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의 허점을 파고드는 ‘전자지갑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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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 언뱅크드(unbanked)란 단어가 있다. 은행 같은 금융기관의 혜택을 여하간의 이유로 못 받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언더뱅크드(underbanked)란 말도 있는데, 은행 통장은 어찌 있지만 신용카드 등 편리한 금융서비스는 쓸 줄 모르는 이들로 이 둘을 합치면 미국 인구의 27%나 된다. 이들도 엄연한 소비자이지만, 그간 소비자로서 혜택을 잘 챙기지 못했을 수밖에 없다.

모든 사회에는 이처럼 그늘이 있고 허점이 있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느끼고 있는 불편함이란 곧 사업 기회다. 지금까지는 수지가 안 맞아서 혹은 우선순위에 밀려 간과되었던 일들에 기술 발전이 가져오는 새로운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 기술의 발전은 흐르는 물처럼 사회 곳곳의 미비점을 늘 채우려 흘러든다.

아마존은 신용카드나 은행계좌 없이도 온·오프라인 어디에서나 현금 결제가 가능한 ‘아마존 캐시’를 발표했다. 가맹된 동네 가게에 현금을 들고 방문해 앱의 바코드를 스캔해서 현금을 충전해 두는 결제서비스. 언뱅크드들이 온라인 쇼핑에서 겪는 불편에서 착안한 일종의 현금 충전이다. 아마존이 은행이 하는 일을 조금이나마 대신해 주겠다는 것이다.

정식 론칭을 준비 중인 프랑스산 언뱅크드 전용 결제앱 스네페이./snapay.launchrock.com

정식 론칭을 준비 중인 프랑스산 언뱅크드 전용 결제앱 스네페이./snapay.launchrock.com

모바일 월릿, 즉 전자지갑 시장에 아마존이 진출한 셈이다. 당장은 아마존 쇼핑에 쓰이겠지만, 돈을 맡아 두기 시작하면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중국의 젊은이들은 이미 알리페이나 위챗페이 등에 통장처럼 돈을 넣어 두고 쇼핑을 하고 있으며, 그 결제규모는 16조 위안(3000조원)을 넘어섰다.

전자지갑 시장은 내 돈을 맡겨 놓는 신뢰 산업이기 때문에, 대중의 신뢰를 얻기가 어렵지만 일단 시장에 안착만 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대단히 많다. 마일리지나 로열티 프로그램과 연동할 수도 있고, 온·오프라인 융합에 요긴하게 써먹을 수도 있다. NFC니 블루투스니 무선통신과의 연계 시나리오도 무궁무진하다.

성장이 쉽지 않을 땐,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배려받지 못한 쪽을 다시 한 번 보자. 분명히 고맙게 함께 성장할 분야가 있을 것이다. 아니면 바다 건너를 봐도 좋다. 아마존은 이미 멕시코에도 진출했는데 멕시코인의 44%가 통장이 없다. 인도는 뭐 두 말할 것도 없다. 한국 업체로서 인도에 올인한 통신비 잔액 서비스 트루밸런스도 이 언뱅크드를 위한 모바일 결제시장을 노리고 있고, 스네페이(Snapay)란 프랑스산 언뱅크드 전용 결제앱은 50개국 이상에 진출할 예정이다.

전 세계를 놓고 봤을 때 언뱅크드는 20억명에 이른다. 하지만 기득권이 된 금융권은 이들에게 큰 관심이 없다. 심지어 시중은행은 ‘디마케팅’으로 수요를 조절하고자 지점 축소를 하기도 한다. 대다수 국민이 카드와 은행 거래를 어찌 어찌 할 수 있다면, 절실한 불편을 못 느끼기에 오히려 핀테크가 잘 안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이 그런 상황이다. 진보는 다양성과 결핍에서 자란다. 균일한 동질성은 당장은 안락해 보이지만 기득권을 만들고 새로운 물결이 일지 못하게 하기도 하는 것이다.

<김국현 에디토이 대표·IT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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