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은 왜 개헌을 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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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분점할 수 있는 유일한 길… 안 전 대표는 ‘자유한국당과의 합의 불가’ 입장

국민의당은 최근 두 가지 중요한 결정을 했다. 오는 대통령 선거일에 개헌안 국민투표를 함께하기로 지난 15일 자유한국당, 바른정당과 합의했다. 이로써 원내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압박하는 ‘개헌전선’이 형성됐다. 다만 자유한국당과의 개헌 합의는 불가하다는 안 전 대표의 입장에 따라 논란의 불씨가 있다. 국민의당은 또 17일 대선 예비후보 경선(컷오프)을 마치고 본격적인 경선에 돌입했다.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와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 박주선 국회부의장이 내달 4일까지 보름 동안 레이스를 펼친다. 18일에는 후보 합동 TV토론회가 예정돼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 극복’ 내세워

국민의당은 의석 규모(39석)로는 원내 제3당이다. 여론 지지율로는 자유한국당과 치열하게 2위 접전을 벌이고 있다. 17일 발표된 갤럽 조사에서는 정당지지율에서 12%를 얻어 자유한국당과 동률을 기록했다. 1위인 더불어민주당(51%)과 비교하면 압도적인 열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숫자로 표현되지 않는 역할이 중요하다. ‘보수’와 ‘진보’로 구분되는 한국 정치구도 자체를 새로 짜는 키 플레이어 역할을 해 왔다는 점이다.

국민의당은 탄핵과 개헌, 양쪽에 모두 발을 걸치고 있다. 지난해 12월 2일 국민의당의 반대로 이날 예정됐던 국회의 탄핵소추안 처리가 무산되면서 국민의당은 큰 시련을 맞았다. 새누리당 의원들과 더불어 국민의당 의원들의 전화번호도 인터넷에 공개돼 문자 세례를 받았다. 일부 의원들은 전화번호를 바꿨다. 이후 국민의당은 탄핵의 적 취급을 받고 ‘새누리와의 뒷거래설’까지 돌았고, 지금도 ‘촛불민심’의 열광적 지지를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

3월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국민의당 19대 대선 후보 예비경선에서 득표수 3위까지 차지해 본 경선에 오른 후보들이 손을 들어 환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주선, 안철수, 손학규 후보. / 권호욱 선임기자

3월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국민의당 19대 대선 후보 예비경선에서 득표수 3위까지 차지해 본 경선에 오른 후보들이 손을 들어 환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주선, 안철수, 손학규 후보. / 권호욱 선임기자

국민의당 입장에서는 억울한 면도 있다. 국민의당은 지난해 11월 21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안을 당론으로 확정했다. 민주당도 같은 날 당론을 확정했지만 국민의당이 더 빨랐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가 ‘질서 있는 퇴진’을 언급했던 반면, 안 전 대표는 일관되게 탄핵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유지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가장 먼저 언급한 이는 정의당의 노회찬 의원이다. 덩치가 작은 순대로 위험부담이 큰 카드를 빨리 꺼낸 셈이다. 한 야권 관계자는 “새누리당 의원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서 위험한 상황인 것은 맞았다”며 “불안한 상황에서 결과적으로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덮어쓴 형태가 됐다”고 했다. 강연재 부대변인이 지난 1월 23일 광화문광장의 촛불시민들을 “구태 국민”이라고 표현하면서 국민의당은 탄핵국면에서 더욱 빛이 바랬다.

정치공학적으로 개헌은 현행 대통령제에서 집권 가능성이 낮은 국민의당이 권력을 분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유권자들에게는 탄핵국면에서 떠돌았던 ‘새누리·국민의당 총리 거래설’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국민의당 입장에서는 탄핵 주역으로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극복하려는 자기 정체성의 완성 과정이다. 호남지역에 기반을 둔 국민의당 관계자는 “국민의당이 지난 총선에서 호남에서 이겼다. 호남은 승자독식 선거제도에서 오랫동안 선택권을 박탈당한 지역이었다. 안 전 대표는 지난해 총선에서 정견에 대해 본격적으로 경쟁하기도 전에 단일화 압박을 받았다. 호남에서 여러 불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민주당을 찍어야 한다’는 것과 같은 논리였다”고 말했다. 태생적으로 현재의 선거제도, 권력 창출의 제도에 대해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개헌 이슈에 대한 유권자들의 갈망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개헌은 기본적으로 ‘룰 메이커’(rule maker)들의 관심사안이다. 비새누리 정서가 강했고, 일당 독점정치가 유지된 광주·호남지역에서는 ‘선택권’ 논리가 먹혔지만, 수도권이나 충청권 등 양당이 교차 집권했던 다른 지역에서는 절실한 논리가 아니다. 여론조사 때마다 개헌 찬성 여론은 60% 이상 나오지만 분권형 대통령제, 중임제, 이원집정부제 등 다양한 형태의 개헌안을 둘러싸고 경합이 벌어지면 일반 유권자들은 익숙한 현행 유지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 국회에서 발의해 헌재가 결정을 내리는 탄핵에 이르는 과정이 민심에 부합해 ‘개헌’ 논의 못지않게 현재의 헌법체제가 민심에 불합치하지 않는다는 여론도 적지 않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중앙일보> 칼럼에서 “우리 대통령제의 ‘제왕성’은 헌법이 아닌 영역에 있다. 대통령의 ‘제왕성’을 견제하는 일은 헌법이 아니라 대통령이 한국마사회장과 일반 평검사까지 직접 임명하게 돼 있는 구조에 의문을 던지면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라고 ‘개헌 만능론’을 경계했다. 결국 개헌론은 논의가 본격화될수록 대중의 관심은 멀어지고 ‘1인자’가 불가능한 ‘2인자 정치인’들의 권력욕에 의한 경쟁으로 비쳐지기 쉬운 의제다.

유권자들 갈망이 크지 않다는 점이 문제

개헌보다 대중적 관심을 끌어당길 이슈가 필요하다. 안 전 대표는 교육분야에 대한 구체적 언급과 발언을 늘려가고 있다. 안 전 대표는 지난달 6일 파격적인 학제개편안을 내놓았다. 초등학교 과정을 1년 줄이고 중·고등학교 과정을 5년으로 통합하며 대학예비학교 2년 과정을 신설하는 내용의 ‘5-5-2’ 학제개편안을 제안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해 국민 공통과정을 줄이고 진로 탐색의 과정을 충분히 주자는 취지다. 안 전 대표는 14일 페이스북을 통해 “지난해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사교육비 격차가 8배 이상까지 벌어졌다. 소득의 양극화가 아이들의 교육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정계 입문 이후 도드라지는 안 전 대표의 강점은 일관성 있는 선명한 메시지다. 정책경쟁으로 간다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분야가 미래지향적이고 대중적 관심사에 부합하다는 점에서 당의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대학입학보장제, 수학교육과정 개혁 등을 추진하는 시민단체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은 환영 논평을 냈다.

정책과 논리를 떠나 국민의당에서 가장 부족한 점은 ‘열광’이다. 2012년 안철수 현상과 같은 열광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가장 유력한 후보인 안 전 대표의 지지율은 탄핵 기간부터 현재까지 내내 10% 선에서 안정적으로 머물고 있다. 손 의장의 지지율은 1%대다. ‘후보의 매력’ 문제와도 연관될 수 있는 문제다. 민주당의 문 후보나 안희정·이재명 후보가 각기 다른 매력으로 강력한 팬덤을 형성해 당의 외연 자체를 지역과 무관하게 확장한 것과 대비된다. 바른정당도 비슷한 이유로 자유한국당과 압도적인 지지율 격차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은 국민의당의 존재 이유와도 깊이 관련돼 있다. 당 관계자는 “우리 당 지지자들의 특징은 정치적 보수세력에 비판적이면서도, 문화적으로 강력한 운동권 분위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2012년 안철수 현상의 지지자들 특색으로 언급됐던 특성이다. <한국일보>가 지난해 총선 직전 한국리서치와 함께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당 지지층의 56%는 민주당에서, 30%는 새누리당에서 옮겨온 것으로 나타났다. ‘대변되지 못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이 목소리가 ‘권력구조의 개편’ 없이는 쉽게 확산되기 어렵다는 것이 국민의당이 처한 딜레마다. 김종인 전 민주당 의원처럼 ‘강력한 카리스마적 인물’ 혹은 ‘매력적 인물’이 당 밖에서 행보를 보일 때 이 ‘대변되지 못한 목소리’는 손쉽게 옮겨갈 위험도 있다.

대선 이후 의회정치가 다당제 혹은 양당제 중 어느 구도로 갈지도 국민의당의 행보에 달렸다. 바른정당과 합당 혹은 제3지대 구축에 나선다면 20대 국회는 양당제 구도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국민의당 지지 기반인 ‘호남민심’의 특성상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만약 대선에서 이긴다고 해도 집권 이후 국민의당이 지금처럼 협조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인사청문회 하나도 국민의당이 인정해야 통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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