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죽놀이-춘제 분위기 띄우는 소음, 진짜 전쟁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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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저녁부터 28일 오전 7시까지 베이징시는 490대의 차량을 동원해 폭죽 파편 179.5톤을 수거했다. 환경미화 관계자는 올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4.55톤이나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루샹수이수(入鄕隨俗)’. 그 고장에 가면 그 고장의 풍속을 따라야 한다. 즉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뜻의 중국 사자성어다. 올해 설은 중국에서 지내게 됐으니, 중국 춘제(春節·설) 풍습에 맞춰 지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중국에서 한국 설처럼 쇠는 게 힘들지, 중국에서 중국식으로 보내는 게 뭐 그리 힘들겠나 싶었다.

섣달 그믐밤인 지난달 27일 저녁에 가족끼리 모여 오후 8시부터 생방송하는 중국 관영방송 CCTV 종합예능프로그램 <춘완(春晩)>을 보고 만두를 먹는 것이 일반적 춘제 풍속이다. 한국에서 설날 아침 떡국을 나눠먹고 세배를 하는 것만큼 섣달 그믐밤에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데 큰 의미를 둔다. 가족과는 멀리 떨어져 있으니 <춘완>을 보며 만두를 먹는 것까지 해보기로 했다.

중국 춘제(春節·설) 다음날인 지난달 28일 새벽. 환경미화원들이 베이징 거리에 흩어진 폭죽 파편들을 청소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저녁부터 28일 새벽까지 베이징 시내에서 수거한 폭죽 파편은 180톤에 달했다. 관계자는 지난해에 비해 상당히 줄어든 수준이라고 밝혔다. / 바이두

중국 춘제(春節·설) 다음날인 지난달 28일 새벽. 환경미화원들이 베이징 거리에 흩어진 폭죽 파편들을 청소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저녁부터 28일 새벽까지 베이징 시내에서 수거한 폭죽 파편은 180톤에 달했다. 관계자는 지난해에 비해 상당히 줄어든 수준이라고 밝혔다. / 바이두

가수들의 공연과 무술, 코미디, 중국식 만담 등이 어우러진 종합쇼 <춘완>은 몇 시간이 지나도록 재미있는 코너가 눈에 띄지 않았다.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새벽 12시 반까지 이어지는 긴 쇼는 이제 인기가 많이 시들해졌다. 베이징에 사는 친구 정하이롱은 “<춘완>은 틀어놓고 딴 거 하는 프로그램”이라면서 “볼거리는 없지만 라디오처럼 틀어놓으면 명절 분위기를 낼 수 있다”고 했다.

위기는 지루한 <춘완>이 아니라 춘제를 맞아 시작된 중국의 폭죽과 불꽃놀이에서 왔다. 아파트 단지 안은 물론이고, 도로변 인도에서 여기저기 폭죽과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오후 11시쯤부터 빈번해지기 시작하더니 자정 즈음에는 절정을 이뤘다. 그동안 폭죽 때문에 스모그가 더 심해진다는 뉴스를 보면 과장 아닌가 싶었는데, 직접 겪어보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넓이가 2m쯤 되는 창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불꽃 너댓 개가 동시에 보였다. 한 번 끝나면 또 연이어 터지니 동네 전체가 불꽃놀이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웬만한 불꽃축제가 부럽지 않았다.

보기는 아름답지만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큰 소음이 문제였다. 아프리카 출장 갔다가 공포탄을 쏘며 위협하는 강도를 만난 적이 있는데, 폭죽 소리를 듣고 있자니 수년간 잊고 있던 그때 생각까지 났다. 오전 1시쯤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이제 좀 잘 수 있나’ 싶으면 또 폭죽이 터졌다. 새벽 3시에도 폭죽을 터뜨리는 사람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베이징에서 태어난 친구 펑레이는 “어렸을 땐 이것보다 훨씬 더 심했다”며 “요즘 폭죽은 시끄러운 축에도 못 든다”고 했다. 아파트 단지별로 아이들끼리 경쟁이 붙어 누가 더 크게 폭죽놀이를 하는지 내기가 붙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땐 진짜 전쟁 같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베이징시는 공기오염, 안전사고 등을 이유로 폭죽, 불꽃놀이를 제한하고 있지만 폭죽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명절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중국인들의 풍습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신경보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저녁부터 28일 오전 7시까지 베이징시는 490대의 차량을 동원해 폭죽 파편 179.5톤을 수거했다. 환경미화 관계자는 올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4.55톤이나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진짜 전쟁 같았다던 예전엔 대체 어느 정도였을까.

춘제 연휴 기간 내내 폭죽과 불꽃놀이가 이어졌다. 밤에도 그랬고, 아침에도 그랬다. 아침에도 하는 사람은 대체 무슨 생각인가 싶었지만 ‘루샹수이수’, 여긴 중국이니 로마법에 따르는 수밖에….

첫날에는 전쟁터 총소리처럼 느껴졌던 폭죽, 춘제 연휴가 끝날 때 쯤엔 폭죽 소음이 마치 팝콘 만들 때 옥수수알이 터지는 소리처럼 느껴져 입안에 침까지 고였다. 아, 중국의 풍습에 조금씩 적응돼 가고 있는 걸까.

<박은경 경향신문 베이징 특파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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