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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불평등 해결방안 기본소득이 해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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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민에게 조건없이 현금 지급… 이재명 시장 대선 공약으로 논쟁 가열

‘기본소득이 답이다’ VS ‘기본소득이 답인가?’

도둑처럼 찾아온 대선국면에서 시민들의 경제적 문제 해결방안과 관련해 유일하게 진행되는 논쟁이다.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현금을 나눠준다는 ‘기본소득 아이디어’는 이재명 성남시장(더불어민주당)의 대선공약에 채택됐다. 다른 후보들의 사회정책 공약은 아직까지 구체적 내용이 발표되지 않았다. 기본소득은 현재 실험적으로나마 부분 실시하는 나라도 손에 꼽을 정도로 급진적 방안으로 평가받지만, 4차 산업혁명으로 도래할 일자리 위기와 경제적 불평등의 해결방안으로 꼽히며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해 스위스 국민투표로 인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당면한 한국 사회의 문제 해결책으로 기본소득이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도 학자들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기본소득 개념이 복지국가 설계를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기본소득이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확 끌렸어요. 매번 급여를 타기 위해 겪었던 지긋지긋한 과정을 더 이상 안 해도 되나 싶었습니다.” 기초생활수급 가정에서 자라난 임지윤씨(29·가명)의 말이다. 일용직 노동자인 임씨의 아버지(60)는 7년 전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됐다. 일은 하지만 생계비에 미치지 못해 수급자가 된 것이었다. 임씨는 2010년 시행된 희망키움통장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일정 금액을 저축해 3년 안에 수급 대상에서 벗어나면 정부가 저축액만큼 지원금을 더해 돌려주는 제도다. 저소득층이 복지정책에 안주하지 않고 근로의욕을 갖게 독려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사업은 임씨에게 목돈 대신 좌절을 안겼다. “매월 10만원씩 저축하기로 했는데, 없는 사람에게는 이 돈 마련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때로 10만원을 못 채웠다. 정부는 1년 만에 지원금을 환수하고 저축액만 돌려줬다. ‘나태한 사람’으로 간주된 것이었다. 이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비참했다. 지윤씨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해 월 150만원씩 벌어오자 아버지는 수급대상자에서 탈락할 뻔했다. ‘가세대 분리’라는 행정적 방편을 써서 문제를 해결했다. 서글픔이 밀려오는 해결이었다. 아버지 임씨는 이대로라면 평생 기초수급자에서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1월 23일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오리엔트 시계공장에서 대선 출마선언을 하며 참석자들과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이재명 성남시장이 1월 23일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오리엔트 시계공장에서 대선 출마선언을 하며 참석자들과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1인당 월 100만원’이면 588조원 필요

지윤씨는 지난해 말 직장을 그만두고 실업급여로 살고 있다. 실업급여 지급 기간과 액수는 고용보험 가입기간에 따라 다르지만 최대 240일(8개월)이고, 액수의 상한선은 원래 받던 임금의 50%이다. 계약 만료 등 비자발적 퇴사에 한해 지급된다. 그나마 구직 준비를 하고 있다는 증명을 해야 한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가고 싶지만 공부하는 3년 동안의 생활비가 걱정된다. “스무 살 때부터 항상 생활비를 벌어야 했어요. 늘 여기서 떨어지면 나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본소득 제도가 있었다면 공부도 취업준비도 더 잘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늘 한이 남아요.” 한국은 사회안전망이 어느 정도 마련된 사회다. 이 안전망에 기대 현재는 어떻게든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늙어가는 아버지 입장에서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고, 딸 입장에서는 지금보다 더 나은 기회를 얻기 위해 도전할 여유를 갖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임씨 가족이 안정적으로 살며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려면 기본소득으로 얼마를 받아야 할까. “1인당 월 100만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문제는 기본소득으로 이 돈을 지급하려면 임씨 가족뿐 아니라 다른 모든 국민에게도 지급해야 한다. 4900만명분을 지급하려면 588조원이 든다. 지난해 한국 정부 총지출이 386조7000억원이다. 2015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은 약 1500조원이다. 이 많은 재원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거둘 것인가.

이재명 시장의 공약이 실현된다면 임씨 가족이 배당받는 금액은 얼마인가. 이 시장의 기본소득 정책은 ‘생애주기별 기본소득’과 ‘전국민적 기본소득’의 두 갈래로 나뉘어 있다. 생애주기별 기본소득은 아동배당(12세 이하), 청소년배당(13~18세), 청년배당(19~29세), 노인배당(65세 이상), 특수배당(장애인, 농어민)으로 구성된다. 이들에게 모두 연 100만원씩 지급된다. 매달 8만3000원이다. 거주지 지역에서 소상공인에게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으로 지급된다. 매년 총 2800만명에게 연 28조원이 소요된다. 일반회계 예산 400조원의 7%를 감축해서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전국민 대상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연 30만원(월 2만5000원)씩 지역상품권 형태로 지급한다. 기존의 재산세(5조원), 종합부동산세(2조원)에 토지·임야 등에 대한 국토보유세를 신설해 마련한다. 상품권 형태의 지급은 지난해부터 시행된 성남시 청년배당 모델을 따른 것이다. 성남시는 시에 주민등록을 3년 이상 둔 만 24세 이하 청년들은 매달 50만원씩 지역에서만 사용 가능한 상품권을 지급한다.

[포커스]경제적 불평등 해결방안 기본소득이 해법인가

“정말 어려운 사람 돕지 못할 수도”

부동산 소유로 벌어들인 부를 재분배에 활용해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고, 소상공인 살리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전략이다. 그런데 재분배라고 하기에는 저소득층에게 돌아가는 몫이 너무 적다. 임씨 부녀의 경우 전 국민 대상 기본소득으로 5만원, 청년배당으로 8만3000원씩 매월 13만3000원의 소득을 더 올릴 수 있다. 그나마 임지윤씨가 청년배당 대상에 해당하는 1년 동안에만 적용된다. 임씨 아버지가 다시 노인배당 대상에 들기 전 4년 동안 배당액은 5만원에 불과하다. 액수도 미미하고 불완전하다. ‘기본소득’이란 급진적 이미지는 차용했지만 알맹이가 빈 정책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 시장의 기본소득제는 1년에 43조원씩 소요되는 프로그램이다. 막대한 예산이 드는 반면 정책의 효과는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43조원이면 지난해 기준 전체 노인 70%에 매월 20만원씩 지급하는 기초연금 예산액 7조8600억원의 약 5.5배, 공교육비 5조3000억원의 8배에 달한다. 지난해 교육부가 어린이집에 지급되는 누리과정 예산 1조원 지급을 미뤄 공보육이 파행을 겪었다.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취업성공패키지 예산은 1300억원이다. 15조원을 잘 활용하면 기초연금을 1인당 30만원까지 지급할 수 있고, 어린이집 보육의 질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노인빈곤, 보육 등 어느 한 분야를 획기적으로 개선해 복지국가의 발판을 만들 수 있는 돈을 모든 국민에게 5만~10만원 규모로 나누는 것은 아무런 효과도 거둘 수 없는 낭비적 정책이라는 것이다.

양 교수는 “아동·청소년·노인·장애인 배당은 기본소득이라기보다 복지국가에서 이미 시행하는 사회수당에 가깝다. 사회수당의 한 방편으로 인정할 수 있지만, 이 경우에도 기존 장애인 연금에 더해 장애인 수당이 중복 지급되는 등 프로그램이 파편화돼 바람직한 정책 방향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청년·농어민 배당에 대해서는 ‘사회복지 정책이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이 시장은 ‘농어업이 환경 보전에 기여하고, 한계농촌을 유지하기 위해서 배당이 필요하다’고 밝혔지만 설득력이 부족하다. 사회적 기여가 기준이 된다면 문화예술인, NGO활동가, 택배기사 등에게도 해당할 수 있다”며 “결국 특정 업종은 배당을 주고 특정 업종은 배당을 주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으로 사회가 가득 차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양 교수가 강조하는 것은 사회보장의 근본적 원칙에 충실히 따르라는 것이다. “현재의 복지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위험에 빠졌을 때 보상을 해주는 것”이라며 “무조건 돈을 투입하기만 하면 복지정책이라는 관념이 퍼지는 것이 우려스럽다. 평등한 분배라는 생각에 정말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못하는 정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이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공동대표(제주대 교수)는 2014년 지방선거 때 민주당 경기지사 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의 ‘무상버스 공약’의 실패를 예로 들었다. “무조건 현금을 지출하는 것이 복지가 아니다. 시민들이 교통체계에 원하는 것은 버스 노선과 운행 횟수를 늘리고 시민들이 안전하고 쾌적하게 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지, 버스비 몇 푼을 쥐어주는 것이 아니다”라며 “무상버스 공약은 결국 당 안팎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현금배당’을 강조하는 것이 버스노선 등 공공인프라 투자애 대한 반감을 조성해 오히려 복지국가 형성을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경기 동탄에 사는 남모씨(32)는 “주변을 보면 어린이집이 없는 것이 아니라 ‘보낼 만한 어린이집이 없다’고 느낀다”며 “예산이 한정돼 있다면 청년 일자리와 어린이집 교사의 수, 질에 투자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금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소장은 ‘기본소득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온 견해’라며 반박했다. 금 소장은 “기본소득은 기존의 복지체제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사회수당과 결합해 더 두꺼운 사회복지 안전망으로서 운영될 수 있다”고 말했다. “15조원이 1인에게 돌아가는 액수가 미미할지라도 전체적으로 보면 15조원의 재분배 효과가 있다”고 반박했다.

노인장기요양기관에서 요양보호사와 노인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복지정책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개인에게 지급되는 급여뿐 아니라 공공 요양기관 확충과 요양보호사 처우 개선 등에 재원을 투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 국민건강보험공단 제공

노인장기요양기관에서 요양보호사와 노인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복지정책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개인에게 지급되는 급여뿐 아니라 공공 요양기관 확충과 요양보호사 처우 개선 등에 재원을 투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 국민건강보험공단 제공

이재명 시장 “지역화폐로 지급해야”

2일 정의당에서도 기본소득의 대선 공약 채택 여부를 두고 당내 싱크탱크인 미래정치센터 주관 토론회가 열렸다. 현직 의사인 김종명 정의당 건강정치위원장은 국내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일종의 환상을 토대로 진행된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기본소득론자는 좌파든 우파든 복지국가에 필요한 큰 정부는 ‘낭비’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좌파가 무정부주의, 우파는 신자유주의 노선에 따른 작은 정부를 지향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은 우파 정부가 기존 사회보장제를 기본소득으로 대체해 줄이려는 발상이다. 그는 “그러나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존의 낮은 사회보험 보장성을 강화하고 공공인프라를 투자하는 것 아니었나”라고 말했다. 이승윤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재 국내에서 진행되는 기본소득 논의는 다른 사회보장제도나 사회서비스에 대한 축소를 제안하고 있지 않다. 기본소득을 통해 당사자들의 소득안정과 사회적 연대감 향상 등을 기대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 시장은 최근에는 소상공인 살리기 차원에서 기본소득의 효과를 강조한다. 이 시장은 지난 9일 소상공인연합회 최승재 회장을 만나 “소외계층에 그냥 현금으로 지원하면 다른 데 쓰일 수도 있는데, 지역화폐로 지급해서 반드시 의무적으로 그 동네에서 쓸 수 있게 하면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연대’의 차원에서 기본소득을 고민하는 관점이다. 반대로 소상공인 문제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자영업자 비중을 줄이고 산업경쟁력을 키워야 하는 방면으로 재원을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팽팽했다. 정의당은 당내 논의를 더 진행할 방침이다.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기본소득보다는 복지국가를 유지하고 보완하는 방식이 더 우세하다. 지난해 스위스에서 전 국민에게 월 30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방안을 두고 실시된 국민투표는 77%의 반대로 부결됐다.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축소가 우려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김진석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의당 토론회에서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감소는 꾸준히 이어져 왔지만 현재의 일자리 문제는 노동운동의 퇴조와 신자유주의의 득세, 노동시장 유연화 등의 요인과 결합돼 나타났다”고 말했다. 기본소득이 아니라 노동운동과 직업교육의 강화, 비정규직 제한 등 일자리 양극화 해소가 일자리 문제 해결에서도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금민 대안 소장은 “노동운동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가 일자리에 매여 있으면 안 된다. 일자리 없이도 먹고살 수 있어야 한다”며 기본소득의 도입을 주장한다. 그러나 실업급여의 지급기간을 늘리고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것도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 국내 논쟁에서는 어느 쪽이든 선별과정에서 모멸감을 주고 보장성이 낮은 기존의 복지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그러나 대선에서 기본소득론과 경쟁할 만한 구체적 복지국가 정책이 나오지 않는 한 학계의 논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기고

“기본소득은 복지국가 발전의 걸림돌이다”

스웨덴 같은 성숙한 복지국가들은 국민의 행복 수준이 매우 높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행복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 수준이다. 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사회복지 지출의 비중이 선진 복지국가들의 3분의 1에 불과하고, OECD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복지 후진국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미성숙한 또는 초보적 복지국가다. 그래서 OECD 평균에 비해 자살률은 3배, 노인빈곤율은 4배나 되고,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다. 경제와 복지가 유기적으로 통합된 21세기 세계에서 복지 후진국이 경제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는 없다. 결국 우리나라는 빠른 속도로 복지국가 건설에 나서야 한다.

그런데 대선국면을 맞아 기본소득 논의가 등장했다. 나는 지난 10년 동안 보편주의 복지국가 운동을 해온 복지국가 운동가로서 최근의 기본소득 논의가 장차 복지국가로 가는 길에 걸림돌이 될 것 같아 걱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애매하고 편의적인 이해를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진보적 또는 좌파적 관점의 기본소득 옹호자들이 정의한 기본소득의 핵심은 이렇다. 첫째, 자산조사 없이 다른 소득이 있더라도 개인 단위로 매달 현금을 균등하게 지급한다. 둘째, 노동 여부와 의사를 묻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지급하되 생계 보장과 사회 참여가 가능할 정도로 충분한 소득을 지급한다. 이런 원칙들을 충족해야 기본소득이고, 그렇지 않으면 가짜다.

기본소득은 기존의 복지국가 체제를 대체하려는 기획이다. 스웨덴 같은 보편적 복지국가 체제는 생애주기별로 ‘빈곤 없는 보다 공평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속적인 조정을 거쳐 국민 행복권이 보장되는 성숙한 복지국가로 발전했다. 복지국가 체제는 소득과 사회서비스를 보장한다. 먼저 소득보장을 위해 보편주의 원칙의 사회보험과 사회수당을 운용하는데, 이것으로도 기초생계비가 부족할 경우 공공부조가 작동한다. 다음으로 사회서비스 보장을 위해 보육·교육·의료·요양 서비스를 사실상 무상으로 제공한다. 성인들은 노동을 통해 소득을 얻고, 이것을 기반으로 보편적 사회보험 제도가 작동한다. 근로소득이 없는 특정 인구에 대해서는 조세 기반의 아동수당, 노인수당, 장애인수당 같은 보편적 사회수당 제도가 작동한다.

기본소득 옹호자들은 복지국가의 소득보장 제도들을 폐지하고 노동 여부를 묻지 않는 무조건적 기본소득으로 대체하자고 주장한다. 이들은 과학기술의 진보에 따라 일자리가 감소하고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라고 진단하고, 기존의 복지국가 체제가 이런 변화에 대응하지 못할 것이므로 기본소득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이 주장을 거부했고, 현실세계에서 기본소득을 도입한 나라는 없다. 이는 기본소득의 전제가 틀렸거나 너무 먼 훗날의 일이기 때문이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공지능과 로봇 때문에 기존 일자리는 줄겠지만 세 차례의 산업혁명에서 그랬듯이 새로운 일자리가 많이 생길 것이다.

그렇다면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어떻게 맞을 것인가? 복지국가의 소득보장 제도들을 폐지하고 무조건적 기본소득을 주면서 일자리 문제를 시장에 맡겨놓으면, 기존의 일자리는 줄고 새 일자리는 저임금·불안정 일자리로 전락해 노동시장의 양극화는 더 심화될 것이다. 이는 다분히 좌파 무정부주의적 입장이며, 우파 기본소득은 노골적으로 복지체제를 효율화하려는 작은 정부의 시장주의 노선이다.

결국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기본소득은 올바른 해법이 아니며, 성과가 입증된 복지국가의 책임 있는 역할이 더 많이 요구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제기된 기본소득은 성인을 대상으로 노동 여부와 의사를 묻지 않고 생계 보장이 가능할 만큼의 현금을 보편적으로 지급한다는 기본소득의 핵심 개념과는 무관하다. 가짜 기본소득이다. 이들이 아동, 노인, 장애인에게 주겠다는 기본소득은 복지국가의 보편적 사회수당인 아동수당, 노인수당, 장애인수당이다. 복지국가의 사회수당에 기본소득 딱지를 붙였다. 심지어 이들은 보편적 사회수당을 선별적인 것이라고 호도하기도 한다. 그리고 모두에게 최저생계비 이상의 현금을 지급해서 복지국가의 소득보장 제도를 대체하겠다는 기본소득의 핵심 개념은 숨겨버렸다. 결국 지금 우리나라는 기본소득이 아니라 사회보험과 사회수당을 확립하고 사회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 주력해 복지국가의 길을 재촉해야 한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제주대 교수)>

기고

“기본소득은 불평등 시정하는 현실적 대안”

2017년 대선국면에 기본소득 논쟁이 뜨겁다. 무엇보다도 추상적인 가치 논쟁을 벗어나 구체적인 정책 논쟁으로 발전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이 글은 논쟁 과정에서 제기된 세 가지 쟁점들을 기본소득론의 입장에서 다시 정리해 본다.

첫째, 비용 대비 비(非)효과성 반론’(Cost-Ineffectiveness Objection)과 기본소득 재정의 특성이다. 이재명 시장의 ‘토지배당’에는 15조원이 든다. 큰돈이다. 그런데 n분의 1로 나누면 1인당 월 2만5000원에 불과하다. 차라리 다른 용도로 돌리는 것이 사회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반론(양재진 교수)이 있다. 언뜻 보면 일리가 있다. 그런데 기본소득을 그냥 사람들끼리 능력에 맞게 돈을 내고 모인 돈을 평등하게 나누는 제도로 이해하면 반드시 그렇지 않다.

기본소득을 위한 조세는 조세의 기능 중에서 직접적인 재분배 기능만을 가질 뿐이다. 재정지출의 각 항목들의 사회적 효과를 상호 비교할 수는 있어도 기본소득이 아니라 다른 데 세금을 쓰면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논의는 무의미하다. 기본소득은 능력에 따른 조세와 평등배당을 결합시킨 위로부터 아래로의 재분배 제도이며, 구체적인 조세체계와 지급금액에 따라 불평등을 어느 정도로 시정할 수 있는지 사전에 알 수 있다. 15조원의 토지배당은 불평등을 15조원만큼 시정할 것이다. 조세배당의 규모가 1인당 월 30만원 수준, 대략 180조원 규모로 더 커지면 불평등은 그만큼 더 완화된다. 세계은행, IMF, OECD 등 국제경제기구들도 불평등이 경제성장을 저해한다고 조언하는 상황에서 선별적인 이전지출보다 재분배 효과가 더 강력한 기본소득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둘째, 명목조세와 순조세의 차이, 재정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토지배당’의 재원인 국토보유세가 중산층을 압박할 것이라는 반론이 제기됐다. 이러한 반론은 일반화할 수 있다. 즉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증세 모델 모두에 적용될 수 있다. 아무리 작은 액수라도 모두에게 준다면 소요재정 규모는 막대하다. 여기에서 기본소득은 막대한 재정을 필요로 한다는 오해, 재정 환상이 발생한다. 재정 환상은 명목조세와 순조세의 차이를 이해할 때에만 해소된다. 국토보유세 15조원의 예를 들자면, 15조원은 전액 n분의 1로 분배돼 1인당 연 30만원씩 환급된다. 실제 증세는 개별적인 보유세 부담액과 돌려받게 되는 토지배당액의 차액일 뿐이다. 바로 이 차액의 합계가 순조세 규모이다. 세율과 조세체계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순조세는 명목조세의 절반 이하일 것이다. 만약 기본소득세와 같은 특별세로 재정을 마련하면 사람들은 추가적인 조세부담액이 얼마이며 배당액은 얼마인지 더 쉽게 알 수 있다. 순조세 규모는 기본소득 재정 전체의 절반 이하이다. 그렇다면 명목조세 규모에 놀라 증세를 회피할 것이 아니라 기본소득 재정의 특성인 조세와 배당의 결합원리를 대중적으로 널리 알리고 순조세 증대는 명목조세 증대보다 훨씬 작다는 점을 인지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기본소득은 사회수당과 결합될 수 있고 공공서비스와 상호보완적이다. 복지국가론자들은 기본소득보다 선별적 사회수당, 사회보험의 강화, 공공서비스 확충으로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입장에 서 있다. 예산 제약선을 전제하고 기본소득 도입은 기존 복지를 구축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가 늘면 다른 하나가 준다는 발상이다. 그런데 기존 복지국가에도 있는 현금급여와 현물급여의 상관관계를 보면 둘은 양자택일적 교환관계(Trade-off)가 아니라 하나가 늘면 다른 하나도 늘어나는 연속적 축적관계(그랜저 인과관계·Grander causality)에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기본소득과 현물급여의 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문제는 기본소득과 선별적인 사회수당(현금급여)의 관계일 뿐이다. 물론 둘은 원리가 다르다. 기본소득은 공유(共有)부의 배당이며, 사회수당은 필요의 원리에 따른 현금 이전이다. 하지만 둘은 대립적인 것도 아니며 경우에 따라서는 결합 가능하다. 특정연령대 기본소득만 도입하거나 전면적인 기본소득이 도입되어도 지급수준이 낮으면 반드시 결합돼야 한다.

예를 들어 아동, 청소년, 청년, 노인층에 낮은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이 금액을 초과하는 액수가 필요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선별해 지급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결합이 필요한 이유는 일자리 부족과 빈곤의 보편화 때문이다. 50% 이상 70% 정도가 소득보전을 필요로 하는 상황은 결코 선별적 사회수당제도가 서구에서 처음 도입될 때 직면했던 상황이 아니다.

<금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연구소장>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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