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새누리당 명단확보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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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안 표결, 원내대표 선출 이어 향후 ‘탈당파와 잔류파’ 명단으로 절정 이를 듯

‘명단을 확보하라.’

12월 13일 새누리당 친박계의 모임인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혁신과 통합)’ 출범식에서는 한 의원 측 보좌진이 열심히 현역의원 참석자들을 헤아리고 있었다. 의원에게 보고할 참석자 명단을 만들기 위해서다. 중도로 분류되는 의원이었다. ‘혁신과 통합’ 출범식에 참석한 친박 측 의원들의 정확한 명단을 확보해야 향후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정할 수 있어서다. 출범식장에 나타나지 않는 비박 의원실 보좌진 역시 카카오톡이나 문자메시지를 통해 참석 의원 수를 파악했다. 행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참석자 명단이 국회 의원회관에 나돌았다.

12월 들어 새누리당 의원과 보좌진, 관계자 사이에는 ‘명단’이 최대의 관심사다.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탄핵 찬성과 탄핵 반대, 유보 명단이 나돌았다. 언론사에서는 표를 만들어 의원들을 탄핵 찬성과 반대, 유보로 분류했다. 지방 언론사에서는 전수 설문조사를 통해 의원들에게 탄핵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에 대해 직접 물어 기사로 작성했다. 이와 별도로 보좌진은 더 정확한 명단과 표를 작성해 의원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9일 탄핵소추안 통과는 친박 지도부의 셈법이 패배하고, 비박의 셈법이 승리하는 결과를 낳았다. 지역구 정서 때문에 탄핵에 반대하거나 유보하는 입장으로 보였던 의원들이 대거 탄핵 찬성에 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야권 성향 및 무소속 의원을 빼면 새누리당에서는 최소 62표의 찬성표가 나왔다고 볼 수 있다. 탄핵안 반대 56표보다 많은 수치였다.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이 12월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친박 주도 '혁신과 통합 보수 연합' 출범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이 12월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친박 주도 '혁신과 통합 보수 연합' 출범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탄핵안이 통과된 후에도 친박과 비박의 각 진영은 결속에 나섰다. 위기를 느낀 친박 진영에서는 11일 일요일에 갑자기 ‘사발통문’이 돌았다. 범친박에 속하는 한 의원 측은 “의원에게서 전화가 와서 친박에서 모인다고 하는데, 보좌진에게 꼭 가야 하는지를 물었다”고 말했다. 이날 모임에서 친박의 행동모임인 ‘혁신과 통합’ 참여 서명이 이뤄졌다. 이날 일정상 참석하지 않은 의원들에게는 ‘위임’의 형식으로 ‘혁신과 통합’ 참여가 이뤄졌다고 한다. 일요일 모임에 참석한 의원은 24명으로 알려졌고, ‘혁신과 통합’ 참여 의원은 55명으로 집계됐다. 13일 출범식에 참석한 의원은 모두 37명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명단은 시시각각 유포됐다.

명단과 더불어 관심을 끈 것이 ‘살생부’

정진석 전 원내대표의 사퇴로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또 명단을 짜기에 바빠졌다. 16일 신임 원내대표 선출 일정이 잡혔기 때문이다. 친박의 정우택 후보와 비박의 나경원 후보의 대결을 앞두고 언론에서는 탄핵안 통과 이후 의원들을 새롭게 분류하는 명단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친박·비박 양 진영에서는 이 명단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혁신과 통합’ 참여 의원 50여명은 명단에서 친박으로 명시됐다. 비상시국위원회에 참여한 비박 의원들은 40명대였다. 탄핵 후에도 비박이 친박보다 10명 정도 모자라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심은 중도로 분류되는 의원들에게 쏠렸다. 분명하게 친박 또는 비박에 선 의원들이 모두 100명이어서, 새누리당 전체 의원 128명 중 28명 정도가 중도로 분류됐다. 이들은 대부분 예전에 범친박으로 분류되던 의원들이었다. 이들이 비박 후보에게 표를 던질 것인지, 아니면 친박 후보에게 표를 던질 것인지 귀추가 주목됐다. 결과는 친박 후보인 정우택 후보의 승리였다. 정 후보는 62표, 나 후보 55표였다.

투표 전날 밤 비박 진영에서는 명단을 분석하면서 15표 정도의 승리를 점쳤다. 탄핵안 가결 이후 친박의 몰락 흐름이 지속될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1차전인 탄핵안 표결에서 패한 친박의 세력은 만만치 않았다. 원내대표를 뽑는 2차전에서 뜻밖의 승리를 거뒀다. 친박의 한 관계자는 “투표 전날 밤 친박 사이에 위기의식이 고조돼 똘똘 뭉친 결과”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중도라고 하는 의원들은 벌써 마음이 비박 쪽에 가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비박 측이 압도적으로 승리하는 것이 아닌가 해서 친박 쪽을 찍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비박 쪽 관계자는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을 보면 비박 쪽이 많다”면서 패인을 비박 측의 응집력 약화로 보았다. 실제로 비박에서는 양대 축인 김무성·유승민 의원이 서로 엇갈리는 행보를 하면서 혼돈을 빚었다. 이런 과정에서 비박 진영이 하나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12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새누리당 비주류 모임 비상시국회의가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12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새누리당 비주류 모임 비상시국회의가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향후 강성 친박 아닌 온건 친박 등장 점쳐

친박·비박·중도 명단과 더불어 관심을 끈 것이 ‘살생부’다. 12일 새누리당의 친박과 비박은 한때 초강경수를 뒀다. 출당 대상 ‘살생부’를 언급한 것이다. 친박의 이장우 의원은 김무성·유승민 의원을 손꼽았고, 비박의 황영철 의원은 ‘최순실의 남자’ 8인을 언급했다. ‘최순실의 남자’는 정치권에서 며칠 동안 회자될 정도로 ‘히트작’이 됐다. 여기에 언급된 친박 강성 의원들은 다음날 황 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최순실의 남자들’ 외에도 출당 대상 친박 A급 10명, B급 10명의 명단이 SNS를 통해 나돌았다.

비박은 ‘(친박) 출당이 아니면 (비박) 탈당’이라는 결기를 보였지만 일부 인사들은 이런 결기가 오히려 원내대표 경선에서 역효과를 미쳤다고 보았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친박과 비박이 40대 40으로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면서 “비박 측이 가짜 보수 척결을 주장했는데, 이 주장이 범친박에서 벗어난 중도 의원들을 자극했다”고 말했다. 중도 의원 자신이 가짜 보수로 몰릴 수 있는 상황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한 초선 의원은 “나 후보가 선거전략을 ‘개혁’보다 ‘화합’ 쪽에 중점을 뒀으면 승리할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7표 차이였는데, 4표만 돌아섰으면 나 후보가 승리할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 초선 의원은 향후 친박·비박 대결구도에 대해 강성 친박이 아닌 온건 친박의 등장을 점쳤다. 이 의원은 “친박 내부에서도 특히 초·재선 의원들은 다선 의원들이 중심이 된 강성 친박에 대해 불만이 많다”면서 “비대위원장을 비주류에게 양보하고 강성 친박과 강성 비박을 배제한 향후 진로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정 의원이 원내대표에 당선되자마자 이정현 대표를 비롯한 친박 지도부는 총사퇴했다. 신임 정 원내대표는 당선 일성으로 “친박계 2선 후퇴”를 언급했다. 또 비대위원장은 비주류·중도 측이 추천하는 인사가 맡는 것이 합리적이라고도 밝혔다. 이 같은 발언에도 불구하고 친박의 한 관계자는 “그렇게 쉽게 비대위원장을 비박의 손에 쥐어줄 수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비박 앞에는 가시밭길이 놓여 있다. 탈당과 잔류의 갈림길에 섰다. 황태순 평론가는 “이미 비박은 탈당 타이밍을 놓쳤다”면서 “강성 친박이 2선 후퇴하면 탈당 명분도 줄어들게 된다”고 말했다. 잔류의 가능성을 높게 본 것이다. 한 초선의원은 “비박의 다선 의원이 비대위원장을 하게 되면 오히려 비박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비박의 잔류 쪽에 무게를 둔 발언이다.

하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김무성 의원은 몇 차례 탈당을 언급한 바 있어 결행의 시기만 남았다고 볼 수 있다. 친박의 비대위원장 양보에 대해 비박의 한 관계자는 “지명당한 권력은 권위가 없다”면서 “소수파 배려 차원에서 주는 비대위원장이 무슨 힘을 발휘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탈당과 잔류라는 문제로 비박에게는 힘겨운 여정이 놓여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새누리당의 명단 확보 싸움은 탄핵안 찬성과 반대, 친박·비박·중도, 친박 출당 대상·비박 출당 대상, 정우택 표·나경원 표로 이뤄졌다. 앞으로 이 싸움은 탈당파와 잔류파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높아졌다. 게다가 여전히 친박·비박·중도의 분류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의 명단 확보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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