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전문은행, 미국보다 22년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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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1995년 세계 최초의 인터넷전문은행이 등장했고, 일본에서도 2000년에 인터넷전문은행이 등장했다. 2009년 독일에서 설립된 피도르(Fidor)은행은 SNS를 통한 계좌 개설을 제공하고, 페이스북의 ‘좋아요’ 클릭 수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0.1%씩 예금 금리를 높이는 등 고객 친화적인 사업으로 화제가 된 바 있다. 이용고객의 35%가 피도르은행을 주거래은행으로 삼았으며, 설립 7년 만에 총예금액 3200억원을 유치했는데 직원 수는 40여명에 불과했다. 피도르은행은 작년 프랑스의 대형은행 BPCE에 인수됐다.

세계의 인터넷전문은행들은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으며 흑자에 도달한 인터넷전문은행도 상당수에 이른다. 사회주의 경제를 표방하는 중국조차도 2015년 알리바바와 텐센트의 인터넷전문은행이 출범했고, 바이두와 샤오미도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에 뛰어든 상태다. 중국은 핀테크 시장 규모와 다양성 면에서 이미 세계적인 핀테크 강국으로 인정 받고 있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올해 4월에야 최초의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가 출범했다. 사업을 개시한 지 사흘 만에 가입자 10만명을 돌파하면서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실제로 이용해보면 계좌 개설이 아주 간편할 뿐만 아니라 프리랜서, 주부 등도 가능한 최대 3000만원의 신용대출이 신용조회만으로 이뤄질 정도로 간단하며(시중은행에서는 거의 불가능했던 일이다) 금리도 꽤 저렴하다. 이런 인터넷전문은행이 왜 이제서야 출범했냐는 소비자의 아우성이 상당하다.

개발자를 위해 API를 공개한 피도르은행. / fidor.de

개발자를 위해 API를 공개한 피도르은행. / fidor.de

그렇다면 눈만 뜨면 인터넷 강국, 모바일 강국이라며 자부하는 한국에서 세계 각국에 비해 이렇듯 인터넷전문은행의 출범이 뒤늦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간 한국의 금융시장은 (1)정부의 (뭘 하든 허가를 받으라는 식의) 강력한 규제와 (2)금융사고 시 소비자가 사업자의 책임을 입증하지 못하면 그것은 소비자 책임이라는 식의 사업자 위주 정책이 지배했다. 2016년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세계 138개국의 국가경쟁력을 살펴보면, 한국의 금융시장 성숙도는 80위에 불과했다.

이는 우간다의 77위보다도 낮아 국내에서도 잠시 화제가 된 바 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한국의 은행 건전성은 102위, 대출의 용이성은 92위, 금융소비자의 법적 권리는 68위, 소액주주 보호는 97위에 불과했다.

금융서비스의 비대면 거래 확대, 무인점포 확산, 영업시간 확대, 금리 및 각종 서비스 경쟁은 필연적인 추세이다. 또한 신규 수익원을 창출하고 자신만의 독특성을 확보하기 위해 차세대 기술 활용 및 매력적인 신규 서비스 개발도 필수적이다. 그런데 정부의 우산 아래 높은 대출금리로 안이하게 사업을 영위해온 시중은행들이 그러한 경쟁에서 과연 우위를 점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무책임한 낙관이다. 그간의 행태를 볼 때 그럴 수 없다고 믿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무엇보다 차기 정부는 금융소비자의 권익을 위해 앞장서야 한다. 금융소비자가 만족해야 국가적 금융 경쟁력이 상승한다는 신념으로, (1)금융서비스의 다양성과 소비자 이익이 증대될 수 있는 치열한 경쟁체제 도입과 더불어 (2)금융사고 시 소비자 고의성에 대한 명백한 입증이 없으면 기본적으로 사업자에게 책임을 부과하는 선진적인 소비자 권리를 확립해야 할 것이다. 물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공인인증서 폐기다.

<류한석 소장/ 류한석기술문화연구소(ryu@peoplewa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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