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를 떠나는 ‘푸른 심장’ 램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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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에 드로그바, 존 테리 등과 함께 2000년대 첼시의 전성기를 이끈 주역이었던 램파드는 가장 오랜 시간을 첼시의 푸른 유니폼을 입고 뛰어 ‘푸른 심장’이라고 불린다.

‘푸른 심장’ 프랭크 램파드(38)가 마침내 현역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램파드는 2일 자신의 SNS를 통해 “많은 구단에서 입단을 제의했으나 이제는 은퇴를 해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디디에 드로그바, 존 테리 등과 함께 2000년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첼시의 전성기를 이끈 주역이었던 램파드는 가장 오랜 시간을 첼시의 푸른 유니폼을 입고 뛰어 ‘푸른 심장’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램파드는 단순히 첼시의 전성기를 이끈 선수만은 아니었다. 그는 2000년대 영국 축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진정한 전설이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의 프랭크 램파드가 2013년 1월 5일 FA컵 사우샘프턴과의 경기 후 팬들에게 손을 들고 있다. / AP연합뉴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의 프랭크 램파드가 2013년 1월 5일 FA컵 사우샘프턴과의 경기 후 팬들에게 손을 들고 있다. / AP연합뉴스

웨스트햄에서 시작, 첼시의 전설이 되다

워낙 첼시 선수라는 이미지가 강하다보니 램파드가 첼시에서 데뷔를 한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러나 램파드가 축구를 시작한 곳은 첼시가 아닌 웨스트햄이었다.

램파드는 1994년 웨스트햄의 유스팀에 입단하면서 처음으로 축구를 시작했다. 당시 램파드의 아버지였던 프랭크 램파드 시니어는 웨스트햄의 주전선수였다. 늘 경기장에서 아버지가 뛰는 모습을 보며 자란 램파드도 자신이 웨스트햄 유니폼을 입고 뛰는 날을 그렸다. 한편 램파드의 삼촌 또한 프리미어리그와 관련이 깊은데, 바로 토트넘과 퀸스파크 레인저스(QPR)의 사령탑을 맡기도 했던 해리 래드냅 감독이다.

1995년 웨스트햄과 프로 계약을 체결한 램파드는 1996년 코벤트리시티와 경기를 통해 EPL에 데뷔했다. 1998~1999시즌에는 웨스트햄을 구단 역사상 최고 순위인 5위까지 올려놓기도 했다.

하지만 램파드와 웨스트햄의 인연은 그리 길지 못했다. 너무나 뛰어난 실력을 지니다보니 빅클럽에서 램파드를 눈여겨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첼시가 가장 적극적이었다. 결국 램파드는 2000~2001시즌이 끝난 후 첼시로 이적했다. 웨스트햄 팬들에게는 가장 아쉬웠던 순간이지만, 첼시 팬들에게는 이보다 더 기쁠 수 없는 순간이었다. 이후 램파드는 2013~2014시즌까지 13시즌을 첼시와 함께하게 된다.

램파드가 첼시로 이적했을 당시 첼시는 약팀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강팀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수준의 팀이었다. 실제로 램파드가 이적한 후 첫 3시즌은 우승권에 다가가지 못했다.

그런 첼시가 강팀이 된 것은 2004~2005시즌 주제 무리뉴 감독이 부임하면서부터다. 로만 아브라히모비치 구단주의 막대한 지원을 등에 업은 무리뉴 감독은 첼시를 강팀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스타 선수들을 영입해 전력을 다졌다. 그리고 2시즌 연속 EPL을 제패하며 강팀의 반열에 올라섰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첼시, 아스널, 리버풀의 ‘빅4’ 구도가 만들어진 것도 바로 이 시기부터다.

램파드도 첼시 중원의 핵심으로 눈부신 활약을 했다. 특히 램파드는 2003~2004시즌부터 2012~2013시즌까지 10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는 등 미드필더로 뛰어난 득점 감각까지 뽐냈다.

램파드가 첼시 시절을 포함해 EPL에서 세운 주요 업적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211골 램파드는 첼시 시절 EPL과 유럽 대항전, 각종 컵 대회를 통틀어 211골을 넣었다. 이는 첼시 역대 최다골 기록이다. 이 중 EPL에서 기록한 골만 177골로, 이는 EPL 역대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102도움 램파드는 EPL 통산 102개의 도움을 기록했다. 오직 라이언 긱스만이 램파드보다 많은 도움을 기록했을 뿐이다. 100골-100도움을 기록한 선수는 긱스와 웨인 루니, 램파드 3명뿐이다.

609경기 램파드는 EPL에서 609경기를 뛰었다. 긱스와 가레스 배리에 이은 EPL 역대 3위 기록이다.

39팀 램파드가 EPL에서 득점을 기록한 팀의 숫자다. EPL 역사상 그 누구도 램파드보다 더 많은 팀을 상대로 골을 넣지 못했다.

존 테리 “함께할 한 명 선택한다면 램파드”

첼시가 2000년대에 전성기를 열 수 있었던 것에는 아브라히모비치 구단주의 막대한 자금력과 무리뉴 감독의 뛰어난 용병술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드로그바와 테리를 포함해 이들을 중원에서 진두지휘했던 램파드의 공헌도가 컸던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첼시는 램파드와 함께 총 11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는데, 첼시 역사에서 이렇게 많은 트로피를 수집한 시기는 램파드가 뛰었던 때가 유일하다. 첼시 역사상 유일한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우승도 이때 나왔다.

램파드는 2013~2014시즌이 끝난 후 첼시를 떠나 미국프로축구(MLS) 뉴욕 시티로 이적했다. 중간에 잠시 임대로 맨체스터시티에서 뛰기는 했지만, 이후 램파드가 다시 첼시로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램파드가 첼시의 상징이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위대한 커리어를 보낸 램파드지만, 그의 위대함은 동시대 그와 함께 활동했던 축구인들의 말을 통해 더 잘 알 수 있다. 램파드와 함께 또 다른 첼시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수비수 존 테리는 “램파드는 우리의 위대한 클럽인 첼시 역사상 가장 훌륭한 선수였다. 만약 나와 함께할 한 명의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면 램파드를 택하겠다”고 말했다. 역시 램파드와 첼시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골키퍼 페트르 체흐도 “앞으로도 영원히 기억에 남을 선수다. 램파드의 훌륭했던 축구 인생에 찬사를 보낸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램파드를 상대해야 했던 선수들도 찬사를 보내는 것은 마찬가지다. 맨유의 주장 웨인 루니는 “최고의 선수이자 동료였다. 그리고 최고의 득점원이었으며 최고의 친구이기도 했다”고 램파드의 업적을 기렸다. 폴 클레멘트 스완지시티 감독은 “램파드와 함께하고 싶었지만, 은퇴를 존중한다”고 같이하지 못한 아쉬움을 전했다.

램파드의 은퇴 후 진로에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영국 현지 언론들은 램파드가 첼시의 코치로 돌아올 것이 유력하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이미 첼시는 지난해 11월 램파드에게 은퇴를 하게 되면 코치로 첼시에 복귀해달라는 요청을 한 적이 있다. 다만 현 첼시 감독인 안토니오 콘테는 “램파드의 코치 합류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다”며 지나친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일단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영국 대표팀 감독이 램파드의 대표팀 코치 합류를 간절히 원하고 있고, 또 잉글랜드축구협회(FA) 역시 이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어 램파드가 어디서든 코치직을 맡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윤은용 경향신문 스포츠부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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