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노믹스’에 떠는 한국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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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상승·대출금리 인상에 부동산 시장도 당황

11월 18일 원·달러 환율은 서울 외환시장이 문을 열자마자 5.1원 올라 달러당 1180원을 넘어섰다. 환율이 달러당 1180원을 넘어선 것은 브렉시트 이후 5개월여 만에 처음이다. 환율은 계속 올라 1183.2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추가적인 환율 상승이 예고되는 대목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 대선에서 승리한 지 열흘 만에 한국 경제는 본격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 당장 환율 상승이 ‘트럼프노믹스’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자가 돈을 풀어 사회간접자본(SOC) 등에 쓰겠다고 밝히면서 채권시장에서 금리가 크게 올랐다. 시중에 돈을 풀면 인플레이션이 생긴다. 인플레이션은 금리인상을 불러온다. 이른바 ‘트럼프 탠트럼’(Trump tantrum·트럼프 발작)이다. 미국 연준이 연말 금리인상을 단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금리인상은 더 가팔라졌다. 금리인상은 달러가치를 급격히 끌어올렸다.

미국의 금리인상은 당장 한국 시중은행의 금리에 반영되고 있다. 한 달 반 새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0.4%포인트나 뛰어올랐다.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금리인상 속도가 빠르다. 대출금리 인상에 부동산시장은 당황하고 있다. 대출부담이 급격히 증가하면 사상 최고 수준의 가계부채를 안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거시경제 운용에 큰 부담을 갖게 된다. 트럼프 당선에 따라 우려했던 변화가 생각보다 빨리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미 대선 결과가 한국 경제에 미칠 파장에 대해 각계가 주시하고 있다. 트럼프는 아이젠하워 대통령(1953~1961) 이후 64년 만에 정치 경력이 없이 백악관에 입성하게 됐다. 또 조지 W 부시 대통령(2003~2007) 이후 처음으로 행정부와 입법부를 모두 공화당이 차지하는 상황에서 정부를 이끌게 됐다. 강력한 힘을 갖고 있지만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9일 당선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9일 당선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트럼프,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불안감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정책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다. 내부적으로는 규제완화와 감세를 통해 자국 내 제조업을 키우고, 외국에 나간 자국기업을 되돌리려 하고 있다. 금융기관의 위험자산 투자를 규제하는 ‘도드-프랭크법’을 완화해 금융위기로 위축시킨 금융산업을 신자유시대로 되돌려놓을 방침도 세웠다. 대외적으로는 보호무역주의와 고립주의다. 중국(45%)과 멕시코(35%) 등 대미 흑자가 많은 나라에 대해서는 관세를 올리거나 환율조작 여부를 감시해 압박을 넣을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는 한국도 포함된다. 미국이 추진하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자유무역협정은 철회하거나 대폭 수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재협상 대상에 오를 수 있다. 또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재정을 풀어 인프라에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고 공약했다. 투자규모는 1조 달러(1183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축소하는 대신 원유·가스·석탄 등 전통적인 강세를 보인 화석연료산업을 키우겠다고도 했다. 이민자와 외국인에 대한 지원도 줄어든다. 불법이민자는 미국 내에서 일자리나 복지혜택을 사실상 받기 어려워지고, 대규모 추방도 예상된다.

트럼프노믹스에 대한 해외의 평가는 후하지 않다. 감세와 함께 병행하는 대규모 투자는 재정적자를 확대시킬 수 있고, 보호무역주의는 수출입량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무디스의 분석을 보면 트럼프가 공약 전부를 실행할 경우 2020년까지 미국의 연평균 성장률은 0.6%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현 정책을 유지했을 때(2.3%)보다 1.5%포인트나 낮다. 고용도 공약 전부를 실행할 경우는 2020년까지 연평균 0.1%가 감소한다. 현 정책을 유지했을 때 1.2% 증가하는 것과는 대조를 보인다. 특히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수지는 공약 전부를 실행했을 경우 마이너스 10.2%까지 악화될 것으로 무디스는 내다봤다. 현 정책을 유지했을 때(-4.2%)보다 6.0%포인트나 뛰는 것이다.

트럼프노믹스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은 다소 안이해 보인다. “트럼프 당선인의 인프라 투자 확대, 제조업 부흥 등 정책 방향이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요인이 될 수 있다”(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해외건설은 저유가·이란 경제제재 가능성 등 부정적 요인이 커질 수 있으나 미국 내 인프라 투자 확대가 기회가 될 수 있다”(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는 말이 나온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로 인한 미국 교역 감소로 해운 물동량은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이라는 주장도 있다.

‘트럼프노믹스’에 떠는 한국 경제

다소 안이해 보이는 한국정부 대응

하지만 절대 만만히 봐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많다. 한국이 튼튼히 방어막을 쌓았더라도 세계적으로 위험이 전이되면 나홀로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신흥국들은 국가부채 등 대외건전성이 좋지 않기 때문에 위기가 쉽게 전이되는 특성이 있다. 국제금융센터는 “16일 기준으로 미 대선 이후 주가 하락과 국채 금리 상승, 통화가치 하락이 가장 큰 나라는 인도네시아”라며 “1997년 외환위기 때도 인도네시아 금융시장이 먼저 흔들린 뒤 타 국가로 전이됐다는 점에서 파급 여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BNP파리바가 작성한 ‘트럼프 당선에 대한 취약성 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100점 만점에 66점으로, 헝가리와 함께 두 번째로 취약하다. 한국 앞에는 말레이시아(71점)만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보호무역이 강화되면서 미국에 대한 직·간접적인 수출이 둔화돼 한국 경제성장에 부장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미국의 한국에 대한 보호무역 조치는 2000~2008년 2573건에서 2009~2016년 2797건으로 증가했다. 미·중 간 무역전쟁도 부담스런 대목이다. 한국의 미국 직접 수출을 비롯, 중국을 통한 미국 간접 수출도 둔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고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첨단기업을 중심으로 미국 제조업의 리쇼어링(미국 기업의 미국 본토 복귀)이 이뤄지면서 기술전쟁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며 “단기적으로는 미국 경제의 성장세와 수요 확대에 대비해 미국 시장에 보다 적극적인 진출 전략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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