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마켓-중국이 음식 천국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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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마켓에 반한 엄마는 “이렇게 식재료가 다양하게 많으니 중국은 음식의 천국이 될 수밖에 없다. 중국이 음식 선진국”이라며 예찬론을 펼치셨다. 미세먼지 농도 때문에 눈치만 보며 오그라들어 있던 어깨가 저절로 펴졌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베이징에 놀러온다고 하면 그날의 미세먼지 농도에 잔뜩 예민해진다. 한국에서는 으레 베이징은 미세먼지가 심할 거라 예상하고 어느 정도 작정하고 오는 것 같다. 그러나 손님을 맞는 입장에서는 제발 날씨가 좋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미세먼지 농도에 따라 베이징 여행의 만족도가 갈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보다 공기 좋네”라고 하면 정말 뿌듯해지고, “이런 데서 어떻게 살아”라는 반응이 나오면 괜히 미안한 마음까지 든다.

지난달에 엄마가 처음으로 베이징에 오셨다. 도착 일주일 전부터 날씨예보 앱을 수시로 방문해 미세먼지 지수를 체크했다. 스모그가 잔뜩 낀 베이징을 보면 엄청난 걱정을 쏟아내실 게 뻔하니 날씨에 상당히 예민해졌다. 다행히 미세먼지 농도가 ‘우수’(지름 2.5㎛ 이하의 초미세 먼지 51∼100)와 ‘양호’(101∼150)를 오가는 행운이 따랐다. 베이징 날씨가 좋은 게 내 노력으로 된 것도 아니고, 미세먼지 농도가 높다고 내 잘못도 아니건만 이유 모를 자부심까지 들었다.

베이징에 있는 슈퍼마켓 진열대에 각종 채소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 박은경

베이징에 있는 슈퍼마켓 진열대에 각종 채소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 박은경

그런데 엄마가 베이징에 반한 포인트는 좋은 날씨가 아니었다. 생각지 못한 의외의 장소에서 감탄사가 나왔다. 저녁을 먹고 나오는 길에 지나치듯 우연히 들른 슈퍼마켓에서였다. “아니 어쩜 없는 게 없네!”

엄마의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고추였다. 실처럼 긴 고추, 작고 작은 월남고추, 타원형 고추, 형형색색의 파프리카가 진열대에 펼쳐져 있는 것을 보고 감탄에 감탄을 하셨다. 다음은 버섯이었다. 그 슈퍼마켓을 수십 번도 더 갔을 내 눈에는 느타리, 송이, 표고버섯 정도만 보였는데, 엄마는 중국어도 모르는데 차가버섯이며 말린 목이버섯을 쏙쏙 찾아내 순식간에 한국과 가격비교까지 끝내셨다. 중국어를 읽을 수 있는 내 눈에도 보이지 않는 게 프로 주부 엄마의 눈에는 어쩜 그리 잘 띄는지 …. 슈퍼마켓에 반한 엄마는 “이렇게 식재료가 다양하게 많으니 중국은 음식의 천국이 될 수밖에 없다. 중국이 음식 선진국”이라며 예찬론을 펼치셨다. 미세먼지 농도 때문에 눈치만 보며 오그라들어 있던 어깨가 저절로 펴졌다.

중국 대도시의 물가는 무섭게 올라 이제는 뉴욕, 도쿄, 서울 같은 웬만한 세계적 도시 수준을 넘어선 느낌이다. 66㎡ 크기의 아파트 월세를 9000위안(약 153만원)씩 낼 때면 현기증이 날 정도다. 지난 6월 미국 컨설팅업체 머서가 5개 대륙 209개 도시에서 외국인 기준으로 주택, 교통, 음식 등 물가항목 200개 이상을 조사한 결과 홍콩이 1위, 상하이와 베이징이 각각 7위와 10위를 차지했다.

그래도 슈퍼마켓에 가면 활력이 넘치고 중국의 매력도 느껴진다. 한국에서는 찰옥수수에 밀려 구하기 어려운 노란옥수수가 3개에 8.6위안(약 1400원), 돌기가 굵은 신선한 오이 3개는 6.1위안(약 1000원)이면 살 수 있다. 저렴한 가격과 풍성한 종류도 매력이지만 더 큰 장점은 낱개로 판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1인 가구로 살면서 가장 큰 고민은 ‘파 한 단’이었다. 한 달을 먹어도 다 먹기 힘든 파 한 단을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시들어 버리기 직전에 겨우 썰어 냉동실에 넣어 놓고 먹어야 했다. 중국에서는 파 한 대, 마늘 두 쪽을 살 수 있다. 미처 생각지 못한 베이징의 매력을 찾아낸 것 같다. 지인들의 관광 코스에 슈퍼마켓을 넣는 것도 한 번 고려해봐야겠다.

<박은경 경향신문 베이징 특파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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