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대통령 자리 지키는 게 헌정 중단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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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퇴진하라”를 외치는 각계각층의 사람들

‘최순실 게이트’에서 시작된 박근혜 퇴진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박근혜 퇴진운동의 의미는 무엇이며, 과거 대중운동에서 어떤 성찰을 얻을 수 있을까. 박근혜 퇴진운동에 공감하거나 직접 현장에서 촛불을 들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백기완 / 백철 기자

백기완 / 백철 기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84)
“박근혜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 헌정이 중단된다고 걱정할 이유가 없다. 박근혜가 대통령 자리를 지키는 지금이 바로 헌정 중단 상태다. 형식논리를 가지고 역사적 변혁의 흐름을 자를 순 없다. 이번에는 확실히 매듭을 지어야 한다. 1987년 6월항쟁의 열기로 당시 전두환 군사독재는 끝장이 났다. 그런데 군부독재와 싸우던 두 사람(김영삼, 김대중)이 분열하는 바람에 결국 노태우에게 정권이 넘어간 뼈저린 기억이 있다. 박근혜는 국정원의 도움을 받아 거짓으로 집권했고, 국가기밀을 마음대로 유출시켰다. 이미 박근혜 독재권력은 끝장났고 다시 회복할 수 없다. 그동안 시민들의 힘으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을 타도했다. 시민들이 자신감과 사명감을 갖고 11월 12일 민중총궐기에 나서야 한다. 박근혜만 몰아내자는 말이 아니다. 박근혜 권력의 뿌리를 다 뽑아내야 한다. 이 뿌리에는 재벌, 관료, 언론권력이 합세해 있다.”

양기환 / 강윤중 기자

양기환 / 강윤중 기자

양기환 문화다양성포럼 대표(55)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을 거치면서 가장 달라진 점은 시민들이 공화국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헌법이 말하듯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동안 주로 민주-반민주 구도 속에서 싸웠던 것에서 한 단계 나아간 것이다. 공화국의 목표는 공공성 확대다. 지금 시민들은 박근혜 정부의 민주주의 퇴행뿐만 아니라 공공기관 민영화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과거 민주정부 때부터 지금까지 사람보다 돈을 우선시했다면 이제 시민들은 돈보다 사람을 우선시하는 세상을 원하고 있다. 문제는 포스트 박근혜 시대를 준비한다는 정치세력들이다. 현재 거론되는 대권 잠룡(潛龍)이나 정치세력 중에 공화국의 목표와 가치를 분명히 제시하는 세력이 보이지 않는 점이 안타깝다.”

정호희 / 정호희 페이스북

정호희 / 정호희 페이스북

정호희 문자당 대표(52·전 민주노총 대변인)
“11월 4일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 담화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거국중립내각에 대한 언급도, 기자들과의 질의응답도 없었다. 화난 민심에 기름을 드럼통으로 들이붓는 느낌이었다. 지금 시민들의 분노 수준은 체감상으로 1987년 6월항쟁이나 2008년 촛불시위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지금은 기존의 정치지도자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혁명적 정세다. 과거 촛불과 달리 일반 시민들과 조직운동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도 상당히 없어졌다. 만약 야당이 조급하게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했더라면, 시민들의 분노가 기존 질서의 하나인 국회 안에 갇힐 수도 있었다. 야당이 덜컥 탄핵을 제기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구질서를 뛰어넘는 창조적 파괴의 주역은 시민들이다. 어떤 미래가 창조될진 알 수 없으나, 현재보다는 나을 것이다.”

백성균 / 경향신문 자료사진

백성균 / 경향신문 자료사진

백성균 민중연합당 서울시당 사무처장(37·전 미친소닷넷 운영자)
“10월 29일 주말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나서 놀랐다. 2008년에는 MBC 등이 방영되면서 점차 촛불의 크기가 커지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처음부터 시민들이 거리로 터지듯이 나왔다. 촛불의 구호도 굉장히 정치적이다. 2008년만 해도 ‘이명박 퇴진’을 외치는 목소리보다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등 정책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높았다. 지금은 명확하게 ‘대통령 하야,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시민단체에서 먼저 제안하기도 전에 동네 단위에서부터 우후죽순으로 서명운동과 시국선언이 나오고 있다. 1987년, 1997년, 2008년 등 거대한 시민항쟁이 있을 때마다 시민들의 분노는 두세 달씩 이어졌다. 이번에는 ‘박근혜 하야’라는 종착점이 가기 전까지 이 분노가 수그러들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박기홍 / 청년좌파 홈페이지

박기홍 / 청년좌파 홈페이지

박기홍 청년좌파 대표(29)
“여러 여론조사를 보면 청년세대의 박근혜 지지율은 1% 내외로 나타난다.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청년들 분노의 기저에는 정권의 무능과 실정으로 청년실업이 심각해지고, 청년들 삶에 전반적으로 위기가 짙게 깔려 있다는 점이 있다. 전국 각지에서 청년들이 대자보를 붙이고 있다. 이 대자보에는 청년들의 삶이 생생하게 적혀 있다. 여아 정치인들은 벌써 ‘박근혜 이후’를 구상하고 있고, 국회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하려 한다. 시민들의 분노가 박근혜를 넘어 정치권 전반으로 번지길 원하지 않는다면, 정치인들이 먼저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절절한 삶의 불만이 써 있는 청년들의 대자보도 좀 읽으셔야 한다.”

김수환 / 김수환 제공

김수환 / 김수환 제공

김수환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26)
“새누리당과 <조선일보>는 꼬리를 자르고 다음 정권을 잡을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 9년간 나라가 이렇게 된 책임이 박근혜와 최순실에게만 있는 건 아니다. 박근혜 퇴진뿐만 아니라 길고 큰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이 싸움은 우리 자신부터 변화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올해 1월 1일, 민주노총은 ‘병신년’이라는 말이 장애인과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이니 쓰지 말자고 논평을 냈다. 민주노총 논평 사상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논평 중 하나였다. 박근혜와 최순실을 비판하면서 ‘여자가 나라를 망쳤다’는 등의 여성혐오적 표현으로 분노를 나타내는 분들도 있다. 이런 표현을 쓰는 자체가 보수세력 전체의 문제를 박근혜와 최순실 개인에게 한정시키려는 보수세력의 농간에 넘어가는 것이다. 차별적인 말을 쓰지 않고서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을 갖자.”

윤희숙 / 윤희숙 페이스북

윤희숙 / 윤희숙 페이스북

윤희숙 한국청년연대 대표(40)
“현재 정국의 의제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보다 수준이 높다. 국민들의 분노와 항의 표출 강도도 훨씬 세다. 지금 촛불 들고 나오는 분들은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하야, 퇴진 구호는 나오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시민들이 직접 의견을 토론할 수 있는 믿음직한 거점이 필요하다. 11월 2일 시국회의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1987년 범국본, 2008년 광우병대책회의와 같은 기구를 빨리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백은종 / 경향신문 자료사진

백은종 / 경향신문 자료사진

백은종 서울의소리 대표(64·전 안티이명박 부대표)
“박근혜 퇴진운동을 한다고 굳이 청와대로 행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2008년에도 안티이명박 깃발은 광화문에만 머물지 않았다. 동대문이라든지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행진하면서 다른 시민들에게도 동기 부여를 하려고 했다. 오히려 박근혜 집단은 시민들이 청와대로 행진해서 물리적 충돌의 빌미가 생기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박근혜가 물러난다면 부당한 일에 대해 확실히 응징할 수 있는, 제대로 일하는 지도자가 서야 한다.”



현택수 / 현택수 제공

현택수 / 현택수 제공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소장(58)
“시위에 아무리 사람들이 많이 나와도 대통령이 퇴진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경찰이 11월 5일 촛불집회 행진을 금지했다. 경찰의 진압이 강경해지면 시민들의 반발심도 세진다. 양측의 물리적 충돌이 벌어진다면 지금의 하야 정국이 급변할 수도 있다. 또한, 아직 최순실씨 관련해서 관련자 증언 외에 물증이 많지 않다. 추가적인 물증은 검찰을 통해 나올 수밖에 없는데, 검찰 입만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답답하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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