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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하는 어떤 정부를 만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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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후보의 공약은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한 ‘복지’ 확대가 특징이다. 반면 안철수 후보는 현장의 생산성을 바탕으로 한 ‘일자리’ 강화가 특이점이라 할 수 있다. 두 후보 공약의 차이점을 따져봤다.

정년퇴임을 앞둔 철도노동자 김광현씨(59·가명)는 대선국면이 열리기 한참 전부터 마음이 복잡했다. 20대 딸 김혜진씨(27·가명)가 직장을 그만뒀다. 직원은 10여명 남짓한 중소기업이었다. “편한 자리만 찾을 수는 없잖아. 네가 열심히 해서 크게 키우면 안 되냐?”, “여긴 미래가 없어. 그러다 내가 죽어.” 딸의 대답에 씁쓸함이 밀려왔다. 딸은 가끔 주말에도 출근했다. ‘1박2일 야유회’가 이유일 때도 있었다. 딸에게 미안하게도 “참아보라”는 말을 던졌던 것은 시골 고향에 구순을 바라보는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이다. 연금으로 아버지와 딸을 동시에 부양해야 할 생각을 하니 아찔하고 화가 치민다. 자신은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철도청 직원이 됐는데 대학까지 나온 자녀들의 돈벌이는 왜 이리 어려울까. 이래 저래 대선에 대해 생각하면 갑갑하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유권자들의 이런 고민에 어떤 해법을 갖고 있을까. 대선정국이 ‘문재인 대 비문재인’ 혹은 ‘적폐세력과의 대결’이라는 구도로 이뤄지면서 유권자들의 삶을 결정지을 정책 대결은 실종됐다. 김광현씨와 김혜진씨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논쟁은 실종된 셈이다. 그러나 네거티브의 진흙탕을 걷어내면 두 후보가 꿈꾸는 정책적 해법이 존재한다. 하루아침에 이뤄진 해법도 아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성장한 벤처사업가 출신 안철수 후보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후보가 걸어온 삶이 다른 정책을 만들어냈다.

두 후보가 가장 중요시하는 부문이자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부문은 ‘일자리’ 공약이다. 두 후보 모두 비정규직을 줄이고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인상을 개선하겠다는 점에서는 공통된 견해를 보였지만 관심사는 다르다.

4월 21일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부산 서면 쥬디스태화 백화점 앞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인천 부평구 부평역 북광장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유세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4월 21일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부산 서면 쥬디스태화 백화점 앞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인천 부평구 부평역 북광장에서 지지를 호소하는 유세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 후보의 공약은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공무원 17만4000개ㆍ공공서비스 등 64만개)로 요약된다.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와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실을 설치하고 취임 직후 10조원의 일자리 추경예산을 편성할 예정이다. 5년간 21조원이 투입된다. ‘81만개’의 구체적 숫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공서비스 일자리가 압도적으로 많다. 경찰관·소방관·교사 등 공무원 하면 전형적으로 떠오르는 직종뿐 아니라 어린이집 교사, 요양보호사 등이 ‘81만개’ 일자리에 포함되고,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다. 문 후보는 중소기업이 2명을 신규 채용하면 정부가 세 번째 채용자에 대해 3년간 임금 전액을 지원하는 ‘추가고용지원제도’도 약속했다. 임금부담으로 신규채용을 꺼리는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를 줄이려는 산업정책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부 때에도 중소기업의 청년 신규채용에 대한 세재혜택 등의 공약은 있었다. 좀 더 파격적 형태이긴 하지만 ‘나랏돈’을 붓는다고 저절로 기업이 일을 잘하게 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문 후보가 공공영역을 중심으로 ‘일자리 창출’을 총론으로 내세웠다면, 안 후보는 ‘생산성’에 초점을 맞춘 각론을 준비했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점과 고용불안과 차별 및 격차로 인한 이중구조(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일자리 영역이 완전히 나뉘는 것)가 심각하다는 데 있습니다. 국민의당은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일자리를 만드는 주체는 민간과 기업이라는 점입니다.”(3월 30일 JobsN 인터뷰) 안 후보는 정부의 역할로 민간기업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과, 이전 정부의 잘못된 일자리 정책으로 만들어진 질 낮은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전환하는 것을 들었다. ‘노동시간 단축’과 ‘직무형 정규직 신설을 통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억제’ 외에도 ‘공정한 보상시스템 마련’과 ‘임금체계 개혁’을 공약으로 걸었다.

‘일자리 창출’ 총론 대 ‘생산성 초점’ 각론

민간기업 입장에서 일자리 창출을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뭘까. ‘돈’이다. 안 후보의 일자리 공약은 이 점을 전면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이번 대선의 다른 후보들과도, 또한 역대 대선주자들의 공약과 비교해도 두드러지는 차이다. 대부분 기업과 공공기관에서는 정규직 임금의 경우 ‘호봉제’를 채택한다. 근속연수가 올라가면 자동적으로 임금이 높아지는 시스템이다. 성과를 더 많이 내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임금상승이 보장된다. 젊은 사원들은 일은 많이 하고 임금은 적게 받아도 불평할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런 연봉체계를 ‘직무·성과 중심’으로 개편해야 기업의 부담도 덜고 생산성도 향상되며 정규직도 더 많이 채용할 수 있다는 정책이다. 회사를 경영하고 직원들에게 임금을 지급해본 벤처사업가 출신다운 발상이다. ‘월급 루팡’(월급 도둑이라는 뜻의 직장인들의 은어. 일은 적게 하면서 월급만 많이 가져가는 고위급 등을 뜻함)을 잡아야 일자리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실리콘 밸리는 성공의 요람이 아니라 실패의 요람입니다. 실패가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2008년 카이스트 교수 시절부터 안 후보가 여러 강연 자리에서 강조하던 말이다. 민간영역에서 일자리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에도 공을 기울였다. 안 후보는 고용상황평가제를 도입해 분기별로 업종별·직종별 고용상황을 분석하고, 정책에 활용한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중장년층 고용불안 해소에 적극 대처하기 위해 전직지원서비스와 교육을 강화하고 청년 구직자들에게 수당(월 30만원)을 지급한다는 내용도 공약에 포함돼 있다. 회계사 출신으로 ‘좋은기업지배연구소’, ‘경제개혁연대’ 등의 시민단체 활동을 한 채이배 의원이 주요 공약 설계를 담당했다.

무작정 일자리를 만들면 되는 것이 아니라 ‘우수한 노동력 양성’과 ‘체계적 인사관리’가 있어야 기업에서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창출된다는 경험과 철학이 녹아 있다. 교육분야의 ‘학제 개편’ 공약도 이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 현재의 학제를 유치원 2년(만 3~4세), 초등학교 5년(만 5~9세), 중학교 5년(만 10~14세), 진로탐색 학교 또는 직업학교 2년, 대학교 4년 또는 직장으로 개편하자는 내용이다. 의무교육을 앞당기고 직업탐색의 기회를 강화한다는 것을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교육공약으로 내세웠다. 공학에 관심이 있었지만 의대 진학을 강요받은 안 후보의 개인 이력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CEO 출신의 한계도 보인다. 안 후보는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국제노동기구(ILO)의 기준을 준수한다는 공약도 마련했다. 그러나 ‘돈’의 문제가 기업 입장에서 일자리 창출의 난관이라면, 임금개편 등의 과정에서 난관으로 작동하는 것은 ‘노사 간의 관계’다. 공공기관 및 금융기관에서 일방적인 직무 및 성과중심형 임금체계 개편은 반발을 부르고 있다. 지난해 12월 사무금융노조는 성과중심형 임금체계 개편에 반발해 파업을 단행했다. 사실상의 임금 삭감 및 노조활동 탄압이라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노동조합 등을 통한 ‘직장 내 민주화’가 단행되지 않는다면 임금체계 개편은 공정한 보상체계 마련책이 아니라, 사측의 노동자 통제수단이 될 수 있다. 코레일 등 ‘성과’를 명확하게 지표화하기 힘든 공공영역에서의 성과연봉제 추진은 특히 노동탄압의 도구로 쓰일 우려가 있다. 안 후보의 공약에서 노동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정책이 없다는 점이 아쉬운 부분이다. 안 후보의 개인 이력뿐 아니라 노조 및 시민사회단체 등 사회단체와 연계가 부족하다는 당의 한계를 반영한다.

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5개 원내 정당 후보들이 19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스탠딩 형식으로 열린 두 번째 TV토론회에 앞서 손을 맞잡고 있다. 왼쪽부터 정의당 심상정·자유한국당 홍준표·바른정당 유승민·더불어민주당 문재인·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 국회사진기자단

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5개 원내 정당 후보들이 19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스탠딩 형식으로 열린 두 번째 TV토론회에 앞서 손을 맞잡고 있다. 왼쪽부터 정의당 심상정·자유한국당 홍준표·바른정당 유승민·더불어민주당 문재인·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 국회사진기자단

무작정 일자리 확대보다 우수 노동력 양성

문 후보는 이용득 의원(민주당)이 제안한 ‘한국형 노동회의소’ 도입을 공약으로 채택했다. 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이 있는 기업과 힘의 균형을 이루도록 통합 노동자 이익 대변 기구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오스트리아의 노동회의소 모델을 참조해 ‘한국형 노동회의소’라는 이름을 붙였다.

안 후보의 복지공약이 일자리 공약에 비해 부족한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은 지난 4월 철도파업 당시 “호봉제의 이유는 대부분의 복지를 기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부모 부양, 자녀 등록금 등 지출할 돈은 많아지는데 돈 나올 구석은 기업의 임금뿐이니 정규직 노동자들은 ‘호봉제’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임금체계 개편은 복지제도와 연동해야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직무훈련’과 ‘(교보육)돌봄공약’ 외 뚜렷한 복지공약은 부족하다. “국·공립 단설 유치원 설립을 자제하겠다”는 발언은 CEO 특유의 공공영역에 대한 불신이 아니냐는 의심도 받고 있다.

복지공약은 문 후보 측이 탄탄하다. 81만개 일자리 공약의 핵심도 ‘공무원 공채’를 늘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사회서비스 일자리의 확충’에 있다. 공공 어린이집, 요양보호시설 등을 확충하고 여기서 채용하는 인력도 대폭 늘리겠다는 것이다. 방안이 현실적으로 이뤄진다면 자연히 복지서비스의 질도 증가하게 된다. 당 정책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을 중심으로 치밀하게 설계된 ‘치매 국가책임제’ 공약이 단적인 예다. 치매노인 간병을 위한 본인부담 상한제 도입. 경증 치매환자에게도 장기요양보험 혜택. 치매지원센터 대폭 증설. 국·공립 치매요양시설 확대. 종사자 처우 향상 등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아이를 돌봐줄, 혹은 치매 노부모를 돌봐줄 ‘이모’를 찾아서 알선 업체에 문의하고 개인적으로 알음알음 찾고 월 200만원 가까이 지불하는 일을 근절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소득중심 성장’ 공약과도 맥을 같이한다. 개별 기업의 임금인상뿐 아니라 국가의 복지지출 증대로 ‘나가는 돈’을 줄이면서 실질적 소득이 늘어나는 효과까지 기대한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로 참여정부 정책자문관이자 19대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활동했던 김용익 민주연구원장이 공약 설계의 중심에 있다. 문 후보는 기초연금 10만원 인상도 약속했다.

문 후보 측의 공약은 참여정부 미완의 ‘복지 공약’을 10년 만에 완성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복지지출을 가장 많이 끌어올린 정부는 참여정부였다. 김대중 정부의 복지지출 증가율이 8.0%였는데 노무현 정부 시기는 20.1%였다. 김대중 정부는 1999년 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하는 등 빈곤층을 위한 기초적 복지를 마련했다면, 참여정부는 직업능력 개발, 아동보육 지원, 노인간병 지원 등 중산층까지 적용되는 다양한 사회서비스 확충에 힘을 기울였다. 노인장기요양보험도 참여정부 시절 논의를 거쳐 2008년 입법화됐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양극화가 본격화된 시대’로 기억에 남는다.

4월 20일 시민들이 19대 대선후보들의 벽보를 들여다보고 있다. / 박민규 기자

4월 20일 시민들이 19대 대선후보들의 벽보를 들여다보고 있다. / 박민규 기자

참여정부 미완의 복지공약 계승 완성

“비정규직 확장 속도가 훨씬 더 빨랐습니다. 일단 빨리 제도를 만드느라 정부 보조금을 줘서 민간 어린이집이라도 우후죽순 만들었고, 몇몇 열악한 민간 어린이집에서 일어나는 아동학대 등은 복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습니다. 그마저도 충분하지 않았구요. 무엇보다도 부족한 것은 시간이었습니다.” 문 후보 캠프에 참여한 한 인사의 말이다. 일단 제도는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제도의 혜택을 느끼기 전에 노 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났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운명’처럼 정계에 입문한 문 후보가 ‘숙명’으로 떠안은 과제다.

문 후보는 참여정부의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일했다. 인사검증 및 영입이 그의 역할이었다. ‘유능한 민정수석’의 위상을 자랑하듯 문 후보 캠프에는 다양한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김연명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 원장(사회복지학과 교수) 등 각 분야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느슨한 항로를 따라 항해하는 ‘사공 많은 배’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용득 의원의 노동회의소 공약만 하더라도 한쪽에서는 환영의 목소리가, 다른 한쪽에서는 노동 관변단체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냐며 노동계 내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러나 캠프 차원에서 ‘업데이트’된 답은 나오지 않았다. 체계적 고민 없이 ‘좋은 정책’은 일단 다 받아들인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오는 이유다. 민주당의 일자리 공약과 복지공약을 실현하려면 막대한 재원이 드는데 증세방안을 확실하게 말하지 않았다는 점도 약점이 된다. 담뱃세 인하 등 일부 공약은 전체적 증세 방침과도 충돌한다.

문 후보의 정책은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한 ‘복지’ 강화, 안 후보의 정책은 현장의 생산성을 바탕으로 한 ‘일자리’ 강화가 특이점이라 할 수 있다. 약점도 존재한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 노동권 보호는 이번 대선을 통해 핵심 과제임이 다시 한 번 입증됐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비정규직 사유 제한’ 등의 보호정책과 창업지원 강화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임기 5년 내 정규직 고용률을 80%로 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만이 대기업 규제 완화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기존 새누리당의 정책을 계승했다.

그러나 누가 당선되든 여소야대 정국의 특성상 ‘위원회’와 ‘협치’를 통해 문제를 풀어갈 수밖에 없다. 두 후보가 낸 다른 해법을 지지자가 아니더라도 경청해야 할 이유다. 수많은 김광현씨와 김혜진씨들의 미래가 달린 선거가 곧 다가온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na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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