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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외력침몰설 가설인가 진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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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가 제작한 영상 <세월X> 공개로 논란… “AIS항적 조작설에 맞선 음모론” 비판도

세월호 참사 1000일. 거리에서 제일 많이 외쳐진 구호는 “진실을 인양하라”였다.

하지만 이 ‘진실’이 담아야 할 내용에 대해서는 아직 합의된 바 없다. 유족과 세월호 특조위, 국민 개개인이 2014년 4월 16일 그날, 진도 앞바다에서 전복된 세월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실체에 다가가려는 것을 방해한 이들만 뚜렷할 뿐이다.

“후회하지 않는다.”

1월 초 기자를 만난 ‘네티즌 수사대 자로’(이하 자로)의 말이다. 지난 12월 26일, 그가 2년간 제작한 영상 <세월X>가 유튜브를 통해 공개됐다. 영상제작 경험이 전무한 자로는 영상제작 서적들을 독학으로 참고해 8시간49분2초 분량의 영상을 만들어냈다.

대단한 장비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집과 회사를 오가며 쓰고 있는 구닥다리 노트북으로 만든 영상이다. 회사에서는 근무시간을 피해 점심시간을 이용했다.

“영상프로그램을 켜놓고 화면 클로즈업만 하면 노트북이 버벅대고 멈춰버리는 일이 많았다. 그러면 또 작업이 중단되는 것이다. 잠자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날밤을 새는 것이 부지기수였다. 건강이 많이 상했다.”

그를 버티게 했던 것은 ‘하늘에 있는 아이들’과 ‘양심’이었다고 말했다.

“사전예고편에서 ‘나는 진실을 보았다’고 이야기했는데,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사실이다. 방대한 세월호 자료들을 검토하면서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나는 하늘의 아이들이 도왔다고 생각한다. 내가 발견한 중요한 진실 중 하나는 기존에 침몰원인으로 주장하던 ‘고의침몰설’이 틀렸다는 것이었다. 나만 알고 있었다면, 유가족들이 반대하니 언급하지 않고 넘어갔다면 지금보다 더 광범위한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양심을 속일 수는 없었다. 세월호 유가족분들과 그동안 의견을 나눴던 사람들과 마지막으로 검토작업을 하면서 조율했지만, ‘팩트’는 전부 살려둔 채로 공개했다.”

지난 12월 26일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네티즌 수사대 자로의 <세월X>. / 유튜브 캡처

지난 12월 26일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네티즌 수사대 자로의 <세월X>. / 유튜브 캡처

아직 결론나지 않은 세월호 침몰원인

<세월X>는 그동안 세월호 침몰원인으로 검찰이 발표했던 네 가지 이유인 과적, 조타 실수, 고박불량, 선체 복원력을 차례차례 집요하게 반박한다.

그리고 그 대안적인 설명으로 ‘외력에 의한 침몰 가능성’(이하 ‘외력설’)을 주장한다.

그런데 <세월X>의 상당 분량은 정부 발표 뿐 아니라 그 이외의 주장, 구체적으로는 한겨레TV <파파이스>를 통해 수개월 넘게 김지영 다큐멘터리 감독이 제기한 ‘고의침몰설’에 대한 비판에 돌려진다.

김 감독이 <파파이스>를 통해 제기한 내용 역시 방대하다. 항적기록(AIS), VTS 관제영상, 세월호 선내의 CCTV 등이 조작되었을 뿐 아니라 세월호가 실제 운항했을 것으로 보이는 항적을 재구성해보면 바닷속 등고선에 맞춰 지그재그로 운항하는 ‘항적’을 보이는데, 닻을 이용한 고의침몰을 일으켰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기한 바 있다.

<세월X>는 특히 외력설을 제기하는 초반 부분을 제외한 후반부 영상 상당부분이 이 고의침몰설을 반박하는 데 돌려져 있다. <세월X>가 공개된 후 JTBC의 <스포트라이트>는 두 차례에 걸쳐 <세월X> 내용을 소개하고 검증하는데, 주로 <세월X>가 제기하는 외력에 의한 침몰설이 타당한지에 맞춰져 있다.

영상의 후반부이자 상당 분량을 차지하는 ‘고의침몰설 반박’과 관련한 토론은 여러 커뮤니티 게시판과 SNS 등을 통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세월X>의 주장이 얼마나 타당한지 검증하기 이전에 전제해야 할 것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세월호가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맹골도와 거차도 사이에 있는 폭 8㎞, 수심 30m의 맹골수도에서 전복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은 착각이다. 맹골수도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일본 수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명량해전이 벌어진 울둘목 다음으로 유속이 빠른 곳이다. 그만큼 배가 운항하기에는 위험한 곳이다.

세월호 전복은 맹골수도를 벗어난 후에 일어났다. 남아있는 기록에 따르면 세월호가 맹골수도를 빠져나간 시간은 오전 8시35분이다. 위험한 구간을 통과하자 선장 이준석은 조타실을 떴다. 선장실에서 팬티차림으로 침대에 기대 앉아 카톡게임을 하고 있었다. 기관장 박기호는 선장실 문을 살짝 열었다가 이 선장의 차림을 보고 “아이고 죄송합니다” 하면서 문을 닫았다. 그리고 조타실로 들어오면서 3등항해사 박한결에게 휴대폰을 만지는 시늉을 하면서 “노인네, 방에서 이거 하고 있다. 너는 노인네에게 이런 것 가르쳐주지 마라”고 농담을 건넸다.

사고가 일어난 것은 맹골수도를 통과한 지 11분 후다. 136도로 달리고 있던 세월호의 방향에 대해 항해사 박한결은 140도로 변침을 지시했고, 조타수 조준기는 140도를 복창한 후 변침을 했다. 레이더를 보고 있던 박한결이 140도에 달하자 5도 더 변침을 지시했는데, 조준기는 이때 이미 조타기가 말을 듣지 않는다며 당황하고 있었다. 세월호가 넘어간 것은 그 순간, 오전 8시49분이었다.

일단 안개가 끼었지만 기상상황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파도는 잔잔했다.

전복의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형사법정에 가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처음 형사법정에 참석하면 내심 놀라게 된다. 법적 책임을 두고 치밀한 법정 공방이 진행된다. 관련 증거서류만 보통 수천 쪽이 넘는 것이 예사다. 304명의 사망사고를 낸 세월호 사건은 수십만 장의 증거서류를 두고 공방이 벌어졌었다.

2015년 11월 12일, 대법원은 이준석 선장에게 부작위 살인죄를 적용해 무기징역을 최종 확정했다. 적절한 시간에 퇴선조치를 내리지 않은 선장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대법원은 애초 사고 원인으로 주장됐던 조타실수 등에 대해서는 어떻게 판결하고 있을까. 판결문은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원심에서는 항해사와 조타수의 ‘업무상 과실’이 사고의 원인으로 판단했지만 항소심은 다르게 판단한다. 다시 말해 정상적인 변침을 시도했으나 조타유압장치에 설치돼 있는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현상에 의해 급격하게 오른쪽으로 선회했을 가능성이 있고, 또 세월호의 2개 프로펠러 중 하나만 작동하여 사고가 벌어졌을 가능성 등의 ‘합리적 의심’에 따라 이 부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검찰이 판단의 근거로 사용했던 해양심판안전원의 ‘여객선 세월호 전복사고 특별조사 보고서’(이하 해심원 보고서)의 결론을 부인한 것이다. 주의해야 할 것은 이 재판이 바다에서 조난당한 승객들의 구조책임을 묻기 위한 재판이라는 점이며, 해심원 보고서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공식적으로는 아직까지 결론이 보류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밸브 고장 등이 원인인지는 진도 앞바다에 침몰된 세월호 인양 후 면밀히 조사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고의침몰설과 외력설, 양립 불가능”

그러나 앞의 ‘맹골수도 침몰’과 마찬가지로 이 부분을 깊숙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검찰과 해심원 보고서의 결론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 관점은 “큰 틀의 원인은 규명돼 있으며, 남은 것은 소소한 쟁점”이라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먼저 민간영역에서 이 시각을 비판하고 나온 것은 앞서 인용한 파파이스 김지영 감독의 고의침몰설이다. 이 주장은 최종적으로 <인텐션>이라는 다큐멘타리 영화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앞서 밝힌 것처럼 자로는 검찰의 주장과 고의침몰설이 잘못됐다는 것에서부터 출발했다고 말한다. <세월X>가 공개된 이후 벌어진 SNS 등에서의 논란을 보면 두 입장을 조율하려는 시도가 많다. ‘잠수함 충돌이라는 외력에 의한 고의침몰’과 같은 절충이 대표적이다. 자로가 주장한 ‘외력’의 범위를 ‘앵커, 잠수함, 기타…’를 포괄하는 것으로 넓혀 설명하려는 시도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사안을 깊게 들여다본 양측 모두가 인정하는 것처럼 양자는 병치 가능한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자로는 “AIS 항적 조작 등을 주장하게 되면 기존 공개된 항적을 신뢰할 수 없게 되는데, 그 경우 틀리다 맞다를 이야기할 수 있는 기준선이 사라지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8시간49분 분량의 영상 요약본만 보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전체 영상을 보고 반론을 폈으면 한다”고 말했다. JTBC에서 자신이 주장한 내용을 ‘외력=잠수함 충돌설’로 요약한 것에 대해 일종의 ‘초두효과’가 나타나 그쪽 부분만 논의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영상의 마지막 챕터에서 분석하고 있는 오전 6시26분에 찍은 단원고 학생 수현이의 사진을 둘러싼 논란도 마찬가지다.

<뉴스타파>는 이 사진에 대한 분석을 통해 세월호가 넘어지기 2시간 전에도 5도가량 기운 상태로 운항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사진이 찍힌 위치와 수평선의 각도 등을 통해 기울기에 대한 과학적 계산을 통한 검증이다.

하지만 자로는 세월호 내 CCTV 분석을 통해 사진이 찍힌 위치는 <뉴스타파>가 주장하는 것과 같이 4층 좌현 난간이 아니라 우현 쪽이라고 주장한다. 당시의 항적과 비교를 하면 좌턴을 하고 있었고, 따라서 당시까지는 정상운항을 하고 있었다는 반박이다.

자로는 영상에서 “이 사진이 수현이가 찍은 사진이고, 뭔가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사진을 보면 수현이가 담으려고 했던 것은 ‘일상에서 벗어난 흔치 않은 아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확정한다. 자로의 입증은 사실로 보인다.

그는 “이 분석 영상을 수현이 아버지에게 바치고 싶다”고 영상에서 말한다.

“고생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어렵게 내린 결론이니 만큼 일단 수용한다.” 고 수현군 아버지 박종대씨의 말이다.

박종대씨는 단원고 유가족들 중에서도 ‘그날’의 진실을 찾기 위한 독보적인 연구로 알려진 인물이다. 자로가 <세월X>에서 사용한 자료의 상당 부분은 박종대씨가 정보공개청구 등을 통해 확보한 자료다. 박종대씨는 “하지만 자로 영상의 전체 결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박씨의 견해도 ‘외력의 충돌’은 있었지만 AIS 항적 등은 조작되었을 것으로 이야기한다.

자로가 정부 발표가 틀렸다고 논증하는 방식은 ‘소거법’이다. 세월호 침몰의 원인으로 검찰이 발표한 네 가지 원인을 하나씩 검토해 각각의 원인에 대해 개별적으로 반박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논파되었다고 할 수 없다. 네 가지 원인을 각각 소거한다고 하더라도 전체 원인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신경세포를 하나씩 연구한다고 인간 감성의 존재를 추론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세월호 사건이 (외력설을 포함해) ‘사고’라면 네 가지 원인뿐 아니라 여러 가지 우연적 요소가 결합돼 발생한 사고로 볼 수 있다. 모든 사고가 그렇듯, 원인은 항상 복합적이다. 구조적 원인은 개별 원인으로 환원(reduction)되지 않으며, 사고 발생의 조건들은 시간과 장소를 확정짓지는 않는다. 조건이 충족되면 어느 시간, 어느 유사한 장소에서라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세월호 항적 조작 주장을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 <인텐션>을 제작하고 있는 김지영 감독 측은 “올해 4월 16일 개봉 목표로 영화를 제작 중”이라고 밝혔다. / 프로젝트 不 홈페이지

세월호 항적 조작 주장을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 <인텐션>을 제작하고 있는 김지영 감독 측은 “올해 4월 16일 개봉 목표로 영화를 제작 중”이라고 밝혔다. / 프로젝트 不 홈페이지

세월호 복원력을 둘러싼 논란

“그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복원력이다.”

1월 4일, 밤 늦은 시각 이대 후문 근처에서 만난 김관묵 이화여대 교수의 말이다. 복원력이라는 것은 배가 기울었을 때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힘을 말한다.

상식적인 예측과 달리 여객선은 군함보다 복원력이 보통은 좋지 않다. “군함은 악조건에서도 쓰러지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복원력을 크게 하므로 원래 자리에 빨리 돌아온다. 그렇게 되면 승객들이 멀미를 할수 있기 때문에 여객선은 복원력을 낮추어 파도 등에 흔들려도 천천히 돌아오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세월호는?

김 교수의 계산에 따르면 조타 실수 등이 원인이 아닌 이유는 최대로 ‘전타’(세월호의 경우 35도)의 타각으로 변침하더라도 당시와 같은 잔잔한 바다에서는 검찰의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세월호가 20도 이상 기울어지지 않는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냥 나온 주장이 아니다. 램프를 뗀 증축 이후의 무게중심, 복원력을 계산하기 위한 경사시험, 배에 실린 화물톤수 등을 전부 계산해 보더라도 그날 배가 쓰러질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결론은 그날 오전 8시49분에 배에 어떤 ‘외력’이 가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외력설의 또 하나의 근거는 레이더 영상이다. 세월호가 급변침으로 쓰러져 표류할 때, 레이더 영상에는 세월호 크기의 6분의 1에 달하는 괴물체가 10여분 가까이 잡히다 사라지는데, 이 괴물체가 이동하는 방향은 당시 조류방향과는 살짝 달랐고, 자체적인 이동속도가 있었기 때문에 ‘동력을 갖춘 괴물체’라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자로의 <세월X> 영상은 이런 김 교수의 주장과 계산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김 교수는 특히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시뮬레이션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배를 무리하게 증축했으니 나쁠 것이고, 평형수를 뺐으니 사고가 났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문제는 정량화가 없다. 증축이 어느 정도 배의 복원력에 영향을 미쳤는지, 실제 사고가 날 가능성은 없는 것인지 당연하게 검토해야 한다. 검찰은 어찌됐건간에 그것을 했는데, 진상규명을 한다는 사람들이 그것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자로는 <주간경향>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덧붙였다.

“김 교수가 추정한 복원력은 0.6에서 0.9인데, 특조위 발표는 0.475, 정부 측 발표는 0.38이었다. 특조위 시뮬레이션 결과에서 복원력 계산이 정부 측보다 더 좋은 것으로 나왔는데, 특조위 조사 결과를 보면 ‘정부 발표보다 복원력이 더 나쁜 것으로 나왔다’고 거꾸로 주장했다. 당시 ppt를 보면 17도에서 컨테이너 등이 쏟아져 내린다고 주장하는데, 정말 17도에서 배에 실린 물건이 쏟아진다면 한 해에도 수십 번씩 해상사고가 벌어지게 될 것이다.” <세월X> 측은 특조위가 이런 결론에 이른 과정을 검증할 수 있는 자료도 공개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월X>는 또 하나의 음모설(conspiracy)일까.

일단 기존의 음모론을 비판하면서 또 하나의 음모론을 들고 나온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어떤 것을 두고 음모론으로 봐야 하는지 아직 학계에서 합의된 정의는 없다. 미국의 2003년 이라크 침공이 사실은 석유 확보를 위한 것이었다고 보는 것은 음모설일까.

기존의 설명논리,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했다는 주장에 비해 ‘외력’이라는 단일원인설을 주장하는 점에서는 일견 음모론처럼 보인다. 음모론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은 ‘감춰진 의도’ 또는 ‘사실의 은폐’다. 또 하나의 키워드는 ‘공모’다. 음모가 실행되기 위해서는 특정한 의도를 관철하기 위한 두 사람 이상의 공모가 필요하다. 음모설이 작동하기 어려운 것은 공모의 바탕이 되는 신뢰를 유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두 사람 이상의 공모자가 끝까지 사실을 은폐하기는 어렵다. 일정한 사회적 압력이 존재할 때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가 발생해 의도치 않은 결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공모가 어렵다’는 관점에서 봤을 때 더 취약한 것은 앞서 나온 AIS 항적 조작설 등을 주장하는 입장이다.

조작 가담자가 무한대로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월X>는 어떨까.

세월X, 또 하나의 음모설일까

33차례에 걸친 세월호 재판을 통해 세월호 사건의 ‘실체’에 접근한 책 <세월호를 기록하다>를 낸 오준호 작가는 “<세월X>에 대해 결론을 제외하면, 검찰과 기존 전문가 주장을 평가해 검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세월X>가 결론적으로 제기하는 외력설의 경우 배를 인양하면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의혹에 비해서는 검증할 수 있는 의혹이지만, AIS 항적 조작 등의 주장은 검증 자체가 불가능한 주장이기 때문에 난점이 많다”며 “세월호 사고원인을 둘러싼 지난 1000일의 논란을 보면 특조위 활동에 대한 정부의 조직적 방해와 불통, 은폐가 있었기 때문에 음모론을 불렀고, 그 과정에서 언론들도 철저하게 검증할 수 있는 역량이나 시간을 갖지 못한 채 흘러간 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빨리 마무리하고 끝내려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보다 자극적인 의혹 중심으로 흘러가는 양극화 현상이 나타났다는 주장이다.

<세월X> 측의 주장에 대해 어느 쪽도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는 않고 있다.

<인텐션>을 제작하고 있는 김지영 감독 측은 12월 30일 공개된 한겨레TV <파파이스>를 통해 “<인텐션>을 올해 4월 16일 개봉할 것”이라고 일정을 내놓았다.
제작 중인 영화에 이번에 공개된 <세월X>에 대한 반론을 포함할 것이냐는 <주간경향>의 질문에 대해 김지영 감독 측은 1월 5일 “모든 것은 앞으로 공개될 영화로 말한다는 입장이니 이해해달라”고 덧붙였다.

복원력 시뮬레이션 결과가 잘못됐으며, 관련 자료를 공개하고 있지 않다는 <세월X> 측의 주장과 관련해 특조위 관계자는 “공개하지 않았다는 지적은 맞다”라며 “정확히 말해 예산과 기한 문제로 프로젝트가 중단돼 공개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특조위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정부·여당이나 청와대·정부기관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해도 문서 하나 나오는 데 두 달이 걸렸기 때문”이라며 “자로 측이 밝힌 것처럼 강력한 제2 특조위가 만들어져 외력설을 포함해 그동안 제기되었던 의혹을 충분히 검증하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박주민 의원이 발의한 ‘특조위 연장 특별법’은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패스트트랙이 적용돼 올해 11월에야 본회의에 상정될 수 있다. 4·16국민연대 등이 고육지책으로 1월 7일 ‘416세월호참사국민조사위원회’를 만든 이유다.

단원고 수현이 아버지 박종대씨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누가 어떤 가설을 주장했든, 그 가설에 대한 검증이 해석되고 납득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진실이 밝혀진다. 1000일이 됐다고 몇몇 방송사에서 세월호 참사의 제일 중요한 원인을 묻는 문의가 들어온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대통령은 세월호 사건을 언급하면서 ‘작년인지 재작년인지’라고 말한다.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음모론이라고 못을 박아놨는데, ‘굿을 했다’고 하면 ‘안 했다’고 하고, ‘주사를 맞았다’고 하면 ‘안 맞았다’고만 하지, 그날 뭘 했는지에 대한 답이 없으면서 무조건 음모론이라고 몰아부친다. 혹자는 ‘세월호 사건의 진상은 다 밝혀지지 않았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유가족 입장에서는 아직까지 0%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 곱씹어봐야 할 유족 측의 시각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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