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대출, 부실 위험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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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임대업 대출 21.6% 증가… 금융당국 심사, 과밀업종·지역 참고해 까다롭게

금융위원회는 1월 15일 자영업자가 은행권에서 대출을 받을 때 기존 대출심사와 달리 과밀업종·과밀지역 선정기준을 참고해 금리와 대출한도를 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대출심사가 만들어지고 자리 잡으면 앞으로 예를 들어 한 집 건너 한 집으로 치킨집을 새로 내면 대출금리와 대출한도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 이 제도를 두고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 그렇지 않아도 받기 힘든 자영업자 대출을 더 옥죈다는 비판이 나왔다. 금융당국이 개인의 창업까지 관여하게 된 배경에는 급증한 자영업자 대출에 있다. 정확한 통계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는 자영업자 대출은 올해 미국이 금리를 가파르게 올리면 부실위험이 높아질 수 있어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사실 자영업자의 대출이 어느 정도인지 명확한 통계는 현재까지 구축된 게 없다. 자영업자 개인이 주택담보대출을 받아서 사업자금으로도 쓰기 때문에 실제로 자영업자 대출 통계가 없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이 오는 2월부터 자영업자의 생계형·기업형·투자형 등 유형별 대출 현황 통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대략적으로나마 잡아볼 수 있는 통계로 한국은행의 금융안정보고서(지난해 12월)를 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자영업자 141만명이 받은 전체 대출 총액은 464조5000억원이었다. 이 가운데 사업자대출은 300조5000억원, 가계대출은 164조원이었다. 사업자대출은 말 그대로 사업을 위한 대출로 분류되고, 가계대출은 자영업자가 생활자금 목적으로 받은 대출을 의미한다.

영세 자영업자들이 은퇴 후 가장 많이 열고 있다는 치킨집. 2015년에만 하루 평균 3000개의 가게가 문을 열고 2000개의 가게가 문을 닫았다./연합뉴스

영세 자영업자들이 은퇴 후 가장 많이 열고 있다는 치킨집. 2015년에만 하루 평균 3000개의 가게가 문을 열고 2000개의 가게가 문을 닫았다./연합뉴스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 가계대출 급증

대출 받은 사람의 업종 비중을 보면 전체 자영업자 대출에서 부동산임대업 비중이 39%로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 도소매업(15.8%), 음식숙박업(9.8%), 제조업(9.1%)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부동산임대업 대출은 전년 동기 대비 21.6% 증가했다. 특히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 자영업자의 경우 가계대출 증가세가 사업자대출 증가세를 뛰어넘고 있다. 한은은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이 영세사업장 비중이 높고 담보물건도 충분치 않아 보유주택 등을 담보로 가계대출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시계열로 보면 자영업자 대출은 최근 2년 사이 급증했다. 신한·국민·우리·하나·농협은행 등 국내 5개 은행의 자영업자 대출은 2010년 말 96조6396억원이었으나 지난해 말 180조4197억원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특히 2015~2016년의 증가액은 약 40조원으로, 지난 6년간 증가액(약 84조원)의 46.5%를 차지한다.

자영업자 대출이 급증한 가장 큰 이유는 ‘은퇴 후 창업’이다. 베이비붐(1955~1963년생) 세대들이 직장에서 나와 창업을 하면서다. 국세청 국세통계연보를 보면 2015년 한 해 신규 창업을 한 개인사업자는 106만8000명이었고, 폐업한 개인사업자는 73만9000명이었다. 전국에서 하루 평균 3000개의 가게가 문을 열고, 2000개의 가게가 문을 닫은 셈이다. 가장 많이 문을 닫은 업종은 음식업과 서비스업이었다. 임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에는 고도성장을 하던 때라 직장에서 퇴출된 임금근로자들이 가게를 내도 살림을 꾸려갈 만큼 됐는데, 지금은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면서 수익성이 악화됐다”며 “앞으로 조선·해양·건설에서 구조조정이 더 진행되면 자영업으로 다 몰려들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의 영업전략도 자영업자 대출 급증에 한몫을 했다. 자영업자 대출은 주택담보대출보다 금리가 0.3~0.5%가량 더 높아 마진율이 더 좋기 때문이다. 주택담보대출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자영업자 대출에 눈을 돌린 것도 사실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저금리 시대에 주택담보대출은 이미 다들 하고 있기 때문에 자영업자 대출을 더 적극적으로 권장했던 측면이 있다”고 말
했다.

자영업자 대출, 부실 위험 커졌다

“금리 오르고 집값 내리면 힘들어질 것”

전문가들은 자영업자들의 경우 경기에 민감해 경기가 계속 좋지 않고 금리가 오르면 타격이 클 것이라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허문종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자영업자 대출은 소득 대비 부채규모와 원리금 상환부담이 상대적으로 큰 편이나 매출 부진과 수익성 악화로 대출 상환능력은 앞으로도 크게 개선되기 힘들어 보여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장 자영업자들은 금리가 오르면 휘청할 가능성이 높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자영업자의 처분가능소득 대비 금융부채와 원리금 상환비율은 각각 164.2%, 35.2%로 다른 종사자보다 훨씬 높은 편이다.

또 다른 부실위험 징후는 자영업자들이 비은행권에서 돈을 빌리는 비중이 날로 커져가고 있다는 점에서 포착된다. 한은 자료를 보면, 자영업자가 생활목적 자금으로 빌린 가계대출은 특히 비은행권에서 빌린 돈이 더 많다. 사업자대출의 경우 은행권 비중이 85.6%이지만 가계대출은 은행권 49.9%, 비은행권은 50.1%였다. 가계대출의 경우 비은행권 비중이 더 높았던 셈이다.

예금보험공사의 자료로는 더 정확한 추이가 확인된다. 저축은행의 자영업자 대출은 2014년 9월 5조3000억원에서 2015년 9월 6조원으로 13.2% 증가했다. 지난해 9월 말에는 7조3000억원으로 1년간 급격히 늘어났다. 비은행권 대출은 대부분 고금리다. 예보는 “경기민감도가 높아 경기침체 시 부실화 가능성이 높은 자영업자 대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문제는 자영업자들의 소득이 제자리걸음이라는 점이다. 통계청과 한은 등의 2016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보면, 2015년 자영업자 가구의 평균소득 증가율은 1.2%에 그쳤다. 임시·일용근로자(5.8%)나 상용근로자(2.1%)보다도 낮은 수치다. 물가상승률이 0.7%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살림살이는 전혀 나아지지 않은 셈이다. 2015년 한 해 동안 전체 자영업자 10명 가운데 2명은 월 매출이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자영업자 대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도소매업, 음식숙박업, 부동산임대업 등은 모두 경기민감 업종이다. 경기 영향이 크다는 의미다.

부동산 가격까지 하락한다면 위험도는 더 높아질 수 있다. 보통 적용되는 LTV(주택담보인정비율) 70%가 자영업자의 주택담보대출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자영업자가 주택을 담보로 대출 받으면 가계대출이 아닌 기업대출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저축은행에서 담은 자영업자의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LTV 70%를 초과하는 대출 비중이 67.2%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는 부동산 가격 하락 시 위험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임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자영업자가 가게를 내면 그 사람은 사업자이자 가계이기 때문에 대출로 어디에 쓰는지 현실적으로 추정할 수가 없다”면서 자영업자 주택담보대출이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다고 지적했다. 박덕배 금융의 창 대표는 “자영업자들의 소득은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돈이 안 되더라도 ‘더 버텨보자 버텨보자’는 식으로 대출로 연명하게 된다”면서 “가장 근본적인 대책은 경제가 나아지는 길밖에 없는데, 그 전망이 밝지 않고 금리도 오를 전망이라 (자영업자들이)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임지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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