4이동통신 도입, 전국민 데이터 무제한 서비스 제공 등 하나하나가 이동통신시장을 뒤흔들 사안들이다. 이미 과거 대선에서 공약으로 나왔지만 실현되지 못한 공약들도 다수 포함됐다. 이에 시민단체와 통신업계에서는 “구체적이지 못하고 비현실적인 공약”이라며 의심하고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공약 이행을 이유로 강력한 통신비 인하 요구에 당면하게 될 이동통신사들도 볼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가계통신비는 2012년 월 15만2792원으로 정점을 기록한 뒤 매년 감소추세에 있다. 2016년 통계청 조사에서는 월 14만4001원까지 내려가 최근 5년간 가장 낮은 금액을 기록했다. 정부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시행, 알뜰폰 보급 확대 등이 가계통신비 감소에 기여한 것으로 분석 중이다.

소비자들이 삼성전자가 마련한 ‘갤럭시S8’ ‘갤럭시S8플러스’ 체험존에서 인공지능(AI) 서비스를 체험해보고 있다./삼성전자 제공

소비자들이 삼성전자가 마련한 ‘갤럭시S8’ ‘갤럭시S8플러스’ 체험존에서 인공지능(AI) 서비스를 체험해보고 있다./삼성전자 제공

장밋빛 통신비 인하 공약 ‘봇물’

인하추세에도 불구하고 대선후보들은 앞다퉈 통신비 인하 공약을 내놓고 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스마트폰 가입자가 이용하는 정액요금제에 포함된 월 1만1000원의 기본요금을 없앤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이통사가 소비자에게 지급할 수 있는 지원금을 최대 33만원 이하로 제한하는 지원금 상한제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상한제 폐지의 경우 시민단체는 물론 민주당 내에서도 찬반이 엇갈리지만 문 후보는 지원금 상한제를 단통법 일몰(10월) 전에 앞당겨 폐지한다는 계획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전국민이 데이터를 무제한 사용할 수 있도록 요금제를 개선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값비싼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쓰지 않아도 데이터의 전송 속도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누구나 무제한 데이터를 쓰도록 한다는 게 복안이다. 통신시장 경쟁 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제4이동통신을 도입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단통법 개선을 통해 단말기 완전자급제 도입, 단말기 공동구매 활성화, 단말기 구매 시 부과되는 할부수수료 면제 등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는 망중립성 제도 완화 및 데이터 요금 지원, 소상공인·청년창업자·청년구직자 데이터 추가 제공, 청소년 전용 요금제 출시 등을 제시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데이터 2기가바이트(GB)를 기본제공하고 음성통화·문자메시지를 무한제공하는 ‘보편요금제’를 이통사들이 출시하도록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단말기 지원금 분리공시제 도입, 지원금 상한 폐지, 제4이동통신 도입 등 다른 후보들과 겹치는 공약도 있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도 지원금 상한제 폐지, 단말기 완전 자급제 도입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알뜰폰 지원, 선불요금제 확대, 20만원 이하 저가 스마트폰 출시 등도 공약에 포함됐다.

장밋빛 공약은 쏟아지고 있지만 실현 가능성을 놓고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과거 박근혜 정부만 해도 취임 전엔 가입비 폐지, 경쟁 활성화 등을 통한 이른바 ‘반값 통신요금’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가계통신비는 임기 중 소폭 하락하는 데 그쳤다. 윤문용 녹색소비자연대 ICT정책국장은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의 가계통신비 공약은 구체적이지 못하고 재원 대책은 전혀 없는 등 반쪽짜리”라며 “실천 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재원과 제도개편의 구체적 방향성이 제시돼야 한다”고 밝혔다.

대선후보들 대부분이 ‘4차산업’을 국가의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는 터라 규제에 초점이 맞춰진 통신비 인하 공약을 제대로 실천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홍식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통신산업 규제를 강화하면 국내 핵심산업인 IT·자동차·플랫폼산업 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차기 5세대(G) 이동통신망이 4차산업의 핵심 인프라이기 때문에 이통사의 5G 투자에 부담을 주는 정책을 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투자확대 나선 중국과의 경쟁 대비를

대선후보들의 통신비 인하 공약은 삼성·LG전자 등 제조사에 해당되는 내용도 있지만 대부분이 이통사를 겨냥하고 있다. 대선이 마무리되면 당장 하반기부터 이통사를 향한 정부의 요금 인하 압박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통신업계는 “역대 통신비 인하 공약 중 가장 비현실적이고 과격하다”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지금 이동통신사들 떨고 있니

이통사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공약은 문재인 후보가 제시한 기본료 폐지 공약이다. 기본료 폐지 문제는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2~3년 전부터 꾸준히 제기해 왔고, 민주당도 지난해 총선에서 승리한 뒤 당론으로 채택한 사안이다. 논란이 될 때마다 이통사들은 휴대전화 가입자가 6000만명을 넘어선 것을 들어 “기본료가 폐지되면 연간 6조원이 넘는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며 결사반대를 외쳐 왔다.

기본료가 없는 요금제를 쓰는 가입자들도 많다는 점에서 이통사들의 주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하지만 스마트폰 가입자가 4700만명에 육박하고, 이들 중 60~70%가량은 정액요금제를 쓴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본료 폐지 시 연간 2조~3조원 규모의 수익 감소를 예상할 수 있다. 이통3사가 지난해 올린 전체 영업이익은 3조6000억원 규모였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기본료를 폐지하면 적자가 나기 때문에 이를 만회하기 위해 이통사들은 결국 데이터나 음성통화 요금을 올릴 수밖에 없다”며 “기본료를 근거로 설계된 기존 요금제 체계도 수정해야 해 이통시장이 일대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기본료 폐지를 강제할 권한이나 근거가 없다는 점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기통신사업법 등에서는 통신요금을 시장 경쟁원리에 따라 이통사들이 자율적으로 책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때 이통사가 새 요금제를 출시할 때 정부의 사전 승인을 받던 때도 있었지만, 규제 철폐 정책에 따라 현재는 사후신고로 전환됐다. 이 때문에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도 기본료 폐지 요구가 나올 때마다 반대입장을 표명해 왔다.

데이터 전송 속도를 조절해 전국민 데이터 무제한을 실현한다는 공약도 비현실적인 것으로 통신업계는 보고 있다. 이미 이통사들은 2015년부터 음성통화는 무제한 제공하되 데이터 제공량을 조절해 수익을 내는 ‘데이터 중심 요금제’를 전면 도입한 상태다. 요금제와 관계없이 데이터를 무제한 제공한다는 것 자체가 이통사의 수익구조 기반을 흔드는 일이라 도입 시 이통사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다른 한 이통사 관계자는 “속도를 조절해 데이터를 무제한 제공한다 해도 간단한 동영상 하나 보기 힘들 정도로 품질이 좋지 못할 게 뻔하다”며 “실현된다 해도 ‘생색내기용’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러 후보가 언급한 단말기 완전 자급제, 제4이동통신 도입도 단기간에 실현하기 어려운 과제들로 꼽힌다. 단말기 완전 자급제는 이통서비스와 단말기 유통을 완전히 분리하는 것을 뜻한다. 도입되면 이통사들은 휴대전화를 팔 수 없게 돼 국내 단말기의 90% 이상을 공급 중인 이통사 대리점과 판매점들의 생계문제부터 불거질 우려가 있다. 대리점과 판매점들이 차별화된 요금제나 서비스로 가입자를 모으기보다는 새 단말기와 이에 딸린 지원금으로 가입자를 유치해온 탓이다.

제4이동통신의 경우 이미 7번의 심사가 열렸지만 매번 후보업체들의 재정부문 자격미달로 신규사업자 선정에 실패했다. 이통시장이 이미 포화상태라 선뜻 제4이통에 투자하겠다는 ‘큰손’ 투자자나 대기업도 딱히 없다. 섣불리 선정할 경우 특혜 시비가 불거지거나 영업부진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어 정부 의지만으로 단기간에 밀어붙이기도 어려운 사안이다. 역시 여러 후보가 언급한 단말기 지원금 분리공시제 도입도 2014년 단통법 제정 당시 검토됐다가 도입하지 않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이통사와 제조사의 지원금을 개별 공시하자는 취지지만 “영업비밀이 공개될 우려가 있다”며 삼성전자가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어 실제 도입하기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