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삼성, 또 하나의 공범?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연루 의혹 갈수록 사실로

6일 이재용 부회장 국조 증인 출석 초미의 관심

삼성그룹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연루 의혹이 갈수록 ‘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10월만 해도 최순실씨에 대한 직접 지원 여부에 대해 “그런 사실이 없다”고 잡아떼던 삼성이지만, 검찰 수사 등을 통해 직·간접 지원금액이 100억원에 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말을 바꾸며 변명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룹을 총괄해 온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6일 국회에서 열릴 국정조사장에 증인으로 서게 됐다.

삼성의 최순실씨 지원 의혹은 국민연금 문제와 엮이면서 전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야당과 시민단체는 국민연금이 지난해 7월 있었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삼성 편을 들어준 배후에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있다고 의혹을 제기 중이다. 삼성이 최순실씨를 지원한 것이 이에 대한 ‘보답’ 차원이라는 주장이다. 합병 후 국민연금이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가치평가액은 5000억원 이상 하락했다.

삼성이 최순실씨를 지원한 이유가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과 연관돼 있는지 여부는 박 대통령의 ‘제3자뇌물죄’를 입증하는 데도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이 이번 게이트 국면에서 ‘또 하나의 공범’으로 지목될 가능성이 있다.

검찰은 최순실씨 수사과정에서 삼성이 지난해 9월부터 최순실씨의 독일 현지 소유 스포츠 컨설팅 회사인 ‘비덱스포츠’에 35억원의 현금을 보낸 사실을 밝혀냈다. 삼성은 “대한승마협회의 협회장사로서 승마 컨설팅 비용으로 지급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비덱스포츠가 컨설팅 이력이 전무한 유령회사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시민단체 회원들이 11월 8일 서울 서초동 삼성그룹 사옥 앞에서 최순실씨 지원 의혹으로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한 삼성그룹을 비판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이준헌 기자

시민단체 회원들이 11월 8일 서울 서초동 삼성그룹 사옥 앞에서 최순실씨 지원 의혹으로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한 삼성그룹을 비판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이준헌 기자

최순실 직·간접 지원 비용 100억 달해

검찰은 삼성전자가 독일에서 43억원을 들여 말 세 마리를 구매한 뒤,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제공해온 사실도 밝혀냈다. 민주당 도종환 의원이 9월 말 이 같은 사실을 폭로했을 당시 삼성전자는 “말 구매는 모르는 일이며 승마단도 현재는 운영하지 않는다”고 잡아뗐다. 이후 검찰 수사 결과가 흘러나오자 최근에야 “국가대표 선수 지원 차원에서 말을 샀지만, 관리비용 등이 부담돼 말을 모두 되팔아 자금을 회수했으므로 문제될 게 없다”며 말을 뒤집었다.

삼성은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씨(구속)가 실소유주인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원을 후원하기도 했다. 이 금액까지 더하면 최순실씨 측에 직·간접적으로 건네진 지원금 규모는 100억원에 달한다.

최순실씨 지원 의혹에 대한 삼성그룹의 해명을 종합해보면 “승마협회 회장사로서 한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그룹 내 인기 스포츠단 지원을 축소해온 삼성이 국내에서는 활성화 정도가 극히 낮은 승마분야에 거액을 선뜻 지원한 것은 상식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삼성은 ‘마케팅 효율성 극대화’ 등의 이유로 작년 4월부터 계열사인 제일기획에 축구, 배구, 농구 등 인기종목 스포츠단을 차례로 이관했다. 올 1월에는 최고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야구 종목의 ‘삼성 라이온즈’도 제일기획에 넘겼다. 제일기획이 스포츠단을 인수하면서 지원금액도 축소됐고, 각 구단 성적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한때 우승을 다투던 축구의 경우 올해 7위로 정규리그를 마감했다. ‘정규리그 통합 4연패’를 달성했던 삼성 라이온즈는 올해 꼴찌에서 두 번째인 9위로 시즌을 마쳤다. 재계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이 스포츠단 운영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소문이 팽배했다.

삼성은 스포츠단이 속한 제일기획을 통째로 매각하려고도 했다. 지난해 말부터 프랑스의 마케팅 기업 퍼블리시스와 제일기획 매각을 논의했지만 올해 1분기 들어 최종 무산됐다. 삼성그룹의 광고물량 보장 문제 및 브랜드 상표권 사용 문제 등을 놓고 이견이 있었지만, 스포츠단 운영 문제를 놓고도 시각차가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과적으로 스포츠단 운영 비용을 절감하려던 삼성이 최순실씨 측에 대한 지원은 아끼지 않은 셈이다.

삼성전자가 승마협회 회장사가 된 것을 두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삼성이 승마와 ‘인연’이 없는 건 아니다. 삼성전자는 1988년 6월 국내 최초로 실업 승마단을 창단했고, 1995년부터 2010년까지 승마협회 회장사를 맡기도 했다. 하지만 2010년 이후부터는 승마계에서 발을 빼다시피 했다. 운영해오던 승마단도 최근에는 재활승마 목적으로만 소규모로 운영해 왔다.

삼성전자가 다시 회장사를 맡아 승마협회 지원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3월부터다.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사장이 협회장으로 선출되면서 승마협회의 이사진에 삼성 임원들의 이름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2015년 3월은 2014년 말 최순실씨의 전 남편인 정윤회씨 등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진 직후였다. 당시 최씨 부부가 승마협회에서 전횡을 부린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이 승마협회장사를 맡을 때 이미 최순실씨의 영향력을 확인하고 ‘선’을 대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삼성이 최순실씨를 지원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밝혀내는 게 최대 관건이다. 검찰은 지난해 있었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을 들여다보는 중이다.

[포커스]삼성, 또 하나의 공범?

손해 볼 걸 알고도 합병 찬성한 국민연금

삼성은 지난해 5월 26일 공시를 통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한다”고 발표했다. 기업 합병 시 가장 쟁점이 되는 건 합병기업 간 주식 합병비율이다. 삼성은 공시일을 기준으로 1개월간 평균 주가 및 거래체결가 등을 바탕으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 합병비율이 ‘1대 0.3500885’라고 명시했다. 제일모직 주식의 가치를 삼성물산보다 3배가량 높게 쳐준 것이다.

합병비율에 따라 기업별 주주들의 희비가 엇갈린다. 반발한 쪽은 당연히 삼성물산 주주들이었다. 삼성물산 주식 7.12%를 보유하고 있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은 공시 다음날인 27일 “합병가액과 비율이 공정하지 않다”며 공개적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단체들도 “합병이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높이는 데 악용될 수 있다”며 과정의 불투명성 등을 문제삼았다.

삼성은 “합병은 양사 간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지만 합병으로 가장 이득을 보는 건 이재용 부회장이었다는 점에서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 당시 이재용 부회장은 제일모직 주식만 23.24%를 보유 중이었고, 삼성물산 주식은 하나도 보유하지 못한 상태였다. 현재도 그렇지만, 이 부회장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룹의 ‘생명줄’과 다름없는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는 문제다. 합병 발표 당시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의 주식 보유량이 0.57%에 불과했다. 반면 삼성물산은 삼성전자의 지분 4.01%를 보유한 2대 주주였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할 경우 이 부회장은 곧바로 합병 후 삼성물산의 최대주주가 돼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높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합병비율에서 제일모직이 유리할수록 이 부회장도 유리한 게 당연했다.

합병의 최종 ‘열쇠’를 쥔 건 당시 삼성물산 지분 11.61%를 보유 중이던 국민연금이었다. 삼성이 우호적 투자자까지 총동원해 이끌어낸 합병 찬성 비율은 47% 수준으로, 국민연금의 찬성 없이는 합병이 물 건너갈 처지였다. 국민연금의 자문기관인 ISS는 합병을 반대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냈지만 국민연금은 7월 10일 투자위원회를 열어 합병에 찬성하기로 결정한다. 합병비율 논란이 워낙 컸던 탓에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진 배경을 놓고 당시에도 한동안 논란이 지속됐다.

검찰 관계자들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의혹과 관련해 11월 23일 서울 논현동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압수수색한 후 확보한 자료를 옮기고 있다./연합뉴스

검찰 관계자들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의혹과 관련해 11월 23일 서울 논현동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압수수색한 후 확보한 자료를 옮기고 있다./연합뉴스

그대로 묻히는 듯싶었던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문제는 삼성의 최순실 지원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재벌닷컴이 분석한 자료를 보면 지난달 20일 기준 국민연금이 보유한 합병 삼성물산 보유 주식가치는 1조5186억원으로, 합병 전보다 5865억원 감소했다. 주식 시세는 향후에도 변수가 많지만 최근 기준으로만 놓고 보면 국민들의 노후자금이 5865억원 줄어든 상태인 셈이다. 삼성이 제시한 청사진과 달리 합병의 시너지 효과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안정성을 원칙으로 기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이 손해를 감수하면서 삼성그룹의 손을 들어준 이유가 바로 최순실씨 때문이라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검찰은 지난달 국민연금과 합병을 진두지휘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을 차례로 압수수색했다.

국민연금은 합병을 찬성하기 전 합병비율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직접 삼성을 만나 합병비율을 조정해달라고 요청까지 한 것으로 확인돼 의혹은 더 커지고 있다. 11월 30일 열린 국정조사에 출석한 국민연금 정재영 직접투자팀장은 “합병비율을 1대 0.46으로 해달라고 삼성에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증언했다. 당시 투자위에 있던 한 관계자는 국정조사에서 “쓰던 휴대전화를 집 쓰레기통에 버려 검찰 압수수색 당시 제출하지 못했다”고 밝히는 등 석연찮은 해명을 내놓고 있다. 국민연금은 “당시 합병 찬성은 합병 후 회사의 시너지 효과 등을 고려한 결정”이라며 “투자위의 결정은 합법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이재용 부회장, 국조서 의혹 해소할까

1500여개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1일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 이재용 부회장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묻기 위한 소송인 모집에 착수했다. 민주노총 등은 이번 게이트를 ‘박근혜·최순실·재벌 게이트’로 규정하고 삼성을 사실상 공범으로 치부하고 있다. 삼성물산 합병을 둘러싼 각종 소송들도 줄줄이 선고를 앞두고 있다. 일성신약이 지난해 5월 삼성을 상대로 제기한 주식매수청구가 소송의 경우 2심에서 “삼성물산 주식가치가 너무 낮게 책정됐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줘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올 2월 제기된 삼성물산 합병 무효 소송도 이달 15일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삼성을 둘러싼 전방위적 압박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제 국민들의 눈은 6일 국정조사장에 서게 될 이재용 부회장의 입에 쏠려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7월과 올해 2월 두 차례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한 바 있다. 국정조사장에서는 이 부회장이 박 대통령을 독대한 경위와 논의된 내용, 최순실씨 존재 사실이나 지원 사실 등을 이 부회장이 알았는지 여부와 직접 지원을 지휘했는지 여부 등을 집중 추궁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부회장이 국민 앞에서 직접 관련 의혹들을 해소해낼 수 있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삼성은 이 부회장의 출석을 앞두고 사전 ‘동선훈련’을 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최순실씨가 의혹을 부인하는 자세로 일관하고 있고, 또 다른 ‘공범’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전혀 진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의혹을 인정하거나 사건의 전말을 밝힐 가능성은 높지 않다.

국정조사에서 삼성과 관련된 의혹이 해소되지 못할 경우 특검에서 진실을 규명하는 수밖에 없다. 검찰은 삼성의 최순실씨 지원 의혹 및 삼성물산 합병 의혹 관련 수사 결과를 특검에 이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 수사 결과에 따라 2008년 삼성특검 당시처럼 그룹의 ‘2인자’인 최지성 부회장이나 ‘브레인’으로 통하는 장충기 미래전략실 사장 등 2선 차원에서 의혹 규명이 ‘정리’될 가능성도 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이 국정조사장에서 제기되는 의혹들에 대해 성실하게 답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