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 가고 있는 한국의 멋을 지켜온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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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匠人)정신을 얘기할 때, 우리나라와 일본을 비교하곤 한다. 결말은 으레 ‘일본의 장인정신을 배워야 한다’는 게 보통이다. 필자는 ‘그게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갖곤 했다. 근본적으로 장인의 위상과 장인을 대하는 사회적 인식이 다르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런 차이가 나는 나름의 까닭이 있다.

메이지 시대 이전의 일본 백성은 계급 이동은 고사하고 직업 이동조차 불가능했다. 아버지의 직업이 곧 자식 직업이었다. 그 같은 철저한 계급사회에서 장인의 유일한 삶의 목표는 아버지가 만든 것보다 나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개인적으로 성공이자 출세였다. 개인적 성공을 이룬 사람에게는 ‘쇼쿠닌(職人)’이라는 찬사가 따랐다. 이것이 일본 특유의 가업 중시 풍조를 낳았다. 현재 2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기업(3146개) 전부가 가업을 승계했다. 일본도(日本刀)의 명산지인 가마쿠라에서 25대째 가업을 있는 가네코(金子)는 ‘영웅’으로 대우 받는다. 그의 작품은 예술품으로 인정받는다.

가업 성공의 비결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쇼쿠닌(職人) 정신’이라고 한다. 쇼쿠닌 정신은 ‘니혼이치(日本一) 운동’으로 이어져 오늘날에도 계승되고 있다. 이 운동은 어떤 제품을 만들든 세계 최고로 만들자는 캠페인이다. 이 캠페인의 선봉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쇼쿠닌들이다. 일본에서 쇼쿠닌은 우리와 같이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명장’을 뜻하지 않는다. 유명하지는 않아도, 대단한 퍼포먼스가 없더라도 자신이 맡은 일에 책임감과 자부심을 갖고 묵묵히 해내는 사람을 일컫는다. 이 같은 인식과 사회적 대접이 일본을 ‘기술 중시 사회’, ‘제조업 강국’으로 만든 이유다.

우정사업본부는 1월 25일 전통공예 분야에 종사하며 한국의 문화유산의 명맥을 잇는 데 크게 기여한 국가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 4인을 선정해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 우정사업본부

우정사업본부는 1월 25일 전통공예 분야에 종사하며 한국의 문화유산의 명맥을 잇는 데 크게 기여한 국가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 4인을 선정해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 우정사업본부

일본의 장인정신이 부러운 게 아니다. 일본인이 장인을 대하는 인식이 부럽다. 국가 브랜드와 제품의 가치 제고를 위해서는 선조들이 이뤄낸 전통을 중시하고 장인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적 기반이 요구된다.

마침 우정사업본부가 1월 25일 전통공예 분야에 종사하며 한국 문화유산의 명맥을 잇는 데 크게 기여한 국가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 4인을 선정해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이번에 발행하는 우표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0호 김봉룡 나전장과 국가무형문화재 제32호 김점순 곡성 돌실나이 보유자, 국가무형문화재 제48호 이치호 단청장, 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 천상원 소목장 등 4인이다. 이들은 각기 기술은 다르지만 오랜 기간 뛰어난 솜씨로 전통공예 분야에 종사하며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에 잊혀져 가고 있는 한국의 옛 멋을 발전시켜 왔다.

김봉룡 나전장은 검은 옻칠과 대비되는 화려한 빛깔을 가진 자개를 섬세하게 오려 작품을 만들었으며, 용이나 봉황 등과 당초무늬를 어우러지게 해 전통을 현대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김점순은 전남 곡성군 서곡면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독특한 길쌈 방식인 돌실나이를 전수한 장인이다. 14세부터 김예운 스님의 가르침을 받아 전통시대에 유행한 불교미술의 양식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불교미술의 대가였던 이치호 단청장(법명 만봉스님)은 예배용 부처를 비롯하여 교화용 불화, 건물의 단청까지 두루 제작했고, 전통적 소재 위에 화려한 색감과 상서로운 의미를 더하여 현대적으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천상원 소목장(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 1926~2001)은 경남 통영 출신으로 아버지인 천철동 장인으로부터 기능을 전수받았다. 그는 장롱을 비롯한 가구를 만들 때 나뭇결의 자연스러운 미를 살려내는 기술이 뛰어났다. 특히 상감기법으로 아(亞)자 무늬를 장식하는 솜씨로 유명했다.

<김경은 편집위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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