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대선 후 한국경제 훈풍 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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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거시지표 예상 넘는 실적 기록… 수출과 건설이 물꼬 터

잇달아 발표되는 상반기 거시지표가 예상을 넘는 실적을 기록하면서 하반기 경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연초 수출이 선두를 끌자, 4월부터는 소비심리도 풀리고 있다. 5월 황금연휴를 기점으로 소비자들의 지갑이 열릴 가능성도 크다. 대통령 탄핵과 트럼프 신행정부 출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반도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보복에 대한 우려로 ‘4월 위기설’까지 걱정해야 했던 한국 경제로서는 간만에 부는 훈풍이다. 뜻밖의 성장은 긴 침체에 허덕이던 세계 경제가 회복세를 보인 것이 컸다. 5월 9일 대선은 정책 불확실성을 제거한다는 측면에서 한국 경제에 일단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대선 유력주자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도 10조원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경기부양에 나설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4월 2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올해 경제성장률을 2.6%로 예상했는데 (실제 성장률은) 이보다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1분기 성장률 속보치가 곧 나오겠지만 내가 듣기로는 예상보다 좋다”며 “수출이 최근 경기회복을 견인하고 있는데 당분간 괜찮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4월 18일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6%로 상향조정했다. 넉 달 전인 지난해 12월 예상했던 2.4%보다 0.2%포인트 높인 것이다. 유 부총리가 6일 만에 이보다 성장률이 더 높아질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은 그만큼 한국 경제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는 의미로 풀이됐다.

부산 강서구 부산항 신항 부두에 컨테이너들이 쌓여 있는 모습. / 연합뉴스

부산 강서구 부산항 신항 부두에 컨테이너들이 쌓여 있는 모습. / 연합뉴스

3년 만에 3%대 성장률 복귀 가능성

유 부총리의 공언처럼 1분기 한국 경제성장률은 ‘깜짝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4월 27일 한국은행은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분기보다 0.9% 성장했다”고 밝혔다. 시장 예상치였던 0.7~0.8%를 뛰어넘는 수준으로 분기별로 볼 때 지난해 2분기(0.9%) 이후 3분기 만에 성장률이 가장 높았다.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이 0.5%(잠정치)였으니까 이보다는 0.4%포인트가 높다. 전분기 대비 0.9% 성장률이 4분기 내내 지속된다면 올해 성장률은 전년 대비 3.6%에 달하게 된다. 2015년과 지난해 2.8% 성장을 기록했던 한국 경제로서는 3년 만에 3%대 성장률 복귀를 꿈꿔볼 수 있다는 의미다.

예상 밖의 성장은 수출과 건설이 물꼬를 텄다. 수출은 반도체와 석유화학 분야가, 건설은 재정 조기집행이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분석된다. 연초부터 증가하던 수출은 4월에도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4월 수출액은 20일까지 304억 달러로 1년 전보다 28.4%가 늘어났다. 1분기 수출증가(14.9%) 기조가 더 강화됐다. 자신감이 붙은 정부는 수출증가율을 상향조정했다.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올해 연간 수출이 작년보다 6~7%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초 정부의 예상치는 2.9%였다. 정부 예상대로 된다면 수출증가율은 전년 대비 19.0% 늘어났던 2011년 이후 6년 만에 가장 높아진다.

수출훈풍에 따라 기업들의 체감경기도 급속히 개선되고 있다. 4월 기업들의 체감경기는 4년 11개월 만에 가장 좋았다. 4월 제조업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한 달 전보다 4포인트 오른 83을 기록했다. 올 1월부터 4개월 연속 상승한 것으로 2012년 5월(83) 이후 가장 높다. BSI 지수가 100 이상이면 경기를 좋게 보는 기업이 많다는 뜻이고, 100 미만이면 경기를 나쁘게 보는 기업이 많다는 의미다. 아직도 자신감을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했지만 제조업 BSI가 지난해 연말까지 70 초반에 머무른 것을 감안하면 심리 해동속도는 확실히 빠르다. 최덕재 한국은행 기업통계팀장은 “수출증가세가 이어지고, 비선실세인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한 정치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기업들의 체감경기가 개선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미대선 후 한국경제 훈풍 불까

외교·안보 등 새로운 리스크 우려도

산업현장에는 서서히 활기가 돌고 있다. 통계청의 3월 산업활동동향 자료를 보면 3월 전산업 생산은 전달 대비 1.2% 증가했다. 지난해 11월 이후 4개월 만에 증가폭이 가장 크다. 떨어지던 제조업 평균가동률도 상승으로 반전됐다. 수출량이 많은 반도체, 기계장비 등에서 지표를 이끄는 모습은 산업활동동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수출과 생산 호조는 오랜 동면에 들어갔던 소비심리를 깨우고 있다. 개인의 체감경기를 나타내는 ‘소비자 심리지수’는 4월 101.2를 기록, 지난해 10월 이후 처음으로 기준치 100을 넘어섰다. 특히 이달 상승폭(4.5포인트)은 2013년 10월(4.9포인트) 이후 3년 6개월 만에 최고치다. 지난 연말 소비자 심리지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소비자들이 실제 지갑을 여는 모습도 감지된다. 3월 소매판매액을 보면 대형마트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6.6%, 슈퍼마켓은 6.1% 판매가 늘었다. 2월 대형마트가 1.9%, 슈퍼마켓이 8.1% 판매액이 줄었던 것과 대조된다. 편의점 소매판매액도 12.6% 증가했다. 대형마트와 슈퍼마켓, 편의점은 체감 소비경기를 측정하는 데 좋다.

해외 투자은행(IB)들이 한국 경제를 보는 눈도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예상보다 중국의 사드 보복에 대한 영향이 적었고, 유가 상승과 반도체 등 정보통신제품(IT)의 수요가 반등하면서 수출증가세가 좋아 하반기를 기대할 만하다는 것이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 수요가 늘어나면서 하반기에도 IT 설비투자가 더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은 한국 경제에 청신호다. 노무라증권은 “미국 금리인상에 따라 이자부담이 증가해 소비를 제약할 요인이 되지만, 새정부의 재정지출 확대가 연말 소비심리를 부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하반기 한국 경제가 마음을 놓을 만큼 여유롭지는 않다. 성장세가 감지된다고는 하나 아직 소비 밑바닥까지 훈풍이 내려간 것은 아니다. 20~40대는 계속해서 취업자 수가 줄어들고, 청년취업난은 도무지 풀리지 않고 있다. 제조업 일자리 감소도 여전하다. 가계부채에 대한 부담도 커 소비증가세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다른 산업이 충분히 활발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반도체산업 사이클이 꺾이면 반도체 의존성이 큰 한국 경제도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새정부는 출범과 함께 허니문 기간도 없이 냉혹한 현실에 맞닥뜨리게 된다. 북핵실험과 대북 폭격, 사드 배치, 소녀상 등 미·중·일 간 해결해야 할 외교·안보분야 난제가 첩첩이 쌓여 있다. 부동산정책, 가계부채 대책, 미국 금리인상에 따른 통화정책 등 새로운 정책카드를 꺼내면서 발생할 혼란도 있다. 백웅기 KDI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새정부 출범으로 ‘컨트롤타워 부재’에 따른 불확실성이 사라지는 것은 긍정적인 요인”이라며 “하지만 금세 새로운 리스크들이 쌓이며 불확실성이 커진다는 측면에서 하반기 경제는 전망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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