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외교정책, 누굴 봐야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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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정부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군 출신들이 많다. 이들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소신발언으로 트럼프 정부의 균형을 잡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대외정책에 있어서 새롭게 떠오르는 인물은 니키 헤일리 유엔대사다.

도널드 트럼프 이전 미국 대통령들은 세계 경찰국가로서 미국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다른 나라의 정치에 많이 간섭해 왔다. 외교적인 채널을 동원하는 것은 물론 때에 따라서는 군사적인 행동도 했다.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며 침공했던 게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은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으로 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미국 우선주의로 요약되는 그의 정책들은 고립을 자처했다. 타국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듯 말했다.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시리아 내전에 대해서도 이슬람국가(IS)를 몰아내기 위해서라면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과도 손잡을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그랬던 트럼프가 시리아 정부군의 4일(현지시간) 화학무기 사용 이후 완전히 변했다. 며칠 지나지 않은 7일 새벽 시리아 샤리아트 공군기지 공습을 단행했다. 미군은 장거리 순항미사일 토마호크를 59기나 쏟아부었다. 토마호크는 걸프전과 코소보전, 아프가니스탄 침공 때도 사용된, 미국 군사개입의 신호탄 역할을 해 왔던 무기다. 트럼프 정부는 세계 경찰국가로서의 미국으로 조금씩 다시 돌아오고 있다. 그 다음 주목해야 할 것은 트럼프 정부의 외교정책 전반을 보려면 누구를 봐야 하느냐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4월 12일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공격을 규탄하는 결의안에 손을 들어 찬성 의사를 밝히고 있다.  / AFP연합뉴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4월 12일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공격을 규탄하는 결의안에 손을 들어 찬성 의사를 밝히고 있다. / AFP연합뉴스

소신발언 군 장성 출신들 균형 잡아

트럼프 정부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군 출신들이 많다. 이미 경찰국가로서 미국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는 지난 1월 20일 취임 첫날 국방장관에 민간인을 임명해 오던 관행을 깨고 퇴역 4성장군인 제임스 매티스를 임명했다. 존 켈리 국토안보부 장관도 해병대 퇴역 4성장군이다. 러시아와 내통 의혹으로 불명예 퇴진한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보좌관도 군 장성 출신이었다. 그의 후임 허버트 맥매스터는 현역 육군 중장이다.

이들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소신발언으로 트럼프 정부의 균형을 잡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매티스 국방장관은 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불신하는 트럼프에게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군사동맹”이라고 설득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관련해서는 전임 버락 오바마 정부와 마찬가지로 ‘두 국가 해법’ 노선을 지지한다. 매티스는 지난 2월 이라크를 방문해 “미국은 석유를 훔치러 여기 온 것이 아니다”라는 말로 이라크 정부를 달래기도 했다. 트럼프가 “이라크에서 석유도 챙기지 못했다”면서 이라크 침공을 비난한 것을 염두에 둔 행동이었다.

플린의 후임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은 군이 대통령과 의회 앞에서 매우 직선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1997년 저서 <직무유기>에서는 “베트남전 패인은 합참 장교들이 대통령을 상대하면서 실패가 뻔한 전략을 반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결론내렸다. 맥매스터는 트럼프가 자주 사용했던 ‘과격한 이슬람 테러리즘’이라는 용어를 두고 “그런 정의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맹목적으로 적의를 드러내기보다는 협상이 중요하다는 노선을 천명한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새로 개정해 발표한 반이민 행정명령에서 입국금지 대상국 중 이라크가 제외된 데에도 맥매스터의 주장이 반영됐다.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들은 행정부 고위 관료의 말을 인용해 맥매스터가 미국의 우방인 이라크는 입국금지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며 대통령을 설득했다고 보도했다. 맥매스터는 이라크를 입국금지 대상국에 포함할 경우 IS 테러조직을 소탕하려는 이라크와 미국의 공동노력에 지장이 생길 거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진다.

맥매스터는 NSC 상임위원직에서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를 몰아내는 데도 성공했다. 배넌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공로로 백악관에 입성해 전문분야도 아닌 NSC에 개입하며 맥매스터 보좌관과 갈등을 빚어 왔다. ‘아웃사이더’인 배넌이 축출되면서 정통 군인인 맥매스터가 권력투쟁에서도 승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허버트 맥매스터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2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별장 마라라고에서 연설하고 있는 것을 듣고 있다. / AP연합뉴스

허버트 맥매스터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2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별장 마라라고에서 연설하고 있는 것을 듣고 있다. / AP연합뉴스

백악관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안보보좌관

트럼프 정부의 대외정책에 있어서 새롭게 떠오르는 인물은 니키 헤일리 유엔대사다. 트럼프는 12일 폭스비즈니스 채널과의 인터뷰에서 시리아 정책과 관련된 관료들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매우 잘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헤일리가 가장 먼저 언급됐고, 국무장관인 렉스 틸러슨은 그 다음이었다.

틸러슨은 국무장관으로서 존재감을 제대로 드러내고 있지 못하다. 엑손모빌 경영자를 지냈을 뿐 공직은 물론 외교경험이 전무하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말하는 것도 극도로 꺼린다. 그는 역대 최약체 국무장관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틸러슨의 소극적인 행보로 생긴 공백을 헤일리가 채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헤일리의 발언 내용이나 시점을 잘 살펴보면 트럼프 정부의 외교정책을 가늠해볼 수 있다.

헤일리는 지난 9일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건재하는 한 시리아의 평화와 안정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트럼프 정부가 아사드 축출로 가닥을 잡은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레짐 체인지’가 목표는 아니라는 틸러슨의 말과는 달랐다. 션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이튿날 “아사드가 권좌에 있는 한 평화로운 시리아는 상상할 수 없다”며 헤일리의 말에 힘을 실어줬다.

헤일리는 아사드 정권의 화학무기 사용이 드러난 바로 다음날인 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에서 미국이 독자행동에 나설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토마호크 미사일이 시리아 공군기지로 날아갔다. 12일 안보리 회의 때는 “이제 외교력에 무게추를 둘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시리아 군사공격보다는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는 데 힘을 실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트럼프도 이날 폭스비즈니스와 인터뷰에서 “시리아에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해 군사개입보다는 외교적인 채널을 가동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트럼프는 지난해 11월 대통령 당선자 신분으로 당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였던 니키 헤일리를 만났을 때부터 그에게 국무장관직을 제안했다. 하지만 헤일리는 외교경험이 부족하다며 장관직을 거절했고 대신 유엔대사를 맡았다.

하지만 헤일리가 트럼프 정부의 외교정책을 대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자신의 정치적 소신에 따라 강하게 목소리를 낼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공화당 경선 당시 후보로 트럼프가 아닌 마르코 루비오를 지지했다. 인도계 시크교도 이민자 가정 출신인 그는 트럼프가 반이민 정서를 부추기는 것을 강도 높게 비판해 왔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가운데)이 2월 20일 바그다드 국제공항에 도착해 더글러스 실리먼 이라크 주재 미국대사의 환영을 받고 있다. / AP연합뉴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가운데)이 2월 20일 바그다드 국제공항에 도착해 더글러스 실리먼 이라크 주재 미국대사의 환영을 받고 있다. / AP연합뉴스

유엔대사가 국무장관보다 더 존재감

유엔대사가 된 뒤에도 러시아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트럼프와 거리를 뒀다. 헤일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첫 연설 당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병합을 비난했고, 이에 대한 제재가 계속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가 트럼프가 당선되도록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헤일리가 유엔본부가 워싱턴과 꽤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과 틸러슨의 공백을 십분 활용해 러시아에 계속 강경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틸러슨이 공개적인 행보에 박차를 가할 경우 그와 충돌하거나 입지가 축소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틸러슨은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공격 이후 절친으로 알려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정부를 연일 비판하며 조금씩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헤일리 본인도 외교경험이 부족한 데다 유엔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참모들 또한 외교경험이 부족하다는 것 또한 아킬레스건이다. 폴리티코는 헤일리가 그의 오랜 전략분석가인 존 러너를 유엔부대사에 앉히는 등 유엔에 자기 사람들을 심으면서 다른 외교관들에게 정치세력화를 꾀한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박효재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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