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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현 회장 사퇴 대선판도 변수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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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선 “출마 가능성 없다”면서도 향후 행보 주목

“홍석현 회장이 중앙일보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개인적인 판단을 내린 것인데, 거기에 대해서는 제가 드릴 말씀이 없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의 말이다. 3월 20일, 이 전 부총리와 이원재 여시재 기획이사의 대담집 <국가가 할 일은 무엇인가> 기자간담회가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기자회견 일정은 홍석현 전 회장의 사퇴 발표 이전부터 잡혀 있었다. 주목을 끈 것은 이들 대담자와 홍석현 전 회장의 관계다. 이 전 부총리는 지난해 출범한 싱크탱크 여시재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원재 기획이사와 마찬가지로 홍석현 전 회장도 여시재의 이사를 맡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이사회에 참석하는 이사들은 우리 사회의 경제·정치·법조계 핵심 인사들을 망라하고 있다. 홍 전 회장이 이사로 참여하면서, 중앙일보 계열사와 여시재의 공동기획사업이 많았다.

지난 3월 19일 발행된 중앙일보의 일요판 신문 「중앙SUNDAY」에서 자신의 사퇴 문제를 비롯, 현안에 대해 인터뷰 중인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 / 중앙SUNDAY

지난 3월 19일 발행된 중앙일보의 일요판 신문 「중앙SUNDAY」에서 자신의 사퇴 문제를 비롯, 현안에 대해 인터뷰 중인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 / 중앙SUNDAY

“홍석현 사퇴, 여시재와 무관”

앞서 이헌재 전 부총리의 답은 홍석현 전 회장의 최근 발언과 이번에 낸 책에서 언급된 내용 중 공통분모가 많지 않으냐는 <주간경향>의 질문에 대한 답이다. 다음은 이날 간담회 이후 질의응답 시간에 이헌재 전 부총리와 오간 답 중 홍석현 전 회장의 출마 또는 대선과 관련된 문답이다.

홍 전 회장이 출마하면 여시재가 출마를 뒷받침할 싱크탱크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여시재는 홍 전 회장과 아무런 정치적 입장도 공유하지 않는다. 싱크탱크 속성상 정치·사회·경제문제를 당연히 다룰 수밖에 없지만, 정치 내지는 정당 상황에 개입해 들어가진 않을 것이다. 물론 미국은 공화당이나 민주당 계열의 싱크탱크들이 있지만 여시재는 정치나 정당 문제에 관여를 하지 않을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이사회를 통해 생각을 교류해오지 않았나.

“그것은 여시재 재단 이사들의 교류프로그램이라고 보면 된다. 재단 이사회는 1년에 공식적으로 두 번 하게 되어 있지만, 한 달에 한 번씩 새벽 7시에 모여 한국 사회의 여러 현안을 두고 2시간씩 토론하고 초청한 사람들 이야기도 듣고 같이 고민할 장을 만들어보자는 모임이지, 정치적인 모임이 아니다.”

여시재의 부원장을 맡고 있는 이광재 전 지사와 이 전 부총리, 그리고 같이 책을 쓰신 이원재 이사의 과거경력(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까지 묶어서 참여정부 삼성 인맥이라고 음모론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이광재 전 지사는 예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삼성자동차 문제 해결 대책위원장을 맡은 시절(1999년)에 만났다.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수시로 나를 찾아왔다. 당시 내가 금융감독위원장이었다. 여시재 이사장을 내가 맡은 건 이광재 부원장과의 개인적인 인연보다는 출연자인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과 몇십 년 된 관계가 있어 다른 것을 할 계획을 포기하고 맡은 것이다. 이원재 기획이사도 이 전 지사와 상관없이 내가 눈여겨 보고 있다가 어렵게 모셔온 것이다. 삼성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내가 ‘안티삼성’이라는 것은 시장에서 다 알고 있다. 이 전 지사도 삼성과 관련 없을 것이다. 2002년 선거 당시 삼성에서 국가경영전략서를 만들었는데, 당시 한나라당은 여의도연구소가 있으니 전략서를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노무현 캠프는 당시 급조된 캠프여서 삼성에서 나온 보고서 몇 개를 참고했을 뿐이다.”

이날 기자간담회를 앞선 주말, 홍석현 중앙일보·JTBC 전 회장의 갑작스러운 사퇴 뉴스가 나왔다. 사퇴는 토요일 초저녁, 사내 이메일을 통해 중앙미디어네트워크 전 직원에게 보내는 메일 형태로 나온 메시지다. 메일 내용 중 주목받은 대목은 이 부분이다.

“오랜 고민 끝에 저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기로 결심했습니다. (…) 구체적으로 저는 남북관계, 일자리, 사회통합, 교육, 문화 등 대한민국이 새롭게 거듭나는 데 필요한 시대적 과제들에 대한 답을 찾고 함께 풀어갈 것입니다.” 홍 전 회장은 “그러한 작업들은 명망있는 전문가들에 의해 재단과 포럼의 형태로 진행될 것”이라며 “그렇게 중지를 모아 나온 해법들이 실제로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겠다”고 밝혔다.

보태겠다는 ‘작은 힘’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직후 정치권에서는 사실상의 출마선언으로 받아들였다.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각 당의 후보 경선이 시작된 마당에 너무 뒤늦은 결심이지 않으냐는 것이었다. 이날 저녁, 관련 문의에 대해 중앙일보 관계자들은 말을 아꼈다. “홍 전 회장은 자신의 사퇴 배경에 대해 일요일자로 발행되는 <중앙선데이> 인터뷰를 통해 소회를 이미 모두 밝혔다. 거기에서 더 첨부할 것은 없다”는 반응이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여시재의 이사회가 열리는 한옥건물 대화당(大化堂).

한 달에 한 번씩 여시재의 이사회가 열리는 한옥건물 대화당(大化堂).

<중앙선데이> 인터뷰는 두 차례(3월 8일과 16일)에 걸쳐 이뤄진 것이었다. 사퇴에 대한 언급은 이 매체 기자들이 대선 출마설에 대한 입장을 묻고, 다시 ‘확실한 입장을 어느 선까지 밝힐 수 있나’라고 추가적으로 물은 데 대한 답에서 나온다. “거기에 대해 확실한 입장을 밝히긴 어렵다. 앞으로 뭘 더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 중앙일보·JTBC 회장직도 사퇴하고 경영에서 손을 뗄 생각이다. 열심히 고민을 해서 할 일을 한두 가지 찾았다. WCO(월드컬처오픈)도 그 중 하나이고. 또 하나는 유연한 싱크탱크를 해보고 싶다. 중앙일보 밖에 사무국을 차려 요즘 국민들이 한 번 풀어줬으면 하는 문제를 머리를 맞대고 풀어보고 싶다. 예를 들면 교육, 청년실업, 기업의 지배구조, 한·중 갈등 같은 것을 선택한다고 하면 정부의 장관 혹은 부총리 이상 지낸 분을 좌장으로 모셔서 서너 명의 학자와 실제 현장에 있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태스크포스를 만드는 거다. 지속적인 연구와 세미나를 열어 결과물을 낸 뒤 현장의 반응을 알아보고 6개월 이내, 아무리 오래 걸려도 1년 이내에 현실감 있는 대책을 제시하는 걸 해볼까 생각하고 학자들과 논의하고 있다.”

부총리급 좌장 TF팀? 홍 전 회장 구상모델은

답변에서 주목할 만한 대목은 여러 군데다. WCO는 중앙일보 지면을 제외하고는 거의 활동내용이 알려져 있지 않다. WCO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이미 10년 넘은 활동 결과물이 축적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홈페이지에 게재되어 있는 브로셔를 보면 국내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 등지에서 상당한 활동을 벌여왔다는 것이 눈에 띈다. 그런데 홈페이지 상에서는 구체적으로 이 단체에 누가 참여하는지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각종 수상 사진 속 중심인물이 홍 전 회장이라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국세청의 공익법인 공시시스템에 등록된 자료에 따르면 이 단체의 최초 설립일은 2007년 8월 21일이다. 처음 설립 당시 이름은 화동문화재단이었고, 개인과 가족이 출연한 지정기부금 단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개인은 홍 전 회장으로 보인다. 이 재단의 공식적인 현재 이름은 월드컬처오픈 화동문화재단이다. 지난 2013년 5월 한국의 의식주문화를 연구하는 이 재단 부설 전통문화연구소에 홍 전 회장의 장녀 홍정현씨가 기획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 앞서 <중앙선데이> 인터뷰에서 홍 전 회장은 자신의 아들 홍정도 사장이 디지털 혁신과 함께 “미래전략이나 회사가 나아갈 큰 방향을 짜는 데 치중할 것”이라고 밝힌다. 후계구도와 관련,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중앙일보는 전통적으로 선대 홍진기 회장 때부터도 그랬고, 나도 경영과 편집을 엄격하게 분리하는 체제를 지켜왔다. 홍 사장도 편집·편성권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는 전통을 지켜 나가리라 믿는다.”

<중앙선데이> 인터뷰에서 주목을 끈 대목은 ‘장관 혹은 부총리 이상 지낸 분을 좌장으로 모셔’ ‘서너 명의 학자와 함께’, ‘현장에 있는 여러 사람과 함께’ 태스크포스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홍 전 회장이 관여한 조직 중 이 모델과 유사한 형태를 띠는 조직은 두 개다. 하나는 리셋코리아다. 총 13개 분과로 이뤄진 리셋코리아의 각 분과별 구성 명단을 살펴보면 실제 좌장을 장관이나 장관급인 전 합참의장이 맡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중앙일보가 JTBC와 함께 ‘2017년 어젠더’로 삼은 이 리셋코리아에 참여한 면면 중 상당수는 이미 각 대선주자 캠프에 이름을 올린 이들과 중복된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홍 전 회장의 발언과 관련해 홍 전 회장이 언급한 ‘유연한 싱크탱크’의 모델로 참고한 것이 바로 여시재의 이사회라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헌재 전 부총리의 답변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여시재의 이사회는 매달 1회 조찬모임 형식으로 열려 왔다. 단순히 운영방향을 심의·의결하는 형식적인 자리가 아니라 각 분야의 전문가를 초청해 강연을 듣고 토론하는 형식으로, 부암동 산꼭대기에 있는 여시재 회의실에서 오전 7시에 시작해 2~3시간 동안 진행되는 회의다. 이사회와 관련, 과거 <주간경향> 취재에 여시재 관계자는 “이헌재 전 부총리는 형식적인 이사장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미래를 콘셉트로 진행되는 강연과 토론회를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다”며 “이사들도 대부분 바쁜 사람들이지만 거의 100% 참석해 토론을 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사회를 취재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 관계자는 “이사 중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 역시 참여하고 있는데 그쪽에서도 아직 공개된 적이 없다”며 “참여하는 이사들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었다. 이후 이사회 토론 일정은 딱 한 번 공개된 적이 있다.(박스 참고)

“19대 대선을 두고 홍 회장이 출마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여시재가 그 발판이 될 것”이라는 해석은 지난해 하순부터 꾸준히 나왔다. 특히 지난해 9월 21일 열린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김부겸 의원, 나경원 의원, 남경필·안희정 지사 등 여야의 대선주자급 인사들이 대거 참여한 것과 관련, 여시재가 ‘19대 대선국면에서 ‘중도지대의 대연정’ 플랫폼으로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무성했다.

홍 전 회장의 대선 출마와 여시재라는 주제를 두고 주목을 받는 것은 이광재 전 지사의 행보다.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는 여시재의 상근부원장을 맡고 있다. 앞서의 미디어데이 행사나 10월 11일 열린 동북아포럼과 같은 대외행사뿐 아니라 내부적인 활동을 주도하고 있는 인사가 이 전 지사다.

‘좌희정 우광재’라는 말로 요약되듯, 이광재 전 지사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었다. 두 사람은 1965년 동갑이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캠프에서 안희정은 정무팀장, 이광재는 기획팀장을 맡아 캠프를 이끌었다. 이 전 지사는 지난 2011년 열린 노무현 대통령 2주기 추도식에서 안 지사에게 “2017년 대선에 도전해 경쟁하자”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 제안은 이 전 지사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으면서 무산되었다. 확정판결로 2021년까지 피선거권이 제한됐기 때문이다.

2016년 9월 21일 열린 여시재 Media Day 행사에 참여한 여야 정치인들과 이광재 상근부원장(맨 왼쪽), 왼쪽부터 나경원 의원,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헌재 여시재 이사장, 남경필 경기도지사, 김부겸 의원, 이창호 외신기자클럽 회장. / 정용인 기자

2016년 9월 21일 열린 여시재 Media Day 행사에 참여한 여야 정치인들과 이광재 상근부원장(맨 왼쪽), 왼쪽부터 나경원 의원,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헌재 여시재 이사장, 남경필 경기도지사, 김부겸 의원, 이창호 외신기자클럽 회장. / 정용인 기자

홍 전 회장, 아들 경영권 승계가 사퇴 이유?

그러나 탄핵국면에서 그의 정치적 역할에 대한 이야기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피선거권이 제한되었다고 정치활동 전반이 금지된 것은 아니다. 출마를 제외한 모든 활동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전 지사가 어느 날 갑자기 특정캠프에 참여한다고 선언한다고 해서 규제를 받는 것은 아니다.” 야권 정치권 인사의 말이다. 이 인사는 “이 전 지사로서는 억울하게 당한 면이 없지 않다. 2021년까지라고 하지만 차기 정권이 들어선다면 사면받을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과거의 ‘동지’였던 안희정 후보 캠프나 문재인 캠프와 관련한 그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홍석현 전 회장의 사퇴 이후 역할과 관련, 그의 역할설이 다시 정·재계를 중심으로 돌고 있지만 역시 확인되지는 않는다.

자신이 민주당 쪽 후보들과 홍 전 회장을 매개하고 있다는 ‘설’과 관련, 이광재 전 지사는 <주간경향>에 “터무니없는 이야기”라며 일축했다. 여시재 관계자는 “이 부원장이 개인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상근자로서의 활동 중 정치 관련 일은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이번 대선국면에서 홍석현 전 회장의 출마 가능성은 있을까. <주간경향>이 접촉한 중앙일보 전·현직 관계자들은 “홍 전 회장 자신이 출마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홍 회장으로서는 명분이 없다. 오히려 독이 된다. 차기나 차차기를 노리면 모를까 이번 대선 당선을 위해 세를 규합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전 중앙일보 고위관계자 ㄱ씨)

이른바 ‘홍석현 대망론’은 바깥에서 나온다.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은 3월 21일 ‘오마이TV’에 출연해 “홍 회장의 대선 출마 가능성은 90%”라는 언급을 한다. 정치부 기자 출신인 자신이 직접 취재해본 결과 2015년 12월부터 캠프를 꾸려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홍 전 회장을 중심으로 한 캠프가 규합되고 있다는 소문은 여의도 정가를 중심으로 꾸준히 나오고 있다. 공식적인 출마선언을 하지 않은 현재는 인지도 등에서 미미하지만, 조만간 계획되어 있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독대 등의 ‘이벤트’를 거치면 유력한 대선주자로 부각될 것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홍 전 회장 주변인사가 캠프에 들어갈 인력을 모으고 다니는 것은 확인된다. 역시 이번 대선 출마를 목표로 하는 것일까. “홍 전 회장은 현재 상황을 즐기는 것 같다. 속된 말로 광을 들고 있지 않아도 저절로 광 파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 아닌가. 사퇴 3주 전쯤 간부들 면담 자리에서 홍 전 회장에게 출마 여부를 물어봤고, 홍 전 회장이 자신의 입으로 출마하지 않는다고 밝혔다고 들었다. 정가에서 대선 출마에 대한 설왕설래가 계속되는데도 침묵하는 것은 그럴수록 더 주목을 받는 걸 알기 때문이다. 본인이 말한 대로 싱크탱크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영향력 확대가 목표라면 그 효과는 이미 극대화된 셈이니까.”(전 중앙일보 기자 ㄴ씨)

홍 전 회장의 사퇴를 최근 JTBC 보도-이재용 구속-홍라희·홍라영 삼성리움미술관 관장·부관장 사퇴와 연결시켜 보는 시각도 있다. <삼성의 몰락> 저자 심정택씨는 <비즈한국> 기고에서 “(JTBC 보도에서 구속까지 이어진) 이재용 부회장의 분노를 잠재우면서 정계진출 쪽으로 분위기를 바꾸려 하는지도 모른다”며 “대선 출마를 하든 킹메이커가 되든 홍 회장에게 최고의 가치는 중앙일보와 JTBC의 세습적 경영체제 구축”이라고 주장했다. 즉, 아들 홍정도 사장에게 물려주기 위해 삼성의 지원이 필요한데, 그것을 보장받기 위한 사퇴라는 지적이다.

현재 정치권에서 활동하고 있는 앞의 ㄱ씨는 “홍 전 회장의 선택은 출마가 아닐 것”이라면서도 한국 정치 환경의 역동성을 강조했다. 그는 “지금까지 한국 정치에서 대선을 보면 비전을 제시한다기보다도 실수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데, 막판 판세가 엎어지면서 ‘홍석현 대안론’이 부각될지 또 누가 알겠느냐”며 “지금은 전국적 범위에서 문재인 대세론이 초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아직 한 달도 더 남은 대선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여운을 남겼다.

여시재, 그리고 이광재 상근 부원장의 행보는

여시재의 이사회는 한 달에 한 번, 부암동 산꼭대기에 자리잡은 대화당(大化堂)이라는 개량한옥 건물에서 열린다. 평소 여시재의 활동은 바로 옆에 자리잡은 4층짜리 벽돌건물, 연구동과 후생동에서 이뤄진다. 대화당 반대편 풀밭에는 오솔길이 나 있다. 오솔길을 따라가면 바로 인접해 있는 3층짜리 가정집으로 연결된다. 이 가정집은 이광재 여시재 상근부원장의 집이다. 실제 등기부등본을 떼보면 이 집은 부인 이정숙씨가 지난 2015년 5월부터 소유한 것으로 되어 있다. 집이 가까우니 이 부원장은 “밤이나 낮이나 가리지 않고” 여시재에 드나들면서 연구와 네트워킹에 매진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상임부원장의 활동이 여시재에 머물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시재 관계자는 “이 부원장이 시내 서점 등에 나가 신간을 둘러보다가 한국 사회의 미래에 대해 탁견이 있거나 멀리 내다보는 사람이 있으면 연락처를 수배해 만나서 강의를 듣기도 한다”며 “그런 자리가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서너 명씩 작은 모임을 만들어 여시재 주변에 묶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혹시 이런 모임이 향후 정치적 활동의 토대가 되지 않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이 인사는 “워낙 관심사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라 하나로 묶일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확실한 것은 과거 진보나 보수와 같은 진영논리로 가르기엔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가 너무 절박하다는 데 동의한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여시재의 이사진은 알려진 것처럼 정창영 삼성언론재단 이사장(연세대학교 총장), 홍석현 중앙일보·JTBC 전 회장, 김도연 포항공대 총장, 안대희 법무법인 평안 대표변호사, 김현종 전 유엔대사, 그리고 김범수 카카오이사회 의장, 박병엽 전 팬택 대표이사 부회장 등이다. 한 달에 한 번 이사회에서 강연 및 토론을 한다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주제로 이뤄졌는지에 대해서는 공개되지 않았다. 여시재의 홈페이지 캘린더 항목에서 이사회가 언제 어떤 주제로 열렸는지에 대해서는 공지되지 않고 있다. 다만, 지난 1월 19일 열린 신년이사회 때 김승수 전북 전주시장이 ‘도시의 가치와 미래’를 주제로 강연했고, 이 자리에서 안대희 변호사와 홍석현 전 회장과 주고받은 문답은 당시 언론 보도를 통해 공개되어 있다.

여시재의 원장 자리는 현재까지 공석이다. 홍 전 회장이 중앙일보·JTBC 회장을 그만두면서 원장으로 오는 것이 아니냐는 일부의 관측에 대해서 앞의 관계자는 “본인이 이미 이사를 맡고 있는데 조직 구성상 아래에 있는 원장으로 온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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