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외교부 브리핑실 ‘란팅’-“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외신기자들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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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브리핑은 즉흥적 질문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시간 관계상 질문을 그만 받겠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손을 드는 기자가 한 명도 없을 때까지 브리핑은 계속된다.

“당신도 새로 발령받았군요?”

지난 2일. 중국 외교부 입구에서 이것저것 사진 찍는 나를 보고 AFP통신 기자가 웃으며 말을 걸었다. 온 지는 몇 달 지났지만 기사에 쓰려고 사진 찍는 거라고 대답하고는 ‘씨익’ 미소로 갚았다.

베이징시 차오양(朝陽)구 차오양먼(門)에 위치한 중국 외교부 별관 격인 남루(南樓)에서는 매일 오후 3시 내외신 기자들을 상대로 정례브리핑이 진행된다. 새로 온 외신기자 등록도 이곳에서 하는데, 거기서 사진을 찍고 있으니 ‘신참’으로 오해받는 게 당연하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정례브리핑을 주재하고 있다. 루캉, 겅솽 등 3명의 대변인이 번갈이 진행하는데, 화춘잉 대변인이 주재할 때는 발 받침대가 놓여진다. / 박은경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정례브리핑을 주재하고 있다. 루캉, 겅솽 등 3명의 대변인이 번갈이 진행하는데, 화춘잉 대변인이 주재할 때는 발 받침대가 놓여진다. / 박은경

외교부 본건물은 건물 자체도 웅장하고 입구에도 정복을 입은 공안이 배치돼 위압감을 주는 데 비해 별관인 남루 입구는 다소 초라한 느낌이다. 브리핑이 진행되는 남루로 가려면 중국 외교부에서 발급한 ‘상주기자(특파원)증’이 있어야 한다. 대로 근처에 있는 작은 초소 같은 곳에서 신분증을 확인하고, 보안검색대를 지나치면 안전검사를 마쳤다는 걸 의미하는 카드를 준다. 남루 로비에서 다시 신분확인과 보안검색 카드를 주면 브리핑 장소에 가기 위한 검색이 끝난다.

브리핑이 열리는 장소의 이름은 란팅(藍廳)이다. 푸른색 방이라는 뜻인데, 중국에서는 푸른색이 개방·용기·진심·조화를 상징한다고 하니 내외신 기자 브리핑실 이름으로는 꽤 적절해 보인다. 공휴일과 주말, 한 달 남짓 이어지는 여름휴가 기간을 제외하고는 매일 진행되는 이 기자회견은 외신기자 입장에서 ‘어둠 속 한 줄기 빛’ 같은 시간이다. 중국에서는 공무원들은 물론, 웬만한 전문가들도 외국 매체와의 접촉을 피한다. 대부분의 기자회견은 사전에 합의된 질문을 주최 측이 배정한 순서에 따라 물어볼 수 있지만 외교부 브리핑은 즉흥적 질문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시간관계상 질문을 그만 받겠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손을 드는 기자가 한 명도 없을 때까지 브리핑은 계속된다. 대답을 안 할 수는 있지만, 질문을 안 받지는 않는다. 이날 첫 질문은 불법조업 중인 중국 어선에 한국 해경이 공용화기를 사용한 것에 대한 중국 측 입장을 묻는 것이었다. 화춘잉(華春瑩) 대변인은 말이 빨라졌다.

“먼저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질문해 주었는데요. 기자도 자국 보도를 봤겠지만 우리 역시 보도를 보고 관련 상황에 대해 파악 중입니다. 중국은 한국 측이 중국 어민에게 무력을 사용한 폭력적 법 집행을 한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합니다.”

현재 중국 외교부에서는 화 대변인 외에도 루캉(陸慷), 겅솽(耿爽) 대변인이 5일씩 번갈아가며 브리핑을 주재한다. 화 대변인은 북핵 등 민감한 사안이 있는 날은 브리핑이 끝난 후에도 단상에서 내려와 기자들의 추가 질문에 대해 설명해줘 인기가 높다. 지난 5월 리수용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방중했을 때도 개인의견임을 전제로 시진핑 중국 주석과 만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브리핑장에 앉아 있다 보면 중국이 명실상부 G2(주요 2개국)라는 걸 실감한다. 시리아 난민 문제, 이탈리아 지진, 미국 대선 등 전 세계 모든 문제가 질의 범위이기 때문이다. 외교부에서 질문을 했을 때 절반은 대답을 들었고, 절반은 듣지 못했다. 원하는 대답 대신 “우리는 관련 보도에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파악된 내용이 없습니다”라는 말을 들은 적도 여러 번이다. 그렇지만 전화, 이메일, 문자메시지 질의를 무시당하는 것이 일상화되다 보니 무슨 말이라도 해주는 외교부 브리핑이 고마울 따름이다. 이날도 화 대변인은 같은 말로 정례브리핑의 ‘끝’을 선언했다.

“또 다른 질문이 있나요? 없으면 오늘 브리핑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박은경 경향신문 베이징 특파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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