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케 도쿄도지사, 일본 첫 여성총리 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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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선거에서 독자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고이케 지사가 자민당을 탈당, 신당을 창당하는 시나리오가 가동되는 경우에도 ‘아베 1강’ 구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고이케의 힘은 지사 취임 이후 추진해온 강력한 ‘개혁’에서 나온다.

지금 일본의 정계에서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이외의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60%대를 오르내리는 높은 지지율 속에 아베에게 도전장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상황이다. 이시바 시게루(石場茂) 전 지방창생담당상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 등이 ‘포스트 아베’의 자리를 노리고 있지만, 아직은 힘이 약하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東京)도지사의 움직임을 주목하는 사람이 많다. 각종 개혁정책을 바탕으로 인기를 모아가면서 아베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치러진 각종 선거에서 사실상 아베를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둠으로써 그의 인기와 힘이 결코 거품이 아님을 입증하고 있다.

‘포스트 아베’ 선두주자인 선거의 여왕

2월 5일 치러진 도쿄도 지요다(千代田) 구청장 선거에서 고이케 지사가 지원한 무소속 후보 이시카와 마사미(石川雅己·75·선거 당시 구청장) 후보가 65.2%를 득표해 자민당의 지원을 받은 요사노 마코토(與謝野信·41) 후보를 큰 표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고이케 지사 본인도 지난해 7월 치러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자민당 측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바 있다. 고이케는 지난해 10월 23일 치러진 중의원 도쿄 10구 보궐선거에서도 자신이 미는 후보를 당선시키는 저력을 보였다.

<교도통신>이 보선 직후 실시한 출구조사에서 도지사 선거 때 고이케에게 표를 던졌던 주민 중 74.4%가 고이케의 지원을 받는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나는 등 ‘고이케의 힘’은 곳곳에서 입증되고 있다.

이로써 오는 7월 치러지는 도쿄도의회 의원 선거에서 고이케 지사 측이 승리할 가능성이 한결 높아졌다. 고이케 지사는 도의원 선거에서 자신이 개설한 정치학교 출신 등을 후보로 대거 내세워 의회를 장악한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지난해 7월 31일 치러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승리한 당시 고이케 유리코 전 방위상이 도쿄의 한 거리에서 유권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지난해 7월 31일 치러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승리한 당시 고이케 유리코 전 방위상이 도쿄의 한 거리에서 유권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고이케의 이런 행보는 ‘아베 1강’으로 요약되는 일본 정치권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일각에서는 고이케가 ‘포스트 아베’ 경쟁에서 가장 앞서나가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일본 정계의 관심은 고이케 지사의 승승장구가 향후 치러질 자민당 총재 선거로까지 이어질 것인가로 모아지고 있다. 계속된 개혁정책을 바탕으로 아베 총리의 인기를 위협하고 있는 그가 집권당 총재 자리, 다시 말하면 일본 총리 자리에까지 오를 수도 있다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고이케 지사는 계속된 선거에서 자민당 후보와 대결을 펼치면서도 자민당 당적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를 놓고 고이케 지사가 언젠가는 자민당 총재 자리를 노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최근 취임 6개월을 맞아 진행된 언론 인터뷰에서 고이케 지사는 ‘향후 자민당 총재를 목표로 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명확한 부정을 하지 않아 ‘역시 총리 생각을 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7월 도의회 의원 선거에서도 고이케 돌풍이 이어지는 경우 정계 전체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009년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크게 패한 자민당이 이후 중의원 선거에서도 패배하면서 정권을 민주당(현 민진당)에 넘겨준 사례가 있다.

각종 선거에서 독자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고이케 지사가 자민당을 탈당, 신당을 창당하는 시나리오가 가동되는 경우에도 ‘아베 1강’ 구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고이케는 자민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지만 연립 여당인 공명당, 제1야당인 민진당은 고이케에게 우호적인 상황이다. 그만큼 지지층의 저변이 넓다는 얘기다. 5일 <아사히신문>이 실시한 지요다 구청장 선거 출구조사에서 자민당 지지층의 83%, 민진당 지지층의 86%, 지지정당이 없는 사람의 85%가 고이케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고이케 지사의 힘은 지난해 10월 30일 고이케의 사설정치학교 ‘희망의 숙(塾)’을 통해 입증된 바 있다. 이 학교에 참가하겠다면서 신청서를 낸 사람이 무려 4000명을 넘어선 것이다. 고이케는 당시 “정치를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이 도쿄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손을 들고 나오고 있다”면서 자심감을 표시했다.

아베 정권에서 왕따당하는 우익정치인

고이케의 힘은 지사 취임 이후 추진해온 강력한 ‘개혁’에서 나온다. 고이케는 환경오염 문제와 담합 등 온갖 의혹에 휩싸여 있는 도쿄도 내 쓰키지(築地)수산시장 이전 문제와 관련해 “문제를 모두 들춰내 바로잡겠다”면서 정치권에까지 칼날을 들이댔다. 그는 또 2020년 도쿄올림픽 예산이 비정상적으로 부풀어오른 문제에 대해서도 손을 대고 나섰다. 그의 이런 모습은 사실상 아베 신조 정권에 대한 도전으로까지 해석되고 있다. 고이케는 지사 취임 후 자신의 급여를 절반으로 깎기도 했다. 그의 인기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잇따라 확인되고 있다. <아사히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고이케가 2020년 도쿄올림픽 개최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일부 경기장 계획을 변경하려는 계획에 대해 응답자의 78%가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산케이신문>의 여론조사에서는 고이케가 업무 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답변이 91.4%에 이르렀다.

고이케는 일본의 대표적익 우익 정치인이다. 그는 10여년 전부터 헌법 9조를 개정해 ‘자주헌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평화헌법의 개정 필요성을 주장하거나 일본의 역사교과서가 문제라고 주장하는 것은 물론 핵무장을 검토해야 한다는 발언까지 쏟아낸 바 있다.

고이케는 이처럼 ‘아베의 생각’과 궤를 같이 하는 모습을 보여왔지만, 최근 아베 정권으로부터 노골적인 ‘왕따’를 당하고 있다.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 전 지사가 사임한 뒤 “내가 도지사를 해보겠다”며 자민당 안에서 가장 먼저 손을 들고 나섰지만, 아베 정권 안에서 그를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베 정권은 마스다 히로야(增田寬也·64) 전 이와테(岩手)현 지사를 자민당 추천 후보로 내세워 고이케에 대항했다.

제1차 아베 정권에서 여성 첫 방위상의 중책을 맡았던 고이케가 이렇게까지 찍힌 이유는 뭘까. 일본 정계에서는 2012년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그가 아베 총리가 아닌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지방창생담당상을 지지한 것을 그 이유로 꼽고 있다. 아베 총리가 접전 끝에 이시바를 누르고 총재에 당선된 이후 고이케는 결국 비주류로 밀려났다.

1992년 참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해 참의원 1선, 중의원 8선의 화려한 경력을 쌓아온 고이케는 고미즈미 정권 때 환경상으로 입각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여성 첫 자민당 총재 후보(2008년), 여성 첫 자민당 총무회장(2010년) 등의 이력을 쌓아온 그는 지난해 도쿄도지사가 되면서 ‘첫 여성 총리 후보’에도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정계 입문 후 일본신당, 신진당, 자유당, 보수당, 자민당 등 이 당 저 당을 옮겨다닌 경력은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집트의 카이로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그는 방송국 캐스터로 활동하면서 얼굴을 알린 뒤 1992년 참의원 선거에 일본신당 후보로 나와 당선됐다. 2002년 고이즈미(小泉) 정권 때 환경상으로 입각했다. 도쿄도가 소유하고 있는 땅을 한국학교 용으로 임대하겠다는 도의 기존 방침을 백지화한 경력이 있다.

<윤희일 경향신문 도쿄 특파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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