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블랙리스트’ 이후를 고민한다 ·끝

(6) 독과점·불공정, 문화산업에 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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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극장상영관 잡기도 어려워… 대중음악과 방송·만화도 심각한 상황

재벌 주도 경제성장의 결과 통신·전자·유류·자동차 등 많은 산업분야에서 몇몇 재벌대기업에 의한 독과점이 심화됐다. 영화와 방송·만화(웹툰)·대중음악 등 문화산업에서도 이러한 독과점 현상은 심각한 상황이다. 문화산업 독과점은 경쟁의 실종이나 소비자 후생 후퇴 등의 경제적 차원의 폐해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문화 다양성을 훼손하고 창작물을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는 길을 차단당해 창작활동이 위축되는 등 문화정책 차원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미국의 파라마운트 판례가 주는 교훈

영화산업은 투자(제작)-배급-상영(극장) 각 단계마다 독과점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상영 단계에서는 롯데쇼핑, CJ CGV, 메가박스 등 3대 기업이 스크린의 92.2%를 점유하고 있다. 팝콘 가격이 시중보다 과도하게 비싸고, 영화티켓 가격이 일제히 같이 오르는 전형적인 시장지배 사업자의 시장지배력 남용행위는 이러한 독과점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중소 영화제작자들은 무료초대권 발급, 영화표 구입 강제, 영사기 제공 강요 등 다양한 불공정행위에 노출되어 있다. 게다가 롯데와 CJ는 계열사를 통해 투자-배급-상영의 3단계를 수직적으로 장악하고 있어 수직적 기업결합의 폐해도 심각하다. 이러한 수직적 계열화로 중소 영화제작자들은 투자배급사들이 요구하는 과도한 배급수수료, 제작관리수수료, 마케팅기획비, 배급진행비 등 각종 수수료의 부담에도 시달리고 있다.

수직적 독과점의 폐해는 문화 다양성의 훼손으로도 나타난다. 2016년 2월 <검사외전>은 1812개, 4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는 1990개 스크린에서 상영되었다. 반면에 독립 중소 영화제작자들의 영화는 상영관을 잡기도 어렵고 그나마 잡은 상영관도 조기종영되기 일쑤다.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산재 피해자 문제를 다룬 <또 하나의 약속>의 경우 2014년 개봉 2주 전 예매율 1위, 개봉예정 영화 검색어 1위에 올랐지만 롯데쇼핑은 전국에 7개 영화관만을 배정했다. 2015년 1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참신한 스토리로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조기종영되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4년 12월 CJ CGV와 롯데시네마에 5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2012년 개봉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도둑들」을 보기 위해 관객들이 영화관에서 줄을 서 표를 구매하고 있다. '1000만 관객 영화'는 극장을 과점운영하는 대형 투자배급사의 공격적 마케팅의 결과이기도 하다. / 김정근 기자

2012년 개봉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도둑들」을 보기 위해 관객들이 영화관에서 줄을 서 표를 구매하고 있다. '1000만 관객 영화'는 극장을 과점운영하는 대형 투자배급사의 공격적 마케팅의 결과이기도 하다. / 김정근 기자

영화산업의 수직적 결합구조는 소비자들이 다양한 영화상품에 접근할 수 있는 선택의 통로와 창작자인 중소 영화제작자들이 영화상품을 가지고 대중에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봉쇄한다. 이러한 독과점 구조에서는 중소 영화제작자들이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스태프들에게 정상적인 임금을 지급하기도 어려워 영화산업 종사자들의 대부분은 근로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1948년 미국 대법원은 영화산업의 수직결합이 이루어질 경우 영화제작자가 극장 운영자로 하여금 해당 영화사의 영화만을 상영하게 하고 다른 경쟁 영화제작자가 영화 상영을 위해 극장에 접근하는 것을 배제할 수 있다는 이유로 독점금지법(셔먼법) 위반이라고 판단하고, 파라마운트 등 5대 메이저 영화사에 대해 극장 계열사 주식을 매각하라는 등의 계열분리 명령을 내렸다.

이러한 판결의 결과 영화산업의 수직적 독과점 구조가 해체되어 파라마운트사는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지만, 신인감독과 작가 등 새로운 창작자들을 대거 영화산업에 진입시키는 등 경쟁력 제고 노력을 통해 <러브스토리>, <대부>, <차이나타운> 등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미국 영화산업의 부흥을 이끌었다.

홍콩의 몰락이 우리의 미래일 수도

방송사는 독립 제작자에 대해 거래상 우월한 지위에 서게 된다. 방송사는 거래상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방송상품의 저작권을 필요적으로 방송사에 양도하도록 하고, 해외 판매, IPTV, 광고 등의 2차적 수익도 방송사에 귀속시키는 불공정행위를 일상화하고 있다. 하도급법에서는 직접 공사비 이하로 하도급 대금을 정하는 것을 부당대금결정 행위로 보아 3배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제작원가 이하로 제작비용을 지급하고 간접광고 등 다른 루트를 통해 제작자들이 비용을 만회하도록 하는 불공정행위도 빈발하고 있다. 이렇게 제작비도 만회하기 어려운 제작환경에서 스태프 등의 방송산업 종사자들은 대부분 근로빈곤층화되고 있다.

방송법은 일정 비율의 외주제작 편성의무와 방송사 자회사 제작사 등의 편성비율 제한규정을 두고 있었다. 영국의 사례가 수직계열화 규제의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다. 우리 방송에서도 영국 BBC의 우수한 다큐멘타리 프로그램을 자주 접할 수 있다. 박근혜 정권은 반대로 방송사의 자회사 편성비율 제한 등 수직계열화 방지장치를 폐지했고, KBS 등은 자회사를 설립하여 제작-방송의 수직계열화를 시도하고 있다.

대중음악 작곡가들이 창작과 함께 그들의 음악이 공연되는 방송, 노래방, 대중교통 등 수많은 대중매체에서 발생하는 저작권 수익을 일일이 확인하고 저작권료를 챙기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창작자들로부터 저작권 수익 관리권을 신탁받아 저작권 수익을 전문적으로 관리하고 배분하는 저작권 신탁사, 저작권 대리중개사 등의 사업이 필요하게 된다. 그런데 음악저작권 신탁업무는 2014년까지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음저협) 하나로 독점화돼 있었다. 독점의 폐해는 어김없이 나타나, 음저협이 저작권 수익을 창작자들에게 투명하게 알려주지 않고 공정하게 배분하지 않는다는 문제제기가 계속되었다. 대중음악산업의 해외진출이 활발하게 진행되는데, 저작권 수익을 국내외에서 적극적으로 확보하려는 적극경영을 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계속 제기돼 왔다. 문체부는 음악저작권 신탁산업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기 위해 2014년 ‘함께하는 음악저작인협회(함저협)’를 출범시켰으나 두 단체가 아직은 경쟁체제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문화 창작의 열정으로 문화산업에 뛰어든 청년들이 그 꿈이나 재능을 실현도 해보지 못하고 빈곤한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문화산업을 떠나고 있다. 필자가 20대의 청년이었을 때 아시아 대중문화산업을 이끌던 홍콩의 영화와 대중음악이 청년들 사이에 대유행이었다. 그러던 홍콩도 문화산업에서 청년들이 빠져나가고 후진 양성을 하지 못하여 문화산업의 경쟁력을 한순간에 잃고 말았다. 한국에서 지금과 같이 문화산업의 미래를 이끌어야 할 청년들이 그들의 재능을 키워보지도 못하고 떠나간다면 문화산업에서 홍콩의 몰락은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다.

<김남근 변호사, 민변 부회장, 서울시 경제민주화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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