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통제되지 않은 세계화의 반작용”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유럽석학들이 본 트럼프 당선과 브렉시트, “외부로부터 밀려오는 변화에 대한 방어”

설마가 현실이 됐다.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 비슷한 당혹감을 안겨준 사건이 5개월 전에도 있었다.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영국민의 선택은 많은 사람들이 예견한 잔류(remain)가 아닌 탈퇴(leave)였다. 2016년 벌어진 이 예견치 못한 ‘사태’들 사이에 어떤 연관성은 없을까. 인류가 만들어온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민주주의 시스템은 어디로 흘러갈까. 중앙대 독일유럽연구센터가 10~11일 ‘대전환기의 유럽-위기, 전략, 전망’이라는 주제의 국제 심포지엄을 열었다. 유럽에서 극우주의와 포퓰리즘, 사회·경제적 변화와 전망을 다루는 행사였다. <주간경향>은 이 행사에 참여한 유럽 유명 교수들로부터 지금의 사태를 어떻게 전망하는지 들을 수 있었다. 신진욱 중앙대 독일유럽연구센터 센터장이 통역과 인터뷰에 도움을 줬다. 기외르기 스첼 독일 오스나브뤼크대학 교수는 헝가리 태생으로, 저명한 노동경제사회학자다. 니콜라이 게노프 독일 베를린자유대학 교수는 불가리아 태생으로, 역시 동유럽 연구의 권위자다. 1994년에는 한국의 근대화를 연구한 저서를 펴내기도 했다.

10일 중앙대 독일유럽연구센터가 주최한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한 유럽 유명 교수들이 트럼프 당선과 브렉시트에 대해 <주간경향>과 좌담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신진욱 중앙대 독일유럽 연구센터 소장, 기외르기 스첼 독일 오스나브뤼크대학 교수, 니콜라이 게노프 독일 베를린자유대학 교수. / 이상훈 선임기자

10일 중앙대 독일유럽연구센터가 주최한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한 유럽 유명 교수들이 트럼프 당선과 브렉시트에 대해 <주간경향>과 좌담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신진욱 중앙대 독일유럽 연구센터 소장, 기외르기 스첼 독일 오스나브뤼크대학 교수, 니콜라이 게노프 독일 베를린자유대학 교수. / 이상훈 선임기자

심포지엄에 참석하러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도중에 트럼프의 최종 당선 확정 소식을 들었을 것 같다. 관련 연구를 해온 학자로서 소감이 남다를 텐데.

기외르기 스첼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최악의 상황에 대해 정신적으로 준비는 되어 있었다. 일단 바라기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당선되어서 집권 초기에 전쟁을 일으켰을 때만큼의 공격적인 미국 정치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독일 신문들을 보니, 대통령에 당선된 트럼프의 사진을 게시해놓고 ‘우리는 해낼 수 있다’는 표제를 달았다. 유럽 난민사태 때 앙겔라 메르켈이 100만명의 난민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받아들이면서 한 말이다. 상황은 어렵지만, 우리는 이겨낼 수 있다는 뜻이다.”

니콜라이 게노프 “선거 결과에는 놀랍지만 충격받지는 않았다. 이번 미국 대선은 두 가지 나쁜 옵션 중 선택해야 했다. 힐러리 클린턴을 보자. 특히 국무장관으로서 세계 정세에 대해 그동안 보여왔던 태도, 리비아나 시리아 사태 등에 대한 무책임하고 공격적인 태도를 보면 그녀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역시 세계에 대해서는 상당히 위험할 수 있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았을까.”

스첼 “게노프 교수님 말씀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힐러리 클린턴의 중동정책은 부시에 비해 결코 공격적이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트럼프는 결코 예측불가능하고 알 수 없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선거 유세과정에서 분명히 어떤 정책을 펼칠 것인지 이야기했고, 공격적이고 위험한 정책이다. 특히 대외적으로는 인접한 멕시코에 대한 공격적 정책을 내놨다. 또한 중동, 중남미 이민자에 대한 엄격한 제한 정책을 말했고, 기후변화나 중국과 관련해서 위험한 정책을 펼치겠다고 했다. 우리는 그걸 막아야 한다.”

이번 미국 대선 결과와 비슷한 충격을 우리는 이미 올해 6월에 경험했다. 바로 브렉시트다.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은 고립적인 사건인가. 혹시 브렉시트에서 나타나는 어떤 전 세계적인 구조변동과 연관된 사건은 아닐까.

스첼 “두 사안은 밀접한 관계가 있고, 하나의 동일한 구조적 배경이 있다고 본다. 아시아 필리핀에서 두테르테가 당선된 것도 마찬가지다.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정치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나는 가장 중요한 배경이 통제되지 않은 세계화의 결과와 그 반작용으로 본다. 외부로부터 밀려오는 거대한, 이해할 수 없는 변화와 압력에 대해 사람들이 민족적 아이덴티티, 더 나아가 더 반동적인 방어적 변화를 선택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브렉시트의 경우 노동계급이나 노인층이 유럽연합을 떠나는 것을 선택했다. 트럼프를 선택한 미국민의 경우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백인 노동계급 남성’을 주된 지지층으로 이야기한다. 브렉시트를 주도한 극우정당 영국독립당(UKIP)의 파라지 대표나 미국의 트럼프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밖으로부터 밀려오는 힘을 국내적인 정치적 에너지로 전환시킨 것이 성공 방법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게노프 “하나의 흐름이 존재한다고 본다. 고립주의적인 보수주의의 부활이다.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세계화는 양면적인 의미에서 혁명적으로 진행되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시장과 교역에서 개혁, 다른 말로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가 많은 파괴적 결과를 낳았다. 다른 한편으로 세계화는 그동안 닫혀 있던 벽을 허무는, 많은 것을 가능케 했던 혁명이다. 지금의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당선은 그 두 가지 의미의 혁명이 뒤로 돌아가는 것이다. 일련의 반혁명적 변화를 다른 곳에서도 경험하게 될 것으로 본다. 유럽, 중국, 러시아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진영논리, 예를 들어 전통적인 좌익과 우익 내지는 진보보수라는 시스템 바깥에서 이런 선택이 나왔다는 점에서 기존 민주주의 제도의 실패라는 지적도 나온다.

스첼 “트럼프는 미국 하층계급의 압도적인 지지를 통해 당선되었지만 그 자신이 부동산 재벌이다. 하층계급의 이익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유럽의 우익 포퓰리즘 정당이 성공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그들을 선택한 사람들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희생자이기 때문에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삶의 곤궁에서 생겨나는 가장 원초적이고 단순한 감정들, 예를 들어 불안·분노·질투·불만과 같은 감정을 증폭시켜 동원해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해결할 실제적인 해법을 갖고 있지 않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권력을 얻는 것이 모든 유럽은 아니지만 점점 더 많은 나라, 심지어 상상도 하지 않았던 북유럽 나라에서도 점점 더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이 우려된다.”

게노프 “그들의 지지자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루저들이다. 패자가 된 노동계급이 정치적으로 보수화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들이 신뢰할 수 있는 어떤 정치집단, 대안이 발견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우익 포퓰리즘이 나타난다. 독일의 경우 이런 우파정당들이 약진을 하지 못했던 예외적 나라인데, 독일조차도 내년 총선들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 정치에 대한 신뢰나 매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이들이 부상할 수 있는 틈새가 나타난다. 노동계급이나 하층민이 교육을 못 받아서가 아니라 젊고 교육받고 지적인 계층에게도 이런 주장들이 매력처럼 다가오고 있다.”

유럽연합은 그동안 인류사에 없던 정치적 실험을 했다. 브렉시트뿐 아니라 그리스발 경제위기에서 유럽의 대응 실패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결과적으로 어떻게 보나. 유럽연합은 붕괴할까. 다시 말해 유럽연합의 미래는 있는 걸까.

스첼 “유럽연합뿐 아니라 남미, 그리고 동아시아에서도 비슷한 구상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유럽연합의 가장 큰 문제는 유럽연합의 틀로 묶여 있지만 회원국들은 자국 중심의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자국 이익을 우선시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경제공동체를 넘어 정치공동체, 조세와 사회정책을 포함한 연대의 틀을 국경을 넘어 만들어내는 것에 가장 반대했던 것이 영국인데, 브렉시트는 오히려 새로운 기회를 주는 것일 수도 있다.”

게노프 “유럽연합은 여전히 중요하고도 매력적인 실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의 존재가 과연 필요한지 되묻는 세 가지 사건이 있다. 첫째는 2000년에서 2007년까지 세계화의 절정기다. 이 시기에 유럽연합은 경제적인 국경을 여는 급진적인 조치를 취했는데, 그 결과로 2008년에서 2009년까지 세계 금융위기가 왔다. 둘째로, 경제위기에 직면하면서 위기관리의 대책이 유럽연합 차원에서 나오지 않았다. 특히 그리스에서 심각한 위기가 발생했지만 임기응변적 대응책만 나왔다. 셋째가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대거 난민이 발생해 난민위기가 발생한 시기다. 메르켈은 난민을 받겠다고 선언했지만 독일 일국 차원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또 다른 작은 포인트로는 세계 경제위기가 오면서 청년실업률이 급증했는데, 유럽연합 차원의 대응책은 2015년 6월에야 나온다. 그것도 짚어봐야 할 문제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관련기사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