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가제 집시법, 이번에 바로잡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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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공관 100m 이내 집회 금지한 11조 3호 위헌제청 받아들여질까… 법원이 청구한 상태

모든 국민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지며, 이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 즉 누구든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집단적 의사표시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주장의 근거는 대한민국 헌법 21조다. 이 조항을 구체화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서도 누구나 경찰서에 신고만 하면 집회·시위를 할 수 있다고 써 있다.

현실에서 경찰은 집회·시위를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처럼 운영하고 있다. 지난 5일과 12일의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촛불행진에 대해서도 경찰은 계속 금지 통고를 해왔다. 경찰은 집시법 12조의 ‘교통 소통을 위한 제한’ 규정을 금지 통고의 이유로 들고 있다. 이와 관련한 시행령에서는 집회를 금지할 수 있는 주요도로 88곳이 열거돼 있다. 박근혜 퇴진 시위대의 행진 경로에 주요도로 중 하나인 세종로가 있다는 게 경찰의 입장이다. 집시법 시행령에는 서울, 부산 등 광역지자체의 도로뿐만 아니라 경기도 성남·안양시 등 기초단체의 도로까지도 집회·시위를 금지할 수 있는 ‘주요도로’로 명시돼 있다.

시민단체는 바로 이 집시법 12조를 ‘허가제 집시법’의 핵심 조항으로 보고 있다. 현행 집시법은 서울시의 도로 16곳을 ‘주요도로’로 지정하고 있다. 세종로, 광화문 사거리, 종로, 연세대 인근, 테헤란로, 대학로 등 사람이 많이 모이고 집회가 자주 열리는 장소가 모두 포함된다. 경찰이 마음만 먹으면 원활한 교통 소통을 이유로 중요한 집회·시위를 상당수 불허할 수 있는 것이다.

2014년 6월 10일 서울 삼청동 새마을금고 앞에서 ‘6·10 청와대 만민대회’가 열리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4년 6월 10일 서울 삼청동 새마을금고 앞에서 ‘6·10 청와대 만민대회’가 열리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경찰, 교통 소통 이유로 금지 가장 많아

참여연대 집회자유사업단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경찰의 집회·시위 금지 통고 근거 중 절반 가까이가 집시법 12조였다. 2011년부터 올해 8월까지 경찰은 1059건의 집회에 금지 통고를 했다. 2011년과 2012년에는 집시법 8조 2항인 ‘장소경합’을 이유로 한 집회 금지 통고가 매년 100여건으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기업 등의 허위신고에 대해 법원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2013년부터 집시법 12조가 경찰 금지 통고의 주된 이유로 등장했다. 최근 5년간 집회 금지 통고 중 교통 소통을 이유로 한 것은 총 447건이다.

집시법 12조와 함께 시민단체에서 ‘허가제 집시법’의 대표조항으로 보는 것이 11조다. 집시법 11조는 청와대, 국무총리 공관, 국회, 각급 법원 등 주요시설의 100m 이내의 집회·시위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참여연대 자료에 따르면 집시법 11조를 이유로 금지 통고를 한 경우는 5년간 41건으로 많은 숫자는 아니다. 하지만 집시법 11조를 근거로 집회 참가자들이 사법처리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정진우 노동당 전 부대표(47)는 2014년 6월 10일, 시민 100여명과 함께 세월호 참사 관련 청와대를 규탄하는 집회에 참가했다. 이들은 ‘책임자 처벌하라’, ‘박근혜 물러나라’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같은 내용의 구호를 외쳤다. 문제는 장소였다. 이 집회가 열린 서울시 삼청동 주민센터 근처에는 국무총리 공관이 있었던 것이다. 검찰은 이를 이유로 정 전 부대표를 집시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정 전 부대표는 왜 법적으로 금지된 국무총리 공관 앞 집회에 참가했을까. 이 역시 집시법 12조 때문이다. 정 전 부대표는 “세월호 희생자 구조에 실패한 책임을 청와대에 묻기 위해 청와대 인근에 집회신고를 여러 건 냈다. 하지만 경찰은 교통이 방해된다는 등의 이유로 전부 금지 통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삼청동에서 우발적으로 집회가 벌어진 것”이라며 “지도에 총리공관이 어딘지 나오지도 않았고, 집회 참가자들도 삼청동 주민센터나 인근 카페에서 약속을 잡는 등 총리공관이 근처에 있었다는 인식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식의 ‘허가제 집시법’을 헌법의 본래 취지에 맞는 ‘신고제 집시법’으로 돌려놓기 위한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 정 전 부대표는 총리공관 인근의 집회를 금지한 집시법 11조 3호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지난해 9월, 서울지방법원은 정 전 대표의 주장을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2003년 헌법재판소는 외교공관 100m 이내의 모든 집회·시위를 금지한 집시법 당시 규정을 위헌으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외교공관 인근 집회에 예외규정이 생겨났다. 해당 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집회가 아니거나, 집회가 휴일에 열린다면 각국 대사관 인근이라 하더라도 집회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서울지방법원은 외교공관처럼 예외규정을 두지 않고 총리공관 인근이라는 이유만으로 집회를 무조건 금지하는 것은 과도한 제한이라고 봤다.

정 전 부대표는 “정부청사 앞에서는 민주노총 등에서 항상 집회를 하고 있는데, 총리공관이 다른 관공서보다 더 제약받아야 할 장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총리공관이 청와대 인근이라고는 하나 100m보다는 멀리 떨어져 있다. 청와대 인근에 광범위한 집회금지구역을 만들기 위해 경찰이 집시법 11조를 활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허가제 집시법, 이번에 바로잡나

박주민 의원, 집시법 개정안 국회 발의

세월이 흐를수록 집시법은 점차 집회·시위의 권리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주요기관 인근 집회 금지 범위는 1962년 집시법 제정 당시에는 200m였지만, 1989년부터 100m로 축소됐다. 2004년에는 외교공관 인근 집회에 대한 예외규정이 생겼고, 2014년에는 헌재 결정에 따라 옥외집회 시간이 자정까지 연장됐다. 올해 1월에는 유령집회를 방지할 목적으로 일부 조항이 개정되기도 했다.

최근엔 집시법 11조와 12조를 시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개정하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지난 9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의 의견을 받아 집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 의원의 개정안은 교통 소통을 이유로 집회를 금지할 수 있다는 문구를 삭제했다.

박 의원은 “지금은 집시법 시행령에 나오는 주요도로에서 집회를 하면 금지할 수 있도록 법에 명시되어 있다. 이번 개정안은 교통 소통을 위해서라면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집회 주최 측과 협의하여 제한만 할 수 있게 바꾼 것”이라며 “이를테면 누군가가 4개 차로를 행진한다고 집회신고를 냈을 경우, 경찰과 주최 측이 협의해서 2개 차로로 제한하는 것만 가능하게 바꾸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의원의 개정안은 집시법 11조도 대폭 손보고 있다. 개정안은 집회 금지구역인 국가기관을 대통령 관저와 각급 법원으로 한정했다. 국회나 총리공관 등은 대상에서 빠진다. 집회금지 범위도 100m에서 30m로 대폭 축소했다. 또한 해당 기관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경우 등에는 집회 금지구역에서도 예외적으로 집회를 개최할 수 있다. 박 의원의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청와대 앞 30m에서 집회를 열 수 있게 된다.

박 의원은 “법원 등을 가보면 담장과 건물의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다. 집회 금지구역을 30m로 줄여도 큰 문제는 없다. 만약 시위대가 화염병 등을 사용했다면 집시법의 다른 조항으로 충분히 집회를 금지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정부는 ‘허가제 집시법’을 유지하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집시법 11조 위헌법률심판에서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외국에서도 공공의 안녕질서와 직결된 경우에 집회·시위의 사전 제한을 인정하고 있다. 집회 내용에 간섭하지 않고, 합리적 범위 내에서 시간, 장소, 방법상의 규제는 헌법 이념에 부합한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

박주민 의원은 헌재가 집시법 11조 3호에 대해 위헌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위헌 결정이 나오면 국회 등 다른 국가기관 인근에 집회 금지구역이 설정된 게 과연 맞는 것인지 논의할 근거가 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제가 낸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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