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인기 없는 지도자는 누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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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는 어떤 악재에도 끄떡없던 ‘선거의 여왕’ 박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을 사정 없이 무너뜨렸고, 이제 역대 최저 지지율 기록마저 갈아치웠다. 이러다 박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없는 지도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0%를 향해 가고 있다. 한국갤럽이 4일 발표한 11월 첫째주 정례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5%였다. 이는 지난주 같은 조사에서 17%를 기록한 데서 12%포인트나 떨어진 것이다. 역대 대통령 최저 지지율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7년 외환위기 후 이뤄진 조사에서 나온 6%였다. ‘최순실 게이트’는 어떤 악재에도 끄떡없던 ‘선거의 여왕’ 박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을 사정없이 무너뜨렸고, 이제 역대 최저 지지율 기록마저 갈아치웠다. 이러다 박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없는(unpopular)’ 지도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것 같다. 물론,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다른 나라의 어떤 지도자도 박 대통령처럼 국민이 위임한 선거로 맡긴 권력을 아무 권한 없는 측근에게 내맡겨 국정을 전횡하게 한 사례를 찾기는 어렵다.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과 영국의 브라운

검색 사이트에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이름을 입력하면 연관검색어로 ‘인기 없는(unpopular)’이 뜬다. 올랑드는 1958년 프랑스 제5공화국이 들어선 이후 역대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이 된 지 오래다. 그가 2012년 대선에서 당선된 건 니콜라 사르코지의 ‘폭주’를 막기 위한 민심의 선택이었다. 올랑드가 내건 선거 슬로건도 ‘보통(normal)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올랑드의 지지율은 취임 1년 만에 10%대로 주저앉았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10월 25일 파리 엘리제궁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AFP연합뉴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10월 25일 파리 엘리제궁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AFP연합뉴스

실업률과 경기침체 등 나아지지 않는 경제상황도 문제지만 결정적인 것은 올랑드의 리더십이었다. 프랑스 공영 라디오방송 RFI는 올랑드의 취임 1주년 당시 “프랑스 유권자들은 현란하고 비속한 사르코지에 비해 올랑드가 ‘정상적(normal)’이라고 좋아했지만 이는 곧 올랑드가 카리스마가 없고 돌아가는 일을 잘 모르며 둔하다는 인상으로 바뀌었다”고 보도했다. 2014년 11월 파리 테러 후 반짝 국민의 호감도가 올라갔던 때를 빼면 올랑드의 지지율은 늘 10%대에 머물렀다.

올랑드 대통령은 이제 아예 한국의 박 대통령처럼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을 위기에 처했다. 지난달 25일 발표된 입소스·프랑스정치연구소·르몽드의 공동 여론조사에서 올랑드의 지지율은 4%를 기록했다. 지난달 2명의 기자가 발간한 대통령과의 대담집 <대통령이 이걸 말하면 안 되는데>가 직격탄이었다. 대통령이 지난 4년 동안 엘리제궁에서 몇몇 기자만 61번이나 따로 만났다는 것도 놀랍지만 사회당 인사, 장관, 판사, 축구선수 등 모든 사람을 ‘뒷담화’했다는 사실은 더 충격적이었다. 기자들이 자신의 얘기를 어떻게 적을지 예상하지 못한 단순함은 실낱같은 신뢰마저 잡아먹고 대통령 자질을 의심하게 했다. 올랑드는 이곳 저곳에 사과편지를 8통이나 썼다.

올랑드는 내년 대선 출마가 불투명하다. 그가 내년 대선에서 재선에 도전한다면 결선에도 오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지지율이 극우당 국민전선(FN) 마린 르펜 대표의 절반 수준이다. 사회당은 마뉘엘 발스 총리가 후보로 나서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올랑드는 대담집에서 스스로 표현한 것처럼 “엘리제궁의 유령”이 됐다.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도 ‘인기 없는’ 지도자에 단골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토니 블레어의 뒤를 이어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총리를 지낸 브라운은 영국 현대사에서 가장 인기 없는 총리로 꼽힌다. 다우닝가 10번지(영국 총리 관저)의 ‘불법거주자’라는 불명예스러운 별칭까지 얻었다.

1997년 토니 블레어가 집권하기 전 노동당은 총선에서 네 번 연속 패배하며 수렁에 빠져 있었다. 노동당이 자성 후 내놓은 판단은 ‘영국 국민은 노동당이 나라 살림을 맡을 수 있다고 신뢰하지 못한다’는 거였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친시장경제로의 전환을 모색한 새로운 ‘신노동당(New labour)’ 비전이다. 이 비전의 밑그림을 그리고 실행한 것이 브라운이다. 좌파 진영에서 ‘우편향’이라고 비판이 거셌지만 블레어의 10년 집권을 떠받친 경제개혁 및 성과의 뒤에는 이를 지휘한 영국의 최장수 재무장관 브라운이 있었다.

브라운은 안팎의 두터운 신망을 얻으며 블레어의 후계자가 됐지만 총리 자리에 오르는 순간 추락이 시작됐다. 2007~2008년 금융위기가 큰 악재였다. 각종 개혁정책이 좌초됐고, 브라운의 우유부단한 정책 결정에 민심은 급속도로 이탈했다. 브라운은 논란이 많은 이라크전·아프가니스탄전에 참전하며 전임 블레어 내각의 노선을 계속 이어갔다. 브라운은 뛰어난 언변과 카리스마로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블레어와 비교당해 손해를 본 측면도 있다. 한때 그는 스코틀랜드 에딘버러대학의 스타 교수였지만 어느덧 무표정하고 완고한 총리가 돼 있었다. 대중은 딱딱하고 경직된 지도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2010년 5월 총선에서 정치신인 데이비드 캐머런이 이끄는 보수당에 참패한 뒤 총리직을 내놓았다. 민심의 답은 분명했다. 그해 총선에서 노동당은 29%를 얻었다. 1983년 이후 최악의 성적표였다.

브라운은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을 묻는 국민투표에서 부결을 주도했고, 올해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묻는 국민투표에서도 잔류 진영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며 정치력에 대한 재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는 2015년 사실상 정계은퇴를 선언한 후 의원직마저 내놓았다. 정치적 재기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인디펜던트>는 브라운을 “지도자가 됐지만 늘 ‘(한 발 뒤에서) 대기 중인’ 지도자였다”고 표현했다.

베네수엘라 마두로와 브라질 테메르

우고 차베스의 후계자인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탄핵위기에 처해 있다. 경제적 실정 때문이다. 베네수엘라의 나라 살림은 파산 직전 상태로, 올해 베네수엘라의 인플레이션 증가율은 477%에 달한다. 돈을 세지 않고 무게로 재는 진풍경이 등장했고, 절대빈곤층은 2014년 이후 54%나 늘었다.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생필품을 구하려 국경을 넘어 이웃나라 콜롬비아에 다녀와야 한다.

2013년 집권 초기 60%가 넘었던 마두로의 국정 지지율은 계속 하락해 현재 20%대로 떨어졌다. 마두로가 이끄는 좌파집권당인 통합사회주의당(PSUV)은 지난해 12월 총선에서 참패했다. 1998년 차베스 정권이 들어선 이후 처음이다. 야권이 추진한 국민소환투표에 선거관리위원회가 제동을 걸면서 찬반집회가 끊이지 않는 등 정치적 갈등도 극심하다. 그러나 마두로는 ‘마이웨이’ 국정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최저임금만 네 번을 인상해 총 454% 임금인상안으로 인플레이션 버티기를 하고 있고, 야권의 탄핵 움직임에는 “미국의 축출 음모”라고 대응한다.

지난 9월 연정 파트너였던 지우마 호세프 전 브라질 대통령을 탄핵으로 끌어내리고 정권을 잡은 미셰우 테메르는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8월 5일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개막식에서 테메르는 탄핵심판 개시로 직무가 정지된 호세프를 대신해 개막선언을 했지만 관중석에서는 야유가 쏟아졌다. 테메르는 다음 달 7일 국가정상으로는 처음으로 국가기념일을 맞았다. 독립기념일 퍼레이드에 참석했지만 거리에는 ‘테메르는 나가라’는 피켓을 든 시위대가 몰려나왔다. 국제행사에서도 적잖은 굴욕을 겪었다. 9월 4~5일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자 명단에 테메르는 이름도 없이 ‘브라질의 지도자’로 올라 있었다. 명단이 테메르가 공식 취임하기 3일 전에 만들어진 까닭이다. 9월 20일 국가정상으로 처음으로 유엔총회 연단에 섰을 때는 다른 남미 좌파정권 지도자들이 대거 퇴장해버렸다.

호세프도 재임 시절 국민의 호감을 얻지 못했지만 테메르도 못잖은 ‘비호감’이다. CNT·MDA 조사에 따르면 지난 6월에도 테메르의 지지율은 33.8% 정도였고, 이마저도 4개월 만에 31.7%로 떨어졌다. 페트로브라스 부패 스캔들로 노동자당과 브라질 좌파의 대부 루이스 이냐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의 발목을 묶긴 했지만 테메르 세력도 부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인숙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sook9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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