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살처분 찬반 기고-찬성… 살처분, 필요악이자 필요선이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지난해 11월 발생한 H5N6형 아형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이하 AI)가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방역당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확산세가 멈추지 않고 사상 최악의 피해를 기록하면서 현재의 방역대책에 대한 각종 의문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가금류 살처분의 경우 현재의 살처분 정책이 과잉대응이 아닌가 하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고병원성 AI라는 질병의 특성을 살펴보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고병원성 AI는 병명 그대로 병원성이 높고 전파가 빠른 질병이다. 특히 이번 H5N6형 AI는 평균 2.6일 만에 닭을 폐사시킬 수 있는 것으로 밝혀져 과거 H5N8형 AI(평균 4.5일)에 비해 병원성이 더욱 강한 바이러스이다. AI에 감염된 닭이나 오리는 분변으로 다량의 바이러스를 배설하는데, 이론적으로 분변 1g에는 100만마리의 닭을 감염시킬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양의 바이러스가 들어 있다. 즉 AI에 노출된 농장은 바이러스 폭탄을 제조하는 공장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신속하게 제거하지 않으면 이후의 모든 방역대책이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1월 3일 경남 창원시 의창구 주남저수지 일대에서 해군 진해기지사령부 장병들이 조류인플루엔자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1월 3일 경남 창원시 의창구 주남저수지 일대에서 해군 진해기지사령부 장병들이 조류인플루엔자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러한 살처분 정책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공통적으로 채택하고 있다. 네덜란드도 2003년에 3000만마리를 살처분했다. 살처분 범위의 축소와 살처분 처리의 지연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우리나라도 이미 2014년에 경험한 바 있다. 금번 AI 발생에서도 발생 초기에 살처분 범위를 확대하고, 살처분 처리시간을 단축했다면 이렇게까지 확산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살처분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사전에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일단 발생한 농장이나 발생지역에 대한 살처분 정책 자체는 더 많은 피해를 막기 위한 필요악이자 필요선이다. 백신 도입 논의도 있지만, 가금농장에 AI 백신을 접종하는 사안은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백신이란 감염되었을 때 증상을 완화시켜주는 것이지, 감염 자체를 막아주는 것이 아니다. 백신을 접종한 조류도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고, 바이러스 배설량을 낮춰주기는 하지만 바이러스 전파 역시 여전히 이루어진다. 사람이 미리 독감백신을 접종 받아도 독감에 걸리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특집]살처분 찬반 기고-찬성… 살처분, 필요악이자 필요선이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 따르면, 백신을 접종한 가금농장들에서 AI 바이러스가 장기간 유행할 경우 백신에 의해 형성된 면역이 바이러스의 변이를 촉진시켜서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가 출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멕시코, 중국, 이집트, 인도네시아 등의 국가에서 실제 발생하고 있는 현상이다. 백신접종에 의해 감염동물이 임상증상 없이 바이러스를 배출하는 일이 장기간 지속되면 그만큼 사람이 감염원에 노출될 기회도 늘어난다. 구제역과 달리 AI는 사람에게도 감염될 수 있는 질병이다. AI가 인체에 감염될 위험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방역적인 측면에서도 농장이나 방역당국에서 바이러스 감염을 신속하게 파악할 수가 없기 때문에 효과적인 방역이 매우 어려워진다. 백신을 맞았다고 한들 고병원성 AI가 발생한 농장의 고기와 계란을 과연 소비자가 먹으려 할지 의문이다. AI 백신접종 문제는 가축방역뿐만 아니라 공중보건이나 축산물 소비 측면에서도 충분한 사전 검토를 거친 후 결정해야 할 문제다.

동물복지 차원에서 사육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닭, 오리 등 가금류의 사육환경, 특히 밀집사육을 개선하면 어느 정도 AI 확산을 낮출 수는 있다. 밀집사육과 AI 확산에는 일정한 연관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정부도 농장 사육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축사 시설 현대화사업, 친환경인증 농장 등 다양한 제도를 시행 중이다. 하지만 사육환경 개선만으로 닭, 오리가 AI에 감염되는 것 자체를 원천 차단할 수는 없다. AI 발생과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AI 바이러스가 가금류 농장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사전에 막는 농장 차단방역이 가장 중요하다.

<박최규 경북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