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딸로 잘 나가는 ‘퍼스트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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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딸’이 아버지 곁에서 권력을 휘두르거나 정치인으로 변신한 사례는 많다. 영국 BBC방송 등은 아버지의 후광 덕에 이방카만큼이나 잘 나가는 세계의 ‘퍼스트도터(first daughter)’들을 조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처인 이바나 트럼프(68)는 트럼프와의 사이에서 도널드 주니어와 이방카, 에릭 세 아이를 낳았다. 이바나는 아이들을 키운 이야기를 담은 책 <트럼프 키우기>를 오는 9월 발간할 예정이다. 이바나는 책 출간 계획을 발표하면서 낸 성명에서 “어떻게 그렇게 아이들을 휼륭하게 키웠느냐고 사람들이 묻지만 사실 마법 같은 건 없다. 난 그저 아이들에게 돈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거짓말하거나 속이거나 훔치지 말라고 가르친, 좀 엄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엄마였을 뿐”이라고 밝혔다.

트럼프의 세 아이가 남들이 감탄하며 교육법을 물어볼 정도로 훌륭하게 자라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 중 한 명인 이방카(35)가 지금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대통령의 자녀’인 것만은 분명하다. 트럼프가 대선에 출마했을 때부터 ‘이방카의 말이라면 뭐든 듣는다’는 얘기가 돌았고, 심지어 한때 이방카가 러닝메이트가 될 것이라는 추측까지 나왔다. 트럼프의 아내 멜라니아 대신 이방카가 사실상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도 무성했다. 이방카는 최근 다시 미국 언론들의 시선을 끌었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백악관 웨스트윙(서쪽 별관)에 사무실을 내기로 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대통령 자녀에게 직함도 없이 공식적으로 백악관 사무실을 내준 적은 없다. 이방카가 트럼프 정부에서 막강한 권력을 지닌 여성으로 위치를 굳힌 것이다.

사실 ‘대통령의 딸’이 아버지 곁에서 권력을 휘두르거나 정치인으로 변신한 사례는 많다. 영국 BBC방송 등은 아버지의 후광 덕에 이방카만큼이나 잘 나가는 세계의 ‘퍼스트 도터(first daughter)’들을 조명했다. 대표적인 예가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의 딸 마리암(43)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 1일 딸 이방카와 함께 대통령 전용 헬기인 마린원을 타기 위해 워싱턴 백악관 정원을 걷고 있다. /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월 1일 딸 이방카와 함께 대통령 전용 헬기인 마린원을 타기 위해 워싱턴 백악관 정원을 걷고 있다. / AP연합뉴스

백악관 별관에 안착한 이방카 트럼프

마리암은 원래 가족이 운영하는 자선단체에서 일했다. 2013년 아버지의 재선 과정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고, 현재는 여당인 파키스탄무슬림리그(PML)에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마리암은 지난해 조세회피처 자료인 ‘파나마 페이퍼스’에 이름이 올라 논란에 휩싸였다. 그와 두 명의 형제들이 런던에서 고가의 자산을 사들이기 위해 페이퍼컴퍼니와 연계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샤리프 총리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나와 내 가족을 겨냥하고 있다”고 일축했지만, 의혹은 끊이지 않는다. 대법원은 조만간 이번 사건에 대한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수메이예(31)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막내딸이다. 에르도안이 ‘나의 가젤(아름답고 소중한 사람)’이라 부를 정도로 아버지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미국과 영국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에르도안이 집권 정의개발당(AKP)을 이끌 때 자문역으로 일했고, 해외 순방에도 자주 동행했다. 2015년 의회 진출설이 나왔지만 정치에 본격 뛰어들지는 않은 채 여권 옹호그룹에서 활동하고 있다.

에모말리 라흐몬 타지키스탄 대통령의 딸 오조다(39)는 20년 가까이 장기집권하고 있는 아버지를 뒷받침하고 있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외무부에서 일을 시작해 2009년에는 외무차관을 맡았다. 2016년에는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됐고 상원의원에도 당선됐다. 남편은 중앙은행 부총재다. 타지키스탄의 정치는 라흐몬 일가의 ‘패밀리 비즈니스’나 마찬가지다. 라흐몬의 자녀 9명 중 맏아들 루스탐은 수도 두샨베의 시장이다. 오조다의 여동생 루크흐쇼나는 외무부에서 일한다. 다른 가족들도 재계나 정부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앙골라를 38년간 통치한 호세 에두아르도 도스 산토스 대통령의 딸 이사벨(43)은 국영석유회사 소난골의 대표다. 대우조선과 드릴십(시추선) 인도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회사다. 2013년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이사벨을 아프리카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으로 꼽으면서, 약 32억 달러(약 3조5800억원)의 자산을 가진 것으로 추산했다. 영국에서 공부한 이사벨은 금융과 통신, 다이아몬드 사업에 거대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국제투명성기구는 앙골라를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 지목하고 있다.

호세 에두아르도 도스 산토스 앙골라 대통령의 딸 이사벨은 국영 석유회사 소난골의 대표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으로 꼽힌다./ 앤서아프리카(사진 위)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의 딸 마리암이 2015년 10월 22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셸을 만나 파키스탄 소녀들의 교육을 돕는 프로그램을 의논하고 있다./ AP연합뉴스(사진 아래)

호세 에두아르도 도스 산토스 앙골라 대통령의 딸 이사벨은 국영 석유회사 소난골의 대표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으로 꼽힌다./ 앤서아프리카(사진 위)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의 딸 마리암이 2015년 10월 22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셸을 만나 파키스탄 소녀들의 교육을 돕는 프로그램을 의논하고 있다./ AP연합뉴스(사진 아래)

후광 덕에 정치하다 몰락하기도

사생활을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두 딸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었다. 그러나 2015년 둘째 딸 예카테리나가 ‘카테리나 티호노바’라는 가명으로 모스크바에 살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관심을 모았다. 푸틴의 오랜 친구의 아들인 키릴 샤말로프라는 사업가와 결혼했고, 가스와 석유산업 투자 등을 통해 20억 달러 상당의 재산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예카테리나는 현재 모스크바 국립대에서 지식개발을 위한 공공기금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마리엘라(55)는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딸이자, 지난해 사망한 피델 카스트로의 조카딸이다. 현재 국회의원이자 성소수자 권리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국립성교육센터 소장도 맡고 있다. 2008년 성전환수술을 무료로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통과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퍼스트도터로서 권력과 명예를 향유하다 몰락한 경우도 드물지 않다. 지난해 9월 사망한 우즈베키스탄 장기집권 독재자 이슬람 카리모프의 딸 굴나라 카리모바(44)는 아버지를 등에 업고 경제권력을 쥐고 흔들었다. 한때 아버지의 후계자 자리까지 넘봤으나 욕심이 과했다. 거액 뇌물수수로 결국 문제를 일으켰고, 2015년 아버지 눈 밖에 났다. 지난해 아버지가 숨지면서 뉴스의 중심에서도 사라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65)은 퍼스트도터에서 대를 이어 대통령이 된 경우다. 박 전 대통령은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서거한 뒤 사실상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기도 했다. 2012년 대선에서 승리해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됐지만, 지난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으로 헌정 사상 처음으로 파면당한 대통령으로 남게 됐다. 만약 검찰이 박 대통령을 기소하게 되면 1995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이후 처음으로 법정에 서는 전직 대통령이 된다.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의 딸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70)와 필리핀 디오스타도 마카파갈 대통령의 딸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69)도 박 전 대통령처럼 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업고 부녀 대통령이 됐다. 메가와티는 정치력 부족으로 비판에 시달렸지만 물러난 뒤에도 정치인으로 계속 활동하고 있다. 아로요 역시 남편의 뇌물수수 등 측근 부패 의혹에 시달렸다. 아로요 본인도 기소됐으나 지난해 사면받았다.

<김진우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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