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퇴진 이후’ 새 사회 꿈꾸는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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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퇴진 광화문 캠핑촌’의 일주일… 정권에 대한 분노와 해학 넘쳐

11월 4일 한 장의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사진작가 노순택씨가 사지가 번쩍 들린 채 경찰에 끌려가면서 울부짖는 장면이었다. 사진작가로는 최초로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받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가 자신의 연장인 카메라를 내려놓고 스스로 피사체가 됐다.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선다며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시인과 사진가와 미술가가 짐을 싸 광화문 광장에 모였다.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함께했다. ‘박근혜 퇴진 광화문 캠핑촌’. 하지만 예술가들이 친 텐트는 경찰들에 의해 형태도 알 수 없게 부서지고 말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위인’들이 아니었다. 바닥에 박스를 깔고 침낭을 덮고 노숙을 했다. 일찍 찾아온 겨울, 차가운 새벽 공기는 침낭의 빈틈을 뚫고 겹겹이 껴입은 옷가지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오들오들 떨면서 광화문의 첫 밤을 보냈다.

한 장의 사진, 끌려가는 사진작가

아침이 밝아왔다. 노란 잠바를 입은 누군가가 다가왔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세월호 생존 학생의 아빠였다. 얼마 전 딸이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7공주’라고 부르며, 늘 몰려다니던 일곱 친구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이였다. 배가 침몰하고 있는데도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는 딸의 전화에 아빠는 무조건 선상 위로 올라가라고 알려줬고, 딸은 살았다. 하지만 고통은 멈추지 않았다. 딸은 친구의 생일 즈음이거나 집에서 가까운 하늘공원에 다녀온 날이면 많이 앓았단다. 대학을 그만두고 싶다는 딸에게 아빠는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단다. 그가 칼로 손목의 동맥을 깊이 그어 병원에 입원해 있는 한 생존 학생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 학생의 부모는 다른 생존 학생들에게 무슨 영향이라도 미칠까봐 말도 하지 못하고 혼자 속앓이를 한단다. 그의 손을 잡고, 함께 눈물을 쏟았다. 세월호 7시간, 박근혜씨가 최순실과 보톡스를 맞고 있었는지 굿을 했는지 반드시 밝혀내자며 그의 손을 움켜쥐었다.

아침부터 경찰들이 바쁘다. 경찰버스가 광화문 일대로 모여든다. 박근혜·최순실 비리가 터져나온 후 맞이하는 첫 주말, 얼마나 거리로 쏟아져 나올지 기대와 걱정이 교차한다. 사진작가가 끌려가는 사진을 본 사람들이 하나 둘 광화문으로 모여든다. 어제처럼 설령 빼앗기더라도 다시 텐트를 치기로 한다. 1인용 텐트 몇 동을 펼쳤다. 경찰들의 무전 소리가 시끄럽다. 그런데 전날처럼 빼앗지 않는다. 광화문 광장에 천막을 친 것은 처음이었다. 박근혜로 향한 분노가 경찰로 향하게 될까봐 두려운 것일까? 평당 3000만원을 훌쩍 웃도는 광화문 한복판에 가난한 예술가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작은 보금자리가 생긴 것이다.

박근혜 퇴진 광화문 캠핑촌의 밤. / 이상훈 선임기자

박근혜 퇴진 광화문 캠핑촌의 밤. / 이상훈 선임기자

‘박 대통령의 비대통령화가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현수막이 광장에 걸렸다. 화가들이 그림을 그린다. 박근혜와 최순실, 박정희와 해골 그림이 전시된다. 광화문 광장이 예술의 전당으로 변한다. 시민들이 몰려든다. 시청역에서부터 세종대왕상 너머 북광장까지 시민들의 분노와 환희로 물결친다. ‘중·고생이 앞장서서 혁명정권 세워내자’는 현수막을 들고 교복을 입고 행진하는 청소년부터 백발노인들까지 광장을 메운다. “이게 나라냐”는 노동자, 시민들의 목소리가 드높다. 날이 어두워져도 시민들이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루 숙박부터 장기 숙박까지 ‘캠핑단지 분양사업’을 안내하는 시인의 안내에 시민들이 하나둘 텐트를 친다. 캠핑촌에 30개가 넘는 텐트가 들어섰다. 시민들의 후원물품도 쏟아진다. 컵라면, 핫팩, 빵, 음료가 텐트에 가득 쌓인다.

캠핑촌에서 마이크와 앰프를 준비했다. 캠핑촌이 아고라 광장으로 변한다. 정권을 향한 분노와 조롱, 해학이 넘친다. 4·19 혁명광장이 이랬을까? 프랑스의 68혁명 현장은 이런 풍경이 아니었을까? 한 사진가가 4·19 당시의 사진을 보여준다. 교복과 모자를 쓴 학생들이 들고 있는 흰 현수막에는 ‘민주역적 몰아내자’, ‘민주주의 도살원흉 가차없이 색출하자’, ‘죽은 학생 책임지고 리 대통령 물러가라’는 구호들이 적혀 있다. 6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는데도 같은 구호를 외쳐야 하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 어쩌면 우리의 침묵과 비겁 때문일지도 모른다. 광화문 광장, 새 나라 새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열망이 가득한 밤이다.

아고라 광장으로 변한 캠핑촌

한적한 일요일이 지나가고 4일째, 경찰 무전기에서 “지금까지 친 텐트는 그냥 놔두고, 앞으로 텐트가 더 들어오지 않게 하라”는 소리가 들린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가 실감나는 시간들이다. 광장 초입에서는 시간마다 기자회견이 열린다. 캐리커처를 그리는 만화가, 그림을 그리는 화가, 깃발을 제작하는 예술가, 통기타로 노래를 하는 가수들 때문에 캠핑촌이 흥겹다.

저녁 무렵,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진다. 경찰들이 우비를 입는다. 그칠 것 같았던 비가 거세진다. 비닐을 치지 않으면 텐트가 물에 잠길 판이다.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미사가 끝났다. 누군가 비닐을 꺼내자 경찰 100여명이 달려든다. 어떤 물건도 추가로 설치할 수 없다며 비닐을 빼앗아간다. 미사를 마친 신부, 수녀님들과 신자들이 뛰어온다. 경찰은 불법집회와 공무집행 방해라며 두 신부를 연행하려고 한다. 시민들은 “최순실 사태 이전과 이후의 경찰은 달라야 하지 않으냐?”며 항의한다. 경찰에게 깔린 여성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한 시간이 넘는 소동 끝에 경찰들이 물러갔다. 이미 텐트가 젖어버렸지만, 비와 추위를 막아줄 비닐을 설치하는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박근혜 퇴진 광화문 캠핑촌에서 예술가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박근혜 퇴진 광화문 캠핑촌에서 예술가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8일 아침, 한 시민이 <뉴욕타임스>에 박근혜와 최순실 만평이 실렸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박근혜 머릿속에서 최순실이 운전대를 조종하는 그림이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지난 월요일 점심시간, 짐을 한 보따리 들고 나타나 시민들에게 캐리커처를 그려준 이하 만화가가 그린 그림과 똑 닮았다. 박근혜가 국제적 조롱거리가 된 것이다. 한 청년이 KT 건물에 있는 ‘창조경제센터’에 가서 두 그림을 컬러로 출력해 왔다. 두 만평을 나란히 붙인다. 시민들이 만평이 사실이냐고 묻는다. 땅에 떨어진 국격을 높이는 길은 박근혜가 물러가는 길뿐이다.

캠핑 6일차인 9일, 서울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지만 캠핑촌은 하루 종일 분주하다. 돌아가신 신영복 선생의 제자이신 이상필 선생이 붓글씨를 쓰고, 이동수 화백은 캐리커처를 그려 시민들에게 나눠준다. 춤꾼인 장순향 한양대학교 교수는 ‘끝내 살리라’를 부르고 춤꾼인 김애영, 하애정씨가 민요와 춤 공연을 한다. 연영석, 손병휘. 문진오 가수의 공연과 노래교실이 이어진다. 판화가 이윤엽과 ‘재활용 예술가’ 문화연대 신유아의 손끝에는 붓과 칼이 들려 있다. 삭막한 캠핑촌이 화려한 예술로 다시 태어난다. 텐트마다 ‘퇴진도 복이다. 체포될래?’, ‘박근혜가 갈 곳은 순실옆방’, ‘퇴진하면 퇴거할게!’, ‘박근혜, 퉤근혜’ 같은 발랄한 문패들이 달렸다.

캠핑촌 7일차를 맞은 10일은 온종일 예술이 광장을 채웠다. 박근혜 정부에게 ‘블랙리스트’라는 훈장을 받은 문화예술인들이 ‘박근혜 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를 만들고 ‘블랙리스트 페스티벌’을 열었다. 마임, 노래, 춤, 풍물, 연극….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수준 높은 공연들이 하루 종일 펼쳐졌다. 쏟아진 장대비도 예술의 행진을 멈추지는 못했다.

경찰이 농성텐트를 강제 철거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경찰이 농성텐트를 강제 철거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박근혜가 갈 곳은 순실옆방?

캠핑촌 주민들의 정치 토론이 벌어진다. 한 변호사는 광우병 촛불처럼 시민들의 분노가 사그라지기 전에 박근혜의 2선 후퇴 정도로 합의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야당이 합의를 하지 않겠느냐며 걱정한다. 누군가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국민들이 야당을 끌고 가고 있기 때문이란다.

지금 야당은 무능을 넘어 반역의 길을 걷고 있다. 그들의 목표는 오직 권력을 잡는 것뿐이다. 지난 5일 전국에서 30만명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지 않았다면, 아마도 야당은 김병준 총리-한광옥 비서실장이라는 첫 번째 카드도 받았을 것이다. 박근혜 지지율을 5%로 만든 시민들의 분노가 없었다면, 야당은 박근혜 2선 후퇴와 거국내각이라는 두 번째 카드를 받고 춤을 췄을 것이다. 2016년 11월 시민항쟁이 2008년 광우병 촛불과도 다른 이유는 불법대선, 세월호, 국정교과서, 위안부 합의, 노동개악 등 박근혜 정권 4년 동안 시민들 가슴에 분노가 켜켜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세월호 7시간을 비롯해 밝혀져야 할 비리가 얼마나 남아있는지 그 깊이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11일 낮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캠핑촌을 방문했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국민들과 함께 박근혜 퇴진 운동에 동참하라고 요구했다.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국회 차원의 청문회와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사퇴도 제안했다. 송경동 시인은 박근혜씨가 대통령에서 내려오기 전까지 여기서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전 대표는 “우리 시민들의 한결같은 마음은 박 대통령이 당장 퇴진해야 한다는 것이지만, 많은 국정공백이나 혼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좀 단계적으로, 더 질서 있는 퇴진이 돼야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전 대표가 광장에서 시민들과 도시락을 먹고 있을 때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문재인 전 대표를 향해 “김대중, 노무현 정권 동안 파견법과 비정규직법을 만들어 1000만 비정규직 시대가 됐다”며 민주당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다.

공장에서 자동차를 만들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내가 이러려고 자동차를 만들었나’라고 쓴 현수막을 펼쳤다. 현대·기아차그룹 정몽구 회장이 박근혜-최순실 비리재단인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 각각 85억원과 43억원씩 128억원을 갖다 바친 이유는 불법파견에 대한 면죄부를 받기 위해서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뇌물을 바친 이후, ‘불법파견 특별근로감독 후 정규직화’ 공약과 대검찰청에서 현대차 불법파견을 수사하겠다는 계획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박근혜·정몽구·이재용 캐리커처로 만든 가면을 쓰고, 128억원을 전달하는 가면극을 벌였다. 기자회견을 마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4동의 텐트를 치고, ‘박근혜 퇴진, 정몽구 구속’을 요구하며 광화문 캠핑촌에 합류했다.

“이게 나라냐?”고 말하는 국민들은 이미 대통령을 버렸다. 시민들의 광장에서는 이제 ‘박근혜 퇴진 그 이후’를 토론하고 있다. 새로운 나라, 새로운 사회의 꿈이 이야기되고 있다. 해방 이후 실패한 ‘반민특위’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고, 박근혜 비리의 부역자들을 처단해야 한다고, 이 정부가 저지른 일들을 되돌려야 한다고, 부패기득권 세력들을 끌어내야 한다고, 68혁명의 광장처럼 새로운 사회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을 모아야 한다고. 고되지만 행복한 광화문 캠핑촌의 밤이 깊어간다.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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