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해양영토분쟁 조짐 심상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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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소녀상 영향 양국과 감정악화, 중·일도 센가쿠 두고 신경전… 한국, 해양경비력 최악 출구가 없다

“영토주권과 해양권익을 결연히 수호할 것이며 누가 어떠한 구실을 삼는다면 중국 인민은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2017년 신년사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중국의 핵심이익에 대해서는 타협이 없으며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의미다. 내부적으로는 대국민 약속이지만 외부적으로는 타 국가에 주는 경고다.

한·중·일 3국의 해양영토분쟁 조짐이 심상찮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한반도에 배치하기로 하면서 한·중 간 밀월관계는 사실상 깨졌다. 서해에서의 한·중 어업분쟁, 이어도 인근의 한·중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의 분쟁은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 소녀상을 둘러싼 갈등으로 한·일 감정도 악화됐다. 독도 문제는 다시 들썩거린다. 중·일 간도 나쁘다. 남중국해로 진출하려는 중국을 미국과 안보동맹을 맺은 일본이 가로막고 나섰다. 댜오위다오(일본명 센가쿠 열도)를 두고 양국 간 신경전이 거세다.

상황은 심상치 않게 흘러가는데 한국은 제대로 준비를 하고 있을까? 해양주권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우선 한반도 주변 해역에서의 해양경비력 균형을 맞춰야 한다. 한국의 해양경비력은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다. 중·일 두 강자 사이에 제대로 끼여 있다. 경비함 등 최첨단 장비는 밀린다. 정부 예산 지원도 적다. 여기다 세월호 사태로 해양경찰이 와해되면서 사기는 떨어졌고, 조직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3중고’다. 이보다 더 나쁠 수 없을 정도다.

지난해 11월 30일 오후 전북 군산시 어청도 남서방 137km 지점 해상에서 해경본부 기동전단 3013함 소속 해경 대원들이 우리 해역에 들어온 중국 어선을 검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30일 오후 전북 군산시 어청도 남서방 137km 지점 해상에서 해경본부 기동전단 3013함 소속 해경 대원들이 우리 해역에 들어온 중국 어선을 검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중국과 일본은 해양경비력을 성큼성큼 강화

중국과 일본은 해양경비력을 성큼성큼 강화하고 있다. 1000톤 이상 대형 해경선 수를 크게 늘렸고, 해군의 지원까지 받으면서 제주도 남방해역에서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자칫하다가는 해양영토 싸움에서 밀려날 판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최근 ‘중·일 해양경비력 강화에 따른 전략적 대응 필요’라는 보고서를 냈다. 해양수산정책을 주로 만드는 KMI가 이 같은 보고서를 낸 것은 이례적이다. 항만 개발이나 양식, 해양관광에 주로 관심을 뒀던 KMI가 보기에도 한·중·일의 영유권 분쟁이 심상치 않다는 얘기다.

주변국 중에서는 중국의 움직임이 가장 빨라 보인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해양영토분쟁에 대비해 왔다. 해양질서와 해양권익을 수호한다는 명분 아래 해경국을 2013년 창설했다. 기존 국가해양국의 감찰총대, 농업부 어정총대, 공안부 변방해경, 세관 밀수단속국을 통합한 강력한 조직이다. 최근에는 경비함 승선원의 직무를 해군함정과 동일하게 부여하는 등 해군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또 대형 해경선을 건조하고, 퇴역 해군함을 개조해 해경국의 장비를 대형화·현대화하고 있다. 해경선의 무장도 강화됐다. 함포를 탑재하고 헬기 착륙장을 갖춘 세계 최대 규모의 해경함정 2척이 현장에 배치됐다. 이 같은 조치는 영유권 분쟁지역에서 자국의 힘을 과시하고 자국령에서의 심리적인 억지력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힘을 바탕으로 지난해 중국 해경선은 총 36회에 걸쳐 일본이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댜오위다오 영해에 진입해 순찰을 했다. 올해도 벌써 두 차례나 진입했다.

섬나라 일본이 그대로 있을 리 없다. 일본은 지난해 12월 아베 총리 주재로 ‘해상보안체제 강화에 관한 각료회의’를 개최했다. 이 회의에서 자국의 영해 수호와 관련된 주변 상황이 심각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일본은 특히 댜오위다오를 침입하는 중국 선박이 대형화되고 무장화되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또 불법조업 선박이 늘어나고, 이로 인해 충돌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에서 전략적인 대응체제를 구축하기로 했다. 우선 해상보안청의 장비와 인력을 대폭 보강했다. 약 200억 엔(2000억원)의 예산을 들여 헬리콥터 탑재형 순시선 3척과 대형순시선 2척을 마련하고, 신형 제트기와 대형 측량선, 소형 헬리콥터 등의 장비를 보강했다. 또 올해만 300명이 넘는 인원을 증원하는 등 지속적으로 인력도 늘리기로 했다.

한·중·일 해양영토분쟁 조짐 심상찮다

“해경 새 모델에 대한 논의 조속히 시작해야”

한·중·일의 해양경비력 보강은 1000톤 이상 해경선의 보유대수 변화만 봐도 표가 난다. 중국 <중화망>과 한국 해양경비본부의 내부자료를 검토해 보면 2014년 1000톤 이상 해경선 82척을 보유하고 있던 중국은 2015년에는 111척을 보유해 한 해 동안 29척을 늘렸다. 무려 35%가 늘어난 셈이다. 일본은 같은 기간 54척에서 62척으로 8척(15%)을 늘렸다. 반면 한국은 32척에서 34척으로 고작 2척(6%) 늘리는 데 그쳤다. 대형 해경선이 가장 많은 중국이 1년 새 가장 많이 순시선을 늘린 반면, 대형 해경선이 가장 적은 한국은 같은 기간 가장 적게 늘렸다. 그만큼 해양경비력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는 의미다.

문제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장비와 인력 부족을 꺼낼 여유조차 없는 상태라는 점이다.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참사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책임으로 해양경찰이 쪼개졌다. 해양경비 기능은 국민안전처의 해양경비본부로, 해경 수사권은 경찰청으로 넘어갔다. 해양경비 기능이 소방방재조직과 통합되면서 재난에 대한 대비력은 커졌지만 해양경비와 현장 대응은 약화됐다. 지난해 10월 7일 해경 고속단정이 서해에서 불법조업을 하던 중국의 공격을 받아 침몰한 사건은 해양경비력 약화의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뒤로 밀리면서 해양경찰 조직재편을 논할 기회를 좀처럼 잡지 못하고 있는 것도 답답한 부분이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해상에서의 경비력 강화 측면에서 본다면 개편된 현 체제가 과거보다 우월하다고 말하기 힘들다”며 “그렇다고 지금 상황에서 누구든 책임있게 문제를 제기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해결을 질질 끈 박근혜 정부가 남긴 또 다른 그늘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영해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할 때 해양경비력을 증강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북한과 대치 중인 상태에서 서해에는 중국의 불법조업, 남해는 한·중 EEZ, 동해는 독도 문제 등 중·일에 비해 영해는 적지만 훨씬 복잡한 사안들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남중국해로 나오려는 중국과 이를 막으려는 미국 간 G2의 대결이 동아시아에서 본격화되면서 뜻하지 않은 대형 충돌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이 잇달아 해양경비력을 강화하는 것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군사력 증강은 주변국을 자극할 우려가 높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덜 민감한 해경의 전력을 경쟁적으로 강화시키고 있다. 손발이 다 묶인 한국으로서는 속이 쓰릴 수밖에 없는 대외상황이다.

윤성순 해양수산개발원 해양정책연구실장은 “중·일 강대국과의 해양경비 확대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우리 여건에 적합한 모델의 해양경비체제를 개발해 한계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며 “과거의 해경처럼은 돌아가기가 힘들 테고, 우리의 해양경비력을 신속하게 강화할 수 있는 해경의 새로운 모델에 대한 논의를 조속히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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